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미래를 본다-29화 (29/170)

29화 일성의 A팀 (1)

“뭐하러 그런 델 가?”

그 말이 들린 것은 마침 전화를 끊었을 때였다. 뒤를 돌아보자 B팀의 팀장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뭔가 언짢은 기색으로.

“안녕하십니까.”

표정을 고치고 허리를 푹 숙였다. 일성에서 무려 세 번째로 높은 사람이다. 최태성, A팀 팀장 김석환, 그다음이 바로 앞에 있는 백인호 B팀장이다.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됐고. 이태진. 너 나 좀 잠깐 보자.”

턱을 매만지던 백인호가 고갯짓했다. 따라오라면서.

***

일성의 매출 80퍼센트가 A급 괴수전담팀과 B급 이하 던전 공략팀에서 나온다. 그만큼 사내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나 팀장급 되는 인사들은 누리는 권력이 대단하다지.

때문에. 호감은 몰라도 비호감을 사서는 안 됐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비호감이 틀림없었다.

“내 밑으로 들어오기 싫다고?”

왜냐하면 백인호 팀장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백인호 팀장이 얼굴을 씰룩거렸다. 거절한 건 맞지만 그런 뉘앙스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백인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대답을 재촉했다. 매스컴에서 자주보던 백인호 팀장의 이미지가 생각났다.

거기서는 굉장히 젠틀하고, 다정한 이웃을 표방하던 백인호 팀장이었는데. 지금 보니 영락없는 연기였던 모양이다.

B팀으로 들어오라는 말에 거절했더니 그 직후부터 살벌하게 나를 노려보는데,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눈빛이다.

“아, 그전에 일성에 남은 이유부터 물어봐야 하나? 기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대화해 보자고. 언론에 흘린 보여주기식 말고.”

“보여주기식이라면?”

“현재 팀에 만족하고 있어요, 아직 일성에 배울 게 많아서요, 가족 같은 우리팀. 그런 거 말고.”

다 알고 있으니까 솔직하게 털어보라며, 백인호의 얼굴 가득한 짜증은 여전했다. 감히 내 손을 뿌리쳐? 같은, 감정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한석훈 때문에 그래? 그 양반이 너한테 박스 몰아주기로 했어?”

알만 하다는 듯 백인호가 ‘더러운 수를 쓰고 있어.’ 하며 혀를 찼다.

“아니면 내가 레인저라서 그런 거야? 그러기엔 내가 키운 근접 딜러만 해도 한 트럭인데. 김찬현 그놈도 말만 잘 들었으면….”

“김찬현이요?”

아차 하던 백인호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어깨를 으쓱이며 어차피 알게 될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걔가 내 라인이었어. 내가 공들여서 키우던 놈. 오해하지는 말고. 그렇게 미친놈인 줄은 몰랐으니까.”

변명하듯 손사래를 치는데, 문득 기회를 잡았다는 듯 백인호가 넌지시 물어왔다.

“그런 면에서 너도 책임감을 좀 느꼈으면 좋겠는데.”

“책임감이요?”

“그렇잖아. 네가 내 라인 하나 밀어냈으니까. 너도 완전히 피해자라고 할 수는 없잖아?”

황당하다. 책임감을 느끼려면 그쪽이 느껴야지. 내가 왜?

“아니야? 아니라고 생각해?”

되려 백인호가 황당하는 얼굴로 나를 압박해왔다. 그 의도가 뻔한 것이었다. 여기서 아니라고 할만한 배짱이 있냐는 거다.

“네. 아닌데요. 제가 피해자인데.”

그리고 그정도 강단은 나한테 얼마든지 있다. 한석훈에 비하면 백인호의 협박은 재롱으로 보이는데.

한동안 말없이 나를 보던 백인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금이야 제2의 성요한 소리 들으니까 목이 뻣뻣하지? 그거 얼마나 갈 것 같아? 내가 인터뷰에서 한마디라도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지금 이거 너한테 부탁하는 거 아니다. 경고하는 거지. 좋은 말로 할 때 내 밑으로 들어와.”

듣자 듣자 하니까 선을 넘는데. 미치겠네. 참아야 하는데. 밉보여서 좋을 게 없는데.

문득 임한나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확 저질러 버리라며 웃는 임한나가 생각났다.

“나라고 그냥 하는 말 아니야. 내 면도 한번 봐달라는 거지. B급 훈련장부터 해서, 각종 아이템, 도움이 될 만한 포션 등등. 강력하게 지원해 줄 수 있단 말이다. 당장 C팀 팀장자리부터 줄 수 있고. 어때? 좋은 거래 같은데. 나도 두 번은 회유 안 해. 이번에도 거절하면 너도 좋은 꼴 못 볼걸?”

