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제2의 성요한 (3)
[검신 이태진. 그는 누구인가?]
[일성의 검신, 대현의 초신성을 꺾다.]
[다시보기. 이태진 vs 김현일]
[이태진을 검신이라 부르기에 망설임이 없는 11가지 이유.]
[마지막 이태진의 검무. 어떤 의미?]
[일성 배(盃) 세계 헌터 최강자전. 첫날부터 대박. 순간 시청률 22%]
기사가 나오는 족족 조회 수가 폭발했다. 그야말로 대히트. 특히나 일성 배(盃) 세계 헌터 최강자전. 단독중계를 따낸 JBC는 입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거기서 인서트 따고. 그래, 거기. 이태진 얼굴부터 줌 아웃.”
늦은 새벽이었지만 편집실에 상주하고 있는 인원만 서른 명이었다. 그 중에선 부장급 이상만 다섯이다. JBC의 메인 프로듀서는 다 모였다고 봐도 됐다.
“아웃포커싱으로 시작해서 김현일 얼굴까지. 앞부분은 자르고. 오케이.”
덕분에 편집에 관한 훈수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야. 박 부장아. 거기서는 칼끝을 살려야지! 김현일을 줌해서 뭐에다 써?”
“아, 진짜! 부국장님! 무슨 의천도룡기 찍으세요? 김현일 혼 빠진 얼굴 안 보여요? 저런 걸 살려야 시청자들이 더 좋아한다고요. 안 그래도 요새 우리 편집 올드하다고 유튜브 조회수 개판인데.”
“크흠. 인마, 그거는….”
“아닌 말로 지금 같은 기회가 어딨어요? 순간시청률 보셨죠? 이거 그대로 살려서 젊은 애들 끌어와야 한다고요.”
박중현은 안 그래도 예민해진 상태였다. 단독중계를 따올 때만 해도 ‘그게 시청률이 나오겠어? 중계비로 이렇게 줘도 돼?’ ‘우리 도박하지 말자.’ 하며 언짢은 기색을 보이던 윗놈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숟가락을 얹으려 들어?
“처음에 그러셨잖아요. 우리랑 타겟층이 안 맞는다, 젊은 애들이나 좋아한다. 국장님. 이번에 오프닝 광고 따낸 거 제가 일일이 뛰어다니면서 따냈어요. 이 짬에 일성한테 싹싹 빌어가면서요.”
“어, 어. 박 부장 고생했지…. 알고 있지. 아 참! 난 지금 편집 좋다? 김현일 얼굴 좋네.”
“…….”
“크흠! 박 부장아. 난 그런 뜻이 아니고….”
“예. 그런 뜻 아닌 거 알고 있습니다. 제 말은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믿어달라고요. 저희 애들 어제부터 집에도 못 가고 있습니다.”
국장은 눈치가 빨랐다.
“자자. 우리는 다 나가주자. 우리 있으면 애들 집중 안 돼.”
그러면서 법인카드를 박중현의 손에 쥐여줬다.
“일단 이걸로 애들 좀 사 먹이고. 끝날 때까지만 고생하자. 그전까지는 대회만 집중하자고. 끝나면 내가 확실하게 챙겨줄게.”
국장은 그렇게 말하며 부국장 등을 떠밀었다. ‘어어’ 하며 밀려 나간 부국장을 포함해 주요 인사들이 모두 나간 후였다.
“큭큭. 부국장님 아까 엄청 당황하시던데요?”
“어딜 숟가락을 얹어. 결재 받으려고 개고생했던 것만 생각하면 진짜.”
“아참. 부장님. 일성 쪽에 이태진 인터뷰 요청은 해 봤는데요.”
“해 준대?”
씁쓸한 표정으로 서브 PD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것 같기는 했는데.
“그럴 줄 알았다. 신비주의로 계속 갈 것 같지?”
“예. 아무래도 당분간은 그렇게 갈 건가 봐요. 언론 쪽 동기 애들 말로는 그쪽은 아예 접근도 못 하고 있나 봐요.”
박중현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서브 PD에게 물었다.
“이태진 과거 자료는 어떻게 되고 있어?”
“그것도 찾아보기는 하는데요. 아시다시피 아카데미 들어가면 협회에서 일반인 시절 자료를 싹 다 지워 버려서요.”
“하나도 없어?”
“예. 찾아보고는 있는데 협회에서 신경 좀 많이 쓴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자 저절로 고개를 젓게 되는 박중현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유튜브나 커뮤니티 쭉 돌아다니면서 계속 주시해.”
“예. 안 그래도 막내들 시키니까 잘하더라고요. 어린애들이 확실히 그쪽 정보는 빨라요.”
“잘했네.”
시간은 없는데 할 일은 많다. 그래도 즐거웠다.
최강자전이 이대로만 간다면 JBC 방송사는 물론이고 박중현 자신의 몸집도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인생에 몇 번 없다는 기회가 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박중현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그 순간이다.
그래서였다. 무리해서라도 비무대회 단독중계 따낸 건. 물론 첫날부터 이렇게 흥행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어쨌든 다들 당분간만 고생 좀 하….”
“어? 부장님! 이거요!”
