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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219화 (217/221)

제219화. 종장 (6)

리그 최강자 중 한 명답게 강준호의 회복은 빨랐다.

물론 몸은 회복되었을지언정, 진재희의 보호막에 갇혀서 움직이지 못하고 으르렁대고 있을 뿐이었다.

“너.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가만히 있어. 또 맞을래?”

진재희가 주먹을 쥐자, 강준호는 흠칫 놀라 고개를 떨었다.

뭐가 사랑의 매냐.

사랑의 매를 두 번 맞았다간 송장 치를 것이다.

그가 뒤로 물러나자 진재희는 주먹을 풀곤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얌전히 있어.”

그때 다른 힘이 느껴졌다.

익숙한 향과 힘이었다.

진재희는 고개를 돌려 그를 찾았다.

지금껏 쓰러져 있던 강시온이 어느새 서 있었다.

“시온?”

“형!? 형!!! 형!”

진재희는 강시온의 심정 변화를 빠르게 느꼈다.

강시온을 바라보는 진재희의 가슴이 철렁 가라앉았다.

한평생 눈물 한 번 보이지 않았던 시온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서 있는 강시온의 왼쪽 눈망울에는, 분명 눈물이 차올라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진재희는 곧바로 그에게 달려갔다. 허둥지둥 달려왔지만, 그녀는 차분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하지만 그는 말없이 주변을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걱정되어 물었다.

“왜……. 왜 울어…….”

시온이 눈물을 보이자, 재희는 어쩔 줄 몰라 했다. 평소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눈물을 보이면, 그 걱정은 배가 된다. 하지만 시온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착잡한 마음을 추스렸다.

그녀는 모른다. 지금 강시온이 얼마나 참담한 심정인지. 지금 눈앞의 친구를 영영 떠나보내야 하는, 그런 기분을 진재희가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재희는 몰라야만 했다. 둘에게 닥친 운명을.

시온은 살짝 웃으며 물었다. 구차하게 자신의 감정을 숨긴 것이었다.

“내가 울어?”

이상한 대답이었다. 지금 상황에선, ‘괜찮다’거나 ‘울지 않았다고’ 얼버무렸어도 되었다.

진재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지금 울고 있어.”

“아, 그래? 몰랐네.”

강시온은 스스로 눈물을 훔쳤다. 실제로 그는 자기가 눈물을 흘리는지도 몰랐다.

“또 그때처럼 어딜 갔다 온 거야?”

재희는 빛남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었다. 그 일처럼 시온은 기절했고, 그 뒤론 무언가 바뀌었다.

아니, 확실하게 바뀌었다.

덥석.

재희는 살며시 시온은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눈꺼풀이 작게 흔들렸다. 그에게서 아티팩트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

하지만 진재희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보호막에 갇혀있던 강준호가 소리쳤기 때문이다.

“혀엉-!!!”

시온과 재희는 동시에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준호는 보호막을 손으로 쾅쾅 때려댔다.

그의 눈빛과 표정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절대자와의 계약이 강시온의 선택에 의해 강제로 종료되자, 강준호의 정신도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형을 죽여서라도 고차원의 존재가 되기를 바랐던 준호의 마음은, 온전히 계약에 의한 타락한 감정이었다.

“풀어 줘! 이거 좀 풀어 달라고!”

강준호는 더욱 세게 보호막을 두드렸다.

보다 못한 진재희가 보호막을 제거해줬고, 그는 보호막이 사라지자마자 시온에게 달려갔다.

준호는 달려가면서 시온에게 소리쳤다.

“형-! 그 여자한테서 벗어나! 그 형은 오염된 년이야! 형을 지옥 구렁텅이로 집어넣으려는 악마 같은 년이라고 그러니까……!”

준호는 시온에게 달려갔다.

준호가 시온에게 거의 다다른 순간.

짜악-!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시온은 달려오던 준호의 뺨을 때렸다.

준호는 고개가 돌아간 채로 어벙하게 눈꺼풀을 깜빡였다.

13년 동안 준호에게 단 한 번도 손찌검을 해 본 적이 없었던 시온이었다.

명백히 준호가 잘못한 일일지라도, 시온은 말로써 잘 타이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게 옳은 방법인 줄 알았으니.

하지만 지금 와선 그것이 잘못된 방법임을 깨달았다.

호되게 혼낼 때는 호되게 혼내야만 했다.

지금 강시온은 강하게 훈육했다.

“그만해.”

“……형?”

