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미래를 본다-22화 (22/170)

22화 S급 아이템 (1)

“커헉!”

놈의 입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의식이 있는 한 살아있는 것으로 봐야 했다. 칼을 거둔 즉시 김찬현의 목을 노리고 우상단에서부터 롱소드를 휘둘렀다.

캉!

그때 내 검을 막는 것이 있었다. 살수 중 하나였다.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 복면 사이로 보이는 살수의 눈깔이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까지도 예상한 바다. 튀어나오는 반동 그대로 몸을 던졌다. 사각지대의 끝에 마법사가 있었다. 그놈부터 없애야 했다.

주문을 외우고 있던 마법사가 나를 보고 당황을 금치 못했다. 눈으로는 ‘어떻게 내 위치를.’ 따위의 말을 하고 있었지만.

차마 외우던 주문을 멈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둘 중 하나였다. 마나 역류가 두렵거나, 혹은 동료를 믿거나.

뭐가 됐든 놈의 판단은 단단히 틀렸다.

무릇 원거리 딜러의 육신은 약한 법. 힘을 배분해야 했다. 슬쩍 휘둘렀는데 놈의 연약한 모가지가 그대로 떨어졌다.

나머지가 반응한 건 그때였다.

“……!”

놈들이 지껄이는 소리는 귀에 담지 않았다. 이 순간 마치 보스몹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다만 놈들은 던전을 잘못 골랐다. 그것도 귀환석도 없이. 수준에 맞지 않는 던전에 들어왔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지.

레인저는 과연 눈치가 빨랐다. 다음 타깃이 자신이 될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재빠르게 동료들 틈으로 숨어들었지만.

푸슛!

어차피 행동을 제약하는 데 의미가 있을 뿐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으로 약한 살수 하나의 허리를 베었다.

네놈이 안 죽으면 동료가 죽는다. 이래도 도망칠 거냐? 내 의도가 전해졌는지 레인저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괴성을 지르며 뛰어온다. 전투 중에 이성을 잃으면 이렇게 돼버리는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오히려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이깟 것들에게 내가 당했다니.

본분을 잊고 감히 나와 육탄전을 벌이려던 레인저의 심장을 찢은 후였다. 허무하게 무너지는 레인저의 뒤편으로 대장이 발작하는 게 보였다.

녀석이 내게 뭐라고 하며 출수했다. 그때까지도 김찬현은 컥컥대며 발버둥치고 있을 뿐이었다.

콰앙!

대장의 검이 나와 부딪혔다. 과연 대장은 나의 상대가 될 만했다. 그래서 마지막이어야 했다.

다대일에서 일의 유리한 점이라면 상대를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장의 복부를 걷어찬 시점이었다.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놈이 있었다.

손바닥을 펼치면서 옆구리를 파고드는 놈이었다. 그러면서도 팔이 흔들린다.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 한 수만 봐도 생각이 읽힐 정도의. 놈의 확신 없는 장법은 예상대로였다.

“크악!”

손목째로 잘려나가는 즉시, 놈의 몸이 허물어졌다. 목이 잘려나갔음은 당연하다.

아직까지도 내가 생채기 하나 없는 이유는 이것들과 나의 사투가 두 번째였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내 전력을 모르지만 나는 이들 하나하나의 면면을 알고 있다. 그 사소한 것 하나가 큰 차이를 만들었다.

[레벨업!]

시스템은 각성자를 죽였을 때도 경험치를 준다. 오히려 동수의 몬스터보다 더 넉넉하게.

이것에 대해 가혹하다거나, 혹은 모질다고 욕해서는 안 된다. 블랙홀의 중력을 두고 악랄하다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때 대장의 눈이 한 번 더 돌아갔다. 그럴만했다. 놈은 수하를 모두 잃었다. 그 분노가 대장의 검에서 느껴졌다.

전력이 담긴 녀석의 일격을 받아낸 후였다.

생사가 갈리는 순간이라서 그런 걸까. 이 순간에도 나는 성장 중이었다.

번쩍이는 머릿속에서 대장의 궤적이 기억났다.

쿠웅!

근력 하나만 두고 보자면 나보다 윗선이었지만 결국 그것뿐이었다. 놈들의 구성이 이해가 갔다.

김현일과의 일전을 치르기 전이었다면 꼼짝없이 졌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너무 늦었다.

대장의 검이 허망하게 하늘을 갈랐다.

그러자 대장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도주를 결정한 것이다.

즉시 놈의 다리를 걷어찼다.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꼴사납게 땅바닥에 처박혔다. 우습게도.

그때가 되자 대장은 오히려 당당한 투였다. 퉤하고 피를 뱉더니 되려 복면을 벗었다.

“기다려라.”

