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개꿈은…이루어진다. (2)
“네? 왜요?”
그때만큼은 말이 거칠게 튀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태도에 한석훈이 ‘이자식 봐라’ 하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말했잖아. 우리 팀에 티오가 생긴 상황이라서 들어오게 됐다고.”
한석훈이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어깨를 으쓱하며 ‘낸들 알겠냐’ 는 말과 함께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게 무슨….”
“원래 우리 팀에 있던 놈, 아니지. 개잡놈 하나가 있었는데 튀었어. 그것도 오늘 아침에. 던전 들어가기 싫대. 물론 그 멍청한 자식은 던전 대신 법무팀과 사이좋게 커피 한잔하기로 되어 있고.”
이건 또 무슨 말이야.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온 탓일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쩌겠냐. 인원수 미달 되면 불법인데. 사람 수는 맞춰야지.”
아까까지만 해도 남자, 그러니까 한석훈의 얼굴에 가득하던 짜증은 어디 가고 지금은 재밌다는 듯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있다.
순간 저 얼굴에 한 방 갈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아 있었다.
“왜 너냐고? 일성이 무슨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없냐고?”
그래. 내가 궁금한 게 그거다. 무슨 신입사원을 첫날부터 던전에 들여보내는 회사가 어디 있냐고.
“있지. 너 말고. 그것도 많지. 그런데 너로 결정됐어.”
“그러니까 왜 저인 겁니까?”
잔뜩 날 서 있는 말투였지만 한석훈은 오히려 그런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스읍. 입사 첫날부터 팀장한테 버려진 놈이 불쌍해서. 내가 특별히 넓은 아량을 베풀었다고 해야 하나 이걸.”
“그건 또 무슨….”
내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자 한석훈이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1팀장이 그러더라…? 너 필요 없다고. 그래서 냉큼 내가 주워왔지.”
“자, 잠시만요. 자세하게 설명 좀….”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는 듯 한석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떤 그림이 그려지기는 한다. 다만 머릿속에서 이해가 안 갈 뿐. 혹시 취업 사기라도 당한 건 아닐까?
일성이 이렇게 일처리가 서투를 리 없잖아?
차라리 취업 사기인 편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그런 내 기대는 때마침 울린 휴대폰 벨소리에 의해 무참히 깨져버렸다. 화면에는 인사팀장이라 적혀 있다.
“여보세요?”
-태, 태진 씨. 혹시 한 팀장 만났어요?
면접 당시와는 달리 인사팀장의 목소리는 난감함과 미안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때 직감했다. 아, 이거 현실이구나 하고.
-이런 미친 새끼들. 하아. 미치겠네, 진짜. 안 되겠다. 이럴 게 아니라 당장 거기에서 나와요. 한 팀장한테는 내가 따로 전….
그때 한석훈이 내 휴대폰을 슥 낚아챘다.
“아이, 뭘 또 그렇게 복잡하게 일 처리 해요. 그냥 대충하면 되지. …뭐? 징계? 아, 몰라. 나는 김찬현 그 새끼가 하자는 대로 했어요. 끊습니다.”
한석훈이 그대로 전화를 툭 끊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난처한 듯 나를 보고 웃는다.
“잠깐만! 내가 설명해줄게. 스톱…!”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는 나를 보고 한석훈이 고개를 저으며 손을 휘저었다.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겠다.
첫째. 2팀장 한석훈의 팀원, 그러니까 개잡놈이 던전 공략 당일 잠수를 탔다.
둘째. 내가 배정되기로 했던, 이름도 모르는 1팀장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날 여기다 버렸다.
셋째. 회사 차원에서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넷째. 빨리 도망쳐야 한다. 이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에게서.
“집에 놔두고 온 게 있어서요.”
무려 일성의 팀장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나보다 몇 직급이나 위겠지. 더불어 사이코패스처럼 보이는 놈이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앞으로의 창창한 사회생활을 위해 최대한 이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기다려 봐 친구야…! 잠시만!”
내 그런 기색을 읽은 걸까. 갑자기 한석훈 팀장이 당황한 기색으로 다 설명할 수 있다며 두 손을 모았다.
갑자기 갑을이 역전된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긴 한데. 내 마음은 변함없었다.
지금이라도 일성 본사로 가서 OJT를 받고 정상적인 팀을 배정받아야 했다.
“좋아. 오케이! 인정할게. 사과도 하마! 내가 조금 마음이 급했어.”
한석훈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이건 어때. 내가 선물 하나 줄게. 이래도 생각 없냐?”
