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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미래를 본다-1화 (1/170)

1화 개꿈은…이루어진다. (1)

어두운 동굴과 간간이 벽에 붙은 호롱불이 눈에 들어왔다.

생뚱맞았다. 내일이 첫 출근이라는 긴장과 설렘에 잠들지 못해 뒤척이던 게 조금 전이었다.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시간을 확인할 겸 스마트폰을 켰을 때가 여섯 시 삼십 분이었고.

잠시 눈만 붙이자 생각하며 스마트 폰을 내려놓는 장면까지가 직전의 기억이었는데.

동굴과 호롱불이라니?

꿈을 꾸는 게 분명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자각몽 같은 건가? 느껴지는 감각조차 생생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던전의 습도, 알 수 없는 생물들이 남긴 분변의 흔적들.

눈앞을 어지럽히는 날벌레들과 걸음마다 밟히는 원시 갑각충들이 죽어가며 내는 소리가 너무 현실적이었다. 내게는 더없이 익숙한 공간.

던전?

촤악-!

그때 정면의 낯선 남자가 오크 목에 칼을 박아 넣는 게 보였다.

귀찮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와는 상반되게도, 고통 속에 쓰러지는 오크의 표정이 생생하다.

시야가 돌아갔다.

다른 쪽 또한 치열한 전투가 한창이었다. 이리저리 활을 쏘고 있는 레인저부터 주문을 읊고 있는 마법사와 바로 옆의 힐러.

그 앞에서 커다란 방패를 든 탱커까지, 본격적인 파티라고 해도 손색없는 구성이었다.

그나저나 멀뚱히 서 있는 나를 포함해 이 사람들, 하나같이 같은 문양의 갑옷을 착용하고 있다.

익숙한 문양. 사자 한 마리가 별을 집어삼키려는 그림이면….

일성?

왜 바로 알아보지 못했을까. 아카데미 시절부터 고대해 마지않던 회사이자 오늘부터 내가 다닐 곳이 저곳인데.

희한한 꿈이 다 있네. 취업한다고 내가 너무 신경을 많이 썼나.

상념에 잠긴 채 꿈을 지켜보는 와중이었다. 어느새 오크 한 부대가 무참히 전멸했다. 아, 한 녀석만 남겨두고.

귀찮은 표정 한가득 오크 부대를 괴멸시키던 이 무시무시한 남자가 내게 말했다.

“신입아. 솜씨 한번 볼까?”

남자가 앞에 있는 오크 녀석에게 검으로 까딱거렸다.

녀석도 제 처지를 아는지 콧김을 뿜으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왔다.

“네. 팀장님!”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잔뜩 힘을 줬던 그대로 롱소드를 뽑아 놈에게 몸을 날렸다.

다만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아까부터 고개를 돌리거나 검을 뽑아보려고 애썼지만 눈꺼풀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전해져 오는 감각만큼은 현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손에 착 감길 만큼 익숙한 롱소드부터 발도술과 지금 튀어나오는 스킬까지. 완벽하게 나였다.

캉-!

“어?”

처음 녀석과 내 검이 부딪쳤을 때,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아카데미에서 겪어봤던 동종의 그것들과는 격이 다른 힘이 느껴졌다.

뭐야, 오크 맞아?

아마 꿈속의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느껴졌다.

쉐엑-!

자신 있게 뛰쳐나갔지만 섬뜩한 놈의 칼질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자신감을 얻었을까. 놈은 비웃듯 자세를 잡더니 연거푸 공격을 쏟았다.

캉! 캉!

놈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나는 속절없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두근 두근!

전투 중 긴장은 좋은 것이다. 이 긴장감이야말로 죽을 고비에서도 살아남게 해 주는 S급 특성이지 않은가.

다만 그것도 적당할 때의 이야기다. 지금의 이 불규칙한 호흡과 덜덜 떨리고 있는 다리는 마치.

두려워하고 있어?

송곳니. 초록색 표면을 굴러내리는 땀방울. 숨을 내뱉을 때마다 느껴지는 심한 악취까지.

꿈속의 나는 내가 애송이라 깔봤었던 아카데미 1년 차의 녀석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몬스터를 상대로 두려워하다니. 가당치도 않다. 이래서는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놈의 힘이 내 예상보다 훨씬 강했지만. 침착하게 상대한다면 또 못 이길 상대는 아니었다. 아무리 현실이 아니라지만.

