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4화. 종장 (1)
수원으로 돌아온 강준호는 자신의 방에서 삼 일 동안 술만 마셨다.
담배는 물론이고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진귀한 술들까지 그의 방바닥에 굴러다녔다.
그 어지러운 방바닥 한가운데, 강준호는 누워 있었다.
지난 삼 일 동안 한숨도 자지 않아서인지, 그의 두 눈동자는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강준호의 심정은 실로 절망적이었다.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져 내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아끼던 형에게 짜증과 욕설을 내뱉다니,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만큼 강준호는 지금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차마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빠르게 뛰는 심장에 비해 그의 목소리는 빠르지 않았다.
오히려 점잖고 애잔했다.
“이상해.”
강준호는 여전히 누운 채로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생각했다.
이건 아니었다.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
형은 모든 걸 내려놓고 되돌아갈 생각이다.
결국 그 여자를 따라 그 시궁창으로 돌아가려는 거다.
막아야 한다. 막을 것이다.
형은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여자 곁에 너무 오래 머물어서 타락하고 만 것이다.
그 여자가 문제다.
그래, 형이 문제일 리가 없지.
결국 형도 언젠가 자신에게 고마워할 날이 있을 거다.
강준호는 절대자의 말을 떠올렸다.
‘그 여자를 막으라고……?’
그건 그녀를 죽이라는 소리다.
지금 강준호에겐 그 말이 그 여자를 죽이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진재희를 죽여 이 이야기를 끝낼 수 있다면, 강준호는 기꺼이 자신의 목숨 따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내놓을 수 있었다.
그는 중얼거리며 상체를 세웠다.
“죽이면 돼. 그걸로 전부 해결돼. 그러면 돼. 간단하잖아. 그 여잔 내 상대가 안 돼. 될 리가 없지. 저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준호는 다짐했다.
형의 안위와 미래를 위해, 기꺼이 형의 원수가 되겠다고.
* * *
서울에서 출발하여 백두산의 거신을 죽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회귀자라고 할지라도, 시스템상 최강의 생물로 설정된 거신을 쓰러뜨리는 건 라운드 하나를 단독으로 클리어하는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진재희가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선 초월적인 힘과 더불어 운도 따라 줘야만 했다.
진재희가 험한 길을 스스로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강준호 때문이었다.
강력한 힘을 가진 강준호를 제지하기 위해서는, 자신 또한 그보다 더 강한 힘을 얻어야만 했기에.
장장 한 달 동안 쉼 없이 전투했다.
그 과정에서 백두산은 붕괴되었다.
산봉우리는 베이고 갈라졌으며, 천지를 이루던 저수는 모두 증발하여 메마른 땅만이 남았다.
이 모든 건 두 생명체가 펼친 전투에 의한 흔적이었다.
거신을 죽인 진재희의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그녀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결국 두 번째 거신의 힘도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걸로 그녀는 목표를 이뤘다.
지난 몇 년간의 리그를 치르며 누적된 피로보다, 당장 몇 달간 거신을 잡으며 누적된 피로가 더 컸다.
그만큼 힘들고 고된 여정이었다.
이제 강시온에게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양쪽으로 찢어졌다.
* * *
준호가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준호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내게도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껏 이렇게 오랫동안 고민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만큼은 내가 내린 결정에 확신할 수 없었다.
그것이 올바른 길인지, 아니면 올바르지 않은 길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심정은 폭풍을 만난 작은 어선처럼 요동치는데도, 실제 상황은 산수 문제처럼 척척 풀려 가고 있었다.
* * *
만경의 성장세는 다른 어떤 세력보다 가팔랐다.
하윤하의 도시를 발전시키는 능력은 타고났다.
그녀는 시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대변하며, 어진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최명준을 필두로 한 정현수의 만경 공격대는 서울 정복에만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가 경기 북부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흔히 북방 야만족이라 일컫는 자들은 하나같이 최명준의 무자비한 진격에 속수무책으로 짓밟혔다.
이처럼 리그 초부터 강시온에 의해 키워진 여러 영웅들이, 그의 눈과 손이 되어 주어 다방면으로 뛰어난 활약을 일구어 냈다.
현재 만경은 시대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가장 안정되어, 고대 국가처럼 단결된 나라가 되었다.
고대 국가와 만경의 차이는.
고대 국가는 몇백 년이란 세월을 거쳐 완성했어야 할 것을, 만경은 기껏해야 10년 만에 해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십 년만 지나면 만경이 과거 몽골과 로마 제국을 능가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이 ‘리그’를 관찰하는 존재들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강시온이라는 시초는, 어쩌면 먼 미래에선 창조신으로 추앙받으며 그의 이야기는 신화가 되어 재창조될 일이었다.
그만큼 강시온이 이룬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물론 그 모든 건 선택 이후의 일이다.
그 선택은 강시온이 이 세상에 남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던 절대자는 생각했다.
결국 강시온에게 진재희라는 변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 세상에 남는다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그건 지난 수없이 많은 우주 속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강시온은 무한한 지식을 추구한다.
이 세계의 진실이 무엇인지.
자신이 속해 있는 이곳은 어디인지.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그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절대자가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자신들’이 그랬으니.
* * *
나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늦은 새벽에 눈을 떠 방문을 열고 나갔다.
새벽이었지만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부하들은 연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왔다는 증거였다.
부하가 보고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일대를 덮은 익숙한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꽤 먼거리였음에도 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진재희가 다시 만경으로 돌아온 것이다.