참기는 개뿔. 밉보이면 어때?

“아뇨. 그런 게 아니라.”

피식 웃었다. 머릿속으로는 백인호 팀장과, 그리고 그 밑에 있는 B팀 전체를 적으로 돌렸을 때를 상정해봤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잘만 하면….

“웃어?”

“아, 죄송합니다. 제가 거절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요.”

어깨를 으쓱이며 일어났다.

“B팀에 들어오라는 제의는 감사한데, 아니다. 사실 감사하지도 않아요. 자존심만 상하지.”

“뭐?”

“A팀이면 모를까. B팀이면 저한테 좀 작죠. 규모가.”

버럭 화낼 줄 알았더니 문득 백인호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김석환이 너한테 뭐라던? 뭘 믿고 이렇게 설쳐?”

그러더니 A팀장의 이름을 끄집어냈다.

“글쎄요. 이제 뭐라고 하는지 들으러 가야죠. 여기보다는 좋은 조건 제시할 것 같은데.”

“그쪽에서는 아무 말도 못 들어놓고 내 제안부터 거절해? 정신 나갔냐?”

그 말을 끝으로 백인호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슬쩍 보이던 백인호의 얼굴에 살기가 등등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무서울 정도로.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고 A팀의 연무장이 있는 곳을 눌렀다. 깊은 숨이 터져 나온 건 직후였다.

“후아!”

일단 저질러버렸다.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제 와서 백인호한테 달려가 무릎 꿇는다 한들 관계를 회복시킬 수도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확실하게 적을 만들었다. 동기는 사람을 움직인다고. 그저 훈련이나 받을까 하던 A팀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한창 복잡하던 직후,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나를 보는 시선이 쏟아졌다.

“진짜 왔네?”

하얗게 이를 드러내는 남자가 먼저였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자주 봐서가 아니라 커뮤니티에서부터 유명한 사람이다.

A팀의 부팀장, 수려한 외모와 더불어 정철규라는 이름보다 ‘철벽뀨’라는 별호가 익숙한 사람이다.

“정말 올 줄은 몰랐는데.”

붉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 사람도 유명하다.

윤진아. 김세린이 멀리서나마 발견하면 꺅꺅거리며 호들갑이라는 호들갑은 다 떨었지. 화염 마법으로 던전을 쓸어버리는 영상은 나도 입을 벌리고 봤던 기억이 있다.

뒤이어 다섯 명쯤 되는 A팀의 인원들도 하나하나가 위명을 떨치는 인사들이었다.

검을 빛처럼 빠르게 쓴다는 플래시, 일성의 공주님이라 불리는 힐러 박지현까지. 그런 사람들이 재밌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떨떠름할 따름이었다. 이 정도 급의 사람들이 나를 보려고 마중까지 나왔다는 게 영 어색했다.

하지만 A팀을 이용하기로 한 이상, 기죽은 티를 드러내서는 곤란하다. 무릇 강자들은 겁쟁이를 싫어하는 법이니까.

“기세는 제법인데?”

“그러니까. 설설 기었으면 실망했을 텐데. 저 눈 좀 봐.”

“그런데 왜 B팀은 건너뛰고 우리한테 왔대?”

“그쪽 팀장이 백인호잖아.”

“아.”

나를 바로 앞에 두고 이런저런 말이 오가고 있을 때였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것들. 다들 멈춰!”

뒤쪽에서 우렁찬 함성이 튀어나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A팀의 팀장님. 이미 몇 번 얼굴은 본 적 있다. A급 스킬이 떴을 때와, 검신의 축복을 획득했을 때. 최태성의 방에서 말이다.

턱수염이 수북한 남자였다. 팀원들을 이리저리 밀치고 등장하는 그의 눈빛이 사냥꾼과 비슷했다.

일성의 추적자라고 하면 모두 아는 그 사람, 김석환이 인파를 헤집고 등장했다.

“우리 팀 새 멤버가 너희들 때문에 곤란해하잖아!”

그때는 최태성의 압도적인 기운 때문에 미처 못 알아봤는데. 레인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세가 강했다. 나를 배려해서 숨기는데도 이 정도라니. 피부가 따끔따끔할 지경이었다.

그보다. 뭐라고?

내가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

“뭔 소리예요. 상의도 없이. 그냥 훈련실 구경 온 거 아니에요?”

