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화. 마지막 시작 (2)
합동 장례식은 국가 사업으로 이루어졌다.
삼일 동안, 재건 사업을 멈추고 시민이고 병사고, 지휘부까지 장례식에 참석했다.
복장까지 모두 맞출 순 없었지만, 그들은 이번 전쟁을 통해 죽은 이들을 기르기 위해 촛불을 들며 추모했다.
추모객 행렬의 가장 앞에는 하윤하가 있었다.
하윤하를 중심으로 시민들은 만경 시내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몰린 인파만 해도 엄청난 수였다.
하윤하의 개인적인 건의로 시작된 합동 장례식이었지만, 이건 어쨌거나 필요한 사업이었다.
결과적으로 국가를 구성하는 인원들의 큰 위로가 되어 주었으니.
그리고 크나큰 파도가 지난 뒤에는, 어부들의 단결력이 더욱 높아지듯.
단결된 만경 시민들의 의식과 가치관은, 결국 빠른 국가 재건과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물론 강준호의 역할이 6할은 되었다.
수원의 압도적인 재정과 인구수는, 만경을 성장시키기에 충분했으니.
전쟁 이후 1개월.
만경은 국가를 넘어 하나의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영토부터 인구, 경제력, 군사력까지.
수원에 강준호라는 위원장과 그 주변의 자치구가 있듯, 만경의 강시온도 강준호와 같은 위치까지 올랐다.
강준호는 수원성(城)을 중심으로 충청, 전라, 제주를 잇는 대제국이었고.
강시온은 만경을 중심으로, 경기 남부, 서울 강남과 강북을 차지한 대제국이 되었다.
이로써 강시온의 공식 명칭은 일국의 영웅에서 서울 지역을 총괄하는 총위원장으로 승격되었다.
이는 만경의 지도부가 결정한 것이 아닌, 리그를 주관하는 관리위원회의 결정이었다.
* * *
전쟁은 끝났지만, 시온은 지난 2개월간 어떤 시기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전쟁 직후, 가장 문제가 되었던 건 아무래도 전후 처리 과정이었다.
메트로 세력의 포로들과 주민.
몇 배나 넓어진 영토를 정비하는 건, 기존의 세력을 점층적으로 키우는 것보다 어려웠다.
그 과정에서 하윤하의 역할이 컸지만, 무엇보다 준호의 지원이 압도적이었다.
준호는 거의 매일같이 만경을 방문했다.
솔직히 수원과 만경의 거리가 아무리 가까워졌다 한들, 지금의 기술로는 왕복 6시간은 걸렸다.
근데 준호는 진재희 이상의 비행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니, 만경에 방문하는 것은 마치 동네 편의점을 갔다 오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동생은 언제나 웃음을 지으며, 내 집무실에 들어왔다.
“형. 뭐, 별다를 건 없어?”
“형. 수원 가서 밥 먹을래? 이번에 천안 쪽에서 거대한 고래상어가 잡혔는데.”
“형. 술이야. 이게 정말 좋은 술이거든?”
“형. 내가 저번 주에 말이야…….”
“그 여자는 지금 만경에 없지. 형? 그냥 없었으면 좋겠네.”
매일, 매일, 매일.
시간도 정해 놓지 않고 매일같이 왔다.
물론 기쁘다. 기쁘기 그지없다.
동생이 매일 같이 찾아오는 건, 누가 뭐라고 해도 기쁜 일이다.
매일 오면서 마차 10개에 선물을 가득 실어 보내는 것도 내게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매일 바쁜 와중에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꽤 피곤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데자뷔인가.
리그가 시작되기 전에도, 동생은 매일 자신과 놀아 달라며 졸라 댔었다.
하지만 난 여러 아르바이트 때문에 동생과 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동생은 그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동생은 어떤 거대한 것을 내 집무실 책상에 올려놓았다.
텅-!
난 집무실에서 하윤하가 올린 사업 서류를 검토하다, 다시 동생을 올려다보았다.
이번엔 또 무얼 가져왔나, 살폈다.
동생은 호기롭게 눈을 뜨곤 물건을 두드리며 말했다.
“……형. 이게 뭔지 알아?”
“……뭔데.”
“보면 깜짝 놀랄 거야.”
동생은 검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있었던 물건은 충격적이긴 했다.
그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였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다.
