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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31화 (31/170)

31화 서울역 게이트 (1)

“회장님!”

손현욱이 협회장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이미 앉은자리에 박 부장을 포함한 협회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있었다.

‘옆에 있으면서도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둬? 한심한 것들.’

화가 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여기가 존엄한 협회장실이라는 사실마저 잊을 정도로.

손현욱의 부들부들 떨리는 손안으로 스마트폰 화면이 밝게 빛났다. 방금 전 올라온 기사였다.

[속보. 각성자 협회장 공식성명, “이태진은 대한민국의 보물. 우리 각성자 협회는 마땅히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줄 것.”, ‘꼭 한번 보고 싶다’는 말 역시 덧붙여.]

성큼성큼 협회장 앞까지 다가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온하게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내 아들놈이 이렇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지.”

나가라는 뜻이었다. 협회의 중진들이 간단히 목례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도 손현욱은 선 자리에서 목석처럼 가만있었다.

“앉아라.”

협회장 손정연의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손현욱이 자리에 앉았다. 그 정도의 이성은 남아 있는 것이다.

“네놈 건방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늘을 찌르는구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회장님. 이번 사안은 혼자 결정하실 게 아니었습니다.”

순간 손정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러다 눈을 감았다. 미워도 제 아들인 법이다. 잘못 가르친 자신의 잘못도 있었다.

“마땅하고 합당한 대우라는 말씀. 직접 하신 겁니까?”

그렇게 참고 있는데도 놈이 또 도발을 해왔다. 취조하듯 묻는 말투에 참을 인(忍)을 수백 번 그렸다. 손정연으로서도 놀랄 만큼 인내심을 발휘한 것이다.

“왜, 앞으로는 똥 쌀 때도 네 허락을 받을까?”

“아버지!”

“무지렁이 같은 것.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놈!”

“겨우 애송이입니다. 회장님이 직접 나설 일은 아니었습니다.”

마땅한 대우.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장이 직접 한 말이다. 이제 와서 주워 담기에는 말의 무게가 무거웠다. 어중간한 스탠스를 취했다가는 되려 협회의 이름에 먹칠만 하게 된 것이다.

“혹시, 어제 뜬 동영상 때문입니까? 이태진이 A급 헌터들이랑 어쩌고 하는 그거요?”

“겨우 애송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너도 신경 쓰기는 마찬가지구나.”

“예. 세간에서는 분명히 화제니까요. 그래도 그뿐입니다. 일성의 매스컴 다루는 솜씨야 하루 이틀입니까? 한 달 전 올라온 보고서에서만 해도 그랬습니다. 겨우 120레벨 정도로 추측했었죠. 그런데 그러던 놈이 갑자기 A급 각성자와 호각을 다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철규와 말입니다. 뻔하지 않습니까.”

“시건방진 놈. 비각성자인 네놈이 뭘 안다고.”

“저도 협회 이사입니다.”

“손 이사야. 너는 그게 문제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 하나 알았다고 둘까지 넘보지 말라 했거늘.”

“…그래서 그 마땅한 대우라는 건 어떤 걸 두고 말씀하신 겁니까?”

“잘난 네놈이 한번 맞춰봐라.”

“설마! 아니겠죠? 안됩니다. 아버지!”

이때만큼은 손정연도 침묵을 유지했다.

“회장님이 어떤 걸 염두에 두고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근래 들어서 국적을 바꾸는 각성자들이 많습니다. 예. 점점 늘어나는 추세도 맞고요.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S급 특성이 얼마나 대단하든!”

손현욱의 얼굴이 시뻘게졌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뱉어서는 안 될 말을 꺼내고야 만 듯이.

“충무공의 검은 협회의 상징입니다. 재고하셔야 합니다. 회장님.”

“내가 그래서 네놈보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당장 한 치 앞만, 아니,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니야. 쯧쯧.”

“…예?”

