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화. 정점에 오르다
파란색 기와가 덮여 있는 건물.
과거에는 대통령이 살았고, 지금은 폐허가 된 건물.
메트로 세력은 기존의 청와대를 방치하고 새로운 거점을 만들어 생활했기에, 전쟁이 끝난 직후 청와대는 허름한 폐허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윤하를 중심으로 청와대는 새롭게 건축되었고, 지금은 어엿한 국가통수권자의 생활 공간답게 재정비되어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청와대를 중심으로 몰려 있었다.
수천 명에 이르는 인파가 모두 한 명의 남자를 부르고 있었다.
최명준의 정예대는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하고 경비를 섰다.
그렇게 통제된 길목으로 검은 세단 한 대가 들어왔다.
세단을 끌고 있는 건, 거대한 사슴들이었다. 그리고 세단을 탄 자는 다름 아닌 새롭게 서울의 지배자가 된 강시온이었다.
차량이 통제된 골목에 정차하자, 두 명의 부하가 다가와 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곳에서 먼저 내린 건 하윤하였고, 강시온은 그녀를 따라 내렸다.
그는 하윤하의 안내에 따라 차단된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강시온이 모습을 드러내자, 웅장했던 시민들의 함성이 더욱 힘차게 광장 내 울려 퍼졌다.
그가 예상한 것을 한참을 웃돌 정도로 엄청난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마저도 통제된 인원이라고 했다.
광장에 모인 인원에 준하는 인원들이, 이곳에 오지 못해 멀리서 지켜본다고 했다.
두 마리의 거대한 오우거가 앉은 다리로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기존의 무장과는 사뭇 달랐다.
견장부터 갑옷, 철갑 투구와 등에 멘 거대한 철검과 창까지.
전사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하윤하는 그 두 마리를 올려다보던 강시온에게 설명했다.
“이번에 새롭게 계획하고 만들어낸 전사 오우거입니다. 원래 기존 오우거가 수동적으로 적에 대항했다면, 이 개체들은 뛰어난 지능을 겸비하여 능동적인 전투를 펼칠 수 있죠.”
오우거도 처음 길들였을 당시부터, 여러 세대를 거쳤다.
그 과정에서 멍청한 개체는 빨리 죽어 버렸고, 똑똑한 개체는 살아남아 번식했다.
오우거의 성장 주기는 인간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알에 태어나는 놈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신장이 3m에 육박했고, 4개월이면 성체가 된다.
“이 두 마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시험 단계입니다.”
“그럼 날 알아봐?”
“네. 주인이 누군지 아는 거죠. 그리고 명령이 무엇인지도 알아차리고요.”
“…….”
확실히 대단한 성과다.
몬스터를 길들이는 것도 모자라, 주인을 알아보고 능동적인 전투를 펼칠 수 있는 개체로 만들다니.
오우거 부대는 지난 몇 번의 전쟁을 통해 실전 데이터를 쌓았고, 이미 반도 내에선 상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
시온은 그 두 마리를 가만히 올려다보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청와대 건물 입구 쪽에서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강시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동생 강준호였다.
* * *
“날이 참 좋다. 그렇지? 형.”
“그렇네.”
난 동생과 함께 청와대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광장에 있던 시민들의 함성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반면 건물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간혹 문지기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그 외의 사람은 없었다.
나와 동생은 문지기가 열어 주는 문을 지나쳐 방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대통령 집무실.
과거 대한민국을 지배하던 사람이 사용하던 곳이다.
하윤하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며 책상 위에 있던 명패를 가리켰다.
“서울 위원장, 강시온. 어때요? 장인이 손수 이름을 새긴 건데.”
“……분명 말하지만, 굳이 이럴 것까진 없었잖아? 쇼에 불과하잖아.”
“정치는 쇼라고. 위원장님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셨죠.”
……그랬네.
처음 하윤하에게 왕의 자리를 교육시킬 때, 정치는 보여 주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것이 효율적인가에 대한 질문은 필요 없다.
서울 지역의 정치에 관련한 모든 것이 하윤하를 통해 흘러가니, 그녀가 계획한 쇼에 난 따를 뿐이다.
그때, 준호가 내 등에 손을 대며 말했다.
“앉아 봐. 형.”
준호는 마치 놀이공원에 놀러 온 것처럼 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의자에 다가갔다.
세상에 멸망한 뒤였음에도, 책상부터 의자까지 전부 새것이었다.
새것을 구하는데 꽤 많은 비용이 들었을 듯싶다.
천천히 의자에 앉아 보았다.
내 앞에는 준호와 윤하가 나란히 서 있었다.
“…….”
그때, 준호는 말했다.
“형. 최고의 자리에 앉은 기분이 어때?”