강준호는 그제야 시온을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잘못 키운 것 같다. 널 대할 땐 내 생각을 너무 묻히고 산 것 같아. 너라는 사람이 있듯, 나라는 사람도 있어. 그리고 널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나한텐 얘도 소중해.”

“……형.”

“내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은 내가 정할 거야. 그리고 내 미래는 내가 정해. 여기 있으라 마라, 네가 알 바 아냐.”

형에게 쓴소리를 들은 준호는 고개를 저어 댔다.

“돌아가면…… 시궁창 같은…….”

“나랑 같이 살았던 그 생활이, 시궁창 같았어?”

그 순간, 강준호는 깜짝 놀라 강하게 부정했다.

“아, 아니야! 난!”

“그러면 나랑 함께했던 그 시절이 왜 시궁창 같다고 말하는 건데?”

“그건!”

강준호는 힐끔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 준호는 진재희가 귀라도 막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준호는 싫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 우리 형제의 일에 관여하는 걸.

준호가 얼버무리자, 시온은 다시 한 발자국 내밀며 소리쳤다.

“내가 왜냐고 묻잖아!”

시온의 우렁찬 목소리에 강준호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소리쳤다.

“다, 당연한 거잖아. 가난하고 힘들고. 그런 생활이 지금보다 나을 리가 없어. 이건……. 이건 내가 고집하는 게 아니잖아? 그건 세상에서 정해준 거야. 빈곤한 우리의 삶은 세상에서 정해 버린 거라고. 이곳에서 형은 모든 사람의 위에 있고, 돈도 많고? 그, 그건! 현실로 돌아가면 우리가 못하는 일이잖아! 여기선!”

“……해 봤어?”

그때, 시온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강준호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시온은 다시 강한 어조로 물었다.

“……해 봤어? 네가 그 세계에서 해 봤냐고. 실패했어? 꿈을 못 이뤘어? 시궁창 같은 삶? 패배자의 삶? 돈 벌어봤어? 굶어 봤어? 내가 너 하나는 남들처럼 비싼 건 못 먹여도. 좋은 거 먹이면서, 몸에 좋은 거 먹이면서 키웠어. 부족했니? 그때, 너 고작 열셋이었어.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해. 하라고. 명예? 권력? 뭐든! 하라고. 형이 도와주잖아. 네가 너는 대학 보낸다고 했잖아? 내가 뭐 부족하게 했어? 시궁창이라고 표현할 만큼?”

“…….”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장담할 수 있어? 그 삶이 지금의 삶보다 더 불행하다고 확신할 수 있어? 아무것도 안 해 봤잖아. 준호야. 아직 사회에 뛰어들지도 않았고, 공부를 시작한 것도 아니잖아? 시험을 봤어? 면접을 봤어? 사업에서 실패해 봤어? 그 삶에선 이 정도 위치에 오르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는 건…… 세상이 정한 게 아니라, 네 스스로 정한 거네?”

시온의 말에 강준호는 누군가 뒤통수를 후린 것처럼 멍해졌다.

사실 강준호는 편한 길만 선택하려고 한 거다.

그게 설령 잘못된 길일지라도, 더 편하니까, 이미 이뤘으니까 그 길을 걷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잘못되었다. 그건 강준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점을 시온이 명확하게 짚어 주었다.

“네가 그런 식으로 생각했으면, 나도 더 이상 할 말 없어. ……가자.”

시온은 진재희의 손목을 잡으며 차갑게 돌아섰다. 그 형의 모습에, 강준호는 절망했다.

“…….”

준호는 바닥에 주저앉아선 허탈하게 바닥을 보고 있었다. 시온 곁에서 걷던 진재희는, 강준호를 바라보곤 다시 시온에게 물었다.

“괜찮겠어?”

“…….”

시온은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사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두 형제에겐 필요한 과정이었다. 특히나 시온에겐.

그때.

“그날 화장실!!!”

준호의 말에 이번에는 뒤돌아 걸어가던 강시온이 놀랐다. 시온은 뒤돌아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던 준호를 바라보았다.

화장실에서의 일.

그건 시온이 혼자 생을 마감하려고 했었던 일이다. 결국 준호가 잠결에 나오는 바람에 강시온은 행위를 멈추었다.

다음 날 강시온은 죄책감에 준호에게 물었다.

어젯밤 일은 잊어 달라고. 하지만 당시 어렸던 준호는 시온에게 말했다.

무슨 일 있었냐고.

그러니 시온은 준호가 잠결이라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어린 나이일지라도 강준호는 항상 그 기억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떠올랐다.

