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S급 아이템 (2)
한적한 카페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김주현이 보였다.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당당했던 눈빛이 기억난다.
김주현도 나를 발견했는지 잔뜩 굳은 얼굴로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인터뷰 좀 부탁한다며 당돌하게 말할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왔네요.”
홍주연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녀가 여유롭게 웃는다.
“아무렴요. 누굴 만나는 자린데.”
홍주연의 실없는 농담을 무시하고 김주현 쪽으로 다가가자 그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유튜버 김주현입니다!”
“네. 김주현 씨. 반가워요. 일단 앉으시죠. 우리 어디 도망 안 가요.”
여유롭게 기선제압에 성공한 홍주연이 ‘뭐 마실래요?’ 하며 계산대로 향했다. 따라가려는 김주현에게 빙긋 웃으며 앉아 계셔도 된다는 말과 함께.
김주현 이 사람 은근 허당인가 싶었다. ‘앗, 엣.’ 같은 의성어를 내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주문했던 커피가 나왔을 때였다.
“…그때는 제가. 제가 너무 무례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데 듣는 내가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네?’ 하고 반문하고 싶은데 오기 전 가만있어 달라는 홍주연의 요청이 있었다.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괜찮습니다. 이태진 님도 거기에 대해선 개의치 않아요. 주현 씨가 사과할 필요도 없죠. 오히려 좋게 편집해주셔서 고마운걸요? 그렇죠?”
홍주연이 커피를 홀짝이며 내게 물었다.
“아, 네, 뭐. 감사합니다.”
대충 그렇노라 대답했는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가 하면,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한다.
“저. 그날 이후로 잠도 못 잤어요. 눈만 감으면 일성에서 저를 잡아가는 꿈을 꿨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결국 울음을 터트린 김주현이었지만 홍주연은 그때도 여유롭게 이해한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민간인의 입장에서 각성자는 이런 존재다. 언제든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초인들. 그렇게 생각하니 김주현이 왜 이렇게까지 쫄아 있는지 이해가 갔다.
“인터뷰 원본에 관해서는….”
홍주연이 ‘흐음’ 하고 고민된다는 듯 말하자 김주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드려야죠! 거기에 돈을 받겠다거나 그럴 순 없습니다.”
그러자 되려 홍주연이 놀란 듯했다.
“…아뇨. 값은 치르겠습니다. 어찌 됐든 저희도 그걸로 이득 본 게 많으니까요. 일전에 제안 드렸던 그 가격으로요.”
“제가 유일하게 자신 있는 부분이 있어요…. 제 주제파악이요. 그 돈 정말 저한테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저 그거 못 받아요.”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이때까지 가짜로만 웃고 있던 홍주연이 처음으로 표정을 드러냈다.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얼굴로.
“김주현 씨. 저희 회사 들어오는 건 어떠세요?”
뜬금없는 소리에 김주현은 물론이고 나도 고개가 휙 돌아갔다.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다. 홍주연의 표정이 더없이 진지했다.
갑자기 왜?
“…네?”
“미안해요. 뒷조사 좀 했어요.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이해하시죠? 공부 좀 하셨던데. 반년 전에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시고 고생깨나 한 것도 알아요. 그런데 돈 문제라면 여기서 해결 가능해요.”
“…….”
“김주현 씨가 어떤 걸 바라는지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컨텐츠적으로는 이쪽에서 지원해 줄 수도 있죠. 제 자랑 같아서 웃기기는 한데 제 컨설팅 한번 받으려는 사람 꽤 많거든요.”
아까보다 말이 많아진 홍주연이 이상했다. 마치 신난 듯한 저 표정이 익숙했다.
저 얼굴을 안다. 한석훈이 날 바라볼 때 꼭 저랬다. 홍주연의 말이 길어질수록 김주현은 입을 쩍 벌린 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이래서였군.
속이 메스꺼웠다. 싸늘하게 죽어있던 김주현이 떠올랐다. 그냥 하던 유튜브나 계속하는 게 어떠냐고 외치고 싶었다. 그런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질끈 눈을 감았다. 이미 답이 나왔다.
