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화. 드래곤의 영역 (3)
젊은 남자 한 명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으로 산딸기를 집어 박미선에게 건넸다.
박미선은 남자가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그녀의 추잡한 입술이 오물거리며 음식을 삼켰다.
마찬가지로 남자는 다시 그녀의 입에 담배를 물려 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칙-.
푸우.
박미선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물었다.
“먼 곳에서 와서 고생 많았겠어. 강원도의 산림이 보통 우거진 게 아니었을 텐데.”
진재희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박미선을 위아래로 훑었다.
박미선은 그녀가 아는 최고의 쾌락주의자였다.
자신의 쾌락을 신에 빗대어 좋게 포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전생에도, 만경이 박미선을 건들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박미선은 리그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쾌락에만 관심이 있다.
그랬기에 강원도에서 자치를 선언한 박미선의 세력을 건들지만 않으면, 그녀와의 마찰은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강원도는 지리적으로도, 자원의 보유량으로도 크게 중요하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강시온이 박미선을 건들지 못했다기보다는 방치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필요 없으니까.
하지만 거신을 잡기 위해선 박미선을 손봐야만 했다.
진재희는 몸을 앞으로 기울며 물었다.
“거신을 찾고 있어. 여기 있지?”
박미선은 정체 모를 붉은 주스를 마시며 대답했다.
“……거신? 거신을 찾아온 손님이라.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보네. 거신이라고 하면 피하기 십상인데. 미안하지만, 거신은 이곳에 없어.”
그런 소리를 해 대는 박미선을, 진재희는 유심히 살폈다.
박미선이 음료수를 흘리자, 근처에 있던 남자들이 손수 닦아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쇄골 사이로 늘어진 줄에 매달린 펜던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붉은색으로 빛나는 보석이 박힌 펜던트였다.
진재희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것이 거신의 힘을 제어하는 장치라고.
그때, 박미선은 쩝쩝대며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나도 만경에는 흥미가 있어. 특히 그곳에서 영웅으로 칭송받는 남자 말이야.”
펜던트를 바라보던 진재희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찢어졌다.
“굉장한 남자야. 너도 알다시피, 군주 커뮤니티를 통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잖아? 일개 세력의 신하에서 군주로, 군주에서 왕으로.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미친 사람이긴 해.”
리그를 구성하는 군주와 아티팩트 플레이어들은 관리자에 의해 선발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강시온은 아티팩트 플레이어로 선발되었지, 군주로 선발되진 않았다.
그래서 관리자가 주관하는 투표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그 자리에서 강시온은 당당히 관리자로부터 군주의 권한을 부여받았다.
한 차례 리그의 룰을 뒤엎은 남자였다.
실제로 박미선뿐만 아니라, 많은 군주들이 이 이야기에 대해 얼추 알고 있었다.
박미선은 몸을 앞으로 조금 숙였다.
그녀는 타인의 도움 없이는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비만이었다.
“거신을 왜 찾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거신이 가지는 힘을 얻고자 함이겠지. 그렇지만, 거신의 힘은 선택받은 자만이 거머쥘 수 있는 것이야. 바로 나처럼 말이지.”
박미선은 거들먹거렸다.
진재희는 말없이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럼 여기서 하나 제안을 할게. 너. 만경 출신이지? 그렇다면 강시온을 데리고 와. 강시온을 내 앞으로 데리고 오면, 내 거신의 힘을 빌려줄지 안 줄지. 생각해 볼게. 어때?”
진재희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담배갑을 바라보며 물었다.
“방금. 네 입으로, 이곳에 거신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아. 그랬나? 뭐- 어쨌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언니야. 중요한 건 남자야. 난 남자만 있으면 돼. 맛있는 남자 말이지. 쫄깃쫄깃한 우럭 같은 살점을 가진 남자. 이 바닥에 있으면 좀 그래. 때 묻지 않는 육체를 찾기가 어려워. 난 웬만한 남자는 다 먹어보았지만, 정점에 있는 사람은 아직 못 먹어 봤어. 그래-. 언니-. 서울의 지배자 정도면-. 내 밤 시중을 들기에 충분- 할 거야.”
진재희는 박미선의 개소리 따윈 가볍게 무시했다.
그녀는 오히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담배와 라이터에 눈에 갔다.
담배를 끊는다고는 했지만, 사실상 평생 참겠다고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생각이 많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담배만 한 것이 없었다.
