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1)
한석훈은 원래 우리 부서, 그러니까 8층으로 나를 데려갔다.
연무장이라 적힌 문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우릴 반긴 건 강렬한 폭발이었다.
콰앙!
김세린이 한창 마법을 뿌리고 있었고 그 앞에는 큼지막한 방패로 공격을 감당하고 있는 전용철이 보였다.
역시 프로들은 다르다 이건가. 던전 공략 바로 다음날에도 쉬지 않고 훈련한다. 물론 휴식도 전투만큼 중요하다지만.
네놈이 어제 한 게 뭐가 있다고. 이태진. 정신 차려라.
저절로 눈에 힘이 들어갔다. 때마침 우리를 발견한 김세린이 폭격을 멈추고 다가왔다.
“오셨어요?”
어제도 그랬지만. 김세린의 마법은 감탄만 나올 뿐이다. 저 정도면 못해도 나보다 레벨 스무 개는 높겠지? 뿐만 아니라 박하영과 이지은도.
그래서 이상했다. 전용철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기껏해야 2년밖에 안 됐다는데.
이 정도 성장 속도가 가능한 거야? 재능이 넘쳐나는 건가.
“너무 살벌하게 하는 거 아니야?”
내 심정을 한석훈이 대신 말했다.
“어제도 그렇고 보스몹은 팀장님 혼자 공략하잖아요. 우리도 자존심이 있지. 열심히 해야죠. 거기다가 태진 오빠도 그렇고.”
김세린은 마치 희대의 라이벌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쳐다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나는 또 왜.
“저는 구경도 못 해본 A급 스킬을 입사하자마자 얻은 게 말이 되냐고요. 안 따라 잡히려면, 아니지. 조금이라도 늦게 따라잡히려면 지금도 모자라요.”
김세린은 그 말을 끝으로 ‘흥’ 하고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옆에서는 박하영이 이미 너 정도는 따라잡았을지도 모른다며 김세린을 놀리기 바빴고.
나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A급 스킬이 뭐라고. S급이면 몰라도.
“그나저나 지은이는 어디 있어?”
“저기서 명상 중일 거예요.”
전용철이 연무장 끝에 붙어있는 방 중 하나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이 연무장도 보통은 아니었다. 바닥과 천장을 비롯한 벽은 모두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고 각종 무기를 비롯한 방어구까지도 마련돼 있었다.
중앙에 있는 대련장을 기준으로 곳곳마다 개인 수련실이라 적힌 방이 보였다.
이런 연무장이 층마다, 그러니까 팀마다 하나씩 있다는 걸 생각하면. 헌터 육성에 집중투자하는 일성이라도 큰맘 먹고 지은 것이 틀림없었다.
아카데미의 낙후된 시설만 이용하던 내 입장으로서는 입이 쩍 벌어질 따름이다.
“태진아. 너 제대로 찍혔나 본데?”
“찍혔다니요?”
어떤 게 더 있나 구경하고 있는데 전용철이 내 쪽으로 왔다.
“일성 다니는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신입사원이 A급 스킬을, 그것도 브론즈 박스에서 띄웠다고 지금 난리도 아니야. 홍보팀은 언론 타는 거 막기도 벅차다고 난리도 아니야.”
“아, 그거요.”
힘 빠진 얼굴로 안 그래도 방금까지 회장실에 있다 왔다고 말하자 전용철이 그럴 줄 알았다며 킬킬댔다.
그나저나 이제야 이해가 갔다. 아까 전 로비에서나 엘리베이터에서 왜 그리 사람들이 나를 기웃기웃 쳐다봤는지 말이다.
“진짜 소식 빠르네요.”
“원래 이 바닥에 비밀이 없어.”
그렇게 킥킥대던 전용철의 표정이 어느 순간 동정 어린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팀장님 사랑도.”
갑자기 소름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온다. 누구의 사랑?
“신고식 통과했잖아. 그것도 최초로. 여러 가지로 임팩트 있는 신입사원이야 너.”
음. 이건 좀 찔리는데. 어떻게 보면 그건 온전히 내 실력도 아니고.
“팀장님 사랑받는 거 흔치 않은 일이야. 기뻐해도 된다 너?”
말과는 달리 전용철은 답안지를 밀려 쓴 전교 1등 보듯 나를 쳐다봤다. 심지어는 어깨까지 두드리면서.
전용철이 그럴수록 나는 불안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보였던 한석훈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본 직후부터 든 기분이었다.
나는 애써 고개를 돌리며 어제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그런데 형. 우리 팀 말이에요. 특별하게 강한 거 맞죠?”
“음. 아무래도 그렇지. 이유가 궁금해?”
“네.”
“D급 이하 던전 공략팀이 세 팀 있는 건 알지? 우리는 2팀이고.”
“네.”
“그래서 그런 거야.”
