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일성의 A팀 (2)
그렇게 한계치에 달했을 때였다.
[중첩된 저주 : 저항하지 못합니다.]
짜증 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실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서 이 빌어먹을 것들을 날려대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또다. 예고 없이 땅바닥에서 튀어나온 족쇄가 발목을 챘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난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데. 슬슬 한계였다.
파박!
족쇄가 발을 감자마자 날카롭게 벼려진 얼음송곳이 심장을 노리고 날아왔다. 수도로 그것을 쳐내도 문제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시뻘건 불덩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무슨 훈련을 이리도 실전같이 하는 것인지. 어쩔 수 없었다.
[아드레날린 부스트를 사용합니다.]
방금까지 나를 속박하던 나무뿌리가 산산조각난 즉시였다. 쏟아지는 불덩이를 향해 권격을 날렸다. 따끔한 것 하나 없이 불덩이가 흩어졌다.
[마법 저항력이 높습니다.]
[완전히 저항하는 데 성공합니다!]
무슨 훈련을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한석훈은 자신의 훈련을 버틴 나에게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일성의 인간들은 전체적으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롱소드를 꺼냈다. 여기서 헬리오스의 심장까지 장착하면 훈련의 의미가 없었다.
얼음송곳을 쳐낸 후 몸을 한 바퀴 회전했다. 등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느껴졌다.
쿵!
동시에 짓누르는 기운이 강했다. 조금 할만하다 싶어지면 어김없이 숨을 옥죈다. 여기에 무력감을 느낄 틈 따위도 없다.
[중첩된 저주 : 일부 저항하지 못합니다.]
“커헉!”
어쩔 수 없이 각혈하고 말았을 때도 훈련은 계속됐다. 바깥에 있는 이들은 물론이고 나부터가 원치 않았다.
아드레날린 부스트까지 쓴 마당이다. 이렇게 된 이상 본전을 뽑아야 했다. 그런데 시련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환영마법.
마법 저항력이 낮은 대가였다. 그것이 뇌 속 어딘가를 파고들어,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쥐새끼들을 더럽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궁쥐처럼 생긴 레트라놈들은 세뇌를 유도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휘말리면 안 된다는 걸 알아도 어머니의 얼굴이 나타나 버리면 멈칫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가 놈들이 바라는 순간인데도!
스악!
옆구리가 화끈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저것은 어머니가 아니다. 내게 애달픈 얼굴로 손을 뻗는 환영을 찢어발긴 후였다.
[한계점을 돌파합니다.]
[모든 스탯이 1 상승합니다.]
그와 동시에 남아있던 힘이 쭉 빠졌다.
“그만!”
그때 컴컴했던 공간이 번쩍이며 밝아졌다. 우르르 튀어오는 인원들이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있을 때였다. 환한 빛무리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따스한 기운과 함께 가팔랐던 숨소리와 터질듯한 심장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정면을 보자 처음 그랬던 것처럼 나를 향한 시선이 쏟아지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더 이상 웃고 떠들고 있는 게 아니라 침묵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
나도 그랬다. 아무리 키우는 재미가 있을 거라고 허장성세를 떠들었기로서니. 사람 하나 죽일 듯이 달려들어?
그나저나 이 상황, 낯익다. 한석훈과 한창 가학적인 훈련을 할 때 이랬었다. 맞고 회복하고 맞고 회복하고.
“…다음은 뭡니까?”
나도 모르게 이를 갈았나 보다. 어디까지 가나 하고 말이다.
“다음? 지금 그런 말이 나와?”
김석환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6분. 6분이다. 네가 버틴 시간 말이야.”
정철규가 징그럽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최초라고. 처음 들어왔는데 6분이나 버틴 인간은.”
그러더니 돌연 어깨를 붙잡는다. 마주친 김석환의 얼굴에서 강렬한 감정이 꿈틀거렸다.
“너 진짜 여기 안 올래? 잘해준다니까?”
“…….”
어처구니가 없어서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자 김석환이 마침 ‘아차’하며 말을 이었다.
“합격. 합격이다, 이태진. 네가 이겼다는 말이라고. 좋다! 우리 팀에 들어오지 않아도 좋아. 그냥 궁금해. 한계선이 어디까지 그어져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 생각이고.”
김석환의 눈빛에 사뭇 집착이 보이기까지 한다. 생각보다 내 제안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한 듯했다.
“약속이다? 앞으로 훈련은 우리들이랑만 하기로. 열과 성을 다해 도와주마!”
나부터가 요청했던 것이긴 했다. 되려 김석환이 선뜻 제안해주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네’ 하고 대답했더니.
뒤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저 녀석 한계를 시험해 보자느니, 잠재력이 궁금하다느니. 열의를 불태우는 모습이었다.
