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화. 엇갈린 관계 (2)
‘강해져야만 해.’
그건 진재희가 호텔을 빠져나오면서 든 생각이었다.
강준호는 분명 강시온의 동생이지만, 강시온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강시온을 위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 방식이 틀렸다.
진재희는 모든 것을 되돌려 놓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이 리그를 끝낸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그 미래는 진재희가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까.
다만, 해 볼 뿐이다.
하지만 강준호와 대면한 순간, 그 결심이 조금씩 흔들렸다.
‘어쩌면 내가 틀렸을지도.’
그런 아찔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녀의 꿈.
이에 강시온도 ‘동생을 찾게만 해준다면’, 자신의 꿈도 이루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침내 만난 강준호는 달랐다.
그는 돌아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건, 꽤나 위험했다.
강시온이라는 강력한 강준호만의 제동 장치가 있다 한들, 그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애초에 원래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결과는 없을 거다.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던 진재희는 조금씩 발걸음을 늦췄다.
불현듯 불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강시온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강시온은 강준호를 위하여 언제든지 자신의 목적을 바꿀 수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진재희가 들인 지난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분명 세계를 되돌려 놓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거 하나만 바라보며 살았는데.
만약 그렇게 되어 이 관계가 무너진다면……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꾸우우욱.
그녀는 쥐고 있던 난간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니야.’
진재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강시온을 믿고 있었다.
강시온은 마음이 변치 않을 것이라고 굳건하게 믿었다.
지금껏 자기가 바라본 강시온은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고, 자신이 정한 길에 확신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아무리 동생이 돌아온다 한들, 그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세계를 되돌려 놓는다.
이제 마지막 발걸음이 될 것이다.
그걸 위해 준비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다.
진재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호텔 로비 층에는 경비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실제로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힘도 강했다.
진재희는 그들 앞에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그중, 가장 덩치가 큰 자가 진재희를 막아 세웠다.
“누구도 나갈 수 없다.”
진재희는 매서운 눈초리로 그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옆으로 돌아 나가려고 했지만, 그 남자는 끝까지 진재희를 따라왔다.
“어……. 그러니까 그 누구도 나갈 수 없다니까?”
“감금한 적 없다고 하더니.”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감금했어? 그냥 나갈 수 없다는 건데.”
진재희는 뒤를 돌아보았다.
강준호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푸우-.
강준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다시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곳 수원은 철저한 규칙과 규율이 있는 도시야. 지금은 통제 시간이거든. 바깥을 봐. 누가 돌아다녀?”
“……전부 때려눕히고 나가 줄까?”
“애처럼 징징대는 것도 정도껏 해. 너가 따라오겠다고 했지, 내가 널 초대했어?”
“난 시온이 걱정되어서 따라온 거야.”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
“어딨어?”
“네가 했던 그 싸가지 없는 말투. 그대로 돌려줄게. 대답해 줄 의무는 없는데?”
“강제로라도 나가겠어.”
“가능하겠어?”
강준호는 작게 힘을 방출했다.
분명 강준호의 입장에선 작은 힘이었지만, 주변이 느끼기엔 엄청난 힘이었다.
이곳은 실내였음에도 강준호의 힘에 의해, 진재희의 머리카락이 흩날릴 정도였다.
또다시 둘 사이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분명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의식하고 있었다.
“시온은 어딨어?”
“그리고 네까짓 게, 형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동생이라고 내가 봐줄 것 같아?”
진재희의 말에, 강준호는 피식 웃었다.
“하-. 하하.”
이내 로비층이 가득 울리도록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아……. X이이바알……. 진짜 X 같네.”
그때, 로비 층에 있던 다른 강준호의 부하들은 바짝 긴장했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강준호는 얼굴을 큰 손으로 감싸고 웃어대다, 이내 손가락 사이 매서운 눈동자로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우웅-.
“?!”
로비 층의 모든 공간이 검게 물들어갔다.
