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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15화 (15/170)

15화 돼지목에 진주목걸이 (4)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충격음이 퍼졌다.

7년 차 헌터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닌지 최찬규는 기어코 내 공격을 막아냈다. 다만 최찬규의 자세가 흐트러진 건 어쩔 수 없었다.

당황하지 않고 부드럽게 공격을 이어갔다. 그때마다 최찬규의 몸이 휘청거렸다.

젠장할!

틈을 주지 않아야 했지만 노련함의 차이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바닥을 굴러다닌 끝에 최찬규가 결국 내 공격권에서 벗어나고 만 것이다.

바닥에서 일어난 최찬규는 대번에 눈빛부터 달라져 있었다. 손풀기라고만 생각했던 애송이를 적수로서 인정한다는 걸까.

“인정한다. 방심이야말로 헌터를 죽이는 가장 치명적인 독이지. 너를 얕본 걸 사과한다.”

혹시나 싶어서 최찬규를 향해 검 끝을 까딱거려봤다.

“오시죠.”

그럴 줄 알긴 했는데 도발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깊게 침잠한 그의 눈빛이 되려 아까보다 흉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연무장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던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검과 검이 맞부딪혔다. 확실했다. 나는 최찬규보다 한 수, 혹은 반 수 아래였다.

그럼에도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걸 인지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말이니까.

후웅!

아슬아슬하게 어깨를 찔러오는 검을 피한뒤 옆구리를 노리며 주먹을 던졌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최찬규의 몸이 스프링처럼 유연하게 반응했다.

이번에는 최찬규의 차례다. 상단을 노리며 맹렬하게 내려오는 그의 검을 본능적으로 막았다.

어느새 우리들의 합은 삼십 수를 넘기고 있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체력이 급속도로 빠지고 있었고 아드레날린 부스트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비무가 이렇게 즐거웠던 게 대체 얼마 만인지 매일 한석훈과 단행하는 가학에 가까운 훈련과는 궤를 달리하는 즐거움이었다. 그래, 비무는 원래 이런 것이었는데.

허나 이제는 끝내야 할 때였다. 시야의 좌측 상단 끝에 걸린 스킬 유지시간이 거의 다 됐다.

검을 내려놓고 패배를 인정하려던 순간이었다.

“아!”

문득 머릿속을 벼락처럼 때리는 것이 있었다. 최찬규 또한 뭔가를 느낀 듯 내지르던 검을 회수하고 나와 거리를 벌렸다.

내 의식이 머릿속 저편으로 빨려들어 갔다. 눈을 떴을 땐 마치 비디오를 되감기한 듯 최찬규와의 비무 상황이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관찰자의 시점이었다.

대련이 시작되고. 반원을 그리던 우리가 맞부딪친다. 찌르고 들어오고 베고. 동작 하나하나가 슬로 모션으로 촬영된 듯 면밀하게 보였다.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힘이 순식간에 비복근을 지나 대퇴근과 대둔근을 통과한다.

삼각근에 도달한 힘이 최종적으로는 이두근에 이르렀을 때 폭발했다.

아!

희미하게 뭔가가 보였다.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초조한 내 마음과 달리 머릿속의 스승은 느긋하게 다시 영상을 되감았다. 그렇게 힘의 전달과정이 몇 번이고 반복됐다.

한 번, 두 번, 세 번….

어느 시점에 이르자 비무를 하고 있는 머릿속의 내가 엉성하게 보였다.

의식 저편의 나는 온전한 힘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고관절과 어깨의 움직임이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자연스럽게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도 그려졌다.

그 순간 시점이 바뀌었다. 내 몸은 비무장 위에 있었고 앞에는 시건방진 녀석 하나가 검을 까딱거렸다. 내 얼굴을 한 녀석이었다.

놈에게 쏜살같이 몸을 던졌다. 녀석이 검을 들어 올렸지만 내가 더 빨랐다.

쿠웅!

내가 느끼기에도 태산처럼 묵직한 검이 놈의 칼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아직 힘이 넘쳤다. 놈이 갈라진 검을 황망한 듯 쳐다봤다.

어딜 봐?

그대로 놈의 목까지 무참히!

화악!

***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누구나 꿈에서라도 바라마지 않는, 일평생 수련에 매진한 무도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마법저항이 크게 상승합니다.]

[물리저항이 크게 상승합니다.]