마찬가지로 하윤하 역시 한마디 거들었다.
“그 자리는 오로지 위원장님께서 스스로 일궈 내신 자리입니다. 굉장히 좋아 보이세요.”
그들의 달콤한 소리가 날 홀리는 듯했다.
최고의 자리.
이 자리는 이 세계 속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어깨가 많이 무겁다.
다만, 최고의 자리에 앉았을 때 느낀 감정을 표현하자면.
마음 한편이 텅 빈 것처럼 공허했다.
분명 모든 이가 탐낼 만한 최고 권력의 자리이긴 했지만, 충족되지 않은 허전함은 여전했다.
그런 생각이 드니,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뭘까, 이 허전함은.
채울 수 없는 이 허전함.
난 내 앞에 있던 둘에게 말했다.
“잠깐만. 혼자 있고 싶은데, 조금만 밖에서 기다려 줄 수 있겠니?”
두 아이는 곧장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나갔다.
* * *
하윤하는 위원장 집무실 밖으로 나와 한동안 기다렸다.
그러다 힐끔 강준호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위원장님의 동생.’
형제이긴 했지만 둘의 신장 차이는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둘이 형제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건, 날카롭게 찢어져 있는 저 눈매 때문이었다.
‘위원장님께 들어보니까, 나랑 나이도 같다고 하던데.’
같은 안양시 출신이라면 어쩌면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실제로 하윤하와 정현수는 서로 모르는 사이이긴 했지만,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물론 하윤하는 강준호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윤하는 준호와 친해지기 위해, 물었다.
“준호 씨는 초등학교 어디 나왔어요?”
하윤하가 그렇게 물어보자, 강준호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말 걸지 마라.”
“…….”
……싸가지 없네.
하윤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강준호는 강시온이 불러서 다시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고 하윤하는 되돌아갔다.
* * *
시온은 집무실 한 편에 마련된 소파에, 준호와 마주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책상 위에 있던 작은 노란 꽃이 담긴 꽃병에 있었다.
준호는 아직까지도 함성이 가득한 창문 쪽을 한 번 바라보며 시온에게 말했다.
“정말 엄청난 함성이네. 저 많은 사람이 오전 내내 지치지도 않고 소리치고 있어. 내 시민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충성심이야. 대단해. 형. 아무것도 없이 여기까지 세력을 키우다니. 지지율도 거의 100이겠는걸?”
준호의 물음에도, 시온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꽃병 쪽에 손을 뻗어 꽃잎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들어 올렸다.
시온은 부드럽게 꽃잎을 쓰다듬었다.
형의 행동을 바라보던 준호는 조금 불안감이 들었다.
형의 침묵은 왜인지 무서웠기 때문이다.
분명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것인데, 할 말을 하고 있지 않다면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강준호에게 강시온이라는 존재는, 아버지이자 형. 그리고 인생의 스승이었으니까.
준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이번에도 시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꽃잎을 쓰다듬다, 뚝 떼어 버릴 뿐이었다.
시온은 노란 꽃잎을 손에서 놓쳤고, 꽃잎은 팔랑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침묵하던 시온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흔히들 컵이 깨져 물이 엎질러진다면, 다신 주워 담을 수 없다고 하잖아.”
“…….”
준호는 말없이 형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 말은 컵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의미로 쓰이지만 컵은 깨져. 조심한다고 해서 컵이 안 깨지진 않아. 그러니까 엎지른 물은 영원히 그 컵에 채울 수 없어.”
“그렇지. 형.”
“이 짧은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왜 엎지른 물에만 초점을 맞출까? 중요한 건 물컵인데 말이야.”
준호는 형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참 난해하고 복잡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시온은 정확한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수수께끼는 수수께끼로 남겨 두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 법이다.
시온은 그제야 준호를 바라보았다.
약간은 슬픔이 묻어있는 눈동자였다.
“터놓고 얘기해서. 어쩌고 싶어? 속 시원하게 말해 봐.”
시온의 돌직구에, 오히려 준호는 담담했다.
준호는 시온의 눈을 피해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침묵은 길게 유지되었다.
5분이고, 10분이고.
시온은 동생이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때까지도 거리의 함성은 전혀 줄지 않았다.
두 형제는 지금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기로에 놓여 있었다.
숨을 깊게 내쉰 준호는 입을 열었다.
“형이 이 리그에 남아 줬으면 좋겠어.”
“내가 이 리그에 남아있다니?”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는 거야. 형이 가진 이 세계를, 형이 가진 위치를.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이 삶과 혜택을. 형. 나는 결코 돌아간다고 해서 지금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곤 생각 안 해. 더 지옥 같겠지. 더 처절하고. 여름이면 바퀴벌레랑 모기가 들끓는 그곳이랑. 이곳은 다르잖아? 형을 봐. 형은 지금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는 자리에 있어. 그런 엄청난 자리를 버려두고, 반지하로 돌아가고 싶어?”