놈은 우리말을 할 줄 알았다. 마치 상관이라도 되는 양 엄중하게 말하는 녀석이 신기했다.

“사과할 게 있다면 사과하지. 오해가 있다. 우리도 김찬현에게 속았다.”

웃기지도 않았다.

“속아? 너희는 나를 상해로 데려가려고 했다.”

“…우리가 어디 소속인지도 알겠군. 대화가 통해서 다행이야. 김찬현이다. 놈이 네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했어.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맹세하지. 너를 죽이려는 의도는 결코 없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밝혀라.”

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음? 그렇다면 상해에서 왔다는 건 어떻게 알고. 우리는 화신 소속이다.”

들어본 적 있다. 중국에서도 이름난 곳 중 하나였다. 그거면 됐다. 녀석에게 더 이상 볼 일은 없었다.

놈의 얼굴에서 얼핏 안도감이 스쳤다. 소속을 밝혔으니 죽을 위기는 벗어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도 잠시, 찰나의 순간 내 눈빛을 읽은 녀석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어있었다.

“기, 기다려! 나를 죽이면 너희도…!”

각성자들의 세계다. 은원이 얽히고설키게 될 테지만 놈들이 나를 찾아온 순간부터 이미 실타래가 꼬였다.

뒷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여기서 남은 대장을 살려두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파장이 될 것이었다.

놈의 목을 갈랐다. 그 옆에는 김찬현이 허망하다는 얼굴로 죽어있었다.

그때였다.

쾅-!

문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순간에 느껴지는 엄청난 파동이 있었다. 옆을 돌아보자 어느새 한석훈이 있었다.

한석훈이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 채로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일성의 대회의실. B급 이상이라면 한 명도 빠지지 말라는 최태성의 지엄한 명령이 있었다.

A급 헌터만 다섯이고 B급은 스물일곱이다. 던전과 게이트를 막기에도 바쁜 그들이 이만큼이나 모인 것은 이례적이었다.

“갚아줘야 합니다.”

화두는 당연히 이태진에 관한 것이었다. 일성이 아끼는 보물이 기습을 당했다. 명백한 도전이었다.

“그걸 말이라고….”

거기에 의문을 표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당연한 소리를 굳이 왜 하냐는 질책의 시선만 있을 뿐.

“방법은?”

최태성이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단번에 여러 가지 말이 튀어나왔다.

암습, 생사투, 대전.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해결방안이겠지만 이게 각성자들의 세계다. 각성자들의 은원은 목숨으로만 갚을 수 있다.

여기에 민간의 법이 끼어들 틈은 없다. 협회가 아닌 이상에야. 당장 오늘 밤에만 여섯이 죽었지만 기사 한 줄 나오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암습으로 하겠다.”

최태성의 말에 좌중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합당한 방식이었다.

“화신의 회장이 아끼는 제자가 있습니다. 하오란. 나이 36세, 남자, 클래스는 검사입니다. 추정 레벨은 170이며….”

방법만 일렀을 뿐인데 이미 준비됐다는 듯 목표대상의 정보가 하나부터 열까지 튀어나왔다.

회의실 중앙 거대한 스크린에 하오란의 얼굴이 떴다. 간부들은 하오란의 얼굴을 눈에 새기겠다는 듯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원하고 싶은 사람은 손들어봐. 음. 인원은, 다섯 명이 좋겠어.”

대번에 스물이 넘는 인원이 번쩍하고 손들었다. 최태성이 흡족한 미소를 띄웠다.

“차출에 대해서는 다시 얘기하도록 하고. 그보다, 그 친구 상태는 어때 보여?”

최태성이 한석훈에게 턱짓했다. 이태진에 대한 말이었다.

“뭐, 일단은 괜찮아 보입니다. 처음엔 다 그렇잖아요. 내가 뭔 짓을 한 건가, 여긴 현실이 맞나.”

한석훈의 담담한 말에 모두가 알만 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지. 차라리 잘됐어.”

“그나저나 기습을 막아낸 건 대단한데. 그것도 여섯이었다며.”

“놈들이 방심했을 거다. 운이 좋았어.”

“운? 그런 걸 들먹이는 녀석이 있다니. 이태진의 레벨이 몇인지는 알아?”

“더군다나 김찬현 그 개새끼도 섞여 있었어. 충분히 실력으로 봐도 돼. 벌써 이렇게나 성장하다니….”

좌중의 모두가 한마디씩 거들었다.

“생각보다도 더 빠르네.”

최태성이 흥미가 돋은 얼굴로 말했다.

“언제나 제 예상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허어…! 석훈이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사실이 그렇습니다.”

최태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그럴만하다며 수긍했다.

“하기야. 나도 깜짝 놀랐어. 선 자리에서 검술 하나를 만들다니.”

