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드래곤의 영역 (2)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방법이 있어? 너무 자만하는 건 아니고?”
동생은 싱긋 웃으며 포크를 쥐며 말했다.
“……음. 물론. 어려울 거야.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슥슥-.
준호는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썰어, 조각난 고기를 포크로 찍어 먹었다.
“형도 알겠지만, 난 녹룡을 잡았어. 8년 전이었나. 언제였나.”
“울창한 숲? 나도 봤어.”
“응. 근데 형. 형도 녹룡의 시체를 봤다면 알겠지만, 당시 녹룡은 성체가 아니었어. 게다가 난 그땐 방랑자 신분으로 퀘스트를 강제로 클리어한 거고.”
동생의 말에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확실히 적룡과 녹룡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차이가 있었다.
녹룡이 기껏해야 건물만 했다면, 적룡은 웬만한 산처럼 거대한 덩치를 자랑했다.
준호는 말했다.
“운이 좋긴 했어. 하지만 당시의 나도, 아티팩트를 개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비슷했겠지. 내가 보기에 서울의 적룡은 완전한 성체이고, 그런 성체를 플레이어 혼자서 잡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드래곤은 레이드 몬스터의 끝판왕이니까.”
“…….”
“근데 형만 원한다면, 내가 잡아 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직접 잡진 못해. 내가 속해 있는 에리어는 경기 남부이고, 적룡은 서울 지역이니까. 용은 각 지배자의 퀘스트야. 원래 규칙에 따라선 내가 관여할 수 없지.”
난 포크를 내려놓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동생에게 물었다.
“직접 잡진 못해도, 잡아 줄 수 있다는 건 무슨 소리야?”
“내 세력이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자원을, 형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
정말 간단한 말이었지만, 지독할 정도로 잔혹한 말이기도 했다.
적룡을 잡기 위해서는 몇천 명은 고사하고 몇만 명의 목숨 따윈, 아무렇지도 않게 바칠 수 있다는 것.
준호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준호는 자신의 목적이라면, 타인의 목숨 따윈 정말 도구처럼 이용할 수 있었다는 소리였다.
‘……아니.’
이런 내가 동생에게 뭐라 할 자격은 없다. 나 역시도 동생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내 생각이 변한 건, 나도 인정한다. 진재희의 덕이 컸다.
어차피 이게 빌어먹을 게임이라면, 또 동생을 만날 수 있다면 타인의 목숨 따윈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동생이 잔혹한 일을 벌이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볼 순 없었다.
“괜찮아. 이건 내 할 일이니까. 내가 해결할게. 너도 내정에 신경 써.”
“응. 그럴게. 형.”
반박할 줄 알았던 준호는 생각 외로 순순히 내 말을 받아들였다.
난 동생을 한 번 바라보았다.
동생은 날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렇게 웃음을 짓다가 두 손을 깍지 끼며 말했다.
“형. 지금도 난 형한테 증명하고 있어. 난 형 말만 들을 거야. 형이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해. 형이 하라고 하면 해. 그게 나야. 형이 날 키웠으니까, 나의 선택권도 형의 것이지. 근데 형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땐 날 불러 줘. 내가 형을 위해, 용을 잡아 줄게.”
해결할 수 없는…… 것.
난 동생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준호는 내 동생이지만, 도무지 속이 보이지 않았다.
예전부터 잘 웃는 건 맞지만, 지금 웃는 건 웃는 것이 아니었다.
내게 강한 신뢰감을 쌓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지만, 되려 그 모습 중에선 알 수 없는 속내가 담겨 있었다.
그게 뭘까. 동생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래. 알겠다.”
적룡의 플레이어는 내가 해결할 것이다.
동생의 힘을 빌리고 싶진 않았다.
* * *
아티팩트 힘을 가진 이가 강해지는 방법은 정해져 있다.
첫 번째는 정신력 집중을 통한 수련이고, 두 번째는 극한의 환경까지 자신을 밀어 넣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진재희가 시도하지 않았던 세 번째 방법이 있었다.
그건 바로 특정 보스 몬스터를 잡아 그 힘을 빨아들이는 것.
