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8화. 종장 (5)
진실의 문 앞에 선 나는, 그 문틀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 힘을 주어 이 문을 열기만 하면, 난 세상의 모든 진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다른 차원의, 그러니까 절대자의 말을 빌리자면 더 고차원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간단한 일이었다.
문을 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하지만 난 결코 이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높은 지위와 많은 지식, 좋은 환경은 분명 가치 있는 일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얻고자 많은 피를 보았다.
그것이 인류 역사의 한 획이다.
더 높은 가치 있는 것에 목숨을 건다.
그건 제국의 황제가 되어도 변함이 없다. 진시황은 죽어서도 천하를 누리기 위해 거대한 무덤을 쌓았지만, 결국 그 끝은 죽음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모든 물체의 종착지다.
끝없는 욕망은 인간이기에 가지는 약점이다.
내가 이 문을 열고 세상의 진실을 안다고 해서 과연 ‘만족’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수만 명의 군주로서 서울의 지배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행여 동아시아를 정복한다고 하더라도 만족할 수 있을까?
금은보화. 많은 양의 지식, 숭배, 신격화.
세상을 이루는 그 어떠한 ‘가치’를 다 가져와도 만족할 수 없다.
10의 가치를 얻었으면, 100의 가치를 얻고자 할 것이고.
100의 가치를 얻었으면, 1,000의 가치를 얻고자 할 것이다.
숫자는 무한하니 욕심도 무한하다.
난 진실의 문에서 눈을 거두어, 절대자를 바라보았다.
절대자는 가만히 공중에 떠올라 날 바라보고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절대자의 얼굴을 보며, 난 연민했다.
수억 명의 목숨을 가지고 놀고, 우주의 저편과 이편을 돌아다니며 더 높은 가치를 쫓는 절대자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 생각에 이르렀을 때, 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럼 어떻게 살고 싶은데.
지금껏 스스로에 던진 질문 때문에 방황했다.
스스로도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생과의 말다툼이 있을 때에도, 난 확실하게 내 주장을 말하지 않았다.
뭘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난 어떤 걸 하고 싶은가.
동생을 찾고자 해서 찾았다.
진재희의 꿈을 이뤄 주고자 세상의 끝에 섰다.
정작 나는 어떤 걸 바라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건?
기억을 되짚었다.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언젠가. 아마 일요일 점심이었을 거다. 장소는 한강 공원.
나는 행사장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점심시간을 맞아 한강 공원에 누워있었다.
놀러 온 것이 아니라, 행사 스텝 알바를 뛰러 왔었다.
그때 난 남의 눈치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원에 대자로 누워있었다.
점심시간에 짬짬이 잠을 자두기 위해서.
근데 그때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강가라 그랬던가.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이 좋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무엇 하나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이었다.
세상살이 덧없음에, 허탈한 감정에 강가에 누웠던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게 너무. 너무. 좋았다.
무엇 하러 이렇게 열심히 살까.
그냥 살아가는 대로 살면 되지.
나를 ‘나’로 받아들이는 거다.
내가 살아가는 것을 일분일초도 빠짐없이 느끼는 거다.
난 우주 속 먼지지만, 그렇기에 더 좋았다.
지금이 한강 공원에 누워 살랑이는 바람을 만끽하는 것처럼.
죽음의 늪에서 건져 올려졌을 때부터, 동생 하나 먹여 살리는 그 과정까지 순간순간이 감사했다.
누군가에겐 정말 작은 것에 불과했지만.
난 그 모든 것에 작은 행복을 느꼈다.
동생이 내게 안길 때.
예기치 않게 행운이 따랐을 때.
신호등에 도착했는데, 때마침 불이 바뀔 때.
오늘 일을 정말 잘해주었다가 작업반장이 꼬깃꼬깃한 만 원 한 장을 더 쥐여 줄 때.
아침에 일어나 개운할 때.
동생이 새근새근 잠든 모습이.
그 순간순간들이 행복했다.
비록 몸은 조금 힘들지언정, 그게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안다.
난 잘하고 있다.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어려울 건 없어.’
그저 이 장소를 벗어나면 된다.
난 진실의 문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완전히 돌아 나와 백옥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절대자는 날 따라 계단을 내려오며 연신 말하기 시작했다.
