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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28화 (28/170)

28화 평행세계

미래라고 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래. 평행 세계의 나라고 봐야했다.

오대산 던전에서 막 빠져나온 직후로 추정됐다. 공간의 압력이 그곳의 나를 뱉어내는 게 느껴졌다. 공략을 끝냈다는 뜻이었다.

밤이라는 것 외에 시간대를 추정할 수는 없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임한나가 옆에 없는 것도 이해 할 수 있었다. 원래 초능력이 내게 보여줬던 것도 그것이니까.

헌데.

어째서 통각이 반응하지 않는 거지? 더군다나 피 한 방울 없이 깨끗한 외형까지. 피투성이에, 내상을 입고, 죽을 위기까지 겪었던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후.”

가뿐하게 숨을 쉬는 모습이 어디 동네 마실이라도 갔다 온 것 같다. 다른 모든 감각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런데도 따끔거리는 것 하나 없다는 것은 무슨 말이겠는가.

‘그곳의 나’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던전을 공략했다.

결과는 같은데 과정은 달랐던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 끝난 마당에 굳이 이걸 왜 보여주는 걸까. 약 올리기 위해서?

아예 작정이라도 한 듯싶었다. 오대산의 내가 사라지고 낯선 장면으로 시야가 전환됐다. 마치 화가 나기라도 한 듯, 그것이 내게 보여주는 장면이 연이어 펼쳐졌다.

휙휙 이어지는 장면의 연속을 따라갔다.

D급 던전, 낯선 사람들, 전주의 폐가, 날짜는 한 달 후.

핵심이 되는 단어는 이 네 가지였다.

화악-!

그것을 끝으로 뱉어내듯 현실로 쫓겨났다. 마치 화가 난 기분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하!”

이게 무슨.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의지를 드러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이제껏 도도하게 나를 휘어잡던 초능력이었다. 신비로운 장막 뒤에서 나에게 미래를 보여주던 불가사의한 능력에게 경외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는데. 지금의 이 장면들에서 장막 너머의 존재가 느껴졌다. 안절부절못하며 성을 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마치 그 존재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내 뜻에 따라라.]

아니다. 그것보다는.

[부탁이야. 내 뜻을 따라줘.]

이것에 가까웠다.

D급 던전을 내가 구태여 왜 들어가며, 그것도 낯선 사람들과 왜? 같은. 자세히는 알려주지 않지만 말이다.

이유는 이제 궁금하지 않았다. 되려 본질에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옆에 있던 임한나가 미친 거 아니냐며 눈을 동그랗게 뜰 정도로.

“그렇단 말이지.”

이제까지 정체불명의 초능력은 인도자고 나는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다.

아주 애가 타고 있었다. 또다시 내가 어긋난 행동을 할까 봐. 회심의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

“약을 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임형원이 내민 손 또한 부들거리고 있었다. 퀭하게 죽은 눈은 약쟁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큭. 내가 램프의 요정처럼 보여? 달란다고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무릎이라도 꿇어 보든가.”

플래터는 약쟁이의 몰락을 우습게 지켜봤다. 일성의 헌터라고 거들먹거릴 때는 언제고. 결국 더 강해지기 위해 이렇듯 비굴하게 구는 게 여느 각성자와 다르지 않았다. 계획대로였다.

임형원은 망설이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C-2팀의 팀장, 임형원은 그곳에 없었다. 리더이자 탱커로서 던전을 진두지휘하던 각성자 대신, 비굴하고 간절하게 각성제를 바라는 약쟁이만 있었다.

“이봐, 친구. 왜 그렇게 급한 거야? 이유가 뭐야. 들어보고 판단해볼게.”

“이유? 그야 당연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니까.”

조바심이 났다. 최근 들어 들려오는 말들. C급 던전을 격파한 이태진이 조만간 B급에 오를 거다. 어쩌면 벌써 B급일 수도 있다, 같은.

같이 던전을 공략해본 임형원이 느낀 감상도 그와 비슷했다. 더 이상 C급 각성자 중 이태진에 맞설 헌터는 없을 것이다.