“…제 어떤 면을 보고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무슨 자격으로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이렇게 될 일이었다.
“태진 씨한테 감사드려야겠네요. 저런 인재 찾기도 쉽지 않은데.”
카페에서 빠져나온 후였다.
“저 때문에 그런 거라면 쓸데없는 짓을 하셨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하셨어도 됐습니다.”
나도 모르게 날카롭게 말이 나갔는데 정작 홍주연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 그 정도로 공사 구분 못 하는 사람 아니예요. 뭐, 태진 씨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요. 어쨌든 김주현은 제 욕심이에요.”
김주현을 생각한다는 듯 고개를 위로 올리는 홍주연의 표정이 더없이 밝았다.
“사리 분별이 정확해요. 머리는 당연히 좋고 눈치도 빠르고. 아직 고쳐야 할 게 많긴 해도 저 정도면 쓸만하죠. 진심이에요.”
그 말이 내게는 그렇게 들렸다.
‘아무리 발악해도 결국 운명대로 될 것이니 도망치지 마라.’
젠장할.
책임져야 할 목숨이 늘었다. 가슴이 묵직했다. 김주현이 죽는다면 그 모든 책임이 나한테 있다. 부정할 수 없었다.
기필코 미래를 바꾸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아로새겼다.
***
“커피 마시나?”
최태성이 그렇게 물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이제 갓 애송이 딱지를 뗀 자식이 최태성을 세 번이나 대면하다니. 놀랄 일이다.
그것도 이번엔 단독으로. 받을 게 있었다.
“괜찮습니다.”
“사양하지 않아도 되는데.”
고개를 끄덕인 최태성이 컵에 물을 따랐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다.
“대회는 잘 봤어. 우승할 줄은 알았지만 과정이 참 재밌었단 말이지.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니 구경하는 맛이 커.”
커피잔을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격려하는데 나도 모르게 몸이 굳는다.
시스템 메시지가 뜨지 않는 걸 보면 마법에 당한 것도 아닌데 저 남자 앞에만 서면 이렇게 돼버리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괜히 속마음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말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겸손하기까지’ 하며 최태성이 흡족한 듯 미소지었다.
틈을 타 최태성의 몸을 훑어봤다. 그럴 줄은 알았지만. 내 멋대로 기세라고 명명한 파동이 최태성에게는 한 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고수일수록 자신을 감추는 법이다. 겸손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적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바쁜 사람 붙잡고 내가 뭐 하는지. 상 받으러 온 사람 상 줘야지.”
S급 아이템을 말하는 것이었다. 굳이 기권하지 않고 대회를 끝까지 참여했던 것도 이것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던 게 아니다.
이윽고 최태성이 손가락을 튕겼을 때였다.
촤르륵.
놀라웠다. 서적이 꽂힌 책장이 멋대로 움직이더니 숨어있던 공간이 드러난다. 단순히 벽 너머 숨겨진 방이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공간.”
나도 모르게 뇌까린 말에 최태성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 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다가갈수록 밀도 높은 마나가 숨이 막힐 정도로 느껴졌다. 일렁이는 빛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몇 개의 마법이 중첩됐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허락 없이 발을 들였다가는 인지도 못 한 채로 죽겠지.
꿀꺽.
침을 삼켰다. 최태성이 일평생 모아놓은 정수가 이 안에 있다. 그때만큼은 욕심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런 탈인의 경지는 있을 수 없다. 최태성은 그런 내 모습도 기꺼운 듯 웃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제게 이곳을 보여주셔도 되는 겁니까?”
합당한 질문이었다. 저의가 뭔지 궁금했다. 재롱잔치 몇 번 보여줬다고 S급 아이템을 준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그럴 수 없다.
“발악이라고 해 두지. 널 붙잡으려는 발악.”
그래도 이상했다.
“제가 떠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사뭇 건방진 말이었지만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했다. 최태성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알아야겠거든.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게 내 분수인 것을.”
거짓말이다. 계속해서 내가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이자 그제야 최태성의 속마음 한줄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영감의 취미생활이라고 하면 넘어 가줄 텐가? 지금 말해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야. 때가 되면 알게 되니 조급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게.”
