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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9화 (9/170)

9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3)

S급 특성뿐만이 아니라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나 1팀장에 대해서는 더더욱.

구태여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정신계 각성자가 아니더라도 1팀장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당장 아카데미에서 겪었던 사건들만 떠올려 봐도. 던전 안에서는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수까지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1팀장이 나를 죽이는 것까지도. 이번 공략만큼은 아무리 준비해도 부족하다. 일단은 기본적인 것부터 챙겨야 했다.

“던전 탈출석? 그래도 불안은 한가 보지? 아까는 자신만만하더니.”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1팀장 못 미덥냐? 그놈이 그렇게 보여도 일성에서 팀장 맡고 있는 놈인데. D급 하나 공략 못 할까.”

“그래도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좋잖아요.”

“쯧. 그럴 거면 아예 간다고 하지를 말든가.”

그렇게 틱틱거리면서도 한석훈은 던전 탈출석을 구해다 줬다. 평범한 돌덩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보스몹을 잡지 않으면 탈출할 수 없는 던전 내부에서 강제로 탈출시켜주는 귀한 아이템. 목숨 하나를 번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으로.

“팀 훈련은 무슨. 시키는 거나 잘해.”

그래도 파견 나왔는데 팀원들과 호흡이라도 맞춰봐야 하지 않겠냐고 하자 1팀장이 했던 말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벌써부터 노골적으로 나를 견제할 줄은 몰랐는데.

잘못은 자기가 다 해놓고 나를 미워한다. 예상했지만 1팀장은 소인배였다.

차라리 잘됐다. 괜히 어영부영 호흡 맞춰본답시고 시간을 날리는 것보다 한석훈한테 한 대라도 더 맞는 것이 지금의 내게는 더 이로웠다.

나는 그 길로 바로 한석훈을 찾아갔다.

“먼저 맞으러 오는 놈은 또 처음이네. 이걸 끈기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정신이 나갔다고 해야 할지. 너 혹시 변태는 아니지?”

한석훈의 실없는 소리를 무시하고는 곧바로 몸을 던졌다.

캉!

“얼씨구. 다 죽은 눈 하더니, 던전 간다고 마음 고쳐먹었나 보네?”

이런, 나도 모르게 도끼눈을 뜬 모양이었다. 도끼눈이 아니라 도끼를 준비했어야 하는데. 이 사람은 레벨이 몇일까?

“좋다. 던전 가기 전까지 내가 사람 하나 만든다.”

한석훈의 의기양양한 말과 함께 시작된 훈련은, 지금까지 했던 것과 비교해도 차원이 다른 강도의 것이었다.

안 그래도 사람 잡는 거 아니냐는 말이 많았는데 이제는 진짜 숨이 넘어갈락 말락 했다. 오죽하면 당사자인 한석훈마저도.

“미…미친놈이냐? 더 하자고?”

“하, 한 번만 더요. 커헉.”

울컥 피를 쏟으며 말하자 한석훈이 기겁한다.

“난 사람 죽이기 싫다. 더 할 거면 다른 사람 알아보든가. 미친놈, 정신 차려 인마! A급 던전 가는 게 아니야. D급이라고!”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한석훈이 이제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도 독종 소리 많이 들었는데 저 오빠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었어.”

“나도. 저건 못 이긴다.”

“2팀이 원래 독종들만 살아남는 곳이기는 한데. 저 사람은 진짜네.”

옆에서 지켜보던 2팀 사람들 또한 혀를 내둘렀다. 칭찬인가 싶어 씨익 웃으며 고개를 휙 돌렸는데 다들 표정이 썩어있다.

“저 오빠. 피칠갑한 채로 웃고 있어.”

대단하다고 치켜세운다는 느낌보다는 저놈은 미친놈이니까 상종하지 말아야겠다는 얼굴이다.

“괜찮으세요?”

그 와중에 이지은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정작 그러는 이지은 또한 날 치료하느라 마나가 뭉텅 빠지는 바람에 안색이 초췌했다.