정철규가 인상을 찌푸렸다. 팀장에게 말하는 것 치고 아주 격의 없어 보였다. 부팀장이라서 그런 건가?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뒤에서 아우성이 빗발쳤다.

“테스트도 없이 바로 들어오는 게 어딨습니까!”

“나도 여기 들어올 때 얼마나 개고생했는데!”

“우리도 가오가 있다 이 말입니다!”

“팀장이면 다냐!”

“우우!”

김세린과 박하영도 한석훈에게 이렇게까지 격의 없지는 않았는데. 팀장이 아니라 동네 형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다.

그런데도 김석환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고.

“닥쳐! 닥쳐! 내 맘이야!”

김석환이 떼를 쓰듯 손을 저었다. 문득 아카데미 시절, 임한나가 침을 튀겨가며 일성의 김석환이 얼마나 대단한지 설명했던 때가 생각났다.

‘최소한의 피해로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레인저가 존재한다. 갈림길에 섰을 때 선택을 회피하지 마라. 칼날 같은 이성으로 길을 밝혀라. 캬. 멋지지 않냐? 김석환 팀장님이 한 말이야.’

레인저들의 교과서 같은 분이라며 관심도 없는 내게 시뻘게진 얼굴로 일장 연설하던 임한나가 이 장면을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했다.

“팀장이 말하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내 맘대로 할 거니까 다들 닥쳐. 이건 그러니까, 그래. 슈퍼패스다. 슈퍼패스. 테스트는 무슨. 네놈들이 검신의 축복이 뭔지는 알아?”

“우우!”

“저 양반도 퇴물 다됐네. 그냥 이 기회에 팀장 자리 저한테 주시고 퇴사하시죠.”

빗발치는 항의가 이어졌다. 내가 상상했던 카리스마 넘치는 일성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이 타이밍에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말씀은 너무 감사하지만 저도 당장은 D팀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거절했다.

B팀장의 스카웃을 거절하자마 A팀장의 제안도 거절한다? 누가 보면 미친놈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일성의 거물급 두 팀장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것처럼 보이니까.

“…….”

방금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싸우던 사람들의 말이 일순간 뚝 끊겼다. 정철규의 멱살을 잡고 있던 김석환은 아예 눈을 껌뻑껌뻑 뜨며 잘못 들었나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한참이나 적막이 흐른 후.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정철규가 어안이 벙벙한 듯 말했고.

“아니. 나도 들었어. 올 생각 없다는데?”

윤진아가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아주 웃긴 놈이네.’ 하는 얼굴로.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허락 못 한다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놈 봐라? 하며 목을 좌우로 꺾는다.

“왜? 왜 내 제안을 거절했지?”

김석환이 입꼬리를 꿈틀거리며 말했다. 여기까지도 예상했다.

“신의의 문제라서요. 한석훈 팀장님이랑 상의도 없이 덜컥 팀을 옮기는 건. 도리에 어긋나잖아요.”

빈말이 아니다. 한석훈이 비록 거친 방식으로 나를 대하기는 했어도, 엄연히 내 스승이라 할 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과 말 한마디 없이 무턱대고 팀을 옮겨버리는 건. 예의가 아니지.

“시, 신의? 신의. 신의라.”

마치 처음 듣는 단어처럼, 김석환이 신의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그때쯤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지금이 중요하다. 곧장 다음 제안을 건넬 생각이었다. 그런데 잠깐만. 생각보다 분위기가 묘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리던 김석환이 시작이었다.

“크하학학! 이런 놈이 있었네.”

김석환이 배꼽을 잡으며 웃어댔다.

“이런 곰 같은 여우를 봤나.”

정철규가 한마디 던졌고.

“합격.”

윤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그랬다. 한소리들을 각오로 던진 말이었는데 되려 기분 좋은 미소를 걸치고 있었다.

아니. 그저 재밌다는 감정에 지나지 않던 아까보다도, 오히려 구미가 당긴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기까지 한다.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이 타이밍이라 느꼈다. 내가 준비한,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강자들에게는 별거인 그 제안.

“A팀에 들어가지는 않되, 훈련 시설은 쓰고 싶습니다.”

“그런 시건방진 말을 하는 데는 그만한 대가가 있을 테고.”

“네. 저 한번 키워보시죠. 김석환 팀장님.”

예상이 맞았다. 김석환이 씨익 웃었다.

***

이태진이 줄줄이 늘어선 방 중 첫 번째 칸에 들어간 후였다.

“큭큭. 우리 막내 처음 들어올 때 몇 분 버텼지?”