살날? 각성자의 장생은 둘째치고 최태성의 나이는 기껏해야 환갑일 텐데. 어쨌든 그에게서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저게 다였다.
나도 굳이 더 캐내지는 않았다. 의심을 사서 좋을 게 없었다.
“내가 자네를 좋아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지. 분에 넘친다 싶으면 의심부터 하고 봐. 그 습관 잃지 말게.”
“새겨듣겠습니다.”
최태성을 경계하는 것과 별개로 산전수전 다 겪은 대선배의 말이었다. 진심으로 가슴에 새겨야 할 조언이었다.
최태성이 먼저 들어가고 나는 두 번째였다. 아공간에 몸을 맡기자마자 쑥하고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눈 한번 깜빡이자 넓은 공동이 보였다. 실로 대단한 마법이었다.
전설에나 등장하는 드래곤이 동면하고 있다 해도 믿을 만했다. 안력을 실어도 마찬가지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오게.”
우리는 드넓은 그곳을 한참이나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됐을까. 시야의 끝에 아이템들이 보였다.
유리막에 둘러싸인 진열대 안으로. 이것들이다. S급 아이템 다섯이 한데 모여 있었다.
갑옷, 검, 반지, 귀걸이, 목걸이.
액세서리 셋에 방어구 하나, 무기가 하나다. 아이템 하나하나마다 묵직한 위압감이 있었다. 과연 S급다웠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 눈에 단단히 새겨야 했다. 단지 그것만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선택지가 많으면 좋겠지만 다섯 개 중에서 골라줘야겠어.”
가당치도 않은 소리.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는 각성자가 대다수다.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별개로 실물을 보고 나니 더 믿기지 않는다. 정말 이것 중 하나를 내게 주겠다고?
[독이든 성배다.]
뇌리에서 끊임없이 경고를 보냈다. 이것을 삼키면 죽는다고.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었다.
빨리 성장할 수만 있다면 어떤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게 내 처지였다.
“천천히 골라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시간은 얼마든지 주겠네.”
마음 같아서는 이미 골랐다. 가장 첫 번째에 진열돼있는 갑옷으로.
제사장을 상대로 공격력은 입증한 바 있다. 지금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단연 방어력. 설사 아드레날린 부스트가 끝나도 한 턴은 버틸 수 있는 게 필요했다.
그 생각과 함께 천천히 갑옷으로 다가갔을 때였다.
“헬리오스의 심장. 안목이 좋군. 분명 자네에게 어울릴 거야.”
무려 신의 이름이 담긴 아이템이었다. 새하얗게 빛나는 갑옷에서 성스러운 기운이 뿜어졌다.
설명창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물리는 물론이고 마법과 상태 이상까지 막아 줄 게 분명해 보이는 문양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으려다 간신히 참은 직후였다. 그 전에 확인해 볼 것이 있었다.
예지능력.
언제, 무슨 연유로 그것이 시전되는지 알아놔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단지 미래의 사건과 연관된 인물, 혹은 사물과 접촉 했을 때가 아닐까 하는 추측만 있을 뿐이었다.
만약 이 갑옷이 내 미래에 영향을 끼친다면 반응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무려 S급 아이템이지 않은가. 하지만 확신보다는 염원에 가까웠다.
그런 마음으로 한참을 뚫어져라 갑옷을 쳐다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갑옷이 아닌 건가? 고개를 갸웃하고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검을 지나 반지, 귀걸이, 목걸이까지 뚫어지듯 노려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S급 아이템을 두고 실망하다니. 욕심도 정도껏이다. 차분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최태성에게 말했다.
“헬리오스의 심장. 이걸로 하겠습니다.”
“좋은 선택이야.”
그 말과 함께 유리막이 사라졌다. 실망은 어디 가고 끝 모를 기대감이 샘솟았다.
확신할 수 있다. 이것만 있으면 C급 던전을 단신으로 도모해 볼 만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태양의 신을 받아들이려던 순간.
아!
역시나!
의식이 미래 어딘가로 빨려 들어간다. 추측이 맞았다. 이 불가사의한 능력에 한발 다가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