“성요한이가 족적을 감춘 지가 십수 년이다. 그 후로 인물다운 인물이 누가 있었냐. 최태성? 그놈은 성요한에 비하면 애송이일 뿐 기량은 반도 못 따라가는 장사치고. 사신수라고 스스로를 치켜세우기 바쁜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서구열강에 비하면 고양이 새끼들에 불과하지. 더군다나 그놈들 성정이면 제 이익을 위해 코웃음 치면서 나라를 팔 놈들이 아니더냐.”

토해내기라도 하듯 손정연이 말을 이었다.

“아직도 감이 안 와? 워싱턴에서 이태진의 이민을 추진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폐쇄적인 공화당에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보장하겠다는 말까지 나온다는데. 코쟁이들 화끈한 거야 너도 잘 알 테고. 미국에서부터 이태진을 성요한이랑 동등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야. 충무공의 검? 나는 그걸로도 부족하다 싶다.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야.”

기어코 손정연이 한숨을 쉬었다.

충무공의 검이라니. 어느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시대적 정신을 나타내는 무기.

“손현욱. 정신 바짝 차리고 사태 파악 좀 해라. 명백하게 우리가 ‘을’인 거야. 납작 엎드려서 이태진이 고놈 비위 살살 맞춰줘야 한다고.”

딴마음 못 품게.

손정연이 마지막 말을 씹어 삼켰다.

***

이전까지 각성자를 대하는 내 자세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아카데미에서부터 그랬다. 동기들이 어떻게 매스컴을 타고 유명해질 것인지에 대해 토의할 때면 나는 눈살부터 찌푸리곤 했었다.

이 구태스러운 생각이 어디에서 기인했느냐를 따지자면 부모님의 죽음이겠지만.

각설하고, 우리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시민들의 뒤에서 몬스터들을 척살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명예는 그것에 뒤따라오는 것이지 선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었다. 목숨이 위협받기 전에는 말이다. 그런데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5년 후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 눈만 감으면 목이 뎅겅 날아가는 영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는 이름을 알리는데 일절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나를 드러낼수록 성장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당장 이번만 해도 그랬다. 각성자 협회장이라는 까마득히 높은 신분의 인사가 먼저 나서서 나를 돕고자 한다.

그들의 속사정 따위야 알고 싶지도 않다. 독이 든 잔이라도 원샷으로 넘겨야 하는 게 내 처지였다.

그런 생각으로 앞으로 홍보팀에서 진행하는 것들을 모두 수용한다고 밝혔다.

내 씁쓸한 감정을 느낀 걸까. 밤새 기자들과 싸웠다던 홍주연과 김주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 서포팅하겠습니다.”

대충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였다. 김주현은 눈치가 빨랐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김석환에게 물었다.

“제 레벨이 어느 정도로 보이십니까?”

내 정확한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B팀을 찾았던 것이다. 그런 내 판단이 옳았다. 오러 블레이드까지 쏟아부었지만 김석환은 한참이나 여유 있어 보였다.

한석훈이 없는 지금, 나를 정확히 재단해 줄 수 있을 만한 일물로 김석환이 적격이었다.

“흠.”

짐짓 바보 같은 질문처럼 들릴 수 있었는데 오히려 김석환부터가 심각한 표정으로 헷갈릴 만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B급이다. 레벨로 따지면 160이 조금 넘어 보이는데.”

다행이었다. 예상했던 것과 차이나지 않는다.

“실제 레벨은 몇이지? 130쯤 되나?”

숨길 것도 아니었다.

“110입니다.”

잠시, 눈썹을 좁히던 김석환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스탯이랑 레벨이 50 이상 차이가 났다니.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어.”

옆에 있던 정철규와 윤진아도 한마디 거들었다.

“높은 스탯과 레벨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레벨업 속도가 가속된다?”

“맞아. 문제는 레벨업 과정에서 쌓이는 스탯 포인트야. 한 번에 5포인트씩 받는 그거. 레벨과 스탯 간의 밸런스를 맞추려다 되려 성장 속도만 더 부추기는 셈이지.”

“그 과정이라면 우리도 다 겪어본 적 있으니까. 다만….”

“그래. 격차가 50이나 차이나는 건 처음 봐. 심지어 지금도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나를 두고 이런저런 분석을 하던 그들이 어찌어찌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김석환이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내게 말했다.

