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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206화 (205/221)

제206화. 마지막 시작 (1)

수원에서 만경(구 안양)은 지도상으로 멀지 않다.

그럼에도 지난 라운드 동안 수원과 만경의 교류가 없었던 건 ‘울창한 숲’ 때문이었다.

조금만 닿아도 생명력이 빼앗겨 버리는 죽음의 숲. 아무리 뛰어난 방랑자라 할지라도 길을 잃고 마는 빽빽하고 울창한 숲.

만경도, 수원도 굳이 피해를 감수해 가며 울창한 숲을 넘나들 이유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버려져 있던 지역이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만경과 수원은 이제 깊은 관계를 맺었다.

각 세력의 최고 지도자가 피를 나눈 형제였으니, 국가 간에도 왕성한 교류가 필요했다.

만경은 울창한 숲을 돌파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수원은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강준호였다.

하늘에 떠오른 강준호는 울창한 숲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오래전, 이 숲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강준호는 아티팩트 힘을 방출했다.

우웅-.

순식간에 검은 공간이 울창한 숲을 가로질러 생겨났다.

강준호의 아티팩트 능력은 중력이다.

그리고 그 중력이 가장 강력한 점이 만들어 내는 것이 블랙홀이었다.

강준호의 ‘검은 공간’은 블랙홀이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오염된 토양부터 나무, 바위, 몬스터 등.

강준호의 능력 앞에서 모든 것은 무(無)로 되돌아간다.

애초에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블랙홀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그 대지에는 깊고 넓은 협곡이 생겨났다.

“쿨럭……!”

강준호는 기침을 한 번 토해 냈다.

그는 아주 강력한 아티팩트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인간이기도 했다.

무한에 가까운 힘을 내지만, 무한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형을 위해서라면, 무한한 힘을 낼 수 있는 것이 또 강준호였다.

강준호는 턱에 흐른 침을 닦아 내곤, 다시 형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다시 강준호가 낸 협곡을 따라 만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만경과 수원 간의 통로가 만들어졌다.

* * *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복귀 행렬은 줄에 줄을 이어 협곡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강시온이 탄 마차는 수원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호위를 받고 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 주지 않아도 된다고 시온은 말렸지만, 준호는 단호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 보내겠다고 투정을 부렸기에, 강시온은 알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시온은 마차 끝자리에 앉아 가려진 천막을 살짝 거두어 바깥을 살폈다.

깊은 협곡이었는데도 태양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작은 신음에 반대편에 앉아 있던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진재희는 모포를 뒤집어쓴 채,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

“추워?”

“아니야.”

그녀는 움츠렸던 몸을 일부러 펴며 괜찮다고 했다.

시온은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곤 다시 마치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마차 바깥에 시선을 두고 있던 강시온을, 진재희는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기.”

진재희가 부르자, 강시온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곧장 말했다.

“……고마워.”

“뭐가?”

진재희는 말을 삼켰다.

분명 고마운 이유가, 나와야만 했는데.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이건 성격 문제였다.

예전부터 진재희는 누군가에게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거나, 그런 개인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았다.

속된 말로는 오글거려서이고, 사실 부끄러웠을 뿐이다.

하지만 말해야 할 때는 말해야 한다는 걸, 그녀는 강준호를 통해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한 것이, 결국 말로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모른다. 그러니까 말해야만 했다.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해 줘서. 고맙다고.”

“…….”

강시온은 그 말에 대해 생각하다, 피식 웃곤 말했다.

“너답지 않게 무슨. 됐어.”

“……그리고 미안해.”

진재희는 고맙다는 말뿐만 아니라 미안하다는 말도 해야만 했다.

사실 둘 사이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있었다.

전쟁 중에도, 우지혜를 상대할 때도 둘은 무언가 어긋나 있었다.

진재희는 그런 어긋남이 있었던 건, 모두 자신의 변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 사과를 해야 했다.

“난 내 목표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하려고 했어. 우린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널 살리는 것이 내 목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 넌 대단한 사람이니까. 나랑은 비교도 안 되니까.”

“…….”

“근데 네 생각은 다른 것 같았어. 전생의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난 너의 부하의 부하였고. 우린 사실 대등하지도, 함부로 눈을 마주칠 사이도 아니었지. 그러니까 난 널 모시는 입장이기도 했고, 지켜야 할 대상이었어. 내가 모시는 사람을, 난…… 난…… 친구라고 생각 안 했어.”

그녀는 끝말은 목소리를 더듬거리며 겨우 말했다.

