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화. 진실에 다가가는 자
원탁을 중심으로 네 명의 사람이 모였다.
강준호의 왼편에 앉은 ‘강시온’이 물었다.
“어땠어? 좋았어? 네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형을 만났는데.”
왼쪽의 시온은 낄낄대며 물었지만, 강준호는 담배를 피울 뿐이었다.
“근데 그건 네가 알던 강시온이 아니잖아. 그치? 네가 원했던 형도 아니고.”
그때, 준호의 오른편에 앉아 있던 관리자 A가 말했다.
“진리를 저버리고 계약을 이행한 결과다. 그건 원래 있어선 안 될 이야기였어. 하지만 네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형을 만나고 싶어 했기에, 네 인생을 건네주는 것을 조건으로 우린 기꺼이 너의 바람을 들어주었지. 계약자. 계약은 잊지 않았겠지?”
계약자 강준호는 침묵했다.
준호를 기준으로 반대편에 앉아 있던 검은 가면을 쓴 절대자 역시 침묵했다.
준호는 담배를 길게 빨며 절대자를 바라보았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놈이다.
단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낸 적 없고, 말조차 잘 하지 않는 이 리그의 최정상에 있는 자.
절대자 역시 매서운 눈동자로 강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준호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 목소리에 왼 시온은 낄낄대며 말했다.
“글쎄, 선택은 네 몫이지. 동생아?”
그때, 강준호는 주먹으로 강하게 원탁을 강하게 내려쳤다.
쾅-!
그러고는 왼쪽의 시온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 더러운 입으로 날……. 동생이라고 부르지 마.”
강준호의 위협에도 왼 시온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낄낄댔다.
“하아-. 무섭네. 무서워. 내 차원에서 내 동생은 항상 처맞으면서 자라서, 내 목소리만 들어도 벌벌 떨었는데.”
“…….”
“하여튼 동생 놈의 새끼는, 어릴 때부터 처맞으면서 자라야 하는데. 버릇이 존- 나게 없어요. 형님한테.”
“그만하시죠.”
깐죽대는 왼 시온을 관리자 A가 말렸다.
절대자의 말에 왼 시온은 낄낄대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래~.”
다시 관리자 A는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린 이 세계의 강시온을 이미 만났다. 하지만 퍼즐을 이루기에는 부족해. 난 이번 리그를 통해 퍼즐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지. 그 과정에서 넌 원래 강시온이 짊어져야 할 운명을 대신 짊어졌다.”
“…….”
“이제 관리위원 측은 강시온이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어. 이번 리그는 우리가 꽤 힘을 들여 만든 이야기이니,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 끝내야만 해. 그래서 너와 계약한 거야.”
관리자 A는 잠깐 숨을 들이 마시곤 되물었다.
“계약을 재정비하지. 우리가 체결한 계약에 대해 말하라.”
“…….”
강준호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다른 손으론 계속해서 지포 라이터의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지포 라이터의 뚜껑 소리만 이 공간을 채워갔다.
관리자 A는 다시 강하게 말했다.
“계약자.”
“알고 있다고.”
팅-. 타악!
강준호는 지포 라이터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등에 핏줄이 일 정도로.
강시온이 퍼즐인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다만, 강시온이 이제 스스로 퍼즐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퍼즐이 된다는 것.
그건 이 다중 우주의 한 퍼즐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함께 앉아 있는 시온과 절대자도 그 무수히 많은 퍼즐 중 하나들이다.
하지만 강시온의 곁에 진재희가 있다면, 기껏해야 만들어 놓은 퍼즐이 무너지게 된다.
절대자의 입장에선, 리그를 통해 공들여 만든 퍼즐을 도로 부수는 꼴이다.
그러니 그러한 결과를 맞이하지 않도록 다른 계약자를 구해야만 했다.
절대자는 그 적임자로 강준호를 꼽았다.
둘의 계약은 단순하다.
강시온의 완전한 퍼즐화를 위해, 강준호가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다.
강시온의 퍼즐이 완성되기만 한다면, 그의 영생을 보장해 주겠다. 그것이 강준호와 절대자 간의 계약이었다.
강준호는 지포 라이터를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콰직-!
그러자 지포 라이터는 그의 손아귀 안에서 가루가 되었다.
‘되돌아갈 순 없어. 그 X신 같은 세상. 구더기 같은 삶. 되돌아갈 순 없어. 형. 진짜 이해가 안 돼. 왜 되돌아가려고 하는 거야?’
이곳에 있으면 자신들은 신처럼 지낼 수 있다.
모든 이가 강시온을 숭배하는 것이다. 그게 더 좋은 삶 아닌가? 반지하 일용직 노동자의 삶이 더 좋을 리가 없다.