김현일과의 예선전을 말하는 것이다. 순간이지만 최태성의 눈에서 탐욕 어린 시선이 스쳐 지나갔다.

거기에 대해서 한석훈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누구나 이태진의 자질을 보면 그럴 것이니까.

한석훈 자신도 그랬고.

‘결국 더 큰 무대로 가겠지만.’

그때까지라도 보고 싶었다. 얼마나 성장할지.

***

한석훈은 그날의 일에 대해 잊으라 말했다. 너도 언젠간 겪었어야 했을 일이라느니, 각성자들의 생리란 원래 그런 것이라느니.

몇 번이나 알겠다고 대답해도 졸졸 따라다니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한석훈은 내 멘탈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마음에서 지운 일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럴 만했다.’ 정도로 남아 있을 뿐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었다. 합리화가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최강자전에 대한 흥미는 사라진 상태였다.

[파죽지세의 이태진, 8강 진출!]

[시작한 지 10초 만에 항복선언. 이태진, 다음은 누구?]

[대망의 결승, 미래의 검신 vs 대마도사]

결승전의 상대는 원거리 딜러였다. 우리 정도 수준에서는 십중팔구 근거리의 전사가 마법사를 이긴다.

그만큼 마법 계열 각성자는 일정 수준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별 위협이 안 된다는 말이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 칭찬을 듣기에 충분했다.

그래. 하지만 감상은 그것뿐이다.

굳은 얼굴로 연무장에 올라온 여자의 파장은 별것 없었다. 오든 프리스트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이태-진!”

“이태-진!”

“검-신!”

“검-신!”

연신 내 이름을 부르짖는 관중만 삼만 명이다. 결승전은 이름값답게 참 화려했다.

이게 올림픽경기장까지 대관해가면서 할 일인가. 지금도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얼른 던전이나 돌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는 태생부터 천재였다…. 선천적인 각성자고. 그래서 기대했어. 비록 후천적으로 얻은 특성이지만 너도 동류의 자질을 얻었으니까. 우리가 싸우는 그림은 분명 멋졌을 거야. 그런데 그 식은 눈빛은 뭐지?”

“…….”

이것 봐라. 상대는 자신과 나의 격차조차도 가늠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름이 뭐더라. 이지원이었던가? 자신을 사신수 중 하나인 이정환의 딸이라며 소개한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해 보였다.

아카데미를 일 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느니 벌써 서클을 네 개나 만들었다느니. 자랑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래. 고생했네.”

달리 할 말이 없어서 인사치레를 했는데 그게 도발이 됐다.

“…그 귀한 보물을 얻고도 너는 노력을 멈췄구나. 실망이다! 오늘을 기대했던 내가 바보같아.”

어여쁜 얼굴이 금세 굳었다. 굳이 기대에 부응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야기는 거기까지. 준비됐나? 좋다. 시작!”

심판의 말과 함께 우레같은 함성이 터졌다. 내 발밑이 폭발하는 것도 그때였다.

확실히 천재는 맞았다. 영창도 없이 마법을 사용하는 건 특별한 재능이니까.

“그래도 오늘은 내가 이겨야겠다. 다음에 다시 붙어보든가.”

발을 구른 즉시 이지원의 목 앞에 검이 있었다. 털썩하며 이지원이 넘어지는 것을 끝으로 결승전이 끝났다.

기껏 찾은 관중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욕 좀 먹고 말지. 라고 생각했는데. 어째 아까보다 배는 큰 함성이 귀를 찢었다.

“우와아! 뭐야!”

“방금 본 사람? 순식간이잖아!”

“대마법사? 그게 뭔데!”

“뭐가 됐든 검신의 승리다!”

“이태-진!”

“검-신!”

혹여나 우승한다고 해도 이미지를 위해 가만있어 달라는 홍주연의 부탁이 있었다.

그렇게 오롯이 대련장 한가운데서 나를 연호하는 소리를 받아내고 있었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VIP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에 힘을 싣자 돋보기라도 댄 듯 시야가 확대됐다. 최태성이 거기 있었다. 여유롭게 앉아서는 웃음기를 띄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최태성은 그날 뭐하고 있었지? 그 현장에 있기는 했나? 일성의 모든 사원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코빼기도 안 보였다. 최태성이 그 난리를 몰랐을 리가.

순간 최태성과 눈이 마주쳤다. 속마음을 숨긴 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최태성의 무력은 얼마나 될까. 고개를 저었다.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한석훈의 전력조차 모르는데 그런 게 파악이 될 리가.

이유를 따지지 말자. 마음속의 후보지에 최태성을 올려두었다. 때가 됐을 때 망설임 없이 칼을 휘두를 수 있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