빌어먹을 S급 특성. 임형원의 사회생활은 백인호 팀장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이었다.

덕분에 김찬현과 함께 그 줄을 탈 수 있었고, 자신도 일성의 B팀에 들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이태진이 등장한 이후로 계획이 틀어졌다.

-백인호 팀장님이 이태진을 다음 멤버로 정하셨다는데?

-백인호 팀장이면 B팀? 거길 이태진이 벌써 들어간다고? 왜?

-김찬현이 백 팀장님 라인이었잖아. B팀에 껴 주는 대신 그 사건은 잊어라 이거지.

-그럼 다음 차례 기다리고 있던 임형원만 새됐잖아?

헛소문으로 치부했다. 이태진의 실력이야 차치하고, 백인호의 줄을 탄 자신이 그렇게 쉽게 버려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백 팀장님!

-미안하게 됐다.

-아니죠? 이태진 말입니다.

-나도 그러기 싫은데. 김찬현 그 새끼가 사고 쳐놓은 거 수습하려면 이태진부터 달래줘야지 어쩌겠냐. 형원아. 너도 조만간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 할 수 있지?

젠장할.

이태진을 C팀으로 불러? 그때 이태진은 얼마나 자신을 비웃었을까. 문득, 이상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을 때였다.

“이태진을 데려와.”

때마침 플래터가 그렇게 말했다. 마치 제 머릿속을 들여다본 듯이. 허나 걸리는 게 있었다.

“…헛소리. 최태성이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거다.”

“친구. 그거라면 걱정 마. 네로드 님이 일성을 무너뜨리기로 결정하셨거든. 자, 선택해야 할 때야. 이태진을 죽이라는 것도 아니야. 나머지 일은 모두 우리에게 맡겨. 이태진을 그냥 내 앞에 데려오기만 하면 돼. 어때. 어렵나?”

품속을 뒤지던 플래터가 알약 하나를 꺼냈다.

“B-3. 굉장한 녀석이야. 나도 쓰고 싶을 만큼. 트롤의 피를 베이스로 해서, 오크의 펄떡이는 심장을 말려서 낸 가루를 추가한 버전. 근력이 부족한 우리 임 팀장님한테 안성맞춤인 놈이라고.”

그러고는 다정한 얼굴로 자신의 손에 알약 두 개를 건넸다. 그 순간, 다른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한 번에 그것들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아아!”

곧장이었다.

온몸에 힘이 도는 기분. 이전 버전과는 차원이 다른 활력이 끓어 넘쳤다. 상태창을 띄웠다.

150에 불과한 레벨과 대조적으로 스탯에 폭발적인 상승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나 근력 부분이. 플래터의 말이 맞았다. 신약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죽은 눈빛도 더 이상 없었다. 굳은 결의를 담아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거면!’

“어때. 이제 생각이 바뀌었나?”

***

내 정체불명의 능력이 보내오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받고 나서 사흘 후였다. 전주의 던전에 가려면 아직 한 달은 남은 상황. 쉬고 있을 틈이 없다.

-전원이 꺼져있어 음성사서함으로….

한석훈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양반 정말로 괌이라도 간 거야?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이 시점에서 내 수준을 정확히 진단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회사 입구에 들어설 때였다. 모자를 푹 뒤집어썼는데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태진! 이태진 맞지? 대회는 잘 봤다.”

얼굴만 아는 사람이 말을 거는가 하면.

“흠. 기세가 좀 더 날카로워진 것 같은데. 착각인가?”

나를 가늠해 본다거나.

“저 친구랑 대련만 하면 족집게처럼 문제점을 알려준다며?”

“너는 레인저면서 뭘.”

“어허. 만류귀종이라 했다.”

심지어는 나를 해설지 취급하기까지. 그래도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적당히 대꾸해줘야 했다.

그 외에도 나를 알은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S급 검신의 축복이 떴을 때도 그런가 보다 하던 B급 이상의 고레벨 각성자들이었다.

“흠. 저 녀석이야.”

