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1화. 드래곤의 영역 (4)
강시온과 권종현을 곁에서 바라보던 정현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양쪽 다 엄청난 기세다. 한 치도 물러설 수 없을 만큼. 대단해.’
일반인이 보기에 두 남자가 가지고 있는 기세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 생물의 정점에 있는 자들이었다.
강아지가 호랑이를 보면 본능적으로 오줌을 질질 싸듯.
두 남자는 호랑이 그 이상의 힘을 서로에게 내뿜고 있었다.
리그를 구성하는 최강자들끼리의 만남이다.
긴장하고 있는 건 정현수뿐이 아니었다.
적룡도 강시온의 힘을 느꼈다.
함부로 덤벼들지 않고 권종현을 감싸고 있을 뿐이다.
그때 권종현이 입을 가리고 웃어 댔다.
“크크크크…….”
강시온은 말없이 그가 어떻게 나오는지 관찰했다.
적대적으로 나온다면 이쪽도 방법이 있다.
하지만 강시온은 생각했다.
자신의 제안을 권종현이 듣는다면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고.
권종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적룡은 거대한 얼굴을 그에게 들이밀었다.
권종현은 적룡의 피부를 쓰다듬으며 안심시켰다.
“괜찮아. 위험한 남자는 아니야. 걱정하지 마. 네가 위험한 건 없어.”
권종현은 적룡의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왔다.
강시온은 그제야 권종현의 외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땅에 닿을 만큼 긴 머리카락을 끈 하나로 묶고 있었다.
온몸에는 상처투성이였으며 왼 팔꿈치부터 가슴까지 나 있는 문신이 압권이었다.
그의 상체는 벗고 있었고, 하체는 반바지, 신발은 허름한 샌들을 신고 있었다.
권종현은 점점 다가와 강시온 바로 앞에 섰다.
그 순간까지 정현수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애먹었다.
그가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포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현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권종현이라는 남자 또한, 강시온과 같다고.
숨 쉬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공기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모든 걸 집어삼킬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두 남자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먼저 입을 연 건 권종현이었다.
“서울의 지배자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어처구니없는 제안이네.”
“난 네게 기회를 주고 있는 거야. 난 너와의 대결을 원치 않아. 가능하다면 공존을 선택하겠어.”
“대결? 공존? 웃기는군. 공존이란 건 없다. 네가 플레이어고, 내 친구가 3라운드의 목표인 순간부터. 한 새끼가 뒤질 때까지 끝나지 않는 거야.”
권종현은 주머니 속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그런데 솔직히 좀 놀랐다. 서울의 지배자 정도 되는 남자가 기껏해야 꼬맹이 한 명만 데리고 왔을 줄이야. 겁이 없는 건지. 아님, 무모한 건지.”
권종현은 담뱃불을 붙이며 정현수를 쏘아보았다.
그 매서운 눈빛에 정현수는 순식간에 눈을 거두었다.
권종현은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적어도 네 곁에 있던, 그 힘. 은빛의 검사나, 강한 전사의 향이 나는 그놈인 줄 알았다.”
은빛의 검사는 진재희. 강한 전사의 향은 최명준을 의미했다.
물론 권종현은 그 둘의 힘만을 느꼈을 뿐이지, 누구인지는 모른다.
권종현은 강시온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위의 두 가지 힘을 거느린 것뿐만 아니라, 메트로 세력을 한 번에 무너뜨린 장본인이었으니까.
그 능력은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면한 순간, 절대 만만치 않은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권종현도 강시온을 대할 때 신중했다.
그건 강시온도 마찬가지였다.
전생에 자신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 권종현이었으니.
“한 가지 묻지. 네 목적이 뭐지?”
“우릴 내버려 두는 거다.”
“그 이왼?”
“아무것도 없어. 그냥 너희가 이곳에서 관심을 끄고, 꺼졌으면 해. 그게 내 유일무이한 바람이다. 하지만 불가능하겠지. 라운드의 클리어 조건이 내 친구이니까 말이야. 넌 내 친구를 죽이지 않으면 본인이 죽을 거야. 그리고 네 부하들도, 시민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니까 너와 난 적일 수밖에 없어.”
