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0화. 종장 (7)
강준호는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며 감정을 추스렸다.
강시온과 진재희는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진재희는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렇게 떨어져 있는 걸 보면 영락없는 애네.”
진재희의 말에 강시온은 피식 웃곤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언제나 저랬어. 언제는 집에 와서 안 씻고 눕길래, 호되게 말로 혼냈더니. 방구석에 혼자 등을 돌리고 앉아 종일 훌쩍이더라고.”
준호는 가래를 뱉었다. 진재희는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이랑은 완전 딴판이네. 네 기억 속의 강준호는 귀여운 것 같은데.”
“정말 귀여웠어. 잘생기고. 초등학교에서도 인기 많았지. 쟬 쫓아다니는 애가 집에 찾아오기도 했고. 쟤가 유전자 몰빵이잖아. 연예인 해도 될 만큼.”
시온의 동생 칭찬에 재희는 시큰둥했다.
“그래……? 난 네가 더 나은 것 같은데.”
“사탕 발린 말은.”
시온은 피식 웃고 말았다. 재희는 그가 그렇게 넘어가니,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와 나란히 앉아있던 진재희는 작게 미소 짓더니 말했다.
“이제 정말 만난 거네. 동생을.”
“응.”
“기뻐?”
이상한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시온은 대답했다.
“기뻐.”
“음.”
진재희는 시온에게 시선을 거두어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사일런스 공간.
현실과는 분명 동떨어진 공간이지만, 자연 현상은 일어나고 있었다.
진재희의 맑은 두 눈동자에 엄청난 풍경이 담겼다.
건물과 잔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어수선했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 콘크리트 건물도 기울어져, 쓰러지려고 하고 있었다. 가로등은 끝이 구부러져 아슬아슬했으며, 폐차의 보닛 속 엔진 룸에는 푸릇푸릇한 초록 이파리가 나고 있다.
네온사인으로 물들었던 도시는 이제 파괴되어 멸망했다.
하지만, 그 지평선에 길게 늘어진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영원했다.
빛의 스펙트럼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하늘을 가득 물든 석양빛이 무너진 도심을 비추고 있었다.
그 석양빛이 모여드는 어느 트럭의 트레일러 위, 두 남녀가 앉아 있었다. 이곳은 종말의 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재희는 물었다.
“이제 다음은 뭐야?”
다음은 뭐냐는 질문에, 시온은 대답할 수 없었다.
둘에게 다음은 없다.
다음은 각자의 길로 흩어질 뿐이다. 시온은 기분 좋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곤, 물었다.
“넌 돌아간다면 기억을 가진 채로 돌아가고 싶어, 아님 기억을 잃은 채로 돌아가고 싶어?”
시온은 재희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석양빛에 물든 그녀의 외관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조금 삐죽 나오더니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내 말했다.
“글쎄. 가능하다면 기억을 잃는 게 좋겠지. 우리가 겪은 이 일들은…… 추억이라기보단, 트라우마일 테니까.”
진재희의 대답에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적든 많든 이곳에서 좋지 않은 일을 경험했다.
그건 추억이라고 할 수 없었다.
잊고 싶은 기억일 뿐이다.
당장 강시온도 ‘진실의 문’에 다가간 자가 아니었다면, 기억을 잃고 되돌아가는 선택을 했을 거다.
그게 정답이다. 이딴 기억. 간직하고 싶지 않으니.
하지만 강시온의 세상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강시온은 기억을 할 수밖에 없고, 이 고통을 진재희에게 나누어주고 싶지 않았다.
이걸로 이별이다.
강시온은 인상을 찌푸리다 말고 웃었다. 웃다가도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기쁜 건가. 아님 슬픈 건가.
진재희는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 무슨 일 있는 거지? 그렇지?”
강시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때 강시온은 진재희의 오른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진재희는 오른편에 있던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온은 그녀에게 표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난 언제나 널 응원할게.”
“……응?”
“네 노래를 들었을 때. 정말 좋더라. 난 노래에 전혀 관심 없었는데도 말이야. 그거 알지?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 좋다고 할 정도면 정말 재능이 있는 거야. 네 목소리는 좋아. 누구라도 좋아할 목소리야. 그러니까 음악 포기하지 마. 넌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 내가 아는 진재희는 그런 애니까.”
시온의 진심 어린 응원에 재희는 작게 웃었다.
“응. 약속했잖아. 내 공연 보러 오기로? 기억하지?”