최근까지도 스치듯 시선이나 던지던 B급 탱커였다.

“글쎄. 특별히 유별날 건 없어 보이는데.”

“너도 퇴물 다 됐구나. 듣기로는 저 친구 레벨이 이제 100에 근접했다던데. 음? 그런데 최근에 던전이라도 갔다 왔나? 풍겨오는 살기가 아주 따끔따끔해.”

“그럴 수밖에. 화신 놈들이랑 걔 누구냐. 그래, 김찬현까지 썰어버린 게 얼마 전이잖아.”

“쉿! 이 친구가 못하는 말이 없어.”

B급 던전에 갈 날도 있을 것이다. 아니, 머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쓰게 웃으며 그들을 지나쳤다.

다행히 연무장이 비어 있었다. 간단히 몸을 풀고 자세를 잡았다. 오늘은 검이 아니라 다른 것을 시험해 봐야 했다.

“후우.”

처음에는 검신의 축복이 그렇게나 귀한 특성인지 몰랐다. S급 특성이나 스킬이 흔하지는 않지만, 또 세상 전체로 뒤져보면 그리 드물지도 않으니까.

그런데 내 생각이 안일했다.

후웅!

주먹이 바람을 가르고 벽에 부딪혔다.

만류귀종?

선배 중 하나가 했던 이야기인데 그 말이 꼭 들어맞았다. 시스템이 포괄적으로 검신의 축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그랬지.

전투 메커니즘의 이해도를 극한으로 올려주는 특성. 검신의 축복이란 이름 안에 그 뜻까지도 포함된 걸로 보였다.

리치가 긴 창이나 짧은 주먹을 써도 상급까지는 무리 없이 숙련도를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다음 단계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후웅!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중급 박투술(B)!]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했다.

“실전이 필요해.”

내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나대는 것 같아서 이러기 싫었는데.

“방법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곧장 인사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다른 모든 부서가 연말 휴가로 조용했는데 인사팀과 홍보팀만큼은 예외였다.

타닥타닥.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총성처럼 울리고 신경질적인 고성도 심심찮게 오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죽은 눈빛으로 모니터를 응시하며 기계처럼 일하는 여직원이었다. 비무대회가 한창일 때, 없는 사인을 구태여 만들어가며 해줬던 기억이 있다.

“어. 태진 씨? 태진 씨!”

나를 발견한 여직원이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옷매무새까지 점검하면서.

“오신다는 연락을 따로 못 받았습니다. 혹시 무슨 일로….”

영락없이 높은 상사를 대하는 어투였지만 굳이 불편한 티를 내지는 않았다.

언젠가부터 일성의 직원들, 특히나 비각성자들이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위에서 무슨 말이 떨어진 것 같기는 한데. 굳이 하나하나 돌아다니면서 평소처럼 대해 달라 겸손을 떠는 것도 유치한 짓이었다.

팀장실로 안내한 그녀가 차를 내왔을 때였다.

“팀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지원팀장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지금 자리를 비웠습니다. 혹시 어떤 일인지 여쭐 수 있을까요?”

“B급 연무장 승인….”

그때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서두르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노크와 함께 말끔한 남자가 들어왔다.

“아! 여기 계셨군요.”

고개를 꾸벅 숙인 남자가 자신을 인사지원팀의 과장이라며 소개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 하하.”

눈짓으로 여직원을 물린 후였다. 과장이 대뜸 이상한 말을 한다.

“요새 태진 씨 이야기로 시끌벅적합니다. 회사 안이나 밖이나 태진 씨 빼고는 대화가 안 될 정도로요. 하하. 얼마 전에는….”

음?

과할 정도로 내 칭찬을 하는 것 하며, 비무대회가 어떻다느니, 시청률이 얼마나 잘 나왔다느니.

침을 튀겨가며 내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설명하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그래, 자신을 언론사 직원이라며 일성 본사 앞에서 날 기다리던 인물들이 하나같이 저랬다.

계속해서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나는 대충 “네, 네. 그러셨군요.” 하며 맞장구를 쳤고.