진재희 입장에선 정말 많은 용기를 내고 말한 것이었다.

그녀는 모포 속에 자신의 코를 집어넣었다.

마차 내부였는데도, 쌀쌀했다.

다시 겨울이 오려나 싶었다.

“……근데 네가 날 친구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까.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하지만 진재희는 끝내 뒷말을 잇지 못했다.

“약속했잖아. 옥상에서.”

강시온은 다시 고개를 돌려 마차 밖 행렬을 바라보았다.

“…….”

진재희는 여전히 모포에 코를 묻은 채, 눈동자만 돌려 석양빛에 물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같은 꿈을 꾸었잖아. 돌아가겠다고.”

강시온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자신의 동생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동생을 찾았다.

그 험난한 길에는 진재희가 함께였다.

이 일은 전생에서도 없었던 ‘미래를 개척하는 일’이었다.

“아직 우린 목표를 이루지 못했어. 네 꿈이 남았으니까. 나조차도, 이 이야기의 끝이 돌아갈 거라곤 확신할 수 없어. 약속한 대로 난 널 돌려보낼 거야. 설령 내가 이 세계에 남고, 너 혼자 가더라도.”

“그런 말 마.”

이번에는 진재희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같이 꾼…… 꿈이잖아? 그러니까 같이 돌아가야지.”

“관리자가 그런 걸 두고 볼 리가 없어.”

“내가 두고 보게 만들겠어.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나도 안 갈 거야. 반드시 너도 함께여야만 해.”

강시온은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둘은 한동안 그렇게 두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침묵을 깬 건, 진재희가 코를 들이마셨기 때문이다.

강시온은 낄낄대며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네. 나도.”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너도 웬만큼 고집이 있다?”

“이건…… 아니, 이것만큼은 고집 좀 부릴게.”

진재희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래.”

강시온은 피식 웃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계속해서 그가 마차 바깥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운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생각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강시온은 일정하게 흔들거리는 마차 속에서 확신했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가 시작될 거라고.

그 결말이 죽음이든,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든.

아님, 또 다른 결말을 맞이하든.

반드시 끝나게 될 것이라고.

* * *

강시온이 엄청난 선물과 함께 돌아오자, 시민들은 환호했다.

“만세-!”

“만세-!!!”

만경의 시민들은 마차 행렬이 이어지는 거리로 쏟아져선, 강시온을 숭배했다.

이번 라운드에서 만경은 타 세력에 비해 전략적 위치도 좋지 않았고 식량도, 병력도 부족했다.

하지만 강시온은 또다시 해내고야 말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다시 한번 세력에 커다란 이득을 선사했다.

승전한 군주의 지지율은 ‘100’이라는 숫자가 부족할 정도로 치솟았다.

그리고.

강시온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치료를 받고 있었던 하윤하와 정현수에게도 전해졌다.

정현수에게 죽을 떠먹여 주고 있던 하윤하는, 문에서 들어오는 강시온을 발견하곤 죽을 엎지르며 튀어 나갔다.

“영웅님!”

덕분에 정현수는 뜨거운 죽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와르륵-!

하지만 그런 정현수도 뜨거운 걸 참아 가며 군주를 반겼다.

“여, 여, 영웅. ……니임. 아윽. 뜨거.”

하윤하는 단번에 뛰어나와 시온의 곁에 섰고, 정현수는 붕대를 온몸에 두른 탓에 움직이기 버거워 보였다.

강시온은 정현수에게 그대로 앉아있으라고 하고, 하윤하와 함께 정현수 침대 앞에 앉았다.

“고생 많았어. 몸은 어때?”

강시온의 물음에 정현수는 얼굴에 엎질러진 죽을 손으로 쓸어내리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며,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출격할 수 있습니다. 메트로 개미 놈들 잔당 토벌에 병력 부족하시죠? 절 보내 주세요!”

“그래?”

그렇게 되물은 강시온은 정현수의 상처에 덧댄 붕대를 손가락으로 콕 눌렀다.

그러자 정현수는 순간적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으갸악! 아악!”

“몸은 아닌 것 같은데?”

“……아, 아니. 이건…….”

정현수는 금세 시무룩해져선 꼬리를 내렸다.

“……죄송합니다. 사실 움직이지도 못하겠네요.”

“쉴 수 있을 때, 푹 쉬어. ……윤하는 나랑 얘기 좀 하자. 몸은 괜찮아?”

“아, 네! 저는 문제없어요. 저야 애초에 전투를 하지 않았으니까요.”