내 발이 멈칫했다.
“…어떤?”
일성의 팀장이라면 고등급 아이템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선물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헌터였나 보다.
“크흠. 그건 대외비라. 다만, 네 능력을 대폭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는 건 확신한다.”
한석훈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까지는 볼 수 없었던 진지한 눈빛도 더해졌다. 이쯤 되니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 그랬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팀장부터가 나를 필요 없다고 다른 팀에 버린 상황에서. 내 발로 다시 그 팀으로 기어들어 가는 건 너무 추했다.
차라리 나를 원하는 곳에서 새 출발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입사 첫날부터 던전에 들어갔다는 경력은 커리어 측면에서도 흥미롭게 들리기도 하고.
거기에 내 능력을 대폭 올릴 수 있는 보상까지 얻을 수 있다면.
고민은 길어도 결정은 빨랐다.
***
“그런데 옷은 그거뿐이냐? 다른 거 없어?”
한석훈이 척 보기에도 불편해 보이는 정장을 두고 말했다.
“가방에 추리닝 있습니다.”
만에 하나, 천만의 하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까 봐 들고 온 것이다.
물론 그 상황도 대련 정도를 상정했었지만. 늘 그랬듯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고. 젠장.
“보기보다 준비성은 좋네.”
저 사람, 사람 신경 긁는 데 뭐가 있는 거 같다.
“아,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비틀(Beetle: 정찰기)을 따라가며 내 프로필을 살펴보던 한석훈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불편하게 말했던 거구나.
“네.”
짧고 딱딱하게 대답했는데도 한석훈은 그런 것쯤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듯했다.
“이론은 좀 별로여도 실전은 탑티어였네? 몸으로 때우는 스타일?”
뭐라 반박하고 싶은데 사실이라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몬스터의 특성이라거나 약점 같은 건 책으로만 봐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몸으로 직접 겪어봐야 뭐가 뭔지 알 수 있었으니 아카데미에서도 고생깨나 했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놈’ 정도가 되겠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앞으로 이 인간의 팀원으로 들어가게 됐으니까. 저런 박하고 직설적인 평가에도 잘 보여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래도 실전에는 자신 있습니다.”
한석훈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정작 한석훈은 뭐가 재밌는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지만.
“그래. 어디 두고 보자.”
“방금 제안하신 보상 조항이나 잘 지켜주십시오.”
그렇게 산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을 때였다. 네댓 명의 인영이 보였다. 그중 젊은 여자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팀장님! 이제 오시면 어떡해요! 어? 그런데 옆에 있는 분은 누구…?”
“신입.”
“…네?”
“그 개잡놈 대신에 오늘부터 우리 팀 신입으로 들어왔어.”
“하. 또요?”
또?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여자가 씁쓸하게 웃었다. 이쯤 되자 나도 일성에 대한 환상이 점점 깨져 간다.
“설명하자면 길다. 일단…이태진 맞지? 옷은 저쪽 가서 갈아입고. 자, 이거부터 받아라.”
한석훈이 내게 플레이트 아머와 부츠를 넘겨줬다. 겉잡아서 무거울 줄 알고 근육을 긴장시킨 채 받았는데 생각보다 엄청 가볍다.
심지어는 착용을 마치자마자 갑옷이 저절로 줄어들고 늘어나면서 몸에 착 감겨왔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런 걸 보면 일성은 일성인데 말이지. 신입사원 보급품에도 자율 규격 마법이 인첸트되어 있다니.
가슴팍 쪽에 있는 일성마크가 형형히 빛났다. 부츠까지 신고 무리 쪽으로 다가가자 이미 상황설명은 끝난 것 같았다.
“아…. 그 사람 좀 이상하긴 했어. 헌터 치고 너무 겁이 많았잖아.”
“니가 미친 원숭이마냥 여기저기 마법을 난사해대는데 겁을 안 먹는 게 이상하지.”
“뭐라고? 어머, 얘 좀 봐.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내가 그때 그 사람 구해준 거야. 나 아니었으면 그 사람 다쳤을걸?”
“내 기억엔 네 마법에 죽을 뻔했던 것 같은데.”
아까 우리를 마중 나온 여자와 등에 활을 맨 여자였다. 진짜 싸우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아니, 싸운다기보다는 활을 맨 여자가 일방적으로 놀려먹는다고 해야 하나.
내 짐작이 맞는지 말문이 막혀 입술을 달싹이던 여자가 한석훈을 바라봤다. 마치 구해달라는 듯이 말이다.