.

.

.

[중급검술이 완숙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검에 대한 통찰이 고수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깊은 충만감이 속에서부터 올라왔다. 나한테도 이런 순간이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눈을 떴을 때. 나를 지켜보는 무수한 시선이 있었다. 하나같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저게 그 깨달음인가 뭔가 하는 거 맞지?’

‘나도 몰라. 뭔가 있어 보이긴 하네.’

김세린과 박하영이 속닥거리는 게 들렸다. 고개를 들자 한석훈과 최찬규가 묘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눈빛이 삼엄한 것이 가장 지척에서 날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축하한다. 이태진.”

한석훈이 그답지 않게 진중한 얼굴로 악수를 건네 왔다. 피식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고맙습니다.”

최찬규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한 번 더 붙으면 얄짤없겠네. 그냥 지금 진 걸로 하자. 내가 졌다.”

“선배님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을 담아 허리를 숙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던 최찬규 또한 이내 잘 배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뭔가 무협지의 한 장면 같잖아. 낭만. 이게 낭만인가 뭔가 하는….

“어! 그러면 우리가 이긴 거 맞죠?”

그때 김세린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아.”

최찬규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뭐라고 변명하려던 그때.

“아니, 우리가 이긴 거 맞잖아요.”

“그러네. 우리가 이겼네.”

“선배님. 그러지 말고 인정하시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김세린과 박하영, 임한나가 우르르 뛰어가 최찬규를 잡고 주머니를 털어댔다.

최찬규는 아무 저항도 못 한 채 주머니에 있던 것들을 그대로 강탈당했고.

옆을 보니 쭈뼛거리던 이지은도 주먹을 꽉 쥐며 좋아하고 있었다. ‘다음에도 걸어야지.’ 같은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 건 내 착각이겠지?

“아 진짜.”

김이 팍 샌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내 몫은 없나 봐야겠다.

***

최찬규가 돌아가고 난 후였다.

“103이다.”

한석훈이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찬규 레벨 말이야. 103이라고.”

이제 힘 빠졌으니 자기랑도 한판 붙어보자며 까불랑거리던 김세린이 순간 동작을 멈췄다.

옆에서 1초인지 뭔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하던 박하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그럼 방금 태진 오빠가 100레벨 각성자를 이겼단 말이에요?”

김세린은 한판 해보자는 거 취소라며 방방 뛰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100레벨. 베테랑 헌터와 애송이를 가르는 기준점이 되는 레벨 아니던가. 그런 사람과 내가.

“늘 예상을 뛰어넘네.”

한석훈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 얼굴이 마치 징그러운 괴물을 본다는 것 같기도 하고, 재밌는 것을 찾았다는 것 같기도 했다.

***

“2팀 애들은 뭔가 이상해.”

“거기 애들. 하나같이 좀 세죠?”

사내에 들리는 2팀에 대한 소문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다른 팀에 비해서 유난히 강하다거나 독하다거나. 뭔가 있다거나.

“거기 팀장님이 빡세게 굴린다는 말도 있던데.”

“아. 한석훈 팀장님? 그 사람도 거기 있기는 아깝지.”

“원래는 A급 재난팀에 있었다면서요? 그런데 왜….”

“나도 모르지. 소문만 무성해. 찬규형. 형은 알아요?”

휘익!

최찬규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며 검만 휘두르는 중이었다.

“저 형 며칠째 저러는 거야?”

“한 달이요. 집도 안 가고 저러고 있는 거예요.”

“충격이 크긴 한가 보네.”

“확실히 S급 특성은 다른가 봐요. 어떻게 70레벨 애송이가…읍!”

다급하게 입을 막은 그는 행여나 들었을까 최찬규를 바라봤다. 다행히도 최찬규는 맹렬히 칼질만 해대는 중이었다.

“저도 이번 인사이동 때 D-2팀 지원해 볼까 봐요. 거기가면 엄청 강해져서 돌아온다던데.”

“아서라. C급 애들도 거기 갔다가 도망친 놈들이 한둘인 줄 알아? 분명 개고생만 하다 나올걸.”

“그것도 그런가. 아참! 그 소문 들었어요? 그 S급 무당 요새 하는 짓이요.”

“아. 그거?”

2팀에 관한 이야깃거리 중 빠질 수 없는 말이었다. 2팀 그놈, S급 무당, 그 사람 등등. 여러 가지 별명으로 불리는 그 애송이 헌터말이다.