그러던 과장이 헛기침을 하더니 막 생각났다는 듯 손바닥을 쳤다.

“아차! 제가 바쁜 분을 모시고 말이 길어졌습니다. 이럴 게 아니라 밖에서 식사라도 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제가 잘 아는….”

“아뇨. 그건 괜찮습니다.”

내 거절에 순간이나마 과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돌아왔다.

역시나.

안 봐도 뻔했다. 과장이 마련해놨다는 자리에 가면 우연히 언론사, 혹은 다른 길드의 직원이 옆 테이블에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의 품에서는 또 우연히 돈봉투가 나올 것이고.

이미 경험한 적이 있다.

한석훈이 이럴 때가 있을 거라며 몸소 시범을 보여줬었다. 상다리 뒤엎고 난리도 아니었었지.

“제가 바쁜지라. 그것보다 10층 훈련 시설 출입승인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데. 절차가 어떻게 됩니까?”

일성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씁쓸하게 웃으며 본론으로 넘어갔다.

“10층이라 하시면. B팀의 훈련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과장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실례지만 C팀, 그러니까 9층 출입증을 언제 받으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두 달 전이다. 과장도 모르고 물은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짐짓 고민된다는 듯

“흐음.”하며 턱을 쓰다듬기까지.

웃기는 수작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헌터 세계를 자세히 모릅니다만 두 달 만에 C급 헌터가 B급이 됐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비각성자가 각성자의 성장을 논한다? 그것도 당사자 앞에서.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었다.

“예.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내 날카로운 말에도 과장은 미소를 띄웠다.

“죄송합니다. 물론 태진 씨라면 당연히 조건을 달성했겠죠. 저야 믿습니다만. 좋은 말이 많은 만큼 안 좋은 말도 나도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받고 있는 특혜를 말하는 것이다. 최찬규의 팀으로 파견을 나갈 때 연무장을 썼던 적이 있다. 물론 최태성의 허락하에.

“원래는 그렇습니다. D급 헌터님들이 C급으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서류시험을 비롯한 정해진 절차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과장이라는 사람이 최태성이 허락한 일을 문제 삼고 있다. 나를 어수룩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디까지 가나 싶어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거기다 연이어 B급 연무장까지 이렇게 임의대로 처리하면. 사내 분위기가 뒤숭숭해질까 걱정되는 마음입니다. 더군다나 태진 씨는 공식적으로는 D급 소속이지 않습니까.”

과장이 여유롭게 웃으며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나를 얼마나 물로 봤으면 이러는 건지. 슬슬 한계였다. 이런 곳에서 시간 낭비할 틈이 없다.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은데 다른 뜻이 아니라 정말 괜찮은….”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예? 어? 태진 씨? 태진 씨!”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식사 자리 한번 마련하는데 얼마나 많은 돈을 먹었길래. 무려 일성의 인사과장이라는 사람도 돈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인사팀을 빠져나오면서 전화기를 열었다. 어지간하면 대충 넘어가고 싶었는데 선을 넘었다.

“팀장님. 접니다. 이태진이요. 인사지원팀 우민혁 과장이 뇌물을 받은 정황이 보여서요. 네. 감사팀 연결 좀 부탁 드리려고요.”

일전에 A팀의 팀장이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좋으니 전화하라며 번호를 알려준 적 있었다. 막상 명함을 받을 때는 이거 부담스러워서 쓰겠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편하다.

“뇌, 뇌물? 무슨 말도 안 되는…! 태진 씨!”

뒤쫓아오던 우민혁 과장이 돌연 사색이 된 얼굴이었다. 나를 애타게 부르는 우민혁을 무시하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그리고. B팀 연무장 좀 쓰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절차대로 하려다 도리어 더 설치는 꼴이 됐다. 괜히 부끄러워졌다. 한바탕 웃지나 않을까 했는데.

-B팀? 뭐하러 그런 델 가. 여기 와. 여기!

다행히 팀장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기분 탓일까. 오히려 살짝 흥분된듯한 팀장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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