“뭐, 네 앞에서 이런 말 하기는 우습지만 이놈들도 하나같이 재능있다는 말만 들어와서 너 같은 현상을 겪은 적 있지.”

레벨과 스탯의 부조화 현상. 들어본 적 있다.

“원래는 일정 레벨에 도달하면 레벨업 포인트가 줄어들기 마련인데, 너는 아직도 5포인트씩 꼬박꼬박 받고 있는 것 같군. 표정 풀어 인마, 좋은 거야. 아직 성장 여력이 한참이나 남았다는 거니까. 얼마나 남은 건지는 나도 짐작이 안 된다만.”

김석환이 씨익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국제표준으로 봤을 때 레벨은 한참이나 미달이지만, 너 같은 괴물을 평균에 맞춰 끼울 수는 없지. 웃어도 좋다. 명실상부 B급이야. 회장님께는 내가 직접 말씀드리마.”

국제표준.

각성자의 수준을 던전 등급에 맞춰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등급이다. 예컨대 150레벨까지는 C급, 200까지는 B급, 이런 식으로.

김석환의 말처럼, 국제표준이 나를 규정하기에 나는 너무 뛰어났다. 레벨은 100 조금 넘었는데 스탯으로 따지자면 160을 넘겼으니.

어쨌든 강함만 따졌을 때 지금의 나는 어엿한 B급의 영역이었다. 첫 번째로 삼았던 목표를 생각보다 빨리 달성했다. 지금만큼은 순수하게 기뻐해도 좋을 듯싶었다.

근래 들어 정신력이 고갈됐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조급함 때문이었다. 이제 B급을 달성했으니 언제 A급으로 올라서지? 하는.

그것이 나를 무너뜨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자칫 정체불명의 괴한보다 몬스터 아가리 속에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를 노릇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틀간 휴식을 부여하고자 했다. 지금까지의 일을 복기하고 재정비할 시간을 갖추고자.

퇴근길이었다. 얼마 만에 집으로 가는 거지? 쓰게 웃으며 차창을 바라볼 때였다.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지면을 박찼다.

콰앙!

바닥이 움푹 파이면서 주변에 있던 자동차들이 경보음을 울렸다. 아카데미에서는 그랬다. 그곳의 훈련은 늘 예상할 수 없게끔 순식간에 닥쳐왔다.

명분도 그럴싸했다. 생각을 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게끔 유도하는 것. 그곳의 시간들을 혹독하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잠을 자다가, 밥을 먹다가, 또는 훈련 중 쉬는 시간에도. 시끄러운 벨이 울리면 우리는 전투태세를 갖췄다.

3년 동안 그 짓거리를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파블로프의 개가 된다. 신호만 주면 언제라도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그랬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빈 허공의 틈 사이로 공간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한 점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듯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것이 어느 순간 쩍 하고 길게 찢어졌을 때였다.

“씨발.”

도심 한복판에서 게이트가 열리고 있다.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법 따위, 있을 리가.

우리는 온전히 그것들이 넘어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당장 전화기를 꺼냈다.

“지나가는 각성자입니다. 서울역에서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빠른 조치 부탁드립니다.”

툭 하고 전화를 끊었을 때였다. 최대한의 마나를 실어서 외쳤다.

“실제상황입니다! 게이트가 열리고 있습니다. 도망치세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완전히 찢어진 공간에서 놈들이 넘어오고 있었다. 찢어진 크기를 바탕으로 게이트의 등급을 추정할 수 있다.

건물 한 채는 족히 넘어 보이는 크기. 어림짐작으로도 B급은 된다. 도심의 한복판에서 B급 게이트라니. 말 그대로 재앙이었다.

그곳에서 초록색 오크가 대가리를 들이밀었을 때였다.

“꾸륵! 쿠르륵!”

꾸물꾸물 기어나오는 초록 대가리가 보이고 나서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헬리오스의 심장을 장착합니다.]

먹잇감을 찾듯 눈알을 번들거리는 놈에게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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