그때, 또다시 적룡이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
적룡은 권종현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권종현은 지금 언제든지 강시온을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강한 살기를 흘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마주한 모든 군주는 그랬다.
적어도 권종현은 이 리그를 거부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만약 강시온이 다른 이들과 똑같이 적룡을 노린다면, 이자가 서울의 지배자이든 얼마나 강력한지는 상관없다.
죽기 전까지 적룡을 지키다 죽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강시온은 달랐다.
“그렇다면 좋아. 건드리지 않을게.”
“뭐?”
강력했던 권종현의 살기가 사그라들었다.
그는 눈동자를 치켜뜨곤 강시온을 내려다보았다.
강시온은 말했다.
“너와 내 생각은 일치해. 적어도 드래곤을 지킨다는 것에 대해서는. 난 드래곤을 지킬 거다. 그리고 네가 이곳에서 안 나온다면 나야 더할 나위 없이 좋아. 이곳에서 조용히 지낸다면, 만경도 너희들의 생활을 보장하겠어.”
근데 이 조건에 전제가 있다.
“조건이 있어. 네가 한 말을 지키는 거야. 넌 이곳에 있어. 그게 내 조건이다. 단 한 발자국도 허용하지 않을 거야. 이 장소에서, 넌 나올 수 없어. 적룡도 마찬가지야. 나의 세력에 그 어떠한 피해도 입혀선 안 돼. 내 세력에 속한 그 어떤 인물이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너와 네 적룡이 죽인다면. 난 그 사실을 좌시하지 않을 거다.”
“…….”
권종현은 담배를 피우며 강시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난 리그를 치를 생각이 없어. 오히려 반대야. 리그를 파괴할 생각이다.”
그때, 권종현의 한쪽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어떻게?”
“네가 알 필욘 없어.”
“푸흐흐.”
권종현은 생각했다.
‘대단한 남자네.’
지금까지 만났던 X신 같은 군주들과는 그 꿈과 가치관이 차원이 달랐다.
리그를 파괴한다고?
감히 인간 따위가, 관리자가 설정한 리그를? 궁금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과연 서울의 지배자다.
이 남자가 서울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결코 우연과 운이 따르지 않았다.
오로지 본인의 능력으로만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권종현은 말했다.
“받아들이지.”
“좋아.”
강시온은 그 말만을 내뱉고는, 뒤돌아 걸어갔다.
정현수는 끝까지 권종현을 경계하다가 시온을 따라갔다.
강시온은 몇 발자국 더 가다간 권종현을 돌아보았다. 그는 권종현을 살피며 말했다.
“의료진을 보내겠어. 해치지 마라.”
“…….”
권종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 * *
나는 적룡의 둥지를 나와 병력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무장한 4천 명의 병사와 100마리의 오우거가 정렬해 있었다.
나는 정렬한 황민재에게 해산하라고 손짓했다.
그러자 황민재는 고개를 끄덕이곤 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의 상황에 대비해 긁어모은 병력이었다.
난 대기 중이던 의료진에게 다가갔다.
“가도록 하세요. 제가 잘 말해 두었으니까. 이제 괜찮으실 겁니다.”
“예. 위원장님.”
의료진이 저마다 의료 상자를 짊어진 채 둥지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공병들이 바리케이드를 들고 근처에 경계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저 경계선은 드래곤을 보호하기 위한 선이다.
나는 내게 다가온 지휘관에게 말했다.
“이곳을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으로 설정합니다. 침입한 사람은 신분과 이유에 상관없이 모조리 사살하세요.”
“알겠습니다.”
지역 자체를 봉쇄하여, 그 어떠한 위험에도 드래곤을 지키는 것이다.
이걸로 드래곤도 해결이다.
나의 의도대로 진행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때, 내 곁을 나란히 걷던 정현수는 아직까지 벌벌 떨면서 말했다.
“대, 대단하십니다. 전 그 남자 앞에서 차마 눈도 못 마주치겠던데.”
“목적이 같으면 싸울 이유도 없지. 싸우도록 유도하는 게 관리자들의 방식이니까.”
“위원장님께선 그놈한테서 나는 엄청난 피비린내가 안 느껴지셨습니까?”
“났지.”
엄청난 피비린내.