빛이 강력한 중력 때문에 퍼지지 않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사물들은 색을 잃었다.
쿠우우우웅-.
“?!?…….”
진재희는 양어깨에 코끼리가 한 마리씩 앉아 있는 것처럼 엄청난 무게를 느꼈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힘을 방출하여 그의 아티팩트에 저항하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강준호의 힘을, 진재희는 막을 수 없었다.
털썩-!
결국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한쪽 무릎을 꿇었음에도 중력은 더 강해졌다.
이젠 코끼리가 아니라, 건물을 양어깨에 짊어진 듯했다.
이 엄청난 중력에도 태연하게 걷는 이가 있었다.
강준호는 양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은 채로 천천히 진재희에게 다가왔다.
“내가 말로만 하니까. 우스워 보여?”
강준호는 말로 하는 걸 싫어했다.
강준호 입장에서, 그는 지금까지 진재희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원래라면 자신에게 거슬리는 존재는 그저 없앨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강준호의 리그에서, 진재희는 자신의 뜻에 정면으로 부딪친 유일한 사람이었다.
원래는 강준호의 힘만 느껴도 벌벌 떨며 무릎을 꿇기 마련이었으니.
“이래서…… 내가 형 옆에 널 두려고 하지 않는 거야.”
“흐우으…….”
진재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강준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으려고 했고, 그 전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준호!”
덥석-!
시온은 단번에 준호의 팔을 붙잡아 뒤로 뺐다.
강준호는 화들짝 놀라 방출한 모든 힘을 거두었다.
그가 힘을 거두자, 색을 잃은 사물들이 다시 저마다 색상을 되찾았다.
준호를 바라보는 시온의 얼굴은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시온은 준호에게 물었다.
“뭐 하는 거야.”
“형……?”
“준호.”
시온은 쥐고 있던 동생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타이르듯이 말했다.
“알아. 이해해.”
“…….”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든 강경하게 나서던 수원의 절대자도, 결국 자기 형 앞에서는 작은 동생이 될 뿐이었다.
“못 믿겠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믿지 말라는 것도, 내가 너한테 알려 줬던 것이니까. 경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야. 그냥 지켜봐 달라는 거야. 이 여자는…… 지난 라운드 동안 나와 함께했고.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이 리그가 끝나기 전까지 언제나 함께할 사람이고.”
“…….”
“네가 불편하다면 수원으로 오진 않을게.”
“형……. 내 말은 그, 그게 아니라.”
준호는 말을 떨었다.
준호의 입장에서, 강시온은 죽었다가 돌아온 자신의 소중한 가족이었다.
그런 가족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다. 강시온이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고, 또 나아가선 강준호 자신이 형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강준호의 입장에서, 진재희라는 여자는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강시온을 이용하는 자로 보였다. 그래서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시온의 생각은 달랐다.
“준호야…….”
그리고 강준호는 강시온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 형. 내가 잘못했어. 손님인데, 내가 손님처럼 대하지 못했어. 그, 그러니까. 그 방금 전에 안 오겠다고 한 말은…….”
강준호의 말에 강시온은 안심한 듯 웃어 보였다.
“올 거야. 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나한테도 일이 있으니까.”
“…….”
준호는 달갑진 않았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
준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수원의 붕괴? 자신의 죽음?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건 자신의 형이 자신을 싫어하게 되진 않을까, 하는, 그 아주 작은 우려뿐이었다.
“알겠어. 형. 기다릴게.”
강준호, 그는 천지의 군주라고 불렸다.
하늘과 땅, 인간이 사는 지역 내에 그를 상대할 자가 없기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수원에서 시작한 그의 정복 활동은, 천안, 전주, 광주를 넘어 목포까지, 마지막으론 제주도까지 손에 넣었다.
강준호는 지금 한반도 내에서 유일하게 4라운드를 클리어하기 직전까지 간 자다.
그의 그림자들은 절대 군주를 모시는 자들로,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존재들이다.