“뭘 또 그런 말을 하십니까.”

“2분이었나. 환청이 들린다면서 제발 꺼내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대화만 들어보면 영락없는 악당들이었다. 이태진의 기를 한번 눌러주겠다며 A팀 전원이 아주 작정하고 달라붙은 것이다.

“시건방져. 아주 시건방져.”

“그런데 표정은 왜 웃고 계시는데요?”

“시건방지니까. 마음에 들잖아. 얼마나 자신 있으면 그런 말을 하겠어? 나 한번 키워보라니.”

김석환은 모니터로 시선을 던졌다. 이태진이 들어간 곳이 그런 곳이다. 완벽하게 던전과 동일한 환경을 조성한 곳.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각종 함정은 물론이고 무쉬들이 쓰는 저주마법까지 구현해 놓은 아공간.

어지간한 B급 헌터들도 채 1분을 버티지 못하는 훈련실이다.

“시작한다.”

모니터로 이태진이 방에 입장하는 게 보였다. 입장과 동시에 스타트 버튼을 누르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안 보인다.

“패기 좋고.”

휘익!

시작과 동시에 암기 하나가 이태진을 스치고 지나갔다.

훈련실 안의 것들은 환상이 아니다. 자칫하면 목이 뚫릴뻔한 상황이었는데도 이태진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하다.

-그럼 제가 그놈 가져가도 됩니까?

김석환이 그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한석훈이 녀석의 성장이 감당이 안 된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길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이었다.

‘천하의 그 한석훈이 감당 안 된다고 하는 놈?’

궁금했다. 한번 건드려 보고 싶었다. 한석훈의 말에 따르면 스펀지도 울고 갈 만큼 흡수력이 빠르다던데.

정체기에 빠진 각성자들은 결국 제자를 키우는 데 눈을 돌린다. 그 안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니까.

자신도 마찬가지다. A팀의 절반 이상을 김석환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푸핫! 네놈 따위가? 아니지. 데려가 보든가. 한 달도 안 돼서 무섭다고 다시 보낼 게 뻔히 보인다만.

그 양반이 아랫물에서 놀더니 허세가 심해졌구나 생각했다. 하기야, 한석훈이 A급 괴수전담반에서 내려간 지 벌써 2년이다. 감각이 죽어 있을 만했다.

그래도 천하의 한석훈이 인정한 만큼, 일단 거두어서 키워볼 요량이었다. 더군다나 검신의 축복 아니던가.

그런데 자신의 제안을 거절해? 그리고 아주 시건방진 제안을 직접 하기까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는 인간들이 한 트럭인데.

“물론 그 특성이 얼마나 뒤지게 좋은지는 나도 아는데. 아직 네 세상 되려면 멀었거든.”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정철규가 동의했다.

“물 한번 쫙 빼주면 정신 차리겠죠.”

“그래. 그렇다고 아까 한 말은 취소 못 한다. 저놈은 우리 팀 와야 해.”

김석환의 엄포에 되려 A팀원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뭘 새삼 언급하냐며 되려 면박이 쏟아졌다.

“당연한 걸 그렇게 폼 잡으면서 말씀하세요. 아까 저 녀석 몸 본 사람? 완전히 균형 잡힌 거.”

“마력도 정순해.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증거야.”

“다들 집중하세요. 슬슬 본격적인데요?”

일성의 A급 헌터 다섯 명이 오순도순 모여서 모니터를 쳐다보는 모습은 누가 보면 퍽이나 웃길 것이었다.

“어? 다들 모여 계시네요?”

그때 누군가 뒤에서 다가왔다.

“어? 아! 이런, 홍 팀장님. 완전히 까먹고 있었네.”

그러고 보니 오늘 팀원들이 모인 이유도 연말 인사를 비롯해서 간단한 인터뷰를 위해서 모였던 건데. 이태진의 한마디 때문에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다.

홍보팀의 홍주연 팀장이 무슨 재밌는 거리가 있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녕하십니까. 홍보팀 김주현입니다.”

“아, 이쪽은 새로 온 신입이에요. 그나저나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 아닙니다.”

민망한 일이었다. A급 팀장씩이나 돼서 사원 하나 때문에 우르르 몰려있었다고 말하기에는.

“이거 한번 보시죠.”

모니터 속 이태진이 유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암기가 안 보이는 홍주연의 입장에서는 무슨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 태진 씨?”

홍주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김석환을 바라봤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묻는 듯했다. 맛있는 냄새라도 맡은 듯 눈을 반짝거리며. 이에 김석환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실토했다.