비단 바깥에서뿐만 아니라 일성 내부에서도 이태진은 화제의 중심이었다.

입사 첫날에 브론즈 박스에서 A급 스킬을 띄운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말이 안 되지만, 그래. 그것까지는 어떻게든 납득한다고 치자.

그런데 세 달 후에는 그 녀석이 S급 특성을 얻었단다. 그것도 성요한과 같은 것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잘 모르는 비각성자들이야 ‘그럴 수도 있나.’ 하고 대충 납득할 수도 있다지만.

한 번이라도 던전을 다녀온 각성자들은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애송이가 관심 좀 끌어보겠다며 거짓말을 한다며 혀를 찼다.

“그놈이 무슨 수를 쓴 거지. S급 특성이 뉘집 개 이름인 줄 알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뜨는 줄 아느냐고. 어디 한번 두고 봐라.”

때가 되면 사실이 밝혀질 것이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애송이가 거짓말을 쳤다고 벼르던 사람 또한 있었다.

그런데 진실이 밝혀졌다. 그 허무맹랑한 유언비어가 진짜라고 한다. 최태성이 직접 나서서 입을 열었고 협회까지 인증을 마쳤다며 한술 거들었다.

“허어.”

기가 찰 노릇이었다. 평생 쓸 운을 모조리 끌어모아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터졌다.

그래서였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어도 시원찮을 이태진의 다음 행보는 모두에게 있어 초유의 관심사였다.

A급 스킬을 얻고, S급 특성을 얻었으니 다음은 무엇이냐 하고.

그때, 은밀한 소문 하나가 사내에서 슬금슬금 퍼졌다. C급던전 유망주 최찬규가 그 애송이한테 졌다더라, 그래서 최찬규가 폐관수련에 들어갔다더라 하는 소문.

슬그머니 퍼지던 풍문은 종내에는 사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예. 진짜니까 이제 그만 좀 물어보십시오.”

사실을 확인하려 눈치 없이 물은 말에 최찬규가 힘없이 뱉은 말이었다.

그것만 해도 충격인데 문제는 그놈의 다음 행보였다. 이태진이 다음 대련 상대를 구한다더라, 벌써 C팀 팀장과 싸워 이겼다더라. 하는 터무니 없는 소문.

“맹랑한 자식이네요. 이 바닥 겸손해야 오래 살아남는데. 벌써 성요한이라도 된 줄 아는 거 아닙니까?”

움찔.

한 달간 세차게 움직이던 최찬규의 검이 멈춘 것이 그때였다. 곧바로 검을 휘둘렀기에 본 사람은 없었지만.

“팀장님 이야기는 아니겠죠? 아무리 그래도….”

“말이 되냐? 제깟 놈이 특성 얻은 게 언젠데 벌써. 회사 내부에서부터 언플 들어가는 거지. 나중에 한 방에 터트리려고. 너도 우리 회사 주식 사 놔라 지금. 조만간 빵 뜬다.”

완강히 부인하는 그들과는 달리.

후웅! 후웅!

“아냐. 이태진이라면.”

매서운 바람 소리에 묻혔지만.

최찬규는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그놈이라면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

콰당탕!

“크윽.”

나와 수십 합을 맞붙었던 남자가 결국 창대를 놓치고 패배를 선언했다. 뒤에서는 환호성과 탄식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환호성은 우리 쪽에서. 깊은 탄식은 저쪽에서. 남자의 뒤에서 카메라로 나를 찍고 있는 사람 또한 얼굴을 구겼다.

아마 그저께 나한테 졌던 사람이었지?

뿐만 아니라 심각한 표정으로 종이에 뭔가 잔뜩 적는 사람도 있었다.

저 남자는 일주일 전 대련 상대였다.

다들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눈앞을 가리는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면 나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높은 레벨의 대상에게 승리를 얻었습니다.]

[레벨 업!]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레벨이 낮습니다. 성장 속도가 매우 빨라집니다.]

이제는 지겹기까지 한 메시지를 치워버리고. 나 또한 완전히 진이 빠져 헥헥대고 있는데 남자가 분을 못 이기고 바닥을 내리쳤다. 그러고는 나를 똑바로 노려본다.