그때쯤 슬슬 이성이 돌아오고 있었다. 무려 일성의 A급 헌터들이 나를 직접 지도해 준다? 빨리 성장할 기회였다. B팀장 백인호를 엿 먹이는 건 덤이었고. 건네오는 손을 맞잡았다.
***
“주현 씨. 숙제는 어떻게 돼 가?”
홍주연이 그렇게 묻자 김주현이 자신 있는 듯 대답했다.
“거의 다 마무리됐습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신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입사 후 처음 준 업무였는데 생각보다 훌륭하게 성과를 내고 있었다. 소재가 워낙 좋았던지라 별 어려움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잠시 후 김주현이 사내용 메일로 파일을 보냈다는 말과 함께 홍주연의 눈치를 살폈다.
“그보다, 태진 씨 컨펌은?”
가장 중요한 숙제가 남아 있었다. 사실 제일 어려운 일이기도 했고.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이태진에게 전화를 건다.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매스컴을 싫어하는 남자다. 대다수의 각성자들이 동의하는 바, 헌터도 엔터테이너가 된 세상이었다. 우스갯소리로 헌터들의 몸값을 올리기 제일 쉬운 방법이 연예인이 되라는 말이 나돌 정도니.
그런 세상에서 매스컴을 거부하는 남자가 이태진이다. 자신만의 철학이 있음이 분명했다.
“아, 네, 네. 감사합니다!”
으음?
김주현이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뒤이어 ‘허락받았습니다!’ 하며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헤실헤실 웃는다.
그럴 리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뷰라면 질색을 하던 남자였는데. 무슨 바람이 분 거지?
“뭐, 뭐라고 하던데?”
“그냥 알겠다고 하던데요?”
김주현이 별로 어려울 것도 없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태진 씨 전담은 앞으로 주현 씨가 해야겠는데.”
“네, 네?”
다른 사람이었으면 단칼에 거절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무슨 변덕인지는 몰라도 당분간 이태진에게 용건이 있을 때는 김주현을 통하면 될 것 같았다.
정작 김주현은 그렇게 큰 임무를 맡아도 되는 거냐며 어안이 벙벙한 채 있지만 말이다.
피식 웃으며 보내온 파일 중 첫 번째를 열었다. 영상의 시작은 김석환의 얼굴에서부터였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는 그의 얼굴이 서서히 줌아웃 됐다.
스쳐 지나가는 얼굴이 있었다. 정철규, 윤진아의 흥미진진한 표정 뒤 모니터 안으로 앵글이 쏟아졌다.
언뜻 춤을 추고 있는 듯 보이지만. 동영상이 슬로 모션으로 바뀌었다.
후웅!
암기들이 스쳐 지나가고, 이태진의 여유로운 표정까지. 그러던 와중에 서서히 난도가 높아진다. 속성마법이 살벌하게 이태진을 향해 쏟아진다.
처음과 대조되는 진지한 표정의 A팀의 얼굴이 화면에 담겼다. 이런저런 평가까지도. 그리고 마침내 경악스럽다는 듯 입을 벌리며 눈을 부릅뜨는 게 생생하게 담겼다.
하이라이트는 김석환이 이태진에게 최초라고 말할 때였다. 짜고 치는 연기 따위가 아니다. 그래서 더 현장감이 살아 있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소재 자체가 좋았다.
“간단한 인터뷰 하나 따려다가 무슨.”
새우 좀 잡으려다 참치가 잡힌 격이었다. 첫 번째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홍주연이 무의식적으로 다음 영상을 빠르게 클릭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마음이 다급해지는 것이다.
며칠 후라는 자막과 함께.
정철규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첫 번째 장면이었다.
“이때까지 훈련방식이 어쨌다고?”
반대편에 서 있는 이태진이 뭐 문제 있냐는 얼굴로 대답한다.
“대련이요.”
“…그리고?”
정철규의 물음에 이태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뭐 할 게 더 있냐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비무를 통한 성장은 각성자들이 주로 쓰는 방법이잖아요. 팀장님.”
카메라에 잡힌 홍주연이 마치 해설자라도 된 듯 김석환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그렇죠. 근데 그거는 애송이 시절에나 써먹을 방법이고. B급 헌터쯤 되면 팀원들끼리의 대련은 컨디션 체크용에 불과해집니다. 올릴 수 있는 스탯에 한계가 있거든요.”
김석환도 이해가 안 가는 건 마찬가지인 듯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처럼 실전 같은 환경으로 한계치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게 저희가 말하는 훈련이죠. 그마저도 극소량의 성장만 기대할 수 있지만.”
“그러면 이태진 씨의 현재 성장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도, 제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재능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피식 웃는 김석환을 끝으로 장면이 바뀌며 정철규가 다시 화면에 잡힌다.
“근거리 딜러는 아니지만 창은 좀 다룰 줄 알아서. 괜찮지?”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정철규 선배님. 지도 부탁드립니다.”