이 병신아! 정신 차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오히려 분노로 가득찼던 오크의 표정이, 싸움이 시작된 뒤로는 다 잡은 사냥감을 보는 듯 여유만만해졌다.

이 새끼가?

카앙!

얼씨구. 놈의 공격에 검까지 놓치고 말았다. 다시 생각해보자. 이 자식 진짜 나 맞아?

하지만 이 초록 돼지는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웃음기 만연한 돼지 자식의 공격에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은 그때.

“꾸에엑!”

돼지 멱따는 소리에 눈을 떴다. 공중으로 날아가는 돼지 대가리가 보인다.

옆에는 내가 팀장이라 부르던 인간 오우거 같던 남자가 초록 피 묻은 칼을 든 채 서 있다.

“허억! 허억!”

죽을 뻔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괜찮냐?”

내가 팀장이라 부르던 인간이 내 어깨를 잡고 무심하게 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치솟았던 아드레날린 덕분에 덜덜 떨렸던 손이 멈췄다. 그리고 그제서야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다.

“처음엔 다 그런 거지. 내가 괜한 걸 시켰네. 오늘은 뒤에서 지켜만 보는 걸로 하자!”

걱정하는 투와 달리 팀장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큰 기대는 안 했어’라는 말과 함께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손바닥 안으로 손톱이 들어갈 만큼 주먹이 꽉 쥐어졌다. 기세 좋게 달려나갔던 내 자존심이 무참하게 쓰러지는 순간이었다.

…팟!

***

눈이 떠졌다. 어지러웠다. 눈을 떠도 이곳이 현실인지 아직 꿈속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우우웅-! 우우웅-!

숨을 몰아쉬고 있는 와중에 스마트폰이 울렸다. 알람 소리였다.

음습한 던전은 사라지고 내 몸은 자취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젠장. 꿈을 꿔도 뭐 이런 개꿈을.

시끄럽게 울어대는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했다.

일곱 시 삼십 분.

등이 축축했다. 아직까지 꿈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거친 숨이 튀어나왔다.

기분은 최악이었지만 지금 씻어야 제시간에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날부터 지각할 수는 없으니까.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후우.”

차가운 냉수에 몸속 열기까지 덩달아 식는 느낌이다.

아까 꿈은 뭘까. 꿈이라기엔 현실과 다를 게 없는 느낌이었다. 자각몽 뭐 그런 건가?

현실이었다면 어땠을까. 꿈속 그 한심한 녀석과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고개를 저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 어리버리한 녀석은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열받는 부분이 이것이었다. 헌터라는 게 몬스터를 상대로 쪼는 것도 모자라 눈까지 감아버려?

병신 같은 새끼.

그것은 나를 향한 질책이었다. 이 더러운 기분은 얼마간 냉수에 몸을 맡겨놓고서야 가라앉았다. 두근대던 심장도 평상시 리듬을 찾았을 무렵.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출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아무렴. 출근 첫날부터 똥 씹은 표정으로 갈 수는 없지.

며칠 전 딱 어울린다는 백화점 명품관 직원의 말에 질러 버린 고가의 정장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애송이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마지막으로 깜빡한 게 없나 확인한 뒤 오피스텔을 나와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라탔다. 네비게이션에 일성의 본사 주소를 찍었다.

일성.

사회 초년생인 내가 번듯한 오피스텔과 근사한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갓 아카데미를 졸업한 초보 헌터에게 계약금 10억부터 덥석 안겨주는 회사라니.

그 거지 같던 아카데미에서 3년간 개고생한 시절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액수였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었다.

대기업다운 체계적인 헌터 관리와 안정적인 성장 가능성,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쓸데없는 조항을 들먹이며 들러붙지 않는다는 점까지도.

헌터를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성은 내게 가장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일성에 대해 찬양하고 있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혹시 이태진 씨 전화번호 맞나요?

“네. 맞습니다. 누구세요?”

-그쪽 상사 될 사람요.

“네?”

뭐라고?

순간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아버렸다.

끼익-!

달리던 차가 급제동이 걸리는 바람에 몸이 앞뒤로 출렁거렸다.