책에서만 보던, 그 명화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진품. 모나리자. 어때. 죽이지? 형 선물이야. 여기. 여기. 이 집무실 이 구석에 놓으면 딱 좋겠네.”
준호는 집무실 한 편, 식물이 자라있는 화분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단…… 하긴 하네.”
확실히 놀랍긴 했다.
난 책상에서 일어나 모나리자를 자세히 살폈다.
솔직히 작품을 볼 줄은 모르지만, 이 모나리자가 의미하는 가치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 모나리자가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 보존되어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도대체 이 작품이 왜 대한민국, 그것도 준호가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난 작품을 감상하다 준호에게 물었다.
“근데 이게 왜. 여기 있어?”
“프랑스 세력과 거래했거든. 담배 20보루랑.”
“프랑스? 너. 외국 세력과 무역을 할 수 있단 말이야?”
“아니. 아니. 내 세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바다는 못 건너. 내가 제주도를 정복할 때도, 여간 힘들었던 것이 아니거든.”
“근데 어떻게?”
“커뮤니티지. 관리자를 통해 외국 자원을 끌어모은 거야. 근데 그거 알아? 형? 한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가 아직 2라운드 중반이라는 거.”
2라운드라면, 혹한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2라운드 중반이라고 하면, 한창 만안경찰서에서 박건우 경찰서장과 지낼 때였다.
말이 안 되었다.
정말 좋게 생각해서 아무리 세계가 뒤처지고 있다 한들, 그 정도까지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준호는 말했다.
“그러니까 이 한반도가 어떻게 보면 지구의 중심인 거지. 나도 이유는 모르겠어. 관리자 새끼들의 말에 따르자면…… 한반도 내에 아주 강력한 작용이 있다고 하더라고. 병신들이 지들도 이유를 몰라. 그래서 관리자들은 한반도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는 중이고. X발. 근데 형. 내가 있잖아. 그 새끼들이 억제한다고 해서 내가 멈춰 있을 놈도 아니고. 오히려 관리자 새끼들이 빌빌거린다니까? 초기 라운드에선 그렇게 인간을 쥐락펴락하던 놈들이 다 죽어 가지고. 뭐, 하여튼 형은 걱정 마. 이제 내가 형을 이 리그의 우승자로 만들 거니까.”
“……억제라.”
과연 그 강력한 작용이란 무엇일까.
난 그것이 ‘진재희’의 등장이라고 결론지었다.
회귀자의 등장으로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무언가 변화가 있는 건 확실할 테니.
그리고 난 내게 말을 꺼내고 있던 준호를 노려보았다.
“야.”
“어……? 형. 왜 그래. 갑자기…….”
준호는 깜짝 놀라 두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난 그런 동생에게 주의를 주었다.
“너 욕이 늘었다?”
준호도 이제 성인이라 담배 피고 술 마시는 걸로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근데 욕은 안 된다.
동생은 금세 꼬리를 내렸다.
“……미안. 형. 주의할게.”
* * *
진재희는 홀로 무너진 도심 속을 걸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테헤란로였다.
만경이 한강 이남 지역을 정복하면서, 그녀는 이곳에 올 수 있었다.
탄천을 경계로 롯데타워가 있는 곳은 강남 세력이, 테헤란로가 있는 강남역은 만경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중간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과거 자신이 죽었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진재희는 말없이 그 장소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회귀한 직후, 지금 이곳까지 그녀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회귀 이전의 리그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라운드는 다를지언정, 시간상으로는 비슷했다.
원래대로라면 강시온과 진재희는 이맘때쯤, 이곳에서 죽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미래는 바뀌었고, 둘은 살아남았다.
물론 친구는 잃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진재희는 이호승을 찾아 나섰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조금 이상했던 건, 소중한 친구를 잃었음에도 감정의 변화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호승처럼 최현지도,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그녀의 곁을 떠났다.
“…….”
진재희는 그 사거리 중앙에 서서 높게 치솟은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곳곳에는 만경의 상징기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변화된 흐름에 맞춰 성장하고자 했다.
강시온이 세력을 확장하고 키울 시간이 필요한 지금, 성장하기에 시기적절하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하나였다.
더 지독하고 혹독한 환경에 자신을 밀어 넣는 것이었다.
아티팩트 훈련을 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미 강시온에게는 훈련의 길에 오르겠다고 말한 상황이었고, 그녀는 한강 이남만 정리한다면 언제든지 떠날 생각이었다.