이 세상에서 형과 자신은, 모든 이에게 칭송받는다.
영생을 살아갈 형을 위한, 도시는 이미 만들어두었다.
시온의 생각이 어떻든. 준호는 상관없다.
형이 잘 살아 줬으면 하는 것이 동생의 바람이다.
수원이라는 도시는 자신이 떠나버린 이 세계에서 형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 같은 사실을 형이 안다면 분명 반대할 거고 나무랄 것이다.
그러니 이건 준호만의 계획이고, 계약이었다.
자신은 언제나 그런 생각을 고집해 왔다.
‘고집이라도 상관없어. 그 삶은 잘못되었으니까. 지금 이 세상이 우리 형제에게 주어진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삶이야. 그건 변하지 않아. 절대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리 없어.’
다 그 여자 때문이야.
그 여자가 형을 물들인 것이다.
강준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가루가 되어 버린 라이터의 잔해가 스르륵 원탁에 떨어졌다.
그때, 관리자 A는 다시 말했다.
“전체 회귀는 절대 불가하다.”
“…….”
“이 리그는 언제나 유지될 것이다.”
그건 강준호의 생각이 아닌, 필연적인 작용이다.
“……그러니 넌, 그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네가 형을 만난 대가이다. 그리고 네 형을 지킬 네 방식이기도 하다.”
형과 자신은 애초에 안 될 사이였다.
하지만 무리한 계약으로 만나게 되었고, 그 대가는 컸다.
강준호는 강시온을 살리기 위해 제물로 바쳐질 것이고, 그렇게 강시온은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퍼즐이 되어, 또 인간들의 절대 신이 되어 영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게 정해진 결말이다. 변할 수 없는 결말.
강준호는 절대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절대자는 지금껏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강준호의 마지막 질문에는 마침내 몸을 움직였다.
절대자는 앞으로 몸을 기울곤, 깍지를 껴 원탁 위에 올려두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를 음성이 다시 울렸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뒤. 게이트를 열겠다. 우리가 필요한 퍼즐은 완성했어. 강시온은 이미 충분히 이 세계로 올 자격이 있지. 하나, 관리자를 비롯해 나는 너희의 일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러니 네가 막아야 할 거다. 그 여자를.”
준호는 뜸을 들이다 되물었다.
“죽이라는 소리냐?”
준호는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정말로.
진재희를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형을 위해서였다.
절대자는 말했다.
“너의 판단이다. 다만 우리가 게이트를 연다면, 이 리그의 퍼즐을 정할 수밖에 없고. 그 퍼즐은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건 진리지. 진리는 우리조차 관여할 수 없는 생명체가 가진 고유한 능력이다. 만약 그 선택에서 강시온이 되돌아간다는 선택을 한다면, 모든 것이 무산되겠지. 네 역할은 그거다. 강시온을 이 세계에 머무르게 하는 것.”
“…….”
복잡한 감정에 준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형의 마음을 따른다면, 형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의미가 없었다.
준호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절대자는 일그러진 준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되돌아갔다.
등 뒤에서, 시온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 목소리는 강준호의 귀에 속속 박혔다.
“눈물겨운 형제애다!”
“비극적이야-!”
“기껏 만났는데, 한 사람은 죽어 버릴 운명이라니-!”
“세상을 오래 살다 보면 정말 재밌는 일이 잔뜩 벌어지는구나!”
“푸하하하하하! 야! 몇천만 년을 살아 봐라. 네가 느끼는 그 감정, 아무것도 아님을 느낄 거다!”
“푸흐흐흐.”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형의 얼굴을 한 그놈은, 형의 목소리로 계속해서 웃음소리를 터트려 댔다.
준호는 그 웃음소리가 굉장히 역겨웠다.
* * *
서울 전쟁이 끝날 무렵,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겨울은 끝나고 가로변의 꽃은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하윤하와 함께 잠시 산책을 하고 있었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것보단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만경은 더 이상 개인이 통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중앙집권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수많은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있어야만 국가가 운영될 정도였다.
더 이상 만경에는 적수가 없었다.
경기 북부의 소규모 집단도, 강원도 쪽에 있던 부족 집단도.
모두 스스로 내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그런 것보단 아무래도 허전함이 먼저였다.
동생이 이따금 찾아오긴 하지만, 언제나 곁에 있던 진재희가 없으니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6개월 동안 거신을 찾으러 떠난다던 진재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연락도 2주 전에 완전히 끊겼다.
그녀의 마지막 연락은 백두대간의 시작, 백두산에 도착했다는 편지였다.
편지는 비둘기를 통한 고전적인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만하면 됐는데.’