그 얼굴이 마치 ‘나는 사실 사천왕 중 최약체였다. 다음 상대는 너도 못 이길걸?’ 하는 듯하다.

미치겠네.

마음이 바뀌었다. 차라리 한석훈한테 흠씬 두들겨 맞고 말지 나와 대련한 상대마다 저런 얼굴을 해대니까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더군다나 날이 갈수록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번만 해도 그랬다. 남자의 움직임은 몇 번이고 나를 상대해 봤다는 듯 내 습관을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내가 언제 어떤 스킬을 사용하는지는 물론이었고. 어떤 공격에 취약한지까지 정확히 파악한 듯 말이다.

그럴수록 내 실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지만. 이건 아니다.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석훈은 상대가 강해질수록 아기처럼 꺄르륵대며 박수를 짝짝 친다.

까득.

나도 모르게 절로 이가 갈렸다. 전부 다 저 인간 때문이다.

‘네 수준을 제대로 몰랐다. 사과하마!’

그 말을 할 때까지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고개를 숙이는 한석훈의 모습에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드디어 내 실력을 인정받는구나 하며. 그래서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하며 낄낄대기 바빴는데.

그래. 다짜고짜 며칠 후에 적당한 상대를 구했다며 헤벌쭉 웃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 사람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됐다. 귀 어두운 나까지 소식이 들릴 만큼 사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저 녀석이군.”

“오늘도 대련하는 건가? 이태진?”

지나가면서 듣는 안부라는 게 이런 거고.

“이봐 신입. 이태진 맞지? 나도 한 수 배우고 싶은데.”

“여기 대기표 뽑는 거 안 보여요? 이 양반이 상도덕도 없나!”

“뭐? 이 새끼가 이 양반? 넌 위아래도 없냐?”

“위 같은 짓을 해야 위 대접을 해 주죠.”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 멀리 김세린이 숫자가 적힌 종이를 어떤 남자에게 건네주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것도 마치 마약 밀거래라도 하듯 조심스럽게.

“아니 세린 씨. 다음은 나라고 저번에 약속했잖아.”

“어쩔 수 없어요. 대기표가 경매구조로 바뀌었거든요. 경매 참석을 원하시면 여기 휴대전화 번호 적고 가세요.”

뒤에서는 박하영과 임한나가 이 돈이면 당분간 소고기 회식은 문제없다며 즐거워한다.

안되겠다.

“팀장님. 저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요.”

한석훈에게 말했다.

“뭐? 이제 재밌어지는 참인데. 무슨 말이야.”

그런데 한석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팍 구겼다.

“차라리 팀장님한테 맞는 게 낫지. 방금 저 사람 표정 봤어요? 오늘 꿈에서도 나올까 봐 겁나요.”

“야. 그거 다 부러워서 저러는 거야. 부러워서. 자신감 가져 인….”

“아뇨. 됐습니다. 거절할게요.”

뭐라 말하려던 한석훈의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한석훈이 쩝 하며 잔뜩 아쉬운 얼굴을 했지만 내 입장은 확고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 명만 더 해보자 하는 말까지도 거절하자 종내에는 한석훈 또한 알겠다며 내 요청을 수락했다.

그런데 왜일까. 뭔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저 사람이 저렇게 쉽게 물러날 리가 없는데.

“…다고 해서 …법이 없는… 아느냐.”

작게 말해서 안 들렸지만 이런 말도 들린 것 같았다. 찜찜하다. 매우 찜찜해. 이건 예지능력이 아니라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안 좋은 예감이 들 때는 백이면 백 그 예감대로 흘러가는 것 말이다.

***

“좋네. 이거 진행해.”

“예?”

이태진의 최근 행보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은 최태성의 말이었다.

“안 그래도 요새 뭐 하는지 궁금했는데 재밌는 짓을 하고 있었네. 이렇게 된 거 일 한번 키워 봐.”

“이, 일을 키우다니요?”

난데없이 불려 간 홍보팀장이 떠듬떠듬 대답했다. 그러자 최태성은 되려 뭘 묻냐는 듯 답했다.

“우리 애들만 붙여 볼 게 뭐 있어. 아예 대한민국 전체에서 지원받아 보라고. 누가 이기나 보게.”

“네? 그, 그게 무슨….”

홍보팀장이 아연실색한 것과는 달리 최태성은 자신만만한 듯 보였다. 심지어는 돈 걱정은 말라며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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