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화. 드래곤의 영역 (1)
서울 점령으로부터 4개월이 흘렀다.
한국사에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은 항상 한반도의 중심이었다.
그 중심을 차지한 왕은 언제나 한반도를 지배했다.
강시온이 서울에 끼치는 영향은 거대했다.
특히나 서울 일대에 있던 경기권 주민들.
경기 북부, 인천, 경기 서부에 흩어져 살던 주민들은 ‘강시온’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사실상 리그는 이제 강시온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계의 중심이 한반도의 리그인 만큼, 그 한반도 내에서도 가장 영향이 높은 자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수원의 강준호가 그 자리를 차지했겠지만, 강준호는 강시온의 품 안에 있었다.
이제 리그에서 남은 세력은 열 손가락 안으로 좁혀질 정도로 단순화되었다.
리그가 후반기에 접어든 것이다.
리그를 지배하는 관리자들은 이제 마지막 대격변을 준비하며, 인간들에게 더 잔혹한 것, 더 격렬한 장면을 연출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강시온은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강시온의 계획. 그건 바로 리그를 멈추는 것이었다.
계획은 단순하다.
모든 활동을 멈추는 것이다.
관리자가 감독이라면, 배우는 무대에 오르기를 거부하고 머문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리그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관리자가 강시온의 계획을 방관하고 있지 않을 거다. 하지만 강시온은 그들과 싸우기를 선택했다.
다시 혹독한 겨울이 찾아올 무렵.
서울에는 큰 사건이 터졌다.
그 사건은 한 차례 굉음과 함께 시작되었다.
쿠과과과과과광-!
엄청난 폭발음이 강남 세력권에서 들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강남 세력권과는 꽤 거리가 있던 만경의 중심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지난 몇 년의 라운드 동안 건재했고, 3라운드의 핵심이었던 롯데타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 * *
오전에 한 차례 굉음이 울린 뒤로, 롯데타워가 옆으로 기울었다.
그때까진 완벽하게 기울지 않았으며, 이탈리아의 피사의 사탑처럼 아슬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늦은 오후에 한 차례 더 굉음이 들리자, 롯데타워는 힘없이 옆으로 고꾸라졌다.
쿠우우우웅……!
거대한 건축물이 무너지며 솟구친 먼지 연기는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나는 하늘에 떠올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강남의 계획인 건가.’
사실 콘크리트 구조로 이루어진 현대 건축물은 웬만한 양의 폭약이 아니고서야 무너뜨리기 힘들다.
특히나 세계가 멸망한 뒤로는, 웬만한 힘을 가하지 않는 이상 롯데타워를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진재희, 우지혜, 강준호와 같은 탑급 플레이어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우지혜를 제외하면, 진재희와 강준호는 우군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롯데타워를 건들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롯데타워의 정상에 있는 그 남자를 제어할 수 없기 때문.
이 사실은 진재희가 알려 준 것이었다.
진재희는 이미 롯데타워 정상에 있는 그 남자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 롯데타워를 무너뜨린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건 없었다.
그야, 롯데타워는 장소일 뿐이고.
3라운드의 핵심은 그 롯데타워의 정상에 있는 드래곤이었으니까.
나는 자욱하게 차오른 먼지구름 속에서 무언가의 형상을 발견했다.
그건 붉은 비늘을 가진 거대한 용이었다.
-쿠아아아…….
새빨간 입김을 내뿜는 놈은 어떤 남자를 감싸고 있었다.
그 남자는 온몸이 뒤틀린 채, 죽어있었다.
아니, 그건 착각이었다.
남자는 다시 움직였다.
용의 호위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사람이…… 포식자. 최강자.’
진재희는 말했다.
내가 그녀의 전생에서 죽게 된 이유는, 바로 저 남자 때문이라고.
그러니 저 남자가 나의 마지막 시험이 될 것이고, 이 세계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그런 남자가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드래곤을, 누군가가 깨웠기 때문에.
그건 아무래도 강남 세력의 수작일 것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려고 드래곤을 깨운 거지? 드래곤과 저 남자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드래곤은 몬스터 중 최정점에 있는 개체다.
게다가 그 드래곤을 지키는 플레이어도 S급으로 드래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강자다.
내 판단으로는, 당장 나에겐 버거운 상대일 거고. 강남 세력은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할 존재들이다.
물론 미래를 모르는 그들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거다.
‘하기야, 전생의 나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저자를 죽이려다가 죽은 거겠지.’
하지만 지금의 난 그들과는 다르다.