“자자! 그만하고. 여기는 오늘부터 우리랑 같이 일하게 된 신입사원이다. 이름은 이태진이고. 소드마스터 되시겠다.”
“네?”
이건 또 무슨. 내가 언제?
실전에 자신 있다는 말을 저렇게나 와전해 버렸다.
이거 비꼬는 거지?
더 이상 이 사람에게 휘말려서는 안 되겠다 싶어 못 들은 척하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이태진입니다.”
“소드마스터라고요? 우와.”
앞에 있는 여자가 한 점 의심 없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은 심정이다.
“방금 철딱서니 없이 소리 지른 이 여자애는 김세린이고 포지션은 원거리 딜러. 뭐, 지금 들어도 머리에 안 들어올 것 같긴 한데 일단 듣기만 해.”
이 고딩 같은 애가 원거리 딜러라고?
보통 마법사로 불리는 원거리 딜러는 수도 별로 없지만 키우기는 더 힘든 포지션이었다.
성장 속도는 다른 포지션보다 느린데 일정 수준 전까지는 팀에 쓸모도 없다.
저레벨 마법사는 경험치만 뺏어 먹는 쓰레기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어쨌거나 일성에 들어온 마법사라면 보기보다 끈기와 노력은 물론이고 재능도 상당하다는 뜻.
헤실헤실 웃기만 하는 이 여자애가 다시 보였다. 팀장의 설명이 계속됐다.
2m는 넘어 보이는 키에 자기 덩치만 한 방패를 든 것과는 상반되게도 어수룩하게 웃고 있는 남자 전용철은 팀의 탱커 역할을,
방금까지 투닥거리며 김세린을 놀리던 박하영은 레인저를, 깍듯하게 90도로 인사를 하는 힐러 이지은까지.
“그리고 나도 너랑 같은 근거리 딜러. 잘 부탁한다.”
한석훈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소개를 마무리했을 때. 내 신경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한석훈 팀장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니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느꼈던 이 찜찜한 기분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이제야 알겠다. 이 사람들. 출근 직전에 꿨던 꿈에 나왔던 사람들이다. 한석훈뿐만이 아니다. 마법사, 탱커, 힐러, 레인저 모두 다.
헷갈리는 거 아니냐고? 내기를 하라면 오른팔도 걸 수 있다. 내 눈썰미는 헌터 아카데미 레인저 교관도 인정했기 때문이다.
얼굴부터 해서 표정과 목소리, 심지어는 복장까지도 그 더러운 꿈과 정확히 매칭이 된다.
뭐지? 이걸 우연이라고 할 수 있나?
전에 한번 이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나 싶어 기억을 돌이켜 봤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난생처음 보는 사람인데 낯익은 느낌은 또 처음이었다.
허, 참. 별일이 다 있네.
아직까지도 던전 때문에 내 표정이 이런 줄 아는 한석훈 팀장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세한 얘기는 끝나고 소주 한잔하면서 듣기로 하고 일단 일부터 하자.”
“아 팀장님! 소고기 좀 먹어요. 돼지로는 힘이 안 난다고요.”
“너 인마. 양심이란 게 있어야지. 저번에 회식비 얼마 나온 줄 알아?”
“신입 오빠도 왔는데 크게 좀 씁시다. 예? 어차피 법카잖아요!”
던전 들어가는 걸 어디 마실 나가는 것처럼 팀장과 김세린이 실없는 소리를 해댔다.
더 어처구니없는 점은 다른 사람들은 이미 이런 대화가 익숙한지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이 팀 분위기. 아까부터 종잡을 수가 없었다. 던전 들어가기 전이라면 원래 잔뜩 심각하고 날 서 있고 그런 거 아니었어?
복잡한데 찜찜하고 불안한 마음까지 떠안은 채로 걷다 보니 던전 입구였다.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래. 이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지.
머리를 털었다. 잡생각은 집어넣고 당장 들이닥친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자.
던전 입구는 이미 바리케이드와 노란색 줄이 덕지덕지 붙어져 있었다. 그것만 제외하면 평범한 동굴 입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일반인은 이곳에 들어갈 수 없다. 오로지 각성자로 선택된 자들만이.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등급 : D]
이런 메시지가 뜬다. 잠깐만. 던전 등급이 뭐라고?
“입장.”
“이런 미…!”
한석훈의 말과 동시에. 내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입구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화악-!
의사와는 상관없이 몸이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