-그쪽 상사 될 사람이라고요.

똑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지 말라는 듯 목소리에 귀찮음과 짜증이 잔뜩 묻어나왔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내 상사 될 사람이라잖아.

“넵! 안녕하십니까!”

-지금 회사로 오고 있어요?

“네! 가고 있습니다.”

-쯧…. 그러면 일단 멈춰 봐요.

“…네. 멈췄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인데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표정이 그려졌다.

잔뜩 짜증나고 귀찮다는 얼굴이겠지. 그나저나 이 목소리. 뭔가 들어본 느낌인데 누구지?

-자세히 말하려면 기니까 일단 만납시다. 문자로 주소 찍어 줄 테니까 이리로 와요. …듣고 있어요?

“…아! 넵!”

정신을 어디 팔고 있는 거냐 이태진!

나는 밀려드는 잡생각을 집어치우고 최대한 통화 내용에 집중했다.

“…네!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물론 왜 그쪽으로 가느냐, 오늘은 신입OJT가 아니냐, 설마 잘린 거냐 등등. 묻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었지만 또박또박 알겠노라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부아앙!

여유롭던 출근길이 한순간에 액션 영화처럼 변했다. 할 수 있는 한 최고속도를 냈다. 제발 아무 일도 아니길 바라면서.

***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 차렸을 때는 이미 문자로 찍힌 주소에 도착해 있었다.

처음 와 보는 곳이었다. 이름도 없는 경기도 외곽의 산 중턱.

“후우.”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별일 아니겠지 하며 괜시리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차량진입금지.]

더 이상 차로 올라갈 수도 없어 중간부터는 걸어서 올 수밖에 없었다. 전신이 땀투성이에 정장은 이미 푹 젖어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크게 숨을 내쉰 다음 휴대폰을 꺼내 통화기록 중 제일 위에 있는 것을 눌렀을 때였다.

“이태진 씨?”

전화가 연결되기도 전에 옆에서 남자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아까 전 통화에서 내 상사라던 사람의 목소리와 똑같은 음성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쨌든 첫 출근이다. 첫인상을 망칠 수는 없지.

남자는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충 그래요 하고는 귀찮다는 얼굴로 고개를 까딱였다.

나이는 40대로 보이는데 키는 나랑 비슷한 것 같다. 180쯤 되려나? 거무죽죽한 얼굴을 봐서는 담배를 달고 살게 생겼는데 몸은 또 탄탄했다.

그런데 이 남자. 아까 전 목소리부터 얼굴까지 뭔가 낯이 익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구더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내 상사 될 사람이라던 이 남자도 나를 위아래로 스캔하고 있었다. 뭔가 불만에 가득 찬 듯이.

“애매하네….”

“네?”

애매하다니. 도대체 뭐가?

“일단 갑시다. 가면서 이야기하자고.”

그러더니 남자가 성큼성큼 앞서서 걸어갔다.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냐고 묻고 싶은데 거대한 등짝을 마주하니 자신이 없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는 있나?”

어느새 남자가 말을 놨지만 그런 것쯤은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제 상사 될 분 아닙니까?”

내 대답에 남자가 피식 웃었다.

“D급 이하 던전 담당 2팀 팀장 한석훈. 기억해 놔.”

2팀 팀장 한석훈, 2팀 팀장 한석훈. 중얼거리며 팀장님의 얼굴과 이름을 매칭시키고 있었는데 문득 번쩍하고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팀장님. 저는….”

“1팀으로 배정된 거 아니냐고?”

맞다. 분명 일성에 합격했을 당시 1팀으로 배정됐다고 들었는데.

“원래는 그랬는데. 상황이 달라졌어. 우리 팀에 티오가 나게 돼서. 그나저나 지금 어디 가는지 대충 느낌은 오지?”

“예?”

“설마 여기까지 오면서도 몰랐던 거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여태껏 부정해왔던 불길한 예감을 한석훈이 말하려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도 설마설마했다.

에이, 그럴 리가 없지. 하며 애써 부정했는데.

저 사악하게 웃는 팀장을 보자 아까부터 들었던 불길한 예감에 마침표가 찍혔다.

“맞아. 우리 지금 던전 가는 거야.”

웃긴 말이지만. 나는 출근 첫날부터 던전에 들어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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