그런 절대 군주가, 겨우 자신의 형이라는 자에게 흔들리다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주연은 깊은 혐오감을 느꼈다.
* * *
“전부 챙겨. 하나도 빠짐없이.”
“어서 움직이자고!”
“야! 옮길 때 조심해!”
강준호가 만경에 보내는 선물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확히는 자신의 형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선물을 가득 담은 짐차가 일렬로 이어져 끝없이 이어질 정도였다.
이 정도의 많은 재물을 옮기는 것도 국가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강준호는 달랐다.
그의 능력인 중력을 사용하여 큼지막한 물건들도 단숨에 옮겨졌다.
강시온은 동생의 엄청난 힘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그에게 누군가 다가가 말했다.
“식량…… 담배…… 식수…… 의료품…… 영양 자원…… 각종 사치품…… 황금 보석……. 군주님. 이곳에 사인을 해 주십시오.”
강시온은 서기가 내민 서류에 사인했다.
수백 마리의 돼지 무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돼지라는 건 원래 리그가 시작되기 전에는, 평범한 시민들도 손쉽게 맛볼 수 있는 고기였지만.
지금 와서는 귀족 중에서도 귀족만이 맛볼 수 있는 최고급 음식이었다.
만경의 군주였던 강시온조차도 돼지고기를 맛본 것은 손에 꼽았다.
그런 돼지가 수백 마리다. 모두 강준호가 형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돼지를 사육하기 위한 사육사도 30명 정도 갈 겁니다. 추가로, 도시 재건을 위한 전문가도 150명. 의사와 간호사 150명. 군사 500명. 이 이외에 만약 군주께서 더 부족한 것이 있으시다면, 위원장님이 무엇이든 요청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원장은 이곳 수원 1구를 지배하는 강준호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강시온은 선물 행렬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 정도까지 해 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위원장님께선 더 해 주시지 못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조속한 만경의 재건을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한 가지 더.”
서기는 뒤돌아 가는 강시온을 붙잡았다.
강시온은 서기를 바라보았다.
반듯한 옷차림과 동그란 안경.
그는 작은 보폭으로 강시온에게 다가갔다.
“이걸 받으십시오.”
서기는 작은 스포츠 가방을 건넸다.
강시온은 서기를 한 번 바라보다 가방 속 내용물을 살폈다.
지이이익-.
지퍼를 열자, 그곳에는 엄청난 양의 담배가 있었다.
강시온은 담배를 살피며 서기에게 물었다.
“이건?”
“위원장님께서, 군주께 직접 드리는 선물입니다. 이번 전쟁을 통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셨을 터인데. 이 담배가 수고를 덜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담배는 이 리그에서 엄청난 가치를 가지는 화폐였다.
적어도 80L는 되어 보이는 스포츠 크로스 백에 담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과연 이런 화폐를 짐차에 실어 옮길 순 없었을 것이다.
강시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동생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아, 그리고. 제 부하 중에 한 명 더 이곳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최명준 씨를 말씀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서기는 참 어렵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아-. 당장은 치료실에서 옮기는 것조차 위험한 상태입니다. 사실 정말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지금 만경의 의료 시스템으로 최명준 씨를 케어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최명준 씨는 지금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저희 의료진도, 그의 죽음을 최대한 막고는 있습니다.”
강시온은 말을 삼켰다.
사실 최명준은 회복되는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그의 얼굴을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수원의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최명준에 대해서는 강시온도 동생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강준호는 진재희와는 다르게, 최명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강시온은 그를 이곳에 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혹시 그 사람이 일어나면, 어떤 방법이라도 좋으니 제게 연락을 주세요.”
“알겠습니다. 군주께서 연락받음에 불편함이 없도록, 저희 수원에서 모든 걸 지원할 겁니다. 그럼 군주님. 또 뵙기를 소망하겠습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강시온은 그 말 뒤로 마차에 올라탔다.
그들의 행렬은 다시 만경으로 올라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