강원도 어느 산골.
갈대가 사람 키만큼 자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산림이 이어졌다.
가방 하나만 짊어지고 강원도로 떠난 진재희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갈대를 베어나가며 전진했다.
그녀가 찾고 있는 건 거신이었다.
거신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보스 몬스터는 특정 지역에 머무르며 주변의 모든 힘을 빨아들인다.
그 빨아들인 힘은 아티팩트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재료가 된다.
진재희는 말도 안 되게 강했던 강준호를 보며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강준호가 거신의 힘을 흡수했다고.
그녀가 알고 있던 4마리의 거신은 한반도에 분포해 살아간다.
강준호가 먹은 건, 제주 한라산의 거북이일 것이다. 그곳은 강준호의 점령지이기 때문에, 그가 제주도까지 내려가 거신 거북의 힘을 흡수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지.’
촤아아아아악-!
진재희는 자신의 앞길을 막은 갈대밭을 성검을 불러내어 모조리 베어 버렸다.
아까부터 계속 거슬렸던 것이다.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강시온이 세력 성장만 집중하는 지금이, 그녀가 성장을 위해 모험을 떠나기에 시기적절했다.
거신은 그 거대한 덩치 덕분에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확인할 수 있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현상을 발견해야 했다.
강원도에 들어오면서부터, 토양 곳곳에 희미하게 흐르는 황금빛 색깔.
그리고 희미한 진동이 발끝에서 느껴졌다.
진재희는 자세를 낮춰 지면에 손가락을 대었다.
‘……가까운 거리.’
놈의 몸체가 워낙에 거대해, 아티팩트의 힘을 먼저 인지한다기보단 이렇게 현상을 먼저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진재희가 잡은 목표는 거신 문어.
지상에 살아가는 특이한 종족이다.
그 크기만큼은 서울에 있는 적룡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놈은 생명이 깃든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특히나 생명이 가득한 이런 울창한 산림에서 서식한다.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이, 놈이 살아가는 지형이다.
진재희는 그 흔적을 따라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갔을까.
그녀는 목 좀 축이기 위해, 나무 한 그루를 잡아 그 위로 올랐다.
강원도는 야생이다.
이 근방에도 아직까지 확인되지도 않은 초소형 몬스터부터, 강력한 몬스터까지.
그랬기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선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재희는 나무 기둥에 기대어 허리춤에 차 있던 텀블러를 꺼내었다.
그녀는 물 한 모금을 겨우 마시곤, 마찬가지로 허리춤에 있던 수건을 꺼내어 목과 몸을 닦아 냈다.
그때, 한 발의 화살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핑-! 촤아아악!
화살은 그녀의 볼을 스쳐 지나갔다.
진재희는 볼에서 흐르는 핏물을 손가락으로 닦아 내며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두 사람이 활을 쥐고 재희를 겨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외관을 보고, 진재희 는 단번에 그들이 어떤 세력의 사람들인지 알 수 있었다.
‘……강원도. S급 플레이어이자 군주인 박미선의 졸개들.’
두 사람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발가벗고 있었고, 온몸에 털이란 털은 없었다.
게다가 전신에는 진흙을 덕지덕지 붙여놓아서 멀리서 바라보았을 땐, 사람이 아니라 인간형 몬스터로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은 박미선의 충실한 신도들이다.
박미선에 의해 정신 지배를 당한, 한반도에서 가장 역겨운 집단.
서울의 메트로 세력을 지배하던 교주는 국가를 다스리기 위함이었다면, 강원도의 이놈들은 오로지 교주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또 놈들이 역겨운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인간성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동물처럼 괴성을 질렀다.
“우오오오! 우오오오!”
“가하! 가하하하! 가하하하하!”
차마 같은 현대를 살았던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기괴한 울음소리였다.
진재희는 나뭇가지에서 일어나며 혼잣말했다.
“박미선이 거신을 잡았을 리는 없지만 만나서 물어볼 필욘 있겠네.”
두 마리의 신도들이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하지만 그 전에 재희의 빛나는 두 개의 성검이 나무를 베어 가르며 날아가 두 신도의 목을 베었다.