조연출이 휴대폰을 건넸다.
“이것 좀 보세요!”
“유튜브? 자료 없는 거 아니었어?”
“방금 진형이가 보낸 건데요. 지금 인기 급상승 영상 1위예요.”
“뭔데 그래?”
영상은 일성의 본사 앞에서부터 시작됐다.
“여러분! 날씨가 추운데요. 그래도 최강자전이 시작되는 날, 제가 안 나올 순 없겠죠? 어우 추워!”
별것 없는 내용이었다. 인지도 없는 유튜버가 각성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뻔한 콘텐츠.
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친 모양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름 없는 유튜버에게 시간을 내줄 각성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도 비무대회에 참여할 정도의 헌터가 말이다.
하루종일 거절당해도 웃는 얼굴로 계속 도전하는 정신은 인정해 준다만.
이게 어쨌냐는 얼굴로 조연출을 쳐다보자 조연출이 영상을 빠르게 스킵했다. 우여곡절 끝에 각성자 하나가 인터뷰를 허락한 것이다.
[오늘 나오길 잘했네요. 유일하게 인터뷰 허락해주신 정말 고마운 분 ㅜㅜ]
이 같은 자막과 함께 영상이 다시 재생됐다.
“안녕하세요! 성함이랑 소속이 어떻게 되시나요?”
어?
시큰둥하게 보고 있는 박중현이 흠칫 놀란 것도 그때였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정확히는 어제부터 하루 온종일 보고 있는 얼굴.
“…일성에 이태진입니다.”
카메라에 비친 이태진이 시큰둥한 얼굴로 대답했다.
[무려 일성!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일성의 헌터님이랑 대화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거든요.]
“아, 아. 네. 일성의 이태진 헌터님. 반갑습니다. 시간 관계상 바로 첫 번째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이번 비무대회에 나가시는 소감은 어떠신가요?”
“가벼운 마음으로 출전하려고 합니다.”
“아, 가벼운 마음이라면 목표가 어떻게 되시나요?”
“…우승이요.”
[우승이 가볍다고 하시는 이태진 각성자님! 대 일성의 기세를 잘 보여주는 표본 같았습니다. 솔직히 멋있었어요!]
“네, 그럼 다음 질문인데요. 요즘 제일 핫한 키워드 제2의 검신, 제2의 성요한이라 불리는 각성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꿀꺽.
박중현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런데 갑자기 영상이 빨라졌다. 무슨 조작을 한 게 아니라 영상 자체에서 그 부분을 편집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일성 관계자로서 민감한 질문이 될 수 있기에 이 부분은 편집합니다. 그 이후로도 몇 가지 문답이 오갔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드는 인터뷰였습니다. 이태진 각성자님의 활약 기대하면서 저도 빨리 대회 보러 가야겠네요~]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뭐, 뭐야. 이대로 끝이야?”
“예. 어제 대회 시작 전에 올라왔고 다음 영상은 아직 업로드 안 됐습니다.”
“….”
잠시 동안 박중현이 할 말을 잃은 듯 가만있다가. 순간 벌떡 일어났다.
“이런 미친! 이 여자 번호 알아냈어?”
“지금 비즈니스 메일로 보내놓긴 했습니다.”
슬쩍 조회수를 봤다. 24시간도 안 된 영상이 벌써 조회수가 천만이 넘어간다. 다른 방송사에서 접촉했을 가능성? 말해 뭐할까.
“이거 무조건 잡아라. 무조건이다. 목숨 걸고! 영상 원본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안된다고 하지 마!”
“예! 오늘까지 무조건 받아 놓겠습니다!”
“돈은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크게 질러. 선조치 후보고. 지르고 나한테 보고하라고. 뺏기기 전에. 아, 아니다. 전화번호 알아내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 새벽도 상관없으니까 바로 전화하라고.”
인사를 받을 새도 없었다. 박중현이 편집실 문을 뛰쳐나갔다.
젠장할. 최초다. 최초. 고작 특성 하나 알려졌을 때도 나라가 요동친 인물이다. 그런데 또 어제 그만한 퍼포먼스까지 보여 준 상태다.
무명 유튜버라고는 하나 그 짧은 인터뷰는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상상했더니 눈앞이 아찔했다.
‘늦지 않았어야 하는데.’
박중현은 조급한 심정으로 국장실로 뛰어갔다.
***
김주현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몸이 천근처럼 무거웠다. 어제는 정말 몸이 하나라도 부족했다. 비단 어제뿐만이 아니라 매일이 그랬다.
요즘 머릿속에는 온통 돈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빚을 갚을 수 있을지.
무지는 죄였다. 사기 한 번 당한 것으로 평생을 열심히 일 한 부모님은 절망스러운 노후가 확정됐다.
부모님은 당신들의 피해를 호소했지만 김주현에겐 별로 와닿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모르는 건 죄다.
다만 혈육의 정을 어찌 끊을까. 이제 부모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식 하나뿐이다. 이것마저 부모에게 앗아가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모순되게도 극한의 고통은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다니. 김주현도 이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게을렀던 스스로를 180도 바꿔준 빚덩이에게 감사라도 해야 할까. 피식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결국 사업이다.”