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로 포식의 향이었다.
대부분의 생물이 그 향을 맡기만 해도 두 다리를 벌벌 떨며 자지러질 것이다.
실제로도 권종현은 소문보다 더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그런 권종현을 적으로 돌리는 것보단, 아무래도 아군으로 두는 것이 나을 거다.
‘물론 목적이 달랐다면 해치웠겠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걸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해결되었다.
남은 건, 관리자의 반응이었다.
내가 만들어 놓은 이 덫에, 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본다.
예상하건대, 결코 가만히 내버려 두진 않을 거다. 온갖 비열한 수를 두며 날 끌어내리려고 할 것이다.
뭐든 상관없다.
내 영역의 확장은 기껏해야 서울에서 멈출 생각이 없다.
더 높은 곳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란 있었다.
그건 먼 곳에 있지도 않았다.
‘회귀’라는 것이다.
회귀자 진재희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녀는 어떤 힘에 의해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 리그를 변화시켰는가.
사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난 그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녀의 정체가 궁금했다.
처음 오우거의 굴에 들어갔을 때, 진재희가 보인 ‘가디언’.
그 스킬의 시전자는 분명 나였다.
저번에 만났던 이 리그를 구성하는, 절대자와 연관이 있을까.
그리고 그 절대자가 진재희의 회귀를 굳이 선택한 이유도 알 수 없다.
이건 이 세계의 진리에 근접해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다.
리그는 평정했지만, 정작 진재희의 정체를 알 수 없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이 세계의 비밀을 알아내야만 한다.
그게 내가 이 리그에서 짊어져야 할 마지막 숙제이기도 했다.
회귀자.
타임 리프.
다중 우주.
세 개의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 모든 것을 꾸민 관리자의 존재는 무엇인가.
놈은 도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난 되돌아갈 수 있는가.
* * *
목욕탕에 홀로 몸을 담그고 있던 강준호는 한참을 그곳에 있었다.
“…….”
잠시 생각하던 강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그가 일어나자, 시중을 드는 인원들이 단번에 다가왔다.
젊은 수원의 집행관은 말했다.
“만경 위원장님이 적룡과의 협상이 끝났다고 합니다. 성공한 모양입니다.”
“…….”
강준호는 부하가 건네는 수건에 얼굴을 묻고 대충 물기를 닦아 냈다.
두 명의 여자가 다가와 강준호에게 옷을 입혀 주었다.
집행관은 계속해서 말했다.
“위원장님. 그리고 그 여자는 몇 달째 만경에선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만경 위원장님의 부하이신 최명준의 상태 또한 호전되었습니다. 최명준은 어떡합니까?”
수원의 가장 높은 곳에는 강준호가 살아가는 공간이 있었다.
오로지 강준호의 안위(安慰)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먼 창문 너머로 수원의 전경이 보였다.
강준호는 그 전경 속 수원의 모습을 눈동자로 담다가 말했다.
“형한테 보내. 보내라고 했으니.”
집행관은 강준호의 선택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따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집행관이 물러나고 강준호는 터덜터덜 걸으며 어디론가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강준호 외엔 그 어떤 인물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는 검은 카펫이 깔린 복도를 걸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복도의 끝에는 빨간 문이 있었다.
강준호가 그곳으로 다가가자, 빨간 문은 자동으로 열렸다.
“…….”
강준호는 문이 열렸음에도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선, 기어이 그 장소로 들어갔다.
이곳은 과거 지하 궁전에서나 볼 법한 넓은 공간이었다.
그 공간의 중앙에는 원탁이 있었다.
4개의 자리 중, 오직 강준호의 자리만 비어 있었다.
강준호는 호주머니 속 담배를 꺼내 원탁 위에 올려 두곤 한 자리를 차지했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곤 공허한 눈동자를 하고선 지포 라이터의 뚜껑을 올렸다.
팅-. 치이이이익.
담배 끝에 불이 만나 듣기 좋은 소리를 내었다. 강준호는 담배 연기를 한 번 내뿜으면서 지포 라이터의 뚜껑을 닫았다.
타악-!
“후우-.”
강준호는 깊은 한숨처럼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담배 연기가 흩어지며 각기 다른 원탁에 앉아있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