서걱!
재희는 괜히 거신을 마주하기 전에는 아티팩트 힘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박미선의 세력을 만났다면 상황이 달라졌다.
‘안 그래도 볼 일이 있었는데, 잘 되었네.’
그녀는 신도들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 * *
강원도의 울창한 산림 속에는 거대하고 화려한 황금 탑이 세워져 있었다.
과거부터 있었던 고대 건축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현대의 기술을 사용하여 쌓아 올린 건축물도 아니었다.
현대인이 원시적인 방법으로 되돌아가, 한땀 한땀 황금을 세공하여 쌓아 올린 거대하고 화려한 황금 궁전이었다.
그들은 리그가 시작된 이래로 강원도에서만 살아와 외부와의 접촉이 적었다.
독자적인 문화와 사상 체계를 구축하고 박미선을 중심으로 강원도 산림을 거머쥐었다.
하나, 그들은 외부와의 접촉이 없는 것이 오히려 재앙으로 다가왔다.
박미선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리그를 구성하는 핵심 플레이어와 견줄 순 없는 법.
진재희가 그들의 황금 궁전에 발을 들였을 때, 그곳에 있던 모든 이가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그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신의 힘은 오로지 박미선만 부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미선은 지난 라운드 동안 조금이라도 아티팩트를 부릴 수 있는 타인은 모두 죽였다.
그렇게 자신을 신격화시켰다.
근데 그 자작극도 오늘로써 마지막이었다.
“신, 신!”
“자매님! 자매님!”
“아아아!”
진재희를 본 박미선의 졸개들은 주춤거리더니 고개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위에서 빛나고 있는 은성검, 그리고 화려한 은빛은 졸개들에겐 공포의 존재였다.
겁먹어선 뒷걸음질 치는 졸개들을 굳이 벨 필욘 없었다.
진재희는 천천히 황금으로 치장된 궁전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졸개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전진하는 진재희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물론 진재희는 졸개들과 황금 궁전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관심 있었던 건 오로지 거신 문어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궁전 그 어느 곳에도 거신의 흔적은 없었다.
‘황금이 이렇게 많이 발견될 수 있는 건, 주변에 거신이 있다는 건데.’
거신의 입에서는 황금이 나온다.
그것 때문에 이 근방에는 금덩이가 돌처럼 많이 굴러다녔다.
사실 황금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 세계에선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리그에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황금을 사랑하는 여인은 달랐다.
평소에도 많은 황금을 모으고 있던 박미선은, 거신의 힘을 빌려 이러한 거대 황금 궁전을 건축했을 거다.
거신의 힘을 불러내는 건 포털을 통해 가능할 터.
그렇다면 그 포털의 존재는 다름 아닌, 이 황금 피라미드 정상.
그곳은 박미선이 있는 곳이다.
진재희가 그곳에 오르려고 하자, 광신도들은 더욱 다가오며 위협했다.
하지만 위협할 뿐이지 결코 접근할 수 없었다.
진재희는 황금 피라미드에 발을 들이곤, 천천히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중간쯤 올랐을 때는 이미 수천 명의 광신도가 피라미드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이 내지르는 괴성만 해도, 울창한 산림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얼마나 피라미드를 올랐을까.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재희는 계단에 멈춰선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수십 명의 남자가 그녀의 황금 왕좌를 받치고 있었다.
웬만한 씨름 선수 못지않은 풍채를 가지고 있던 여인은 황금 왕좌에서 일어나 진재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미소를 지었다.
진한 화장을 한 탓에 그 미소는 참 기괴했다.
“이거 참, 귀한 손님이다. 서울 전쟁의 주인공이 찾아오다니.”
박미선의 목소리에, 진재희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박미선은 커뮤니티 활동부터, 세력의 대외적인 활동을 펼치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랬기에 자신이 찾아온다 한들, 박미선은 자신을 배척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나, 박미선은 오히려 진재희를 환영했다.
그녀는 두 팔 벌려 자신의 신도들에게 소리쳤다.
“귀한 손님이다. 소중히 모셔라.”
박미선의 소리에, 광신도들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서 역겨운 냄새가 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