몸으로 버는 건 한계가 있다. 3억에 달하는 빚을 갚기 위해서는 20년 이상을 누군가의 밑에서 청춘을 바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주인이 되는 일을 해야 했다. 그 대가로 김주현이 담보로 잡은 건 젊음이었다. 대신 남들처럼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버렸다.
부모의 빚이 불행이었다면 시대를 타고난 건 행운이었다. 유튜브와 인터넷 쇼핑몰, 출근길 지하철 앞에서 파는 김밥 등등. 돈이 별로 안 들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고작 반년이 지났지만 성과도 있었다. 특히나 유튜브는 벌써 구독자가 3만 명을 넘어섰다. 미모를 이용한 것이 컸다.
전날 몽마에 쓰러지기 직전 싸뒀던 김밥을 가방에 넣고 단칸방을 나섰다. 휴대폰을 열어 유튜브를 켰다. 업로드했던 영상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이번 비무대회는 자신이 생각했을 때도 구독자를 확 끌어모으기 좋았다.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오늘도 일성 앞으로 가볼…어?”
순간 잘못 봤나 싶었다. 걸음을 멈추고 다시 봤다.
조회수 : 13,419,895
인기 급상승 영상 순위 : 1위
구독자 : 474,000
꿈을 꾸는가 싶어 허벅지를 꼬집어 봤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이게 무슨.”
너무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지니까 두려움이 앞섰다.
무슨 일이 터진 거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영상을 클릭하려던 순간. 전화가 울렸다.
“여, 여보세요?”
“헉. 헉. 혹시 주현티비 김주현 님 맞으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이태진 인터뷰 영상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실례지만 이태진 헌터와의 인터뷰 원본 영상….”
[아, 진짜. 어딘지부터 밝혀야 할 거 아니야! 돌겠네. 나한테 바꿔!]
수화기 너머로 고성이 울렷다. 김주현은 대화가 더 이어지기 전에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느낌이 왔다. 정확히 이거다 하는 확신이 아니라 본능의 영역이었다.
“이태진 인터뷰 원본 영상? 그게 뭐야. 이태진…. 이태진? 이태진!”
이런 미친.
까먹을 게 따로 있지. 퍼뜩하고 어제의 일이 기억났다. 이태진이 그 이태진이라고?
졸음이 한번에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지하철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렸다. 김밥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단칸방으로 뛰어가는 몸이 다급했다.
***
“오만함과 당당함 그 사이. 이태진은 왜 섹시한가. 라는데요 오빠?”
김세린이 터지는 웃음을 막으며 꾸역꾸역 말했다.
“아. 태진 오빠가 섹시하긴 하지. 푸핫!”
박하영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웬일로 이 둘이 죽이 맞다.
박수를 짝짝치면서 자기들끼리 소리 없이 꺽꺽대는데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슬쩍 옆을 보니 이지은도 숨소리가 이상했다.
“지은아…. 그냥 웃기면 웃어도 돼.”
체념하고 그렇게 말하자 이지은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풉! 어머! 죄송해요. 그런 게 아니라….”
이지은이 순간 정색을 하며 뒤로 돌았다. 가만 보면 쟤가 제일 나쁘다.
“이게 왜 웃겨?”
아까부터 가만히 듣고 있던 임한나가 의뭉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것도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얘는 또 어떤 빌드업을 하려고 이러는 걸까 했는데 ‘왜?’ 하며 나를 쳐다 본다.
뭐야. 진지하게 안 웃기다는 거였어?
“어, 그러니까. 이게 안 웃겨?”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웃기다. 너무 웃겨서 칼럼을 쓴 기자를 한번 만나고 싶을 만큼.
“하나도 안 웃긴데?”
임한나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혼자 연무장으로 들어갔다. 저 녀석의 웃음 코드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야, 야. 다음 기사는 더 웃겨. 어? 오빠! 전화 왔는데요?”
“알아.”
나한테 전화 올 사람이야 뻔했다. 나를 스카우트하려는 다른 회사, 혹은 나를 스카우트하려는 다른 회사.
친구를 좀 사귀어 놓을 걸 그랬다.
“여보세요?”
“….”
뭐야, 왜 말이 없어? 숨소리는 들리는데.
“누구세요? 대답 없으면 끊습니다.”
“아, 아! 저…. 안녕하세요. 저는 그….”
뭐라는 거야? 보이스피싱 컨셉 참 희한하게도 잡았다고 생각할 때였다.
“김주현이라고, 어제 인터뷰했던! 혹시…. 기억하세요?”
김주현? 인터뷰?
아 그러고 보니. 오들오들 떨면서도 쉬지 않고 빨빨 돌아다니는 게 안쓰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전화번호를 알려준 것도.
“네. 기억납니다. 무슨 일이세요? 인터뷰 답례라면 괜찮습니다.”
“그, 그게….”
김주현이 뭐라고 웅얼대는 소리가 저 멀리 날아갔다. 어느새 내 의식이 다른 곳으로 빨려가고 있었다.
의아함보다는 반가움이 앞섰다. 오랜만에 미래를 보여주는 초능력이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