강준호와의 대화가 화근이었다.
‘어쩔 수 없이 피우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이건 내게 주는 진통제 같은 거지. 한 대만 피우자. 마지막 한 대만.’
덥석.
진재희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를 챙기곤 휴지로 조용히 감싸기 시작했다.
재희의 행동을 지켜보던 박미선은 인상을 찌푸렸다.
“언니. 내 말 들었어? 혹시 무시한 건 아니지? 여기 강원도야. 내 땅이라고. 내 땅. 여긴 내 말이 곧 법이야. 법. 언니, 끓는 기름에 산 채로 튀겨 줘?”
그런 협박은 진재희에게 통하지 않았다.
지금껏 수많은 절대 군주들을 상대해온 그녀다.
경찰서장 박건우, 동안의 군주 박지수, 메트로의 삼 교주. ……그리고 강준호까지.
그런 그녀가, 쾌락에 빠져 산림 속에 처박혀 있는 사이버 교주에게 겁먹을 필욘 없었다.
“닥치고 있어.”
“뭐?”
진재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격렬한 전투 뒤에 담배가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휴지로 몇 겹이나 감쌌다.
그러고는 가장 안쪽 주머니에 고이 넣어 두었다.
진재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화나면 다 때려 부수는 양아치 새끼들. 진짜 이해가 안 되었거든?”
“언니. 지금 뭐 하는 걸까나?”
박미선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자, 바깥에 대기 중이던 경비병들이 쏜살같이 뛰어와 창을 진재희에게 겨누었다.
진재희는 자신의 목에 창이 겨누어졌는데도,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할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지금은 살짝 이해가 돼.”
그때, 진재희의 손아귀에 은빛이 휘감겼다.
은빛의 선은 그녀의 손을 휘감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방으로 퍼졌다.
그러자 진재희에게 창을 겨누었던 두 경비병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박미선의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
“넌 네가 신인 줄 알지?”
재희의 머리카락이 은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양의 아티팩트 힘이 이 황금 궁전에 퍼져 나갔다.
작은 파공음까지 들릴 정도였다.
고오오오-.
은발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재희는 턱을 치켜올려 박미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넌 지금 내 화풀이용일 뿐이야.”
* * *
해가 한 번 완전히 저물었다가, 다시 떠올랐다.
이곳 황금 궁전은 강원도 산림 내에서도 꽤 높은 고지였기 때문에 동해의 해돋이도 훤히 보였다.
붉은 빛의 태양이 바다를 비추었다.
해돋이를 배경 삼아 황금 궁전 정상에 앉아 있던 재희는, 고이 보관하고 있던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고는 라이터를 켜 담뱃불을 붙였다.
크게 빨아들이고 내뱉었다.
푸우-.
폐에 니코틴이 차오르며, 심장이 느리게 뛰었다.
그녀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홀로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시온의 동생을 만났을 때, 정말 친누나처럼 잘 대해 줘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원체 누군가를 챙겨주는 걸 잘 못하기에, 시온에게도 정말 미안했다.
하지만 준호는 왜인지 다르게 느껴졌다.
강시온의 옆에 오랫동안 있다 보면 자연스레 강준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밀감이 들 수밖에 없었고, 언젠가부터 그가 정말 자신의 동생이라도 된 것처럼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
“…….”
하지만 막상 만난 준호는, 자신을 내쳤다.
자신을 더 이상 필요 없는 인물로 규정하고, 시온의 곁에서 떠나라고 했다.
이 상황을 진재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자신에게 강준호는 적이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강준호는 자신을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것도 확실하다.
담배 끝이 타들어 갔다.
재희는 착잡한 마음에 정말 오랜만에 담배를 피우는 데에도, 아까운 마음 없이 담배 끝이 타들어 가는 것만 보고 있었다.
“어떡할까……. 아빠.”
그녀는 이따금 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다.
한 가지 확실했던 건.
이 리그가 끝나고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재희에게 아버지는 없을 거다.
돌아간다고 해도 죽은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가끔 떠오르는 그의 얼굴은, 그녀의 마음속을 좀먹듯 갉아 댔다.
그럴 때마다 그립고, 더 사랑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쿠우웅-.
그러다 큰 진동이 울리자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몇 개의 산을 휘감은 여덟 갈래로 나뉜 거대한 다리가 있다.
백두대간을 거처로 살아가는 거신 문어.
