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돼지목에 진주목걸이 (1)
세간에 퍼지는 소문 하나가 있었다. 일성의 어느 각성자가 S급 특성을 띄웠다더라, 플래터를 마주쳤는데 살아남았다더라 하는 작으면서도 묵직한 소문.
하지만 늘 그렇듯 뻔한 헛소리가 분명할 것이었다.
“그게 진짜면 나도 내일 사표 쓰고 던전 들어간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피식 웃고 비아냥 대기 바빴다.
“그런데 진짜면?”
“사실이면 대박이긴 한데.”
하지만 그중에는 혹시나 싶어서 조금만 더 알아보자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만에 하나, 천만에 하나라도 사실일 수도 있으니까. 김성진도 그중 하나였다.
“요즘 우리 방송사 인기 없는 거 알지? 시청자들 유튜브로 다 떠나는 마당에 가만있을 거야? 없는 이야기도 있는 걸로 만들어 와. 뭔 말인지 알아들어? 그럼 뭐해! 안 뛰고!”
처음에는 상사의 호통 소리에 어쩔 수 없이 나가긴 했는데.
“말이 되냐? S급 특성이 뉘 집 개 이름이냐고. 플래터 그건 또 뭔데. 찌라시도 아니야 이건. 그냥 개소리라고. 저널리즘이 뭔지도 모르는 양반 같으니라고. 카악 퉤!”
김성진이 생각할 때도 어이가 없었다. 근래 들어서는 S급 던전이 발견된 적도, 하다못해 국내에서는 A급 던전도 뜬 적이 없었는데 난데없이 S급 특성이 웬 말인가.
그래도 어쩌겠는가. 시키면 까야지. 나지막이 한숨을 쉰 김성진은 휴대폰에 저장된 일성의 홍보팀 직원 중 하나에게 연락을 해봤다.
“지영씨. 잘 지내시죠? 데일리컴 김성진 기잡니다. 다름이 아니라….”
말을 꺼내면서도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곧 들려올 비웃음에 김성진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죄송해요. 지금 저희가 말씀드릴 수 있는 사항이 아니네요.
그런데 일성의 반응이 이상하다. 당연히 아니라고, 피식 웃고 다음 술 약속이나 잡을 줄 알았는데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기자님. 일단 아무 보도도 내지 마시고 기다려 주세요. 죄송해요. 먼저 끊을게요.
-야! 전화 받지 말라고 했잖아! 정신 안 차려?
“지영 씨! 지…!”
허. 이것 봐라. 전화기를 놓으면서 김성진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취재밥만 10년 먹은 자신이었다.
그래서일까.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이거 특종이라는 직감이 들 때. 그럴 때는 여지없이 큰 사건이 터졌었고.
“이거. 좀 더 파 봐야겠는데.”
그런데 지금 그런 느낌이 든다. 냄새가 났다.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특종의 냄새가.
***
냄새를 맡은 건 김성진뿐만이 아니었다.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이슈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성이라면 아무라도 상관없었다.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빌려 일성의 관계자라면 일단 전화부터 걸어봤다.
“현진 씨. 술 약속 잡아야죠 우리. 못 본 지 너무 오래됐어. 언제가 좋아요. 네? 여보세요? 혀, 현진 씨!”
-….
“제가 그냥 터트려요? 그러면 좋겠냐고. 당근이라도 하나 던져줘야 가만있을 거 아니에요. 뭐라고요? 아니 그 말이 아니라….”
-…….
“제 구독자가 200만이에요. 아닌 말로 오늘 라이브 켜서 제 마음대로 나불나불대면 아무리 일성이라도 이거 감당할 수 있겠어요?”
-지금은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죄송합니다.
어르고 달래고 화내도 일성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지금은 말해줄 수 없다, 아직은 안된다, 심지어는 법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까지.
그럴수록 하이에나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들은 조금의 단서라도 있으면 지옥이라도 찾아갈 듯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이쯤 되자 각성자 협회에서도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언론이고 유튜브고 그 새끼들이 다 파헤칠 동안 나랏밥 먹는다는 자식들이 지금껏 뭐 했어? 싹 다 책상 빼 이 새끼들아!”
“죄송합니다.”
최 부장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앞에 있는 이것들을 갈아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럴수록 부하 직원들은 죽을죄를 지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고.
“죄송이고 나발이고 사실만 가져와. S급 말이야. 진짜야?”
“정황상으로는….”
순간 최 부장의 눈썹이 팍 일그러졌다.
“나 눈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알면서도 계속 그딴 식으로 대답해라. 응?”
“사, 사실입니다. 일성 쪽 직원 몇에게 들은 소스들이 모두 일치합니다.”
“뭐라고? 그게 진짜라고?”
되려 옆에 있던 직원들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최 부장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의자에 앉았다.