“네?”
이게 무슨 수수께끼 같은 대답이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어도 전용철은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라며, 지금 알려주면 도망친다는 둥 이상한 말만 늘어놓는다.
“준비 안하고 뭐해?”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한석훈이 건들거리며 서 있었다.
“따라와.”
‘저요?’라고 물을 것도 없이 한석훈이 손가락으로 날 지목했다. 전용철이 내게 건투를 빈다며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나는 빠르게 걸어가는 한석훈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훈련하러.”
한석훈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아까 들어보니까 오늘은 개인훈련 시간이라던데요?”
“어. 근데 너는 아니야.”
“원래 신입사원 오면 이렇게 같이 훈련하고 그러는 거예요?”
“아니. 근데 너는 맞아.”
음.
이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
“들어가.”
한석훈이 개인 수련실 문을 턱짓했다. 침을 꿀꺽 삼키고 문을 열자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순간 환영마법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싶었다. 공간 안의 공안이었다.
가운데 옥타곤을 중심으로 온갖 무기들이 전시돼있다.
철저히 개인 간의 대련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지 않을까 싶은 추측이 들었다.
일성의 건물 크기를 생각해도 비정상적으로 넓은 연무장. 이름만 들어봤지 보는 건 처음이다.
SDR(Space Distortion Rim), 즉 부르는 게 값이라는 공간 왜곡 마법이 장치된 장소였다.
“검 들어.”
한석훈이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도 인벤토리에서 주섬주섬 롱소드 하나를 꺼내 들었다.
“대련입니까? 성장에 어마어마하게 도움 될 거라는 선물은요?”
“이게 선물이야. 너 같은 거랑 대련은 무슨. 덤벼. 어이없다는 그 표정은 뭐야? 걱정 마라. 네 입에서 절로 고맙다는 소리가 나오게 해 줄 테니.”
그러면서 씨익 웃는데 내게는 마치 아카데미 훈련 교관과 겹쳐 보였다.
거부권은 없겠지?
안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목을 매는 A급 스킬이란 게 대체 어느 정도인지.
어제는 다른 사람들이 너무 놀라는 바람에, 그리고 그 예지몽 때문에 억지로나마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나 또한 어안이 벙벙한 건 마찬가지였다. 내 생에 A급 스킬을 얻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몸이 근질거렸다. 오러 블레이드를 쓰는 것만 봐도 한석훈의 무력은 내 상상 이상일 것이었다.
즉, 전력을 다해도 내가 질 게 뻔하단 말이지.
가방에 든 보급용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인벤토리 안에서 롱소드를 꺼냈다.
앞을 보자 한석훈이 검을 까딱거리며 오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갑니다.”
“해 지겠다. 빨리 좀 와라.”
그와 동시에 내 몸이 튀어 나갔다.
[도약 스킬을 발동합니다.]
[집중 스킬을 발동합니다.]
[일점폭발을 사용하였습니다.]
어제까지는 이 스킬 조합이 내가 한 번에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아드레날린 부스트를 발동합니다.
효과 : 5분간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됐고. 사실 하나 더라고 말하기엔 앞의 것들이 무색해질 만큼의 효과긴 했다.
투두둑!
스킬을 사용한 직후.
체감이 될 정도로 전신의 힘이 터질 듯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아.
이거구나.
써보니 알겠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했는지. 이건 운이 좋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치트키를 쓴 기분이었다. 단전의 마나가 넘쳐흘러 빨리 자신을 배출하라고 난동을 부렸다. 말장난이 아니라 수치로 따져봐도 그랬다. 근력부터가 조금 전의 1.5배로 늘어난 수준!
이 상태로 컴베트 오크와 맞붙는다면. 놈의 대가리를 일합에 썰어놓을 자신도 있었다.
방금까지의 속도가 마치 장난이었다는 듯 순식간에 한석훈 앞으로 몸이 쏟아졌다.
“이야. 너무 무서운데?”
한석훈은 그때까지도 히죽대며 나를 비웃고 있었다.
언제까지 웃나 봅시다.
훅!
빠악!
어라? 한석훈이 내 검을 여유있게 피한 것까지는 봤는데…?
“억!”
아드레날린이고 나발이고 순간 호흡이 끊겨버렸다. 세상이 느려졌다. 아래를 쳐다보자 한석훈이 검면을 내 옆구리에 툭 갖다 댄 게 보였다.
퍽!
공격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꺽꺽대고 있는데 순간 시야가 뒤집혀 버렸다. 뭐가 어떻게 들어온 공격인지도 분간이 안 됐다. 복부의 충격이 느껴진 건 연무장 구석에 내 몸이 처박힌 후였다.
“자. 다시!”
***
한석훈과 맞붙기 전 그랬던가. 컴베트 오크와 다시 맞붙으면 일 합만에 놈을 죽일 수 있겠다고.