놈은 산을 타고 이동하며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재희가 박미선의 펜던트를 부수자, 놈은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거신 문어는 진재희가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을 셈이었다.
물론 거신 문어가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진재희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황금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그 모든 황금색 계단은 이제 피로 물들어 있었다.
모두 박미선과 그의 졸개들의 피다.
강준호에 의해 잠깐 가려졌을 뿐, 그녀가 원래 리그 최강의 인물임에는 변함이 없다.
일개 세력 정도는 가볍게 토벌할 만큼 그녀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진재희는 회귀자다.
거신의 위치는 모두 알고 있었다.
강원도 토벌 이후에는, 강준호가 잡지 못한 북쪽의 땅을 공략할 것이다.
마지막에는 백두산 천지.
그 룡(龍) 거신까지 모두 잡은 뒤에 진재희를 상대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이 지구 안에선 없을 것이다.
강시온은 이제 충분히 성장했다.
이제 자신이 강해져야 했다. 아티팩트로는 절대 타인에게 밀려선 안 되었다.
강시온에게 허락받은 6개월.
그녀는 성장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우웅- 우웅- 우웅-.
세 개의 성검이 되돌아와 진재희 곁을 맴돌았다.
그녀는 자신이 이 세계의 최강자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또다시 성검을 휘둘렀다.
* * *
드래곤의 영역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나는 무너진 롯데타워의 잔해 속에서 붉은 비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시에 엄청난 양의 피 웅덩이도 있었다.
정현수는 내 곁에 바짝 붙으며 주위를 경계했다.
“조심하세요. 굉장히 불길한 힘이 느껴집니다.”
“알아.”
정현수는 나의 호위로 용의 둥지까지 따라왔다.
진재희와 최명준이 없는 세력에서 가장 큰 전투력을 가진 건 정현수였으니 말이다
나와 현수는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압도적인 적룡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었다.
-크르르르르르르르!
피를 잔뜩 흘리고 있는 적룡은 거대한 이빨을 들이밀며 날 경계했다.
정현수는 놈의 위협에 번개 활을 꺼내었다.
콰지지지직!
번개가 활의 형태를 띠더니 정현수의 손에 쥐어졌다.
그러자 적룡은 더욱 분노하여, 포효했다.
-쿠아아아아아아!!!!
놈이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포효했을 뿐인데도, 엄청난 풍압이 느껴졌다.
난 정현수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힘을 거둬. 자극하지 마라.”
“하지만…….”
“괜찮아. 내게 맡겨.”
난 현수를 진정시키고 앞으로 나아갔다.
적룡은 이젠 앞발을 들며 더욱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정말 압도적인 포스였다.
산만큼 거대한 용이 내 앞에서 이빨을 들이밀고 있으니, 지금껏 만났던 그 어떤 몬스터보다 더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난 적룡의 상처를 자세히 살폈다.
‘강남도 선방했다 이건가.’
적룡의 몸 구석구석에 거대한 창이 박혀 있었다.
그 창이 박힌 상처 틈에서, 붉은 핏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적룡은 한 남자를 감싸고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둥지에 낮게 울렸다.
“……서울의 지배잔가.”
짙은 적룡의 그림자 때문에 남자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그 매서운 두 눈동자만큼은 날 지켜보고 있었다.
난 세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적룡은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듯 포효했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곳이 마지노선인 듯싶다.
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남자에게 말했다.
“권종현이랬나. 이름이.”
“이상한걸. 그 누구도 내 이름을 모를 텐데.”
난 주머니에 양손을 넣었다.
과연 권종현이다.
동생과 비슷한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엄청난 살기, 피 냄새, 시체 냄새가 났다.
포식자, 권종현.
그는 전생에서, 최강의 생물이었다.
“더 다가오지 마라. 죽인다.”
권종현은 위협했다.
난 그의 몸을 살폈다.
여기까지 다가오니, 그의 몸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었다.
적룡과 마찬가지로 상처가 많았다.
진재희에게서 들었던 내용과는 달랐다.
포식자는 시체를 먹으며, 해당 사람의 능력을 얻는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몸은 회복한다고 들었는데, 지금의 권종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만약.’
권종현을 잡고자 한다면, 지금이 적기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난 권종현에게 말했다.
“너. 너랑 계약 하나 하자.”
권종현의 매서운 눈매가 양옆으로 더욱 찢어졌다.
“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