“공연할 정도로 유명해지기나 해. 무조건 갈 테니까.”
“당연하지. 네가 자연스럽게 알 정도로 엄청 유명해질 거야. 그러면 엄청 유명한 가수랑도 친구가 되겠지?”
“좋아하는 가수 있어?”
“있지. 엄청 많지. 동경하는 가수도 있고, 꼭 한번 뵙고 싶은 사람도 있고.”
“네가 너무 유명해지면 나 버리는 거 아냐? 그, 왜 있잖아. 엄청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면 친구 거른다고.”
“하늘이 두 쪽으로 나뉜다고 해도, 그럴 일 없어. 난 내 친구 절대 안 버려. 특히 제일 친한 친구잖아. 나중에 집도 사줄게.”
“말은 쉽지. 집값이 얼만데 서울에. 가수 돈 많이 벌어?”
“차도 사 줄게.”
“됐다~ 자꾸 뭘 사준다는 거냐? 공연 티켓이나 공짜로 줘.”
“공연 티켓은 당연하고.”
시온과 재희는 한동안 웃음꽃이 피었다.
재희는 시온이 유일하게 맘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건 재희도 마찬가지였다.
얼마간 이야기를 나눴을까.
시온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넌…… 넌 내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어. 그러니까 네 하루하루가, 아침에 일어나 잠에 들 때까지. 언제나 행복했음 좋겠어. 언제 어디서나 응원할게. 설령 네가 날 잊어도.”
“무슨 떠날 사람처럼 말하네.”
재희는 키득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시온은 작게 미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재희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너 설마.”
시온은 시간이 다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무너진 도심을 비추는 석영을 한 번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재희를 바라보았다.
“……우리 이제 집에 가자.”
“잠깐…….”
진재희는 손을 뻗어 그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동시에 진재희도 자신이 다른 장소에 있음을 깨달았다.
* * *
진실의 문에 홀로 남은 절대자는, 백옥의 계단 제일 아래에 앉아 생각했다.
처음이었다.
퍼즐의 자격을 얻고도 진실의 문을 열지 않은 자는. 그만큼 안타까운 퍼즐이었다.
만약 그가 이 문을 열었다면, 더 높은 가치의 지식을 얻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번 리그에선 퍼즐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절대자는 가면을 벗어들곤 숨을 깊게 내쉬었다.
“불쌍하다…… 는 의미인가.”
절대자는 강시온이 남긴 마지막 생각을 읽었다. 우주 속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음에도, 불쌍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강시온이 이 문을 열지 않았기에 더 가치가 있었다.
단순한 논리다.
어떤 사람 앞에 1억 원의 돈뭉치와 아무런 보상도 없음의 선택지가 주어진 것이다.
물론 진실의 문을 여는 것을 값으로 따질 순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인간이 사용하는 숫자의 단위로는 표현할 수 없다.
예시로 돌아와 그 선택에 있어서 거의 모든 사람이 1억 원을 선택할 거다.
근데 강시온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를 택했다.
그건 지금껏 누구도 하지 않았던 선택이었다.
‘이상하고도 대단한 사람…….’
그녀가 혼자 고민에 빠져 있던 사이 다른 공간에서 길이 열렸다.
그 공간에서 빠져나온 건 강시온의 얼굴을 한 102였다. 그는 흥얼거렸다.
“교란종. 교란종~ 이걸로 정리 끝인가.”
102는 102번째 우주에서 진실의 문을 열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었다.
빛남에서 시온과 조우했던 남자도 102였다.
지금은 65,282,636,518번째 우주를 여행 중이지만.
102는 절대자를 향해 다가오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강시온은?”
“없어.”
절대자는 검은 가면을 뒤집어쓰며 대답했다. 절대자의 말에 102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 아니. 말이 돼? 내가 그놈 퍼즐 만들려고 얼마나 개고생했는데!”
“뭔 고생.”
절대자는 102를 찌릿 노려보았다.
102는 빛남에서 완성된 퍼즐, 강시온을 회수할 수 있었지만, 왠지 상황이 재밌다며 그가 계획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나비효과가 여기까지 이어졌다. 102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너도 말했잖아! 한번 지켜보고 싶다고. 그 계획을 말이야.”
완성되지 않은 강시온의 계획.
그건 리그를 멈추는 것이었다.
계획은 간단하다.
만경을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국방력과 시장성을 확보하는 세력으로 만든다. 그리고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를 요새화시킨다.