그래. 컴베트 오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빠악!
“컥!”
그런데 한석훈은 돼지 대가리를 달고 있는 잡몹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무리의 우두머리조차 일검에 베어내는 괴물이었다.
치트키라 불렸던 A급 스킬의 지속시간이 끝난 지는 한참 전이었고 이미 내 몸은 만신창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석훈의 검면이 어김없이 내 옆구리를 강타했다.
분명 한석훈이 검을 옆으로 눕힌 것을 확인하고 대비했지만 피할 수 없었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전방을 방어해야만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한 번 더 들어올 게 분명했으니까.
퍼억!
물론 그런 방어가 무색하게도 발차기가 가드를 뚫고 들어왔다. 어김없이 시야가 돌아가며 내 몸이 붕 떴다.
[한계치를 넘어선 피해를 견뎌냈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그, 그만….”
시야를 어지럽히는 메시지 창을 치웠다.
저것도 처음에야 좋았지. 몇 시간을 폭력에 가까운 구타를 당하니 지금은 그저 고통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벌써 끝이라고? 아니야. 더 할 수 있어. 일어서.”
한석훈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까 괴물이라고 했던 것을 취소한다. 이 인간은 악마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
개 같은.
여유롭게 웃는 얼굴에 보란 듯이 퉤 하고 침을 뱉었다. 일종의 반항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실실 웃으며 피하는 한석훈이었다.
아. 전용철이 보낸 눈빛이 이런 뜻이었구나. 진작 알려줬다면 기를 쓰고 도망쳤을 텐데.
흐릿한 정신 사이로 기억을 되감아 봤다.
그래. 처음 몇 번은 괜찮았다. 전력을 다해 맞붙었고 처참하게 깨지고 나자 속이 후련하기까지 했지.
“다시.”
슬슬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 것이 다섯 번째였다.
“다시.”
열 번째에서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어나세요. 용사님.”
스무 번을 넘기자 이제 더 이상 생각할 여유도 남지 않았다. 그저 멈추고 싶다는 본능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왜 이리 지쳤어? 어라. 벌써 세 시간이나 됐네. 잠깐만 쉴까?”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한석훈이 얄밉게 흔드는 팔이 천사의 날개처럼 보였다. 나는 바닥에 엎어져 검이고 자시고 죄다 내팽개쳤다.
아아. 아카데미 교관은 한석훈에 비하면 천사였구나. 이 빌어먹을 SDR은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 체력도 마나도 금방 차오른다.
평소라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지금 내게 빠른 회복은 저주나 다름없었다. 한석훈에게 처맞는 사이클만 더 빨라지는 것뿐이니까.
잠시만. 그나저나 세 시간 만에 스탯 몇 개가 오른 거지?
치웠던 메시지 창을 다시 띄웠다. 체력 스탯 두 개와 근력 하나.
레벨 하나가 오를 때 스탯 포인트 다섯 개가 주어지는 걸 생각하면 사실 엄청난 수확이긴 했다.
팩트만 말하자면 한석훈에게 감사해야 할 정도로. 물론 내 꼴을 감상하며 낄낄대는 저 자에게는 추호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일어나.”
헐떡이는 숨도 조금씩 가라앉고 마나도 조금 찼을 때. 그러니까 조금 살만해지려고 하자 기가 막히게 내 상태를 눈치챈 한석훈이 매정하게 말했다.
“레벨 업 포인트 말고는 따로 올릴 생각도 안 했지?”
“동 레벨 대보다 높은 스탯은 안 보이십니까?”
나도 모르게 거칠게 말이 나갔다. 지금은 저 얼굴에 주먹 한 방만 갈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브론즈 박스에서 스탯 몇 개 뜬 거 가지고 무슨. 남들보다 레벨 업 속도 좀 빠르다고 자만했던 게야.”
사실이어서 할 말은 없었다.
“그 썩어빠진 정신머리 내가 싹 고쳐주마. 어때. 고맙지.”
전혀 고맙지가 않다.
“뭐해, 덤벼. 아까처럼.”
“끄응.”
덤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레벨 오르는 속도가 빨라서 다른 부분으로는 신경 안 쓰긴 했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무식한 방법은 알아도 안 쓴다.
그나저나 프로필만 보고도 그런 게 유추가 가능해? 볼수록 소름 돋네 저 사람.
“안 와? 내가 간다?”
이를 악물었다. 이쯤 되니 나도 오기가 생긴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보자.
독기 그득한 얼굴로 꾸역꾸역 일어나 검을 들었을 때였다. 눈앞이 캄캄해진 건 그때였다.
아. 예지몽? 아니, 자는 중은 아니니까 뭐라고 해야 하지. 예지력? 아무튼. 미래를 보는 그 능력이 또 찾아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