“이 세계는 가짜야. 꾸며진 세상이라고.”
“가짜가 아니야. 형. 이건 일어난 일이야. 우리한테 닥친 일이라고. 어떻게 그 삶이 더 좋을 수가 있겠어?”
준호의 진정성 있는 말에 시온은 눈을 살며시 감으며 생각했다.
그런 시온에게 준호는 계속해서 말했다.
“돌아간다는 건. 포기한다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건. 그건…….”
준호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지만, 형이 자신의 뜻을 알아줄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몬스터를 죽이거나 타인을 굴복시키는 건, 준호에게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건 그저 힘만 있었으면 되니까.
하지만 누군가를 설득하는 건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형인 순간 강준호는 어찌할 줄 몰랐다.
물론 강시온은 달랐다.
그는 고급 소파에 편히 몸을 기대 한쪽 벽면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벽이었다.
시온은 나긋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 이 세상에서 우린 타인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을 수 있어. 이 자리는 누군가에겐 꿈의 영역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염원일 수도 있겠지. 또 누군가에겐 승복하고 그저 우러러볼 자리일 수도 있겠지. 동의해. 만약 돌아간다면 우린 절대 다시 이런 사회적 위치를 얻지 못하겠지.”
“형. 그럼.”
“하지만. 세상이 명예와 권력, 힘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라면. 오직 그것들만이 각자의 꿈을 규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라면. 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
“받아들일 수 없다니?”
준호의 물음에 시온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말했다.
“난 네가 대학 가는 게 꿈이었어.”
그 말에 준호의 심장이 철렁 가라앉았다.
강시온은 여전히 그 아무 의미도 없는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나은 형편을 만들고, 네가 성인이 되어 어엿하게 사회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지내는 거야. 어떻게 보면 하찮은 꿈이지. 일 년에도 수십만 명이 대학생이 되는 것이 꿈이라니. 모르겠다. 내가 멍청한 것일 수도.”
강시온을 바라보는 강준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게 뭐야.’
강준호의 눈매가 슬픔에 일그러졌다.
강준호는 그런 말을 해 대는 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바보 같아.’
정말 바보 같잖아.
정말 하찮은 꿈이다.
기껏해야 자기 동생이 대학 가는 게 꿈이라니.
대학이야 돈만 주면 가는 거 아닌가?
그딴 게 고작 형의 꿈이라면 자신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X발, 일억 번이고 이루어줄 수 있다.
그게 꿈이라면, 형은 뭐가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왔던 걸까. 왜 그렇게까지 힘들게 몸을 혹사하며 살아왔던 걸까.
새벽 세 시.
인기척에 잠에서 깬 준호는 엉금엉금 기어 방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줄기에 눈을 담았다.
형은 언제나 이 시간이 되면 현관에 등을 구부려 앉아 안전화 끈을 묶고 있었다.
새벽이고, 거리는 어두컴컴했다.
거리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나돌아다닐 시간, 형은 언제나 출근을 한다.
그게. 그런 생활이.
고작 자신을 대학 보내기 위한……!
벌떡!
“병신 같잖아!”
준호는 참지 못하고 일어나 소리쳤다.
준호의 눈망울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진짜 병신 같아. 형. 진짜 병신 같다고! 그게 뭐야……? 그게 X발 뭐야……? 그딴 거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형이 안 그래도 된다고!”
“…….”
“대학가는 게 뭔데. X발……. X발 뭔데! 그렇게 목숨 거는데……. 어?!”
준호는 울음을 삼키느라 호흡조차 거칠었다.
동생은 형에게 애원했다.
“그냥 편하게 살아. 그냥 여기서 살라고. 여기면 우리 둘 다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거잖아……? 세상 사람들 전부! 형한테 굽신거리고! 따르잖아! 이게 이상적인 삶이잖아……. 내가 만들어 놨어. 내가 준비했어. 내가 전부! 이루어 줄게! 대학……? 대학 만들면 돼. 우리가 만들면 된다고. 만들자. 우리가. 어, 어, 어, 어디에 만들까? 서울 전체를 대학으로 만들까? 응? 내가 하루 만에 만들어 줄 수 있어.”
“…….”
시온은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준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런 시온을 바라보며 준호는 어눌한 말투로 물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 봐.”
“…….”
“X발. 아무 말이라도 해 보라고.”
“…….”
“한 마디면 돼. 한 마디면…….”
“…….”
“…….”
시온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