멀리서 총성이 들려왔다.
살아남은 헌터들이 저항하는 소리였다.
진재희는 그곳으로 향했다.
* * *
탕-! 탕! 탕!
도심 속에서 총성이 연이어 들렸다.
메트로 세력이 붕괴한지도 모르고, 날뛰는 잔존 헌터들이었다.
대로변에 홀로 남겨진 헌터는 보이는 사람 족족 권총을 쏘아댔다.
온몸 구석구석 성한 데가 없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탕-! 탕! 탕!
“X발 새끼들……! 오지 마……! 오지 마!!!”
사실 저항이라기보단 반항에 가까웠다.
이미 전세는 기울었고, 남겨진 헌터에게 승산은 없었다.
만경의 정예대는 엄폐물에 숨어, 헌터가 재장전하기만을 기다렸다.
총알이 떨어지고, 재장전을 하는 헌터는 눈물을 보이며 중얼거렸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오지 마.”
헌터는 겨우 탄창을 새로 끼우곤 다시 앞을 겨누었다.
하지만 이미 만경의 정예대는 엄폐물에 숨은 상태였다.
그가 쥔, 권총의 조준점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X발…… 오지 말라고…….”
그때,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휘릭-.
소리가 울리고, 헌터는 자신의 시선이 비정상적으로 옆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의 목을 베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헌터의 목이 굴러떨어져, 진재희의 발끝에 닿았다.
그녀는 목을 대충 차 버리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
엄폐하고 있던 정예대가 쏜살같이 달려와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토벌 현장엔 어쩐 일이십니까?”
정예대 조장이 그녀에게 물었고, 진재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정예대 몇 명이 목이 잘린 헌터의 시체를 뒤지며, 총알과 권총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진격은 어디까지 했습니까?”
“이제 마포구를 점령했고, 일주일 안으로 강북 지역은 토벌이 완료될 것으로 보입니다.”
진재희와 정예대를 선두로, 소탕전은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었다.
라운드를 거듭하며, 시민은 하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갔다.
그랬기에, 메트로가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지상은 오염된 자라고 생각하며 저항하는 이가 많았다.
물론 모두가 저항하진 않았다.
지하 속에서 갇혀 살던 몇몇은, 스스로 지상으로 올라와 항복하기도 했다.
만경은 그들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보호했다.
물론 신분을 재편성하고, 교육을 위해 만경으로의 이송은 불가피했다.
정예대 조장은 진재희에게 말했다.
“사실상 토벌전은 오우거가 전부 도맡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런 식으로 나가니, 저들이 아무리 저항세력이 있다고 해도 밀고 나갑니다.”
진재희는 정예대 조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오우거가 일렬로 서서, 모든 것을 짓밟고 있었다.
애초에 강북과 강서 지역은, 메트로 세력의 영향권으로 지상에는 변변찮은 건물 하나 없는 지역이 많았다.
특히나 강북은 유령 도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폐허가 된 도심뿐.
오우거가 농부가 보리를 밟는 것처럼 저렇게 하나하나 짓밟고 간다면 남아있던 병력들도 전의를 상실할 것이다.
오우거는 만경의 위대한 자산이었다.
그리고 강시온의 계획에 핵심이기도 했다.
진재희는 정예대 조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천천히 진격하세요. 후방에서 놈들이 덮치는 일은 없어야만 합니다.”
그녀의 말에 정예대 조장은 고개 숙여 명령을 받들었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그 말 뒤로 정예대 조장은 손짓하며 부하들을 지휘했다.
오우거가 짓밟고 간 땅은 정예대가 청소한다.
오우거의 진격 속도는 현대 전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빠르고 효과가 굉장했다.
서울 점령전은 마무리되고 있었다.
강시온이 하나 우려했던 것은, 바로 강남의 움직임이었다.
그들이 만약 빈 땅이 되어 버린 서울에, 지금껏 아껴 놓았던 부대를 투입해 버린다면 상황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강남이 지배하는 몇 개의 지역을 제외하곤 서울은 이제 완전히 강시온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또다시 며칠이 흘렀다.
그리고 강시온은 청소작업을 마쳤다.
이로써 모든 준비가 끝났다.
강시온과 하윤하는 국가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고, 진재희는 떠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