“저 녀석이 우리 팀 들어오기 싫답니다. 거기에 우리 애들이 헤까닥 눈이 돌아가서 말이죠.”

“A팀에 들어오기 싫다고 했다고요? 정말로요?”

담담했던 홍주연의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어쨌든. 그래서요?”

씰룩거리는 입술까지. 대답을 강요하던 홍주연이 손가락을 튕기자 옆에 있던 김주현이 재빨리 노트와 펜을 들어 뭔가를 적는다.

“그러더니 우리 팀 시설은 또 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요?”

“한번 테스트해 보기로 했죠. 그럴만한 깜냥이 되는 놈인지, 아니면 허세만 넘치는 놈인지.”

“그럼, 결과는…?”

김석환이 모니터를 턱짓했다. 화면 속 이태진이 땅에서 솟아난 송곳을 피한 직후였다.

“속도 좀 올려야겠는데요?”

정철규가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김석환을 쳐다봤다.

“아직까지는 밸런스 괜찮네. 깨질 때까지 한번 올려봐.”

고개를 끄덕였다. 모니터 옆 레버를 당기는 동시에 이태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특성만 믿고 까부는 건 아니었네요. 감이 좋아요.”

“저 녀석 레벨이 몇이라고? 140쯤 되나?”

물론 한 단계 수준을 올린 것뿐이다. A팀 전원이 저 정도는 눈 감고도 피하는 수준이다. 이태진의 레벨에 맞춰서 감탄하는 것뿐.

그때 윤진아가 ‘흐음.’ 하며 레버를 훅 당겼다.

좀 이상한데.

기이함이 느껴졌다. 마치 이 수준에서는 이 정도만 움직이면 된다는 듯 힘을 아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칫 상황이 심각해지면 언제라도 구해낼 수 있다. 지금은 녀석의 한계를 보고 싶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홍주연이 조용하게 턱짓했다. 그러자 김주현이 이미 찍고 있었다며 카메라를 손짓했다.

모니터 안의 이태진은 물론,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B팀의 사람들까지도 순차적으로 앵글 안에 담는다.

처음에는 그랬다.

“제법이네.”

“그러니까. 조금 더 다듬으면 우리 막내 정도는 따라잡겠는데?”

“저를 뭘로 보시고. 저 녀석 정도는 아직 한 손이면 충분합니다.”

하고 낄낄대던 A팀이었다. 이태진의 성장이 놀랍기는 한데 그뿐, 다른 감상은 없었다. 하나같이 아카데미에서부터 지겹도록 천재 소리를 달고 살아온 그들이다.

‘A급은 시작점이다.’

여기서 더 성장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온전히 S급의 영역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잠재력이 더 중요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조금 묘하다. 좌중의 인원들 중 몇몇이 고개를 갸웃했다. 확신할 순 없으니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면서.

무려 최고단계의 속도로 암기가 쏟아졌다. 벽에서 불덩이가 내리고 땅에서는 질척질척한 흙이 살아 움직이며 이태진의 발을 묶었다.

또한 보이진 않아도 겹겹이 중첩된 정신계열의 마법이 끊임없이 이태진을 괴롭히고 있을 것이었다.

“아직까지 여력이 있는 건가?”

아닌데. 표정만 보면 한계치에 가까워 보이기는 한다. 근데 또 막상 꾸역꾸역 치명상은 피하고 있으니.

“…레벨이 몇이라고?”

이번에는 그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진지하게 이태진의 기예를 감상하고 있었다.

“저기서 저런 움직임은 신선하네.”

“나였다면 옆으로 움직였을 거야. 공중으로 몸을 띄우는 건 너무 빈틈이 많아.”

“그것까지 계산한 것 같은데? 땅에 있는 게 더 위험해. 저것 봐.”

아까와 달리 웃음기가 사라진 채점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감상평에 가까웠다. 이태진의 동작이 이어질 때마다 내 말이 맞니, 틀리니 하는 토론이 펼쳐졌다.

그런데 갑자기, 기어코 이태진이 속박을 끊어내듯 괴성을 질렀을 때였다.

“하. 뭔가 했더니.”

윤진아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까부터 잡힐 듯 말 듯 기묘한 느낌이 뭔지 드디어 알았다.

“그러니까. 진짜 어이가 없어서 원.”

정철규도 어처구니없다는 듯 두 손을 드는 모션을 취했다. 이런 건 상상도 못 해 봐서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래. 힘을 숨긴 게 아니야.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있는 거지.”

김석환이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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