나도 양심이 있지. 더 이상 치유마법을 부탁하는 건 안 될 말이었다.

“괜찮….”

그런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지은이 내 몸에 손을 가져다 댄다. 표정을 보니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가끔 보면 한석훈보다 얘가 더 무섭단 말이야.

“크흠.”

민망함에 헛기침을 하다 미뤄뒀던 메시지 창을 열었다.

[격렬한 급성 통증을 참아 냈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이겨 냈습니다. 근력이 1 상승합니다.]

그 위로도 주르륵 스탯이 올랐다는 말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제껏 나약한 마음이 들까 애써 무시했던 메시지였다.

더불어 상태창까지도.

[이름 : 이태진.

레벨 : 51

스킬 : 아드레날린 부스트(A), 일점폭발(B), 집중(C), 초급검술(C), 도약(D),

특성 : 인내하는 자(C), 전사(C), 검술 재능(C)

체력 : 78

마력 : 70

근력 : 94

민첩 : 87]

입사 이후로 실질적인 레벨은 단 한 개도 오르지 않았지만. 스탯만 보자면 이미 70레벨에 도달했다고 봐도 됐다.

더군다나 상태창 중앙에 떡하니 박혀있는 저 A급 스킬까지 포함한다면.

아카데미 시절과는 비교하기도 민망할 만큼 다른 수준에 올라서 버렸다. 불과 두 달도 안 돼서.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더니

“흐흐흐.”

피떡이 된 상태였지만 웃음이 나왔다. 옆에 있는 이지은을 포함해 한석훈까지 정신 나간 사람 보듯 나를 쳐다봤다.

“…그래도 이 정도면 1인분은 하겠네.”

한석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꼬장꼬장한 한석훈에게 이 정도면 극찬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오늘까지도 그 얄미운 얼굴에 주먹 한 방 갈기지는 못했지만. 저 표정을 보니 이건 내가 이겼다고 봐야겠지.

***

결국 그날이 왔다. 심장이 두근댔다. 던전에 들어가는 날은 늘 긴장감이 올라왔지만 오늘은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셀 수 없을 만큼 내가 봤던 환상을 되새겼다. 아직까지도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확신은 들었다.

“오늘 확인해 보면 알겠지.”

“뭐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인상이 찌푸려졌다.

임한나.

아카데미 시절부터 성적을 두고 나와 엎치락뒤치락 지겹도록 경쟁하던 여자.

“언제 왔냐.”

이 녀석이 입사 동기라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놀랐던지. 그것도 1팀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온몸에 닭살이 돋았었다.

어쩌면 여기까지 와서 그 지겨운 라이벌 놀이를 할 뻔했잖아.

‘넌 지겹지도 않냐? 나랑 이러는 거 말이야. 해외에서 러브콜 왔다며. 왜 일성에 와? 설마 뭣도 모르는 녀석들이 말하는 라이벌이라느니 그런 거 때문은 아니지?’

‘맞는데? 재밌잖아. 너 같은 놈 하나는 있어야 나도 빠르게 성장하지. 도망치려면 쳐 봐 어디. 끝까지 따라가 줄게.’

임한나와 했던 대화를 떠올리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생긴 건 예쁘장하게 생겨서는 하는 짓을 보면 얘도 정상은 아니다.

“A급 스킬 떴다며?”

“거기까지 소문이 퍼졌나 보네.”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녀석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러면 나도 분발해야겠는데. 흠.”

“옛날의 내가 아니다. 지금 너 열 트럭 갖고 와도 나한테 상대도 안 돼.”

농담조로 말했는데 임한나가 곧이곧대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게. 조금만 기다려 봐. 금방 다시 따라잡아 줄게.”

임한나가 진지하게 말하는데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아카데미 시절에도 항상 그랬다. 내가 성장하면 그녀가 무섭도록 쫓아오고 또 내가 달아나면 귀신같이 임한나가 뒤따라왔다.

A급 스킬에, 수십 개의 스탯이 쌓인 지금도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다.

왠지 임한나라면 진짜 따라잡을 것 같거든.

