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미래를 본다-6화 (6/170)

6화 이 친구가 그 친구

우웅-! 우우웅-!

시끄러운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했다. 7시 30분.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숙취를 모두 마나로 몰아내자 몸이 가벼워졌다.

씻고 나왔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이상하게 찝찝하다 했는데, 역시나였다.

[한석훈 팀장님]

순간 심장이 덜컹거렸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하고.

오늘 쉬는 날 아닌가?

던전 공략을 완수하면 팀장을 포함한 팀원들은 모두 하루의 휴식 기간을 가진다.

이건 근로계약서에도 적혀 있는 내용이다. 법적으로도 그렇게 돼 있다는 말이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조심스레 잠금화면을 밀었다.

“여…여보세요?”

-일어났어?

뭐?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닭살이 돋을 만큼 너무 다정한 톤.

어제랑 달라도 너무 다른 태도에 내가 아직도 꿈을 꾸는 건지 헷갈렸다.

“네? 어. 네. 일어났습니다.”

-바빠?

“아뇨. 바쁘진 않은데 뭐 때문에 그러시는 건지….”

-아 다행이네. 안 바쁘면 지금 회사 좀 와야겠다.

“회사요?”

-어. 회사. 본사 위치 어딘지 알지? 지금 좀 급하니까 최대한 빨리 오는 게 좋을 것 같다. 줄 것도 있고. 그럼 끊는다.

“아니, 팀장님. 잠시만요. 무슨 일인….”

툭.

말을 채 끝내지도 못했는데 그대로 전화가 끊겼다. 뭐 이런 경우도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몸은 또 곧잘 움직였다.

그래, 나는 신입사원이다. 까라면 까야지. 더군다나 한석훈이 아주 거창하게 설명한 선물도 확인해 볼 겸.

얼른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었다.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정장이 아니라 청바지와 면 티셔츠, 그리고 여분의 추리닝을 가지고 가는 것 정도.

차를 타고 종로구에 위치한 일성의 본사까지 올 동안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혹시 오늘은 또 무슨 일이 터지지는 않나 싶어서.

다행히 주차를 마치고 건물 앞에 섰을 때도 휴대폰은 고요했다.

“후. 드디어!”

고층 빌딩 중에서도 유난히 높은 이 건물이 바로 일성의 본사였다.

원래라면 어제 왔어야 할 이곳을 멀리도 돌아왔다.

문득 어제 한 개고생을 생각하자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이 사원증. 비록 일성에 대한 환상이 부서졌다 하더라도 말이다. 아직은 감이 안 오는 A급 스킬보다는 손에 쥔 일성의 사원증이 주는 흥분이 내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로비를 지나며 사원증을 ‘띡’ 찍은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울컥할 뻔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영 묘했다. 마치 신기한 동물이라도 보듯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크흠.”

이 사람들 왜 이래. 신입사원 처음 보나. 생각해보니 내가 조금 과하게 감동했던 것 같기도 하고. 면도는 제대로 했는데.

최대한 태연한 척 엘리베이터에 탔다. 제법 연차가 쌓인 직원스럽게 말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8층이 우리 부서가 있는 곳이다.

어라. 그런데 이상하다.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내 사원증과 얼굴을 따라왔다.

아니 울컥한 표정 좀 보인 게 그리도 신기할 일인가?

특히 저 남자. 내가 엘리베이터에 탈 때부터 휘둥그레져서는 아예 대놓고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맞나?’라며 혼잣말까지 하면서.

“혹시 이태진 씨 맞으세요?”

마치 참다 참다 묻는 것처럼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네? 아, 네.”

“어제 입사하신 거 맞으시고요?”

“네? 그걸 어떻게…. 네. 맞는데요.”

뭐야?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아닌데.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내 떨떠름한 대답에도 남자는 옆의 무리와 ‘거봐 맞잖아.’, ‘와. 이 사람이 그 사람이야?’ 같은 의미심장한 대화만 나눌 뿐이었다.

“앞으로 자주 봐요!”

심지어는 싱긋 웃으며 저렇게 말한다. 도대체 뭔데. 정작 궁금한 건 대답도 못 들었는데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8층에 도착했다.

나는 등 떠밀 듯 내릴 수밖에 없었다. 별일이 다 있다 싶었는데 때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오고 있냐? 23층으로 와라.

한석훈에게 온 메시지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거긴 또 어딘데.

-도망친 건 아니지?

내가 답이 없자 한석훈이 독촉하듯 메시지를 마구 보냈다.

“갑니다. 가요.”

회사원이 다 그런 거지 뭐. 까라면 까자 이태진. 지금 올라가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고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하이. 왔네?”