정보가 있는 자가 결국 모든 것에 우위를 점한다.
강남이 드래곤을 건드려 자멸을 선택했다면, 이쪽에서도 좋은 일이다.
강남이 자멸한다면 손쉽게 서울 전체를 ‘미로’로 만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메트로의 삼 교주. 그놈들은 꽤 똑똑한 놈들이었다.
‘메트로 세력이 지하에 거주 공간을 잡은 건, 어쩌면 드래곤에 대항하기 위함일 수도 있겠어.’
메트로는 애초에 드래곤을 상대하기 위한 기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교주들이 왜 굳이 지하를 선택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당장 걱정할 건 없겠어.’
드래곤은 자신을 건드린 자들만 공격한다.
즉, 건드리지 않는 세력에 대한 공격 행위는 없을 거라는 의미다.
붉은 비늘을 가진 드래곤을 거대한 날개를 양쪽을 펼쳤다.
촤- 악!
그 날개가 얼마나 거대한지, 날개를 펼쳤을 뿐인데도 돌풍이 일어났다.
그리고 날아올랐다.
놈이 향한 곳은 강남 세력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드래곤의 강함은 전통적으로, 아가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브레스에 있었다.
게임이나 미디어에서 접한 현대인들은 착각하고 만다.
드래곤의 브레스는 어차피 잡몹 사냥하는 스킬이 아니냐는 식으로.
하지만 지금 눈앞에 목도한 드래곤의 브레스는 그저 그런 잡몹 사냥용이 아니었다.
파멸(破滅), 그 자체였다.
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촤아아아악!
드래곤의 아가리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브레스가 도심 속을 강타했다.
불꽃은 강타한 지역에만 멈추지 않고, 마치 해일처럼 건물 곳곳에 파고들었다.
그 불꽃과 마주한 사람들은 그냥 죽었다.
다치거나 도망가거나 그런 것이 없이, 그저 불탈 뿐이었다.
난 소매로 안면을 막았다.
여기까지도 뜨거운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온도였다.
‘저게…… 3라운드. 최종 보스.’
진재희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지금, 난 드래곤을 지켜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저 용도, 용을 타고 있는 남자도 지금까지의 적과는 차원이 다를 테니.
* * *
야밤이었는데도, 온 도시가 번쩍거리며 밝았다.
시도 때도 없이 브레스를 뿜어내는 드래곤 덕이었다.
강시온은 하윤하, 정현수와 함께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현수는 그것을 바라보며 감상을 말했다.
“……솔직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정말 압도적이라. 제가 당장 가서 해치우거나, 그런 말도 못 드릴 정도로.”
강시온은 정현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칼을 든 지휘관이 뛰어왔다.
만경의 병사들을 지휘하는 총사령관 황민재였다.
황민재는 한차례 강시온에게 고개 숙이고는 보고했다.
“병력들은 속속 복귀하고 있고, 대부분은 복귀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드래곤은 만경의 영토는 건드리지 않고, 오로지 강남의 지역만 타격하고 있습니다.”
그건 드래곤의 방어 기질 때문이리라.
드래곤은 강남만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고 자신의 둥지로 돌아갈 것이다.
강시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위로했다.
“고생했습니다. 돌아온 병력들에게 모두 휴식을 부여하고 명령을 기다리세요.”
“받들겠습니다.”
강시온의 명령을 하달받은 황민재는 다시 병사들을 통제하러 달려 나갔다.
강시온은 가만히 지상을 향해 뿌려지는 브레스를 바라보았다.
정말, 뿌려지고 있었다.
마치 물통의 물이 바닥을 향해 쏟아지듯, 도심 한가운데 우두커니 선 놈의 아가리에서 불길은 계속해서 내려앉았다.
돌칼로 드래곤을 지키는 플레이어를 제압한다는 계획은 이미 수포로 돌아갔다.
강시온은 관리자에게 받은, 돌칼을 삼 교주를 제압하는 데 사용했다.
사실상 삼 교주 역시 드래곤과 필적하는 강자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황은 마치 강시온에게 안 좋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에겐 계획이 있었다.
강시온이 이번 3라운드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건, 바로 드래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모두의 생각을 한번 비튼 것이었다.
강시온은 드래곤을 죽일 생각이 없다.
오히려 드래곤을 이용할 생각이다.
그렇게 이 리그를 멈출 것이다.
드래곤을 지키는 권종현을 죽이기 위해선 진재희가 핵심이었다.