그렇게 만경은 드래곤 지키기에 전념하는 것이다.
정복 전쟁. 라운드 진행을 일제히 멈춘다.
그것의 효과가 무엇이냐?
그건 바로 이 리그를 바라보는 ‘존재’들을 재미없게 만들 것이다.
관객들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쇼는 반드시 끝이 난다.
실제로 강시온의 계획은 먹혀들었다. 만경은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되었음에도, 드래곤을 잡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의 리그는 멈추었다.
절대자도, 102도 감탄했다.
하등한 인간 주제에 거기까지 생각했을 줄이야. 하지만 절대자의 입장에선 달랐다.
“아무 의미도 없는 짓이었어.”
“근데 재밌었잖아?”
“하아-.”
절대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그러자 102는 바짝 긴장했다.
절대자는 손가락을 들며 말했다.
“넌 이제 다시 들어가.”
그 순간, 이 일대에 수많은 유리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유리관 속에는 수많은 퍼즐이 들어 있었다.
절대자는 그 중 ‘102’라고 적힌 유리관을 가져왔다.
그 유리관은 비어있었다.
102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아! 안 돼! 아직 1000년밖에 못 놀았단 말이야.”
“그럼 1000년 뒤에 다시 깨워 줄게.”
“아-! 재희야! 좀!”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랬지.”
절대자는 유리관을 열어 그 안에 102을 처박아 버렸다.
102는 몇 번 유리관을 때려대며 꺼내달라고 했지만, 절대자는 들어주지 않았다.
102는 다시 잠이 들었다.
절대자는 다음 리그를 도울 퍼즐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엔 한 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1.
사실 이곳을 이루는 모든 퍼즐은 1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절대자는 1을 가까이 다가오게 만들었다.
이건 최초의 리그, 빅뱅.
그리고 절대자는 최초의 리그에서 승리한 사람.
유리관 1 안에 있었던 사람은 강시온이었다. 물론 절대자의 우주 속에서 강시온이다.
절대자는 유리관을 천천히 매만졌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사실 모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겠어.”
절대자의 목표는 하나였다.
퍼즐을 모아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다.
퍼즐은 리그에서 어떠한 현상에 의해 발생한다.
아니, 사실 퍼즐은 이 우주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절대자가 알아낸 사실은 이 우주가 사각형 모양의 퍼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 퍼즐들을 모으다 보면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절대자조차 모르고 있는 이 리그를 ‘만들어 낸’ 자를.
절대자 역시 리그의 첫 번째 퍼즐이었다.
하지만 몇억 년을 그렇게 모으고 모아도 알 순 없다.
진정으로 퍼즐 뒤에 숨겨진 그 존재들에 대해.
‘누굴까.’
도대체가, 누구냐.
뭐 하는 사람들이고 어디서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이제 와선 되돌아간다는 강시온이 절대자는 무척이나 부러웠다.
결국 그게 정답이었다.
고차원의 존재가 되어 봤자 더 높은 어떠한 것에 궁금하기에 이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불행한 것이다.
요즘 들어 절대자는 궁금한 것이 또 생겼다.
특히나 이번 리그를 거치며 그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었다.
-나는 과연 살아 있나? 난 자의식을 가진 생명첸가? 혹시 다른 이가 주입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닐까?
……모르겠네. 난 뭐지?
절대자는 그 궁금함에 치가 떨리고, 고통스러워했지만 결국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리그를 개최할 것이다.
절대자는 태초의 우주 속 지구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것을 복사하여 또다시 새로운 리그를 열었다.
절대자는 다시 리그를 개최했다.
‘존재’를 만들고 ‘관리자’를 만들었다.
절대자의 눈은 한 쇼핑몰로 향했다.
새롭게 만들어진 강시온이 점원에게 후리스를 건네받고 있었다.
‘내 궁금증이 해소되기 전까지……. 난 영원히 이 짓을 할 거다. 미안하지만 난 퍼즐을 모아야 하니까.’
절대자는 작게 미소 지었다.
이번엔 환생이다. 아니지, 빙의로 해야 하나? 어떤 경우를 만들어 볼까.
그리고 얼마간 숨을 들이마시더니 리그를 개최했다.
“이걸로.”
65,282,636,519번째 리그 개최다.
이 영원한 지식의 구렁텅이 속에서, 절대자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삶을 경험하며, 그렇게 잊혀갈 것이다. 끝이 없는 영원한 삶.
영생의 길.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