몇 걸음 걸으니, 최명준이 다가왔다.
최명준은 내 앞에 서선 고개를 푹 숙였다.
난 그를 바라보았다.
“말씀하신 특정 드워프를 모으는 중이고, 자재부터 붉은 원석 광산. 인력과 군사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응.”
최명준은 보고를 마치고 돌아가려다, 되돌아와 내게 말했다.
“아……. 저 형님?”
난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의 걱정에 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별거 없어. 일 봐. 요즘에는 정현수와 같이 있다고 했나?”
“예. 서울을 정복하고, 이제 더 이상 한반도에 적수가 없다 한들. 전쟁 준비를 소홀히 할 순 없죠. 계속해서 훈련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쪽으로 가서 경비 임무를 수행해야겠죠.”
“그래.”
최명준은 곁에 있던 하윤하에게 말했다.
“꼬맹아. 형님 잘 모시고 와라. 난 먼저 가 있을라니까.”
“……네. 걱정 마시라고요.”
“형님. 그럼 가 보겠습니다.”
최명준은 내게 고개 숙이곤 되돌아갔다.
난 다시 다리를 바라보았다.
어쨌거나 도시 발전은 순조롭다.
이곳은 여의도.
전쟁 탓에 서울의 남과 북을 잇는 유일한 다리는 없어졌지만, 기둥은 남아 있었다.
난 그 기둥을 토대로 건축물을 쌓아 올려 다시 다리를 건축했다.
이 다리 건축에도 오우거의 힘이 쓰였다.
나무를 토막 내고 기둥을 이어 도보를 만들었다.
물론 현대 기술만큼 견고한 다리를 만들 순 없기에, 한강을 이동하는 데에는 배의 역할이 컸다.
원래 한강을 점령했던 슬레디만은 말도 안 되는 먹성과 포악한 성질로 배의 왕래를 막았다.
하지만 그런 슬레디만의 천적이 오우거였다.
사실상 오우거의 식량과 주거 환경 문제를 슬레디만이 단번에 해결해 준 격이다.
덕분에 한강은 슬레디만 밭에서, 오우거 밭으로 탈바꿈하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엄청난 몬스터들이 전부 나의 명령을 알아듣고 이행한다는 것이겠지.
신장 10m가 넘는 인간형 몬스터가 한강을 중심으로 서식하는 꼴을 보니 나름 장관이었다.
곁에서 말없이 나의 발걸음을 맞춰 걷던 윤하에게 물었다.
“다리는 어때? 이용객들의 불만은 없었어?”
“전혀요. 오히려 이 서울의 명물이 되었으니까요. 먼 곳에서 이 다리를 보기 위해 오는 방랑자 무리도 있을 정도예요.”
한강에 바글바글하던 슬레디만이 해결되자, 다리 축조 사업은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다.
거대한 바위나 나무 같은 건, 오우거가 옮기고 정교함이 필요한 작업에는 만경의 기술자들이 나섰다.
여의도에 다리를 건설하는 데는 한 달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이곳 여의도는 서울의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
남쪽으로는 수원.
동쪽으로는 강남, 강원.
북쪽으로는 경기 북부.
서쪽으로는 인천까지.
네 개의 지역을 잇는 중심지다.
그 중심지를 소유한다는 건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국가가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큰 발판은 경제력과 인구다.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여의도 중앙 시장’은 동생이 가지고 있는 수원 시장보다 더 컸다.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 일파만파 각 지역에 퍼져 나가자, 시장에는 새로운 손님들이 찾아왔고 이는 인구수 증가 효과를 낳았다.
시장의 형성은 국가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모든 건 하윤하가 계획한 사업이기도 했다.
윤하는 웃으며 내 소매를 끌었다.
“자. 이제 다리를 건너가요. 아마 지금쯤 준비를 마쳤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윤하에게, 난 물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윤하의 생각은 달랐다.
“당연하죠! 이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생각해요. 저뿐만 아니라, 세력을 구성하는 모든 사람이 그리 생각하고 있어요. 상징이죠. 상징. 국가 지도자에겐 상징이 필요하고, 제가 볼 땐 이것도 너무 늦었어요.”
“별로 내키지 않아.”
“준비 다 했으니까. 그냥 방문만 해 주시면 돼요. 잠시만요. 마음 바꾸시기 전에 서둘러 이동해야겠어요. 마차!”
윤하는 달려 나가 마차를 끌고 왔다.
난 한숨을 작게 내쉬곤, 윤하가 몰고 온 마차에 몸을 실었다.
마차는 새로 지어진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넘어갔다.
얼마나 갔을까.
멀리서 청와대가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