이태진이 고개를 꾸벅 숙였고.
“지도는 무슨. 이건 거래야. 너는 성장할 수 있어서 좋고, 우리는 되먹지도 않은 미친 재능을 파헤칠 수 있어서 좋고.”
정철규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수를 양보한다는 뜻이었다.
“그럼.”
롱소드를 쥔 이태진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카메라의 앵글이 못 쫓아간 것이다.
카앙!
쇳소리가 먼저였고 잠시 후 카메라가 여유롭게 창대로 이태진을 막고 있는 정철규가 잡혔다.
“속도도 좋고, 자세도 좋아. 검이 너무 정직한 것도 아니고. 계속해 봐.”
흐뭇하게 웃는 정철규의 얼굴이 확대됐다. 누가 보면 아끼는 수제자의 재롱을 보는 선생의 얼굴이라 오해할 듯싶었다.
“저 새끼 웃는 것 좀 봐.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하는데?”
아쉬워 죽겠다는 얼굴로 김석환이 그것을 바라봤다.
“그러게 사다리 타기로 정하자고 했잖아요. 가위바위보 하나는 자신 있다더니.”
더불어 옆에 있던 윤진아가 고개를 저으며 쯧쯧 혀를 찼고. 화면이 다시 이태진 쪽으로 돌아갔다. 이태진이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간, 빛이 번쩍거렸다.
콰앙!
“호오. 기세가 바뀌었는데.”
“스킬을 쓴 건가요?”
홍주연이 그렇게 묻는다. 모르고 묻는 게 아니라 영상을 보는 시청자를 고려한 질문이었다.
“기교를 다투는 자리입니다. 스킬은 필요 없죠.”
김석환이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시선은 여전히 비무장에 가 있는 상태였다.
영상이 빨리 감겼다. 홍주연이 참지 못하고 하이라이트로 장면을 넘긴 것이다.
잠시 뒤, 정상 속도로 흐르기 시작한 화면에서는. 이태진이 일방적으로 공격을 이어갔지만 누가 봐도 정철규가 지도를 해주는 것에 불과해 보였다. 분명 홍주연이 봐도 그렇게 보였는데.
“푸핫!”
김석환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홍주연의 얼굴이 이어졌다.
“그새 정철규의 습관을 파악한 거예요. 어떤 식으로 창을 쥐는지, 방어할 때 어깨는 또 어떻게 돌아가는지. 몇 번 맞대보고 바로 알아챈 겁니다.”
“흔한 일은 아니죠?”
홍주연이 그렇게 묻자.
“…엄청 드물죠. 엄청.”
김석환이 먼 과거를 헤매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홍주연이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그때는 정철규도 숨이 찬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체력도 좋아. 부족한 게 뭐지? 레벨?”
정철규가 ‘휙’ 하고 창대를 흔들자 부질없이 이태진의 검이 날아갔다.
눈썹을 꿈틀거리던 이태진이 주먹을 감싸쥐었다.
“화난 것 같은데?”
“어제부터 느낀 건데. 쟤도 성깔 있다니까.”
순간 이태진의 몸이 정철규의 품으로 파고들었을 때였다.
빠악!
가뿐히 막기는 했지만. 정철규의 황망한 얼굴이 카메라에 그대로 잡혔다.
“똥폼 잡더니 꼴좋네.”
영상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터라 뭐가 어떻게 돌아간 건지 분간도 안 됐다.
“파악한 습관을 바탕으로 약점을 공략했습니다. 단순히 레벨 차이 때문에 막힌 거지, 동레벨이었다면 아마도.”
그 말을 끝으로.
“야! 나와!”
다음은 자신이라며 근질근질하다는 듯 김석환이 다급하게 손짓했다. 정철규가 무슨 말이냐며 이제 시작이라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끝으로 두 번째 영상이 마무리됐다.
“좋네. 합격.”
편집이 깔끔했다. 김주현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사내 유튜브 계정으로 업로드하겠다며 보고를 올렸다.
타이밍이 뜬금없기는 했지만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태진이다. 조회수에 별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홍주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짐을 챙겼다. 며칠 밤을 샜다. 어디든 누우면 잘 수 있을 것이다. 김주현에게 업로드를 부탁하고 집에 돌아온 즉시였다.
그다음의 기억이 사라진 걸 보니 예상대로 기절한 듯 잠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사방이 어두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휴대폰을 열었다. 부재중 전화가 서른 통이 넘었다.
‘무슨 일이지?’
눈살을 찌푸리며 쌓인 메시지 중 첫 번째를 열었을 때였다.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장, 이태진 훈련 영상 봤다. 적극적으로 돕고 싶어.]
“이런 미친.”
씻을 틈도 없었다. 홍주연이 회사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