“다 모였어?”

어느새 던전 입구에 도착한 1팀장의 말이었다.

“네. 다 모였습니다.”

이번 파티는 어쩐지 조촐해 보인다. 신입 두 명이 껴 있어서 그런가. 다른 팀원들도 긴장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2팀이랑 비교하면…. 그래, 거기도 비정상인 건 마찬가지지.

“3년 만이래. 1팀이 D급 던전 들어가는 거.”

임한나가 나만 들릴 만큼 작게 소곤거렸다. 어쩐지. 긴장돼 보인다 했더니.

마실 나가듯 던전에 들어가던 2팀에 비하면 그래도 이게 더 정상 같아 보이기는 하다.

그 와중에도 1팀장의 표정은 여유로워 보였다. 비열한 얼굴과는 별개로 하나같이 그 실력은 걱정하지 말라 했으니. 팀장은 팀장이라 이건가?

“이리로 와.”

1팀장이 각자 맡을 역할에 대한 브리핑을 마친 후였다.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등급 : D]

“입장.”

화악-!

1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이 빨려 들어갔다. 눈을 뜨자 어느새 던전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첫 번째 방은 역시 비어 있었다. 한석훈이 그랬던 것처럼 1팀장 또한 망설임 없이 다음 방문을 열어 재꼈다.

“케르륵!”

당장 오크 면상이 우리를 반겼다. 고민 따윈 없었다. 약속했던 대로 1팀장과 내가 놈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도약을 발동했습니다.]

[집중을 발동했습니다.]

포지션은 1팀이나 2팀이나 다를 것 없었다. 전사 둘과, 탱커, 레인저, 힐러, 마법사 하나씩.

놈들 사이로 몸을 던지자 돼지 대가리를 한 오크 녀석들의 눈이 희번뜩 빛났다.

캉!

바로 앞에 있는 오크 하나와 검을 부닥쳤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 녀석이 간을 보고 있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약한 충격에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오크의 움직임은.

캉! 캉! 캉!

혹시나 싶어 세 합을 더 겨뤄봤지만 똑같았다. 한석훈에 비하면 놈의 힘은 너무 약하고 궤적은 뻔하기 그지없었다.

놈이 더는 장난질 못 하게 마나를 담아 검을 휘둘렀을 때였다.

그대로 오크의 목이 뎅겅 날아갔다. 떨어지는 놈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어?”

그런데 당황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다. 무슨 두부 썰 듯이 이렇게 쉽게 잘려나가?

[레벨업!]

[당신의 수준에 비해서 지나치게 레벨이 낮습니다. 성장 속도가 다소 빨라집니다.]

심지어는 더 황당한 메시지가 앞에 나타난다.

“뭐해 인마, 정신 안 차, 어?”

1팀장이 내게 고성을 지르다가 대가리가 잘린 오크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징그럽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 양반이 그러면 그렇지.”

1팀장이 못 알아먹을 말을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뭘 멍하니 서 있어, 이 새끼야. 움직여!”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순간 얼빠진 얼굴을 하고 말았다. 그래, 직전의 녀석은 오크 중에서도 약한 놈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내게 다가오는 돼지 대가리를 향해 마나를 잔뜩 담아 롱소드를 내리그었다.

방심 따윈 없다. 일격 후 바로 방어태세를 취해야 한다.

[일점폭발을 발동했습니다.]

뎅겅.

뭐?

이번엔 아예 내 검을 막아낼 생각도 못 하고 머리가 떨어지고 만다.

“허.”

그제서야 깨달았다. 놈들이 약한 것이 아니다. 내가 너무 강해진 것이다.

아직 아드레날린 부스트는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오크들이 힘도 못 쓰고 나가떨어져 버렸다.

앞을 쳐다보자 역겨운 녀석 하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촤악!

더 이상의 확인은 필요 없었다. 깔끔하게 오크의 목이 날아갔다.

“다음!”

그러니까 지금은.

지금까지 당했던 고통을 돌려줄 차례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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