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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26화 (26/170)

26화 오대산 (2)

한 치만 비껴 맞았더라면 심장을 관통당했을 것이다. 치명상을 피했다고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자명했다. 임무의 실패는 당연지사였고 이제는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가느냐가 문제였다.

바닥에서 올라온 것들은 다섯이었다.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놈들의 눈이 가라앉아 있었다. 고수들만 가질 수 있는 눈빛이었다.

이제야 느껴진다. 하오란의 수행원을 자처하던 놈들은 비각성자들이었다.

한석훈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하오란의 수하를 포함해 여섯. 빠른 시간내에 놈들을 다 죽여야 한다. 가능한가?

‘불가.’

술을 따르던 여자들이 기겁하며 나간 직후였다. 동시에 열 명의 신형이 부딪쳤다.

콰앙!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충돌이었다. 그 와중에도 하오란은 느긋하게 전투를 감상중이었고.

‘다섯이라는 숫자는 그렇다 쳐도.’

전방에서 자신과 검을 맞대는 놈부터가 그랬다. 놈들의 무력이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자신들과 비등했다. 혹은 조금 앞서거나. 이걸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어디서 정보가 샜다. 단순히 암습을 강행한다 정도가 아니라 아니라 ‘누가’ ‘언제’ 하느냐까지도.

‘우리 다섯 중에 하나.’

그렇다고 해도. 한석훈의 레벨과 정보는 극비리에 다루어진다. 동료들이라고 알 길은 없는 것이다.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살아나고 생각해 볼 문제였다. 한석훈이 창문으로 몸을 날리면서 말했다.

“실패다.”

그 말만으로 충분했다. 각자가 미리 정해둔 도주처가 있었다. 동료들의 몸이 동서남북으로 뻗어갔다. 뒤를 쫓기겠지만 어떻게든 제 한 몸 건사할 능력은 있는 자들이다.

“끌끌. 상해가 내 손바닥에 있음이다.”

하오란의 여유만만한 웃음이 그렇게 멀어졌다.

***

말했다시피. 첫 번째 방에서부터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일은 드물다. 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본래부터 이곳은 그런 곳이다. 어떤 놈들이 튀어나오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는 공간.

예컨대 오크가 서식한다면 벽에 붙은 호롱불이 초록색으로, 도마뱀의 얼굴을 가진 리저드가 뜬다면 붉은색.

그리고 지금처럼 노란색이 타오른다면.

“짜증나는 것들이네. 그래도 최악은 아니야.”

임한나가 내 심정을 대변해서 말해줬다. 놈들은 쥐새끼의 얼굴을 한 군대다. ‘무쉬’라 이름 붙은 군단. 비열한 외모답게 하는 짓도 그랬다. 함정을 파놓고 저주를 뿌리고 마법을 날리는 것들.

“그래. 도마뱀보다는 낫지.”

맞다. 되도록 리저드 족속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놈들이 뿜어내는 독성은 지독하다. 힐러가 없다면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 쥐새끼들은 특유의 졸렬한 사고방식답게 보통 미로형 던전에서 우리를 기다리기 마련인데. 일자형 던전에서 놈들을 마주한 건 운이 좋았다.

문득 아카데미 시절의 실습이 떠올랐다. 미궁에서 한참을 떠돌았던 끔찍한 기억이 남아있다. 겨우 E급인데도 그랬다.

놈들이 날리는 저주는 환영을 보여주고 동료에게 칼을 들이밀게 한다. 때문에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마법저항력이 필수다.

임한나가 헬리오스의 심장을 툭툭 두드렸다.

“이거. 척 보기에도 장난 아니야. 그치?”

“쥐새끼들이 쓰는 마법쯤이야.”

비록 아직 봉인돼 있다고는 하나 태양신의 이름이 붙은 갑옷이다. 어지간한 저주와 마법쯤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방에 입성하기 전. 확실하게 해야 할 게 있었다.

“리더는 너야.”

임한나부터가 그렇게 말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 생각이다. 레벨과 별개로 전투능력을 따져봐도 내가 더 강할뿐더러, 2인 파티에서 레인저가 리더까지 맡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래.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리더의 말은….”

“절대적이다. 귀에 박히도록 듣던 말이었어. 리더.”

“또 하나. 목숨이 경각에 달하지 않는 한 탈출석을 쓸 일은 없어.”

어쩔 수 없다.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포인트 하나하나가 절박하다. 탈출석을 구해둔 것은 만약의 만약 때문이지, 거기에 기대기 위함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해둬야 했다.

“나를 뭘로 보고. 알량한 마음가짐으로 온 게 아니야. 너만큼 성장에 목마른걸.”

임한나가 고개를 끄덕인 후였다.

끼이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갔다.

빛 한점 없는 어둠이었다. 쿵. 하고 문이 닫히는데 유독 소리가 컸다. 파동을 퍼트려 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빈방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더러운 것들.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한 발 앞으로 나갔을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쥐새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만 봐도 놈들의 저열한 수작이 보였다. 우리의 수준을 가늠해 보겠다는 뜻이다.