그가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주무른다는 것은 계속 보고하라는 뜻이었다.
“이름 이태진. 나이는 스물여섯, 현재 혼자 살고 있으며 부모는 모두 20년 전 대규모 몬스터 게이트에 사망했습니다. 일성에 들어간 지는 이제 삼 개월 됐으며….”
“잠깐만. 뭐? 세 달?”
“…그렇습니다.”
“아 진짜 환장하겠네. 일단 계속.”
“S급 특성은 지난 주말 화성 D급 던전에서 획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성 종류는 파악 중입니다만 검신의 축복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
“또한 이태진의 첫 출근일이었던 4월 11일 당시 브론즈 박스에서 A급 스킬 하나를 획득했다고….”
“듣자 듣자 하니까 진짜.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정보기관 다닌다는 새끼가 사리 분별도 못 하고 찌라시란 찌라시는 다 긁어 와서. 뭐?”
참다못한 최 부장이 옆에 있던 물건을 집어 들려던 때였다. 벌컥 문을 연 직원 하나가 사색이 된 얼굴로 최 부장에게 달려왔다.
“부, 부장님! 이거 한번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직원이 태블릿을 들이밀었다. 화면 안에는 한창 기자회견이 진행 중이었다.
“뭔데. 일성 쪽이야?”
“예. 그런데….”
그때 화면 안으로 사람 하나가 잡혔을 때는 최 부장의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다.
“최태성?”
“예. 최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성 종류가 검신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당 내용에 대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사실입니다.]
[지, 지금 그 말씀은 성요한 헌터와 동일특성이라 봐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자세한 검증은 협회에 요청해서 확인받을 예정입니다. 다음 질문받겠습니다.]
[데일리컴 김성진 기자입니다. 현재 화제가 된 일성의 각성자가 신입사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확인 가능할까요?]
[신상정보에 대해서는 일체 공개할 수 없습니다.]
그 뒤로도 몇 개의 문답이 오갔지만 더 볼 필요는 없었다. 태블릿이 꺼지자 회의실의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았다.
“부장님. 이거 아무래도….”
“그래. 한 방 먹었다. 일성이 우리한테 토스한 거지. 떡밥은 던져 놨으니 우리보고 알아서 뒤처리해라? 언제부터 협회가 이 꼬라지가 된 건지.”
최 부장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떡해. 영감님까지 직접 나왔는데 시키는 대로 해야지 별수 있나. 당장 이태진 신상정보 엠바고 때리고 무시하는 새끼들 있으면 다 조져 놔.”
그렇게 말하면서 최 부장은 겉옷과 구두를 갈아입었다.
“뭐해! 테스트기 안 챙겨? 한 놈은 나한테 붙어. 내가 직접 일성 간다. 어디 힘에 취한 병아리인지 사자 새끼인지 한번 보자고.”
얼어있던 직원들이 그제서야 부랴부랴 움직였다. 할 일이 많았다. 적어도 한 달간은 집에 갈 생각 따위 접어야 할 것이었다.
***
“환장하겠네.”
기자 회견이 끝난 지도 네 시간이 지났다. 원래도 그랬지만. 지금 회사 입구 쪽은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창문 밑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들끓었다.
내가 생각을 잘못해도 한참을 잘못했다. 특성만 얻으면 그걸로 끝인 줄 알았더니.
막상 까 보니 그 최태성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었다. 그것도 신입사원 하나 때문에.
슬쩍 휴대폰을 열었다. 예상대로 포털 사이트는 잔뜩 불을 뿜고 있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 :
1위 일성
2위 검신의 축복
3위 최태성
4위 성요한
…
….]
검색어는 이미 내 이야기로 점령된 상태였다. 티비 속 뉴스 또한 상황은 같았다.
지금도 올라오고 있는 수백 개의 기사들 역시 나를 파헤치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그중 하나를 특정해서 들어가자 천 단위의 댓글부터 보였다.
[이거 진짜임?]
└최태성이 직접 말했는데 그럼 가짜겠음?
└아는 지인이 일성 다니는데 사실이라 했음. 더 웃긴 건 저번에는 A급 스킬도 떴다던데?
└지인충 등장.
└어쨌든 사실이면 대박이긴 하네. 근데 굳이 신상정보 숨기는 이유는 뭐야?
└너 같으면 밝히겠냐? 일성이 국내에서나 1, 2등 다투지 해외 나가 봐라 상대가 되나. 아마 다른 곳은 스카웃하려고 지금 눈에 불을 켰을걸?
└신입사원이라는 말도 있던데. 여기저기서 들쑤시는 바람에 지금쯤 멘탈 박살 났을 듯ㅋㅋ
지금도 실시간으로 댓글이 주르륵 달리고 있었다. 기사 하나만 해도 이렇다.
“이제서야 큰일 났다는 게 실감 나?”