강준호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내가 기억 못 할 줄 알았어……? 기억해……. 매일 밤…… 매일 아침! 떠오른다고. 언제부터인가…… 난 형이 없어지면 화장실 문부터 열었어. 아침이고 저녁이고. 심지어는 리그가 시작된 이후로 습관처럼!!! X발 형이 죽었을까 봐아…….”

준호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훔쳤다. 게다가 울음에 말끝은 흐렸다.

그 기억은 준호의 트라우마였다.

절대로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

준호는 형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없어서, 사회적 계급이 낮아서, 앞으로 살아갈 게 막막해서, 미래가 너무 무서워서.

그러니까 준호는 필사적으로 사회적 지휘를 높이고 돈을 많이 벌고자 했다.

소중한 형이 다신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형이……. 내 소중한 가족이……. 없어지는 게 두려웠다고. 왜 내 마음은 몰라 주는 건데? 왜 이 여자만 생각하는 거야? 난 모두 다 형을 위해서 그런 거야. 돈 많이 벌어서 형이랑 매일 맛있는 거 먹고 싶고, 명예가 많아서 사람들이 다 형한테 잘 존중해 줬음 좋겠고! 권력을 가져서 다 형한테 모질 게 안 굴었으면 좋겠어. ……그게 뭐가 나쁜 건데? 도대체 뭐가 나쁜 건데? 알려 줘.”

강준호의 말을 듣는 시온은 침묵했다.

이건…… 이 일은 시온이 준호에게 백 번 사과해도 모자를 일이었다.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준호가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그 자체가 시온이 편한 대로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온은 끝내 부정했다.

준호는 이어 말했다.

“난…… 나는…… 단 한 순간도 형이랑 같이 살아서 불행했던 적 없어. 행복했단 말이야. 근데……. 근데 이 세상이 우리 형제한테 더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게 전부야……. 형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때 욕해서 미안하고. 별일도 아닌데 투정 부려서. 형한테 소중한 사람에게 함부로 대한 것도 미안해. 그때. 형에게 모든 걸 짊어지게 한 게……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한 게 제일 미안해…… 그 시절 형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런데 난…….”

와락-!

그때, 강시온은 강준호를 안았다.

강준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떠선, 품에 안긴 형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짧은 문장일 뿐이었다.

하지만 같은 과거를 공유하는 두 형제에겐 풍부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섞인 말이었다.

강시온은 더 세게 준호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미안하다.”

준호의 두 팔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시온은 동생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했다.

“널 그 방에 혼자 남겨 놓는 게 아니었어. 어린 네가 가진 트라우마 때문에 화장실을 오갔던 것도 난 몰랐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 좋은 모습 보여 줘서 미안해. 아무리 돈이 궁해도, 널 데리고 그 트라우마가 가득한 집에서 데리고 나왔어야만 했어. 내가 너무 돈만 생각했어. 내 옹졸한 생각들이 널 이렇게 만든 거다. 내 탓이야. 내 잘못이야. 흔하디 흔한 스마트폰 하나 사 주지 않고, 용돈도 못 주었던 게 너무 후회스럽다. 한 달에 한 번은 치킨이라도 사 줄걸. 짜장면이라도 사 줄걸. 좋은 운동화라도 사 주고, 좋은 옷이라도 입혀줄걸. 준호야. 형은 더 이상 돈 때문에 억압당하지 않았으면 해. 우리 둘 모두. 좀 그냥……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자. 돈은 중요하지 않아. 명예도, 권력도. 우리 그냥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면 안 될까? 형이. 정말 못난 형이지만. 이 형이 잘할 테니까.”

강준호는 형의 품에서 감정을 추스렀다.

전혀. 아니.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자신에겐 너무너무 과분한 형이다. 사실 돈 까짓것 강준호에겐 전혀 문제가 아니다. 사실 준호는 돈 때문에 항상 고민하던 형의 인생을 도와주고 싶었다.

돈 때문에 몸을 혹사시키는 형을, 많은 돈을 벌어 그 돈으로부터 구제해 주고 싶었다.

돈 때문에 권력 앞에 굴복하는 형을, 똑같이 더 강한 권력으로 구제해 주고 싶었다.

중졸, 고아, 일용직 노동자라고 명예 하나 없어 타인에게 멸시당하는 형을, 더 높은 명예를 가져 구제해 주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다.

세상에 형밖에 없는 어린 동생이, 얼마나 대단한 악한 감정을 품고 있었을까?

열셋의 강준호는 지금의 강준호를 만들었을 뿐이다.

강준호는 그제야 형을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는 그때 그 시절처럼 형의 명치에 코를 대며 질질 짜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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