쥐새끼 주제에 이족보행을 하는 것들이다. 실험쥐로 나선 놈이 손에 쥔 지팡이를 한 번 휘둘렀다.

불덩이 하나가 튀어나왔다. 검으로 쳐내는 대신 헬리오스의 심장을 시험해 봤다. 예상했듯, 부닥치는 즉시 불덩이가 사라져 버린다.

레인저의 몸은 원거리 딜러 다음으로 약하다. 때문에 나는 딜러이자 탱커의 역할도 맡아야 한다. 임한나는 내가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바, 놈들의 어그로는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키에엑!”

또다시 쥐새끼의 지팡이가 어둠 속에서 번쩍거릴 때였다. 순식간에 뻗은 롱소드가 놈의 상단신을 반으로 갈랐다.

[경험치 획득 : 41exp]

뭐?

잡몹 하나 잡았다고 41포인트나 준다고? D급 던전 방 하나를 깨끗하게 치워야 얻을 수 있는 경험치가 잡몹에게 떴다.

순간이지만 쥐새끼가 예뻐보일 정도다.

“커륵!”

실험쥐가 죽은 즉시 기다렸다는 듯 다른 녀석이 튀어나왔다. 놈은 임한나의 몫이었다. 임한나의 은빛 화살이 뻗어 나간 즉시 놈의 심장을 관통했다.

퍼엉!

말 그대로 즉사였지만 놈은 죽는 순간에도 마법을 성공시켰다. 수준 낮은 녀석의 마법은 검으로 갈라내면 그만인 법이지만. 그와 별개로 무쉬 군단의 담력만큼은 간담이 서늘했다.

놈들은 군단이라는 이름답게 상명하복을 철저하게 지키며 목숨을 불사른다. 어떤 면에선 오크들보다 더 대담한 면이 있을 만큼. 동료의 죽음 앞에서도 놈들은 침착하다. 되려 그것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것들이다.

“파악 완료. 총 서른 하나야. 하나는 소대장으로 추정되는 놈.”

임한나의 말투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장난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리더에게 보고하는 충실한 레인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소대장의 위치는?”

“다음 방으로 가는 문 앞에.”

역시나 그랬다. 놈은 마지막에나 우리에게 목을 내밀 것이다.

다시 한 발자국 움직였다. 최대한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임한나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다. 선공권은 녀석들에게 있었다.

임한나가 없으면 더 날뛸 수 있지 않냐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지금 방에서야 그럴 수도 있지만.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이깟 잡몹이 아니라 보스몹을 잡아야 한다. 방이 깊어질수록 쥐새끼들의 마법 수준도 올라갈 터였다.

더군다나 이놈들은 함정의 달인.

“두 발 앞에 마법트랩. 파이어볼이야.”

힐러, 혹은 레인저를 파티에 필수로 집어넣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다. 그들이 없으면 전투 지속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밟는다.”

“준비됐어.”

따로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임한나는 척척 알아들었다. 그럴만했다. 아카데미 시절부터 합을 맞춰온 사이니까.

트랩을 밟는 즉시 천장에서 뜨겁게 달궈진 불덩이 몇 개가 쏟아졌다. 동시에 어둠 속에 숨어있던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노린 바도 이것이다. 얼굴에서 불똥이 튀었지만 무시했다. 전부 쳐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태양의 신이 나를 지켜주고 있음이었다.

“케르륵!”

붉은 안광 열 개가 번뜩였다. 선두에 있던 놈은 이미 임한나의 화살에 관통당한 직후였다. 로브와 심장을 꿰뚫고 뻗어간 자리를 역겨운 쥐새끼가 미련하게 더듬거리던 것도 잠시, 풀썩 쓰러졌다.

몸을 날렸다. 곧장 내 손날이 다음 차례에 있던 놈의 목구멍을 그었다. 아이템의 내구도를 아껴야 했다. 가급적 롱소드는 아껴둬야 한다.

구조상 있어서는 안 되는 목젖까지도 가른 즉시였다. 멈출 틈이 없다. 뒤에 있던 놈의 심장으로 손바닥을 뻗었다. 문득 화신의 암살자 중 하나가 보여줬던 장법이 떠올랐다.

이렇게였던가?

쿠웅!

심장을 타격당한 녀석의 몸이 중력 마법에 걸린 듯 던전 구석으로 날아갔다. 비록 시스템이 인정한 정식 스킬은 아니었지만 쓸만한 기술이었다.

고개를 돌렸다. 우습게도 신체 강화 마법을 쓴 놈이었다. 쥐새끼 주제에 눈빛 하나만큼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놈이 단검을 채 뻗기도 전에 내 중지가 놈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과연 다른 놈들과 달리 놈의 가슴이 딱딱한 돌덩이 같았다.

그래봤자 쥐새끼는 쥐새끼일 뿐.

콰득!