청와대 내부에는 고위급 간부들은 없었다.
난 스스로 겉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복도 반대편에서 웬 소년이 뛰어오더니 넙죽 고개를 숙였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소년이었다.
그 소년은 말을 더듬으며 소리쳤다.
“위, 위원장님! 진재희 씨가 왔다는 소식입니다!”
“알고 있어. 어디로 왔는지 알아?”
“그, 그건 잘. 죄, 죄송합니다!”
소년은 꽥 소리 지르며 고개를 연신 숙여댔다.
난 그 소년의 어깨에 손을 한 번 얹고 말했다.
“괜찮아. 가서 일 봐.”
“네, 네!”
청와대로 거처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내부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급하게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생긴 불상사였다.
하지만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었다.
복도에 바람이 한 번 불어닥쳤다.
돌풍이라고 하기에는 약한 바람이 복도에 있던 창가에서 불어왔다.
난 곧장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았고, 그곳에는 그녀가 있었다.
“…….”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코트를 입은 그녀는 창틀 난간에 아슬하게 올라서선, 달빛을 배경 삼아 창틀에 서 있었다.
창문이 열림과 동시에 복도로 들이닥친 바람 덕분에, 그녀의 검은 생머리는 휘날렸고 검은 코트의 끝자락은 펄럭였다.
오랫동안 원정에 나섰던 진재희는 내게서 떠났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직까지 창틀에 쪼그리고 있던 진재희는 날 바라보며 물었다.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혹시 나 때문에 깼어?”
그녀의 자연스러운 물음에 난 뭐가 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아찔했다.
수개월 만에 보는 것임에도 마치 어제 헤어졌던 것처럼 그녀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무사해 보여, 다행이었다.
* * *
강시온은 진재희와 함께 식사를 하며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재희는 지난날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그에게 말했다.
시온은 재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은 대답만 했다.
“두 개의 거신을 집어삼키니까, 확실히 전과는 확실히 느낌부터 달라졌어. 뭐랄까. 힘이 넘친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 그 두 개의 거신은 원래 얻으려고 했던 힘이야? 회귀한 뒤에?”
“그렇지. 그런데 네 동생이 그렇게 빨리 거신의 힘을 얻은 건 변수이지만.”
“원래 언제 얻으려고 했어?”
“3라운드가 끝나면.”
“꽤 이른 시간이네.”
“3라운드가 끝나는 순간, 그 뒤로는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니까.”
진재희는 식사를 마쳤는지,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 뒤로 둘은 몇 마디 더 나누었다.
딱히 의미 없는 몇 마디였다.
오랜만에 만난 것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오히려 시온은 그녀가 아무런 문제 없어 보이자 안심했다.
그녀가 떠난 뒤로 시온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연락이 되다가 끊기면 큰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진재희가 돌아오자 그제야 시온의 얼굴에도 작은 미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 분이 지났을까.
시온은 겨우 준호와 있었던 일에 대해 재희에게 털어놓았다.
이번에는 재희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시온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래서 준호는 지금 수원에 가 있는 모양이야. 가끔 어떻게 지내는지 연락이 오는 걸 제외하곤, 나도 본 적 없어.”
진재희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그렇구나. 되돌리지 않고, 이 세계에 머무는 것이 네 동생이 원하는 거였네.”
시온은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진재희의 표정을 살폈다.
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 준호는 반발했다.
그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평생 화 한 번 낸 적 없던 애가 큰소리를 쳤다.
그러니 진재희는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동생처럼 무조건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할까. 아님, 생각을 해 보겠다고 할까.
무엇이 되었건 시온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원래 진재희는 되돌아가고자 했다.
그것이 지금껏 시온과 함께 다닌 이유였다.
둘은 원래 서로 알던 사이도 아니었고, 가족도 아니었다.
단지 각자의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겠다는 이유만으로 붙어 다녔다.
그러니 어쩌면 강준호보다 진재희가 더 자신의 뜻에 확고했을 거다.
강시온은 각오하고 있었고, 그녀가 어서 자기 입으로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진재희는 달랐다.
“난 상관없어.”
그 대답에 강시온은 놀랐다. 그의 눈꺼풀이 크게 흔들렸다.
“무슨. 무슨 의미야?”
보기 드물게 시온이 말을 더듬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상관없어.”
“되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네가 원한다면.”
강시온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진재희는 시종일관 테이블 위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온은 다시 낮은 어조로 물었다.
“거짓말이지?”
“거짓말 아냐.”
그럼에도 진재희의 대답은 확고했다. 그리고 진재희 옆에서 오랫동안 함께해 오던 시온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진재희는 조금 침묵을 유지하더니 다시 말했다.
“돌아가고 싶어. 어젯밤에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돌아가고 싶을 거야. 그게 내 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꿈을 위해 너랑 헤어지기는 싫어. 너랑 대립하기 싫다고. 분명 돌아가고 싶지만, 너와 함께하고 싶은 것도 맞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나 혼자선 아무것도 안 돼. 네가 만약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택을 한다면 난 그냥 따를 거야.”
강시온은 살짝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눈동자를 보여 주지 않았다.
진재희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솔직히 이젠 뭐가 옳은지도 모르겠어. 난 한평생 이 세계가 가짜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쩌면 가짜는 내 꿈이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 말 뒤론 진재희는 말을 한 번 삼켰다. 그러곤 곧바로 자신의 본심을 말했다.
“너랑 헤어지기 싫어. 너와 사이가 틀어질 바엔 그냥 따를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