“저, 저도!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

정현수가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강시온은 표정을 거두곤 저지했다.

“쉬어. 명령이야.”

“……예.”

정현수는 다시 꼬리를 바짝 내렸다.

강시온은 하윤하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곳은 원래 괴수가 있던 자리였다.

하지만 2.5라운드가 끝나자 괴수는 사라졌고, 남은 건 놈이 남긴 오물과 쓰레기들뿐이었다.

만경의 복원에는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치료를 받는 인원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이번 전쟁을 통해 강시온은,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광활한 영토와 인구수, 그리고 서울이라는 중심지를 획득했다.

다른 세력보다 압도적인 수적 우위와 자원 우위를 점유하게 된 것이었다.

강시온은 하윤하와 재건 중인 만경의 시내 거리를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앞으로 많이 바빠질 거야. 세력 재건에도 힘을 써야 할 테고. 무엇보다 붉은 원석을 통제할 기술자도 모아야겠지. 관련해서 천천히 생각해 봐. 중요한 건 전쟁이 일어나기 전, 만경의 시장 구조를 되살리는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건 제가 전문이니까요. 근데 영웅께선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세요?”

“바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지. 쉴 틈이 어딨어?”

“몸은 괜찮으세요? 무리하시는 건 아니죠? 큰 전투를 치르신 후라고 들었는데요…….”

하윤하는 강시온의 옷자락을 살짝 쥐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행동에 반영된 것이었다.

강시온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문제없어. 오히려 몸이 가벼운 느낌이야. 아, 그리고 수원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있을 거야. 그 사람들 역시 네가 관리하도록 해. 내가 지시했다고 하면 전부 따를 거야.”

“수원에서요……?”

둘은 좁은 도로를 나와, 넓은 도로에 들어섰다.

그때, 하윤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인원수의 사람들이 저마다 공구와 재료를 가지고 도시 재건에 힘쓰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양의 돼지들이 저마다 모여 있었다.

하윤하는 입을 가리며 물었다.

“……저 사람들이랑 돼지는?”

“동생이 선물로 줬어.”

그 소리에 하윤하는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네?! 동생분이요? 친동생이요?”

“응.”

강시온이 동생을 찾았다는 말에, 하윤하는 제 일인 것처럼 좋아했다.

“저, 정말 다행이네요! 정말…… 정말 축하드려요. 하하하. 아, 진짜 기쁘네.”

“그건 내 개인적인 일일 뿐이야. 근데 중요한 건 도시 재건이지. 네 힘이 필요해. 앞으로 너에게 전후 처리에 대한 모든 권한을 줄게. 그러니 부탁할게.”

하윤하는 불끈 주먹을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반드시 해낼게요. 전쟁 전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아도 되죠?”

“그래 준다면야.”

강시온은 웃고 말았다.

사실상 전 상태로 되돌리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전쟁 이후에는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니까.

게다가 현재 만경은 기존 국토에 몇 배나 달하는 영토를 획득했다.

이 영토들을 활용하는 것도 하윤하의 몫이 될 거다.

당장은 다리가 무너졌으니, 한강 이남의 영토만 관리할 계획이다.

강시온은 그렇게 하윤하에게 부탁을 한 뒤, 몇 번 대화를 나누다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하윤하는 돌아가는 강시온을 붙잡았다.

“왜? 할 말 남았어?”

강시온의 물음에, 하윤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었다.

“……제 개인적으로 드릴 부탁이 있어서요.”

“뭐든 말해.”

강시온은 하윤하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려고 했다.

하윤하는 세력에 있어선 없어선 안 될 귀중한 인재였으니.

게다가 지금까지 하윤하가 만경에 해 준 것들은 모두 큰 공들뿐이었다.

“…….”

하윤하는 조금 침묵을 유지하다, 숨을 툭 내뱉고는 겨우 말했다.

“국가적으로 장례를 치르게 해주실 수 있나요? ……딱히 현지 언니를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번 전쟁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으니까요. 국가 지도부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질 염려가 있어…….”

“그런 소리 안 해도 돼.”

그때, 강시온은 하윤하의 양 어깨에 자신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하윤하의 눈동자를 마주 보며 말했다.

“최현지…… 때문이잖아?”

“…….”

“원하는 대로 해. 나도 그 앨 기리고 싶으니까. 국가사업으로 처리해도 돼. 나도 네 뜻에 동참할 테니. 아, 그래. 말 잘했네. 재건보다 합동 장례식을 먼저 준비해. 나도 도울 테니.”

강시온은 하윤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하윤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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