겹겹이 쌓인 근육을 그대로 뚫고 들어갔다. 심장을 지키고 있던 가슴뼈를 부수고 물컹한 그것을 잡기까지도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쿵.

펄떡펄떡 뛰던 심장을 터트리자 즉시에 놈이 쓰러졌다.

“전우애도 없는 것들.”

제 동료가 무참히 짓밟혔는데도 과감하게 버리는 놈들이었다. 남아있던 무쉬들이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순간 등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놈들이 몸을 숨긴 것과 동시에 임한나가 내게 딱 달라붙은 것이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교범 같은 움직임이다.

놈들로서도 파악을 끝냈을 것이다. 저 뒤에서 병사를 조종하고 있는 소대장이 그렇게 명령했겠지.

[활을 든 인간을 먼저 죽여라.]

그전에도 소규모 던전 공략을 경험해 본 적 있나? 하고 임한나를 쳐다봤는데 임한나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궈, 권법은 또 언제 배운 거야?”

같은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저벅. 저벅.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붉게 물든 눈동자 여럿이 우리를 따라붙었다.

놈들이 전략을 바꾼 것이다. 섣불리 공격하는 대신 합격(合擊)을 노리는 것으로.

차라리 잘 됐다. 길게 끌수록 시간만 갈 뿐이다.

“간다.”

선공권이 없는 대신 놈들을 강제로 다가오게 할 수는 있다. 소대장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만 해도.

“끼기긱!”

이렇듯 놈들은 우리를 덮칠 수밖에 없다.

“소대장 쪽으로 뚫는다!”

그 말과 함께 우리는 달렸다. 보폭을 맞춘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자 사방에 퍼져있던 놈들이 일순 당황한 듯 멈칫거렸다. 그 정도 틈이면 충분했다.

콰드득.

걸리적거리는 놈 하나를 치운 후였다. 소대장으로 특정되는 놈의 얼굴이 드러났다. 로브 속 감춰진 놈의 낯은 다른 것들과 확연히 비교됐다. 조금 더 늙고 주름진 얼굴과 상반되게도 느껴지는 파동만큼은 다른 것들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다.

순간 롱소드를 꺼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들었다. 고민도 잠시, 허공에서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대로 그었다.

서걱-!

베는 느낌이 들었지만 늙은 쥐가 아니었다. 놈들의 충성심은 대단하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부하 하나가 몸을 던진 것으로 소대장이 기회를 얻었다.

[상태이상 : 저주에 빠집니다.]

[마법 저항력이 높습니다!]

[일부 저항에 성공했습니다.]

돌연 초점이 흐리게 변하면서 쥐새끼들의 면면이 겹쳐 보였다. 때를 놓치지 않고 놈들이 전력을 쏟아부었다.

쿠궁!

사방에서 불똥이 튀고 날카로운 얼음 송곳니가 쏟아졌다. 헬리오스의 심장이 거뜬하게 놈들의 마법을 받아 냈지만 그와 별개로 아직까지도 초점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파동으로 소대장 하나를 특정하기에는 아직 내 수준이 낮다.

“임한나!”

“좌측으로 열 걸음 앞이야!”

이 순간만큼은 임한나가 내 눈이고 나는 임한나의 검이었다.

전력을 다해 몸을 틀었다.

[저항에 완전히 성공했습니다!]

시야가 완전히 돌아온 것도 그때였다. 찰나에 사방에서 나를 짓누르는 힘이 쏟아졌지만 버틸만했다.

쿵!

지면을 박찬 발에서부터 검까지 힘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일점폭발을 사용합니다.]

수준이야 어찌 됐든 마법사다. 근접딜러의 접근을 허용한 이상 죽을 수밖에. 심장에 칼이 박힌 소대장이 두 눈을 부릅떴다. 한번 비트는 것이면 됐다. 놈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그때부터 잡것들의 반항은 의미 없는 발악이었다. 죽음을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어김없이 임한나의 화살에 맞고 쓰러진다.

푹!

마지막 한 놈까지 동료 곁으로 보내줬을 때였다.

[레벨업!]

[스탯을 분배해 주십시오.]

시작이 좋다. 들어온 지 하루도 안 돼서 레벨업과 함께 방을 클리어하다니. 이 기세면 무난하게 공략 가능하다.

근력 다섯 개를 찍은 후였다.

임한나를 쳐다보자 또 아까처럼 멍한 얼굴이 돼 있었다. 곧이어 얼굴을 찌푸리더니 뭔가를 생각한다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대기까지.

설마 잡것들의 저주에 당한 건 아닌가 하며 긴장하고 쳐다봤는데.

“날이 갈수록 성장 속도가 어떻게 더 빨라지는 거지? 이해할 수 없어. 아무리 S급이라 해도 말이야.”

긴장이 풀린 녀석의 주책맞은 장난질이었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임한나가 내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기까지 한다.

녀석에게 꿀밤을 먹인 후 무거운 목소리로 운을 뗐다.

“다음 방으로 간다.”

쉴 틈이 없다. 세 번째 방으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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