23층에 내리자마자 한석훈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앞으로 편하게 입고 출근하라고 했으면서 정작 한석훈은 정장 차림이었다.

적잖이 당황스러운데 오히려 한석훈이 어어, 하며 깜짝 놀란다.

“아. 내가 말을 안 했구나. 괜찮아. 회장님도 이해해 주실 거야.”

회장님?

갑자기 웬 회장님?

“누가 이해를 한다고요?”

“너 보고 싶다고 데려 오라셔. 들어가자.”

“자, 잠깐만요. 왜요? 그리고 이대로 만나라고요? 회장님을요?”

23층으로 올라오라고 했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는데. 건물의 꼭대기 층에 누가 있겠는가.

주위에서 보내는 시선을 신경 쓰느라 생각을 놓쳐버렸다.

그나저나 회장님이 나를 왜?

짐작 가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A급 스킬. 하기야, 무려 A급 스킬이기는 하다. 어떤 각성자는 평생 구경도 못 해 보는 등급의 것이니까.

“에이. 뭐 어때. 추리닝 아닌 게 어디야. 형만 믿어 인마.”

머릿속이 이리저리 꼬여 복잡해 죽겠는데 한석훈이 복장 터질 소리를 해댔다.

이 인간 미친 거 아닐까.

지금 집에 갔다 오면 얼마나 걸리지? 차에 정장 안 들고 왔나?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데 한석훈이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그 무지막지한 힘에 차마 저항할 생각도 못 하고 질질 끌려갔고.

일성의 회장님을 이렇게 빨리 볼 줄은 몰랐다. 머릿속으로 온갖 시뮬레이션을 그려보고 있는데 회장실의 문을 보자마자 생각들이 날아갔다.

번쩍번쩍한 황금으로 빛나는 문에는 온갖 마법진들이 그려져 있는데, 무슨 마법인지는 몰라도 척 보기에도 위험해 보인다.

한석훈이 쫄지 말라며 등을 두드리더니 문을 열었다.

“오. 왔네.”

“저 친구야?”

널찍한 방 중간 쇼파에 이미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면접 때 봤던 사람도 있고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거나 회사의 간부들이 분명해 보이는 사람들. 뭔가 면접을 다시 보는 기분이다. 그것도 청바지에 면티 차림으로.

그리고 상석에 앉은 저 사람. 저 남자가 일성의 회장 최태성이다.

50대의 나이에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각성자 기업을 세운 사람이자 한국의 영웅. 나 같은 젊은 각성자들의 롤모델.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 무의식중에 최태성을 쳐다봤는데 그때 최태성과 내 눈이 마주쳤다.

흡!

순간 짧게 숨을 들이켰다. 오싹함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최태성이 기운을 내뿜은 것도 아닌데 끝을 모르는 심연 속으로 전신이 빨려 들어가는 듯 아찔한 감각이었다.

그런데도 신입의 패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장내의 인사들에게 고개를 숙인 후였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이태진입니다.”

신기하다. 떨리는 내 마음과 달리 목소리 또한 차분히 나간다.

“이리 와서 앉지.”

최태성이 나긋하게 말했다. 다행히 분위기는 좋아 보였다. 어찌된 게 다리가 저절로 움직였다.

저 멀리 거울 속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 내가 보였다. 타들어 가는 속과는 달리 거울 안의 나는 이런 자리가 매우 익숙해 보였다.

누군가 내 배를 열어보면 잔뜩 부은 간덩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빈 곳에 가서 앉자 그제야 사람들의 복장이 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장을 입고 있었다.

굳이 변명하기도 뭐한지라 가만히 있었는데 딱히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다.

“자네도 놀랐겠어. 입사 첫날부터 던전에 들어가고. 이거, 내 욕 좀 했겠는데? 내가 미안하네.”

“아닙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최태성이 인자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장내에 가벼운 웃음이 떠다녔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는데 한석훈이 옆에서 킬킬대며 나 대신 입을 열었다.

“아무렴요. 출근 첫날에 던전 들어갈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요. 안 그래 1팀장?”

한석훈에게 1팀장이라 불린 남자는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는데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아, 그. 죄송합니다. E, F급 던전으로 착각하고 경솔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렇다고 갓 들어온 신입사원을 거기에 내던져? 거기다가 우리 팀만 D급 던전 들어가는 거. 공공연한 사실 아니었던가?”

“그건….”

한석훈은 실실 웃으며 말하는데 나까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조금 통쾌한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사내정치인지 뭔지 하는 건가?

우물쭈물할 말을 찾다 결국 입을 다문 1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해갔다.

주먹도 꽉 쥔 게 굉장히 모멸감을 느낀 것처럼 보였다.