뒤쪽에서 한석훈이 다가왔다.
“표정이 왜 그래요?”
“돼지 목에 진주 박았는데 내 표정이 이럴 수밖에 없지 그럼. 어떻게 네깟놈한테 그런 게 들어갔을까 싶다. 깜냥도 없는 녀석. 무섭지? 신상 털리고 집에 누구 찾아올까 봐 막 무섭잖아.”
“뭘 무서워요. 무섭기는….”
무섭다. 개무섭다. 이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스토커는 기본이고 질투심에 눈먼 A급 헌터들이 집 앞에서 대기까다가…. 어우. 어쨌든 축하한다! 아주 연예인 다 되셨어! 이야, 나도 못 해본 걸 신입사원이 벌써.”
그러면서 악수를 건네 왔다. 갑자기 실실거리는 표정으로 바뀐 저 얼굴에 주먹을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내가 저 양반보다 강해지는 날이 한석훈의 제삿날이다.
“감정은 다 추스렸나보네?”
“추스릴 게 뭐 있다고.”
얼굴을 굳힌 한석훈이 넌지시 물어봤다.
“개뿔이. 죽상이 다 돼서 눈치 느린 김세린도 네 얼굴만 살살 보더라.”
이런. 티 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얼굴 바깥으로 드러났나 보다. 플래터에게 죽은 힐러와 레인저. 이제는 내 안에서 복수심으로 화한 그들 말이다.
[화성 D급 던전공략 도중 일성 소속 각성자 2명 사망, 1명 중상.]
짤막한 기사 한 줄이 그들을 애도하는 전부였다. 그마저도 댓글은 하나도 없었고. 화려한 헌터 세계의 이면이다. 죽은 후에는,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익숙해져라. 그게 안 되면 무뎌져라. 그딴 말랑한 감성으로는 여기서 오래 살기는 글렀어.”
“그 말 백 번째인 건 아시죠?”
“얼굴 펴. 상 받으러 가는데.”
그래. 상은 상이지.
이번이 벌써 두 번째였다. 회장실에 불려 가는 것 말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사내 역사를 통틀어도 역대급이라지? 안 봐도 내 얼굴이 얼마나 굳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리저리 눈을 굴리자 불현듯 한석훈이 뒤통수를 한 대 갈겼다.
“쫄기는. 인마. 지금은 니가 갑이야.”
“팀장님. 레벨 몇입니까?”
“이제는 협박도 하네?”
“이거 다 기억해 둘 겁니다. 나중에 알아서 하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석훈 덕분에 쿵쾅대는 심장이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다.
가슴을 펴라. 이태진. 너는 역대급 신입사원이야.
크게 숨을 들이켜고 회장실 문을 열었다. 최태성을 비롯한 간부들이 죄다 기다렸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같이 얼굴이 며칠 못 잔 듯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나는 애써 못 본 척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리 와서 앉지.”
최태성이 말했다. 이미 내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무려 최태성의 바로 옆자리.
“저번에는 A급 스킬, 이번에는 S급 특성. 자네 덕분에 요새 깜짝깜짝 놀라는 일 투성이야.”
“회장님 나이도 생각해야지, 이 친구야. 다음엔 예고라도 날리고 터트려. 하하하!”
최태성과 B급 던전 팀장 백인호의 가벼운 농담으로 장내에 잔잔한 웃음이 퍼졌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면서도 플래터에게서 도망쳐 나올 때가 떠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계약서 쓴 지 얼마나 됐다고 또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네요.”
저 멀리 앉아 있던 인사팀장이 곤란한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그 모습을 보자 문득 생각났다.
A급 스킬을 얻은 다음 날, 인사팀장이 계약서를 다시 적어야 한다며 종이를 들고 왔었다.
연봉이 두 배쯤 늘어나 있고 여러 가지 조건도 더 좋게 붙은, 아무튼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계약서였다.
“이제 와서 계약서는 종이 쪼가리일 뿐이고. 지금도 자네 때문에 회사 전체가 고민이 많아. 뭘 쥐여 줘야 여기 남을까 하는. 바라는 건 있나?”
“아뇨.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이건 진짜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언제 뭐가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했거든.
그러자 되려 최태성이 놀란 얼굴이 됐다. 진짜 없다고 말할 줄은 몰랐나 보다. 심지어는 아까보다 더 고심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이거, 회장님 장비라도 하나 주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 하나.”
한석훈이 농담조로 말했는데도 회장은 ‘진짜 그럴까?’ 하는 얼굴이다. 그쯤 되자 나도, 장내의 다른 사람들도 뜨악한 얼굴이 됐다.
진심이야?
“저…. 저는 여기에 남을 생각입니다.”
내 난데없는 충성 다짐에도 회장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길 얼마 후 곧 최태성이 이건 어떤가 하며 운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