플레이어끼리의 대전을 통해, 진재희가 권종현을 제압할 수만 있다면 남은 건 강시온이 해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진재희의 최종 목표가 권종현이었다.
그것을 위해, 진재희는 떠났다.
6개월 안에 돌아오겠다는 말만을 남기고.
드래곤의 브레스가 온 도시를 불태우고 있을 때, 만경에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강남 세력이 불타는 것을 지켜볼 뿐.
드래곤은 강남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뒤, 다시 돌아갔다.
놈이 있던 둥지로.
* * *
“형. 뭘 그렇게 빙 돌아가?”
“어?”
시온은 준호의 말에, 고기를 집어 든 포크를 내렸다.
준호는 테이블에 놓여있던 수건으로 입가를 닦아 내곤 시온에게 말했다.
“결국 형에게는 드래곤을 이용해야만 하는 계획이 있는 거고. 어쨌거나 드래곤을 지키는 그 남자만 처리하면 되는 거잖아?”
시온은 물잔을 들며 신중하게 동생의 말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동생에겐 제한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물론 시온 역시 준호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준호와 진재희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니, 강시온의 입장에선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강시온은 한 세력의 최고 지도자다.
자신의 세력과 국가를 위해 이행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땐, 개인적인 사정을 고려할 순 없었다.
진재희는 세력의 핵심 인물이고, 준호는 아직까진 타 세력의 최고 지도자였다.
만경의 시민이 강준호를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강시온은 적절한 조절을 통해 천천히 준호를 품으려고 했다.
그러니 강준호는 당장 강시온의 목적에만 집중했다.
“그 새……. 아니. 그 여자가 그 남자를 잡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할진 모르겠지만. 형의 허락만 있다면 내가 해결할 수 있어.”
“해결하다니?”
“나라면 더 깔끔하고, 신속하게, 적을 제압할 수 있단 말이야. 전부 이해해. 우리가 다른 세력이고, 시스템상으론 적이지만. 하지만 형. 말했다시피 그건 표면상일 뿐이야. 어차피 잘 되었어.”
강준호는 잔에 담긴 와인을 입에 털어 넣었다.
“내가 그 여자보다 훨씬 더 쓸모 있다는 걸 증명할 기회니까.”
“준호, 너 아직도.”
“그게 아니야. 형. 잘 생각해 봐. 형은 똑똑하니까.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굳이 돌아갈 필욘 없는 거잖아? 수원은 형의 것이야. 수원의 모든 사람을 이용해도 좋아. 그리고 나 역시 형의 힘일 뿐이고.”
“…….”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돌아가는 건 미련한 짓이다.
그건 강시온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시온은 동생의 행동이 무언가 어긋난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만난 동생은 물론 훌륭하게 자라 주어, 너무나 고마웠지만.
동생의 가치관은 자신의 생각과 달랐다.
“준호. 일단 기다려 봐.”
시온은 불안함을 느끼고 동생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강준호는 생각이 달랐다.
“형. 내가 형과 다르다고 생각해?”
“무슨 뜻이야?”
“형. 난 형이랑 같아.”
“…….”
그리고 시온은 본인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마주한 동생의 생각이,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는 것을.
“모든 인간에게, 타인은 도구야. 목적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것이 타인이지. 심지어 친구도. 외롭지 않게,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라고. 도구에게 어떤 감정도 품지 않아. 난. 형…… 형이 말했지? 내가 좀 변한 것 같다고. 하지만 형. 변한 건 형이야.”
강준호는 그 진재희라는 여자가, 자신의 형을 물들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형 강시온.
그리고 진재희가 전생에서 봤던 강시온.
두 사람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지금의 강준호보다 더, 전생의 강시온은 무자비하게 포악한 성질의 군주였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몇백 명이든 몇천 명이든 부하를 사지로 내몰고 목표를 이룰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결국 모든 이의 정점에 오른 남자.
그게 강시온이었다.
강준호의 입장에선, 오히려 눈앞의 강시온이 더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뭐랄까.
사람이 인도주의적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어색하게 그지없었다.
강시온이 가진 그 눈은, 그런 곳에 사용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상대를 제압하고, 복종하게 만들며 자신의 발아래 모든 생물을 두어야 하는 절대자의 눈이었다.
강준호는 와인 잔을 살며시 테이블에 올려 두며 말을 마무리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형을 거스르진 않을 거야. 그건 안 되지. 하지만 내가 형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 증명만 하게 도와줘. 증명할게. 형의 곁에 있어야 되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걸.”
시온은 말없이 와인 잔에 입술을 가져다 놓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