자기 밑으로 들어온 신입사원을 필요 없다고 D급 던전에 버린 인간. 물론 인사과를 통했다지만, 신입이 던전에 들어가게 된 데에는 어떤 압력이 있었을 게 뻔했다.

원래라면 내 상관이 됐어야 할 사람을 이렇게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데 1팀장이 나를 보는 시선이 묘했다.

워낙 짧은 순간이라 나밖에 못 본 것 같은데 뭐랄까. 원망 같은 게 스친 것 같단 말이지. 아니 화가 나면 내가 났지 자기가 뭔데?

“뭘 또 말을 그렇게 해요? 자자 그만하고, 우리 신입사원 소감 한번 들어보자. 브론즈 박스에서 A급 띄운 소감 말이야. 사내에 소문 다 났어 이 친구야. 촉이 좋다며?”

회장의 오른편에 앉은 사람이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면접 당시 B급 던전 팀장이라고 했었지 아마. 그나저나 뭐라고?

한석훈을 바라보니 나를 보고 윙크한다. 도대체 한석훈이 이 사람들에게 어제의 일을 어떻게 전달한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듣기로는 실버 박스를 마다하고 브론즈 박스를 골랐다고?”

“촉이 좋다고 자기만 믿으라고 했다던데요?”

최태성 회장까지 합세해서 재밌다는 듯 허리를 앞으로 숙이며 대답을 종용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직감이 좋은 편인데 그날따라….”

어떻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뭔가 주절주절 지껄이긴 했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직감이니 뭐니 혓바닥이 마음대로 나불대고 있었다.

그렇다고 꿈에서 봤어요 할 순 없잖아. 상태창에도 없는 스킬을 내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한동안 이어진 내 횡설수설이 끝났다. 박장대소를 예상하고 사람들을 쳐다봤는데 의외로 최태성과 B급 던전 팀장은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감은 헌터한테 아주 중요한 부분이지.”

“덕분에 죽을 위기에서도 살아난 경험도 많지 않습니까.”

심지어는 회장실에 있는 다른 간부들까지도 모두 공감한다는 듯 수긍하는 중이었다.

이걸 믿어?

“간만에 재미있는 친구가 들어왔어. 그래, 그건 그렇고, 생각해 둔 건 있나?”

“새, 생각이요?”

무슨 생각?

“이 친구야. A급 스킬을 들고 왔는데 그냥 어물쩍 넘어갈 줄 알았어?”

B급 던전 팀장이 내게 뭘 되묻냐는 듯 오히려 추궁해 왔다. 그럴수록 나는 뭐가 뭔지 상황 파악이 안 되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표정 관리가 안 됐나 보다. 영문을 모르는 어린아이 보듯 갑자기 장 내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보기보다 순진한 친구네, 이거.”

심지어는 한석훈까지도 나를 놀리는 데 동참하듯 킬킬거리며 가세해 왔다.

“제, 제가 뭐라도 제출해야 하나요?”

A급 스킬을 띄웠으니 회사에 돈이라도 내야 하는 건가 싶어서 물었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웃음이 더 커졌다. 아예 배까지 잡고 웃는 사람도 있다.

그제서야 나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뭐라도 제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뭘 받아야 되는 상황이구나.

워낙 갑작스럽게 회장실까지 불려오는 바람에 정신줄을 놓은 것이다. 그러니 지금같이 상황 파악 못 하는 말까지 하는 것이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당장 숨고 싶었는데 또 흐뭇한 시선들을 보자하니 그러진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하고.

“회장님. 다른 회사에 이 친구 뺏길 걱정은 없겠는데요.”

“그래. 내가 자네한테 사과해야겠어. 이제 막 들어온 사람한테 괜한 오해하게 만들고 말이야.”

최태성 회장과 B급 팀장은 세상 물정 모르는 신입사원을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싶어서 안달 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사팀장한테는 내가 따로 말해 두지. 아무래도 계약서는 다시 써야 할 듯하니까 말이야.”

“아….”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침만 꼴깍 삼켰다.

“어쨌든 다시 한번 축하해. 브론즈 박스에서 A급이 뜬 건 나도 처음 보는 일이야. 그 직감 잘 간직하게.”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말을 끝으로 회장실에는 B급 던전 팀장과 나를 버렸던 1팀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축객령이 떨어졌다.

문을 닫기 직전 잔뜩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1팀장이 보였다.

“쌤통이다.”

한석훈이 그렇게 말했다. 동감이다. 마음 같아서는 된통 혼났으면 좋겠다. A급 스킬도 얻은 판에 심보가 못된 거 아니냐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우리도 이제 가자.”

‘어디로요?’ 하고 고개를 돌리니까 한석훈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던전 앞에서 약속했던 선물 받아야지.”

한석훈이 씩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걸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