“이 선택은 지금 짧은 생각을 하고 결정할 일이 아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수억 배에 달하는 가치가 저 문 너머에 있다. 그것을 포기하나? 그렇게 멍청할 수가 있나? 네가 이룬 것들을 보라.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너와 같이 선택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가치다. 이걸 모두 포기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흑백뿐인 주위 풍경에 색깔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계단을 하나 내려갈 때마다 하나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날 숭배하는 사람들.
날 우러러보는 사람들.
엄청난 영토.
그리고 금은보화.
그 모든 걸 짓밟고, 난 내려간다.
절대자는 말했다.
“강시온. 기다려라.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성급하지 않다.
“이건 옳지 않다. 진실의 문까지 다가온 네가 더 높은 차원이 될 수 있음에도 되돌아가는 건, 우주적으로 봐도 큰 손해다.”
내가 하는 일은 옳다.
그 누구도 무어라 말할 수 없다.
흔들리지 말자.
그들의 말은, 내가 그들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한 사탕 발린 말들에 불과하다.
“강시온!”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밟는 백옥의 계단은 검게 물들고, 색으로 가득 찬 세상은 다시 밤하늘처럼 어두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난 마지막 계단을 내려왔다.
터억-
“…….”
날 억압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순간, 상쾌했다.
그때 그 시절처럼.
* * *
절대자는 그곳에 멈춰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결국.”
절대자는 무슨 말을 하려다 삼켰다.
하지만 이내 다시 말했다.
“결국 이렇게 되어 버리는 건가.”
난 그를 바라보았다.
절대자는 허공에서 내려와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절대자는 내 앞에 마주 섰다.
우린 한동안 서로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난 내 선택에 따른 절대자의 말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그때, 절대자는 작게 웃었다.
“그래. 왜인지 너라면 그럴 것 같았어.”
그때, 절대자의 한 손이 올려졌다.
그리고 가면을 만지작거렸다.
난 그 가면 속 얼굴을 바라보았다.
딸그닥-.
무언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고, 절대자는 가면을 벗었다.
가면이 벗어지며 감춰져 있던 검은 생머리가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난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가면 속 그녀는, 진재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의 눈꺼풀이 작게 흔들렸다.
아무리 보아도 놀라웠다.
절대자는 쥐고 있던 가면을 자연스럽게 놓았다.
딸그닥- 떨걱.
가면은 지면에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절대자는 조금은 슬픈 눈동자를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입꼬리는 살며시 올라가 있었다.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함이 들 만큼,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녀는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난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재희?”
절대자는 하늘을 바라보다 내 물음에, 다시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옆머리를 정리하곤 귀 뒤로 쓸었다.
“오래전에 버린 이름이지.”
“무슨…… 의미야?”
“별 의미 없어. 네가 알던 진재희와는 조금 다른 진재희라고 해야 하나?”
다중 우주.
난 그 다중 우주 속 또 다른 나를 두 번 본 적이 있다.
처음 본 건, 동안과의 전투에서 파미안 이마트 단지에서 죽어 버린 다중 우주 속 나이고.
두 번째로 본 건, 빛남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 보았던 고차원의 나였다.
그걸로 미추어 보아, 눈앞에 있는 진재희는 분명 진재희이겠지만, 내가 알던 진재희와는 다를 것이다.
“놀랍네. 네가. 이 모든 일을 꾸민 장본인이었다니. 어쨌거나 내가 알던 넌 이 리그를 혐오하고 있었으면서.”
난 절대자를 조금 경계하고 있었으나, 그녀는 조금도 날 경계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절대자는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난 피하지 않았고, 그녀의 두 팔이 내 목을 감았다.
“…….”
난 조금 놀라, 날 안아 든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희미한 미소가 보였다.
사람처럼 따뜻한 체온과 등을 휘감은 팔이 참 포근했다.
“잠깐…….”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하자, 그녀는 날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아무것도 묻지 마. 이제 우린 서로에게 말을 건넬 수 없으니까. 진실의 계약에 따라 이젠 내가 너에게만 말을 걸 수 있어.”
말을 건넬 수 없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우린 대화를 하고 있지 않는가?
절대자는 여전히 날 끌어안은 채로 말했다.
“넌 돌아간다는 선택을 했어. 지금껏 난 널 이곳에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차원에 올라가고자 하는 나의 욕심이었어. 지금은 네 선택을 존중해. 그리고 네 용기도. 난 네가 행복했음 좋겠어. 우린……. 이제 서로 존재하는지도 못 느낄 정도로 멀어질 거야. 하지만 걱정 마. 난 네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할게.”
난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이젠 사일런스에 걸린 것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때, 절대자는 날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미안해. 시온아. 난 무한의 영역에서, 유한한 세계에 퍼즐을 모으기 위해 여러 우주를 경험하며 진실을 깨우친 자를 얻고자 했어. 너에겐 고차원의 존재가 된다고 하지만, 아니. 내게도 꿈이란 건 있어. ……너에게 난 나쁜 존재라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강시온’ 그 이름은 내게도 너무나 소중해. 다중 우주를 경험하며 깨달은 건 우린 생각보다 더 너무너무 닮아 있다는 거야.”
절대자는 조금 날 밀어냈다.
그녀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날 내려다보았다.
“이제 행복해. 넌 정말 네가 행복한 길을 찾을 수 있었구나. 한편으론. 아니. 난 네가 부러워. 종착지가 있는 네 인생이.”
난 그녀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 어느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지금 내게 말을 건네는 이 절대자의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다.
절대자는 말했다.
“돌아간다면 한 가지만 명심해 줘. 넌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밖에 없어. 진실의 문에 다가갔던 자이기에,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다만, 네 곁에 있는 또 다른 ‘나’는 이제 선택할 거야.”
선택? 재희도 무슨 선택을 한다는 건가?
“너도 이제 느꼈겠지만, 또 다른 나도 진실에 다가간 자. 이미 고차원의 존재지. 그러니 선택의 기회가 주어질 거야. 다만, 그녀는 이 차원에서 이 문에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에 수동적인 선택이 있겠지.”
난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절대자는 쓰린 웃음을 지으며 이어 말했다.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첫 번째 선택은, 모든 기억을 잃고 되돌아가는 것.”
그건 이 세계에서 진재희가 나와 함께했던 모든 기억을 잃고, 정말 평범한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난 그것이 진재희가 정말 원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진재희는 평범한 삶을 원한다.
조금 가시밭길이긴 해도, 원래대로 돌아가 친구들과 함께 음악의 길을 걷고자 할 것이다.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두 번째 선택은, 모든 기억을 가지고 되돌아가는 것.”
……그건 정말이지 진재희에게는 최악의 선택일 것이다.
잊고 싶은 기억들을 일부러 되살려서 돌아간다면.
그 절망스럽던, 고통스럽던 모든 기억들을 가지고 과거로 되돌아가면 그녀는 과연 행복할까?
나와 함께한 기억을 가지고도 가수의 꿈을 이어 나갈 수 있을까?
“가슴 아프지만. 이건 너희들이 받아들여야 할 운명.”
절대자는 또다시 당부했다.
“그리고 만약 되돌아간 상황에서, 그녀가 첫 번째 선택을 했다면. 넌 절대로 그녀에게 아는 체해선 안 될 거야.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서로의 이름을 알아선 안 돼.”
어째서?
“그 경우엔 첫 번째 선택을 한 진재희일지라도, 원래 가지고 있던 모든 기억을 주입받을 거야. 즉, 두 번째 선택을 한 것과 다를 것이 없어지는 거지. 이게 전체 회귀가 절대 불가능한 이유야. 누군가가 우주를 되감는다는 건. 그 누군가를 중심으로 우주가 재창조되는 것과 다름없어. 그러니 그 누군가를 기준으로 세계는 만들어질 거야. 이건 규정이 아니야. 중력이 있듯, 빛이 있듯, 행성과 은하수가 있는 듯. 이건 ‘현상’이야.”
……그 말인즉슨.
난 회귀하여 되돌아간다고 해도, 진재희를 아는 체해선 안 되었다.
난 필연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알겠지만, 그녀가 내 이름을 알아선 안 되었다.
난 미어져 오는 감정에 순간 눈매를 찡그렸다.
그 개고생을 해가며 겨우 이곳까지 ‘함께’했는데, 정작 돌아가선 우린 남이 된다.
난 절대자의 두 눈동자를 살폈다.
절대자는 말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미안해. 이건 선택이기 때문이야. 내가 너의 선택에 관여할 수 없듯. 이 세계의 또 다른 나의 선택에도 관여할 수 없어.”
그때,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에 다시 색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내가 원래 있던 세계였다.
절대자는 내 볼에 키스를 한 뒤, 물러나선 말했다.
“마지막 작별 인사할 시간은 줄게. 그 뒤엔 이젠 정말 끝이니까.”
그 말을 끝낸 절대자는 다시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드러난 도시는 모든 것이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무너진 도심 한가운데, 그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보호막 속 동생을 치료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