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화. 엇갈린 관계 (1)
나는 동생을 따라 옥상 끝으로 향했다.
“여기가 내 도시야. 이젠 형의 도시이기도 해.”
난 동생과 나란히 난간에 기대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동생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동생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이 살짝 마음에 걸렸지만, 녀석도 이제 성인이다.
내가 왈가왈부할 순 없었다.
준호는 담배를 쥔 손가락으로 도심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저기가 시장, 저긴 경기장, 성벽을 따라 있는 건 군 병력시설, 그리고 성 밖은 일반 주민들의 거주 구역. 푸우-.”
동생이 내뿜은 담배 연기가 허공에 흩어졌다.
난간 너머에 거대한 성벽이 보였다.
수원의 모습은 만경과는 많이 달랐다.
이들은 이곳에서 번듯한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건물도 새로 지은 것들 투성이었고, 온갖 이종족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도시 중앙에 솟아 있는 거대한 피라미드는 그 크기가 압도적이라 위압감이 들 정도였다.
언젠가 미디어에서 봤던, 그 피라미드보다 훨씬 더 컸다.
“저긴 뭐야?”
난 자연스럽게 물었고, 준호는 그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형의 무덤.”
“……어?”
내 무덤?
“진짜야.”
동생은 담배를 피우다 바깥으로 던지고는 다시 날 바라보며 말했다.
“형은 앞으로 여기서 지내. 여긴 지난 라운드 동안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은 요새니까. 형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은 없을 거야.”
난 난간 바깥으로 상체를 기울여, 휘날리는 바람을 만끽했다. 그러면서 동생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럴 순 없어.”
“왜?”
난 동생을 바라보았다.
동생은 상당히 키가 컸기 때문에, 조금 고개를 올려다보아야 했다.
“수원에서의 너의 위치는 모르지만, 난 한 세력의 지도자야. 전쟁은 끝났고, 정리해야 해. 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아. 그리고. 흐음…… 머리카락이 이 정도고, 키는 나보다 크고 너보단 작은 여자애. 못 봤어?”
“……누굴.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
“진재희라는 여잔데. 알아?”
“…….”
준호는 난간 바깥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 보였다.
침묵은 길지 않았다.
“그 여자라면 내 주치의한테서 치료를 받고 있어. 걱정 안 해도 돼.”
준호의 말에, 조금 안심이 들었다.
“다행이네. 어딨어? 지금 한 번 보러 가고 싶은데.”
“아…… 그게. 지금 그 여자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만나볼 순 없을 것 같아. 미안해. 형.”
……거짓말이네.
준호는 언제나 거짓말을 할 때,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긁는 습관이 있었다.
나는 준호에게 거짓말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묻지 않았다.
분명한 건 진재희가 살아 있다는 것이고, 난 준호가 스스로 거짓말을 해명하길 바랐다.
“그럼. 어쩔 수 없네.”
“미안해 형. 그 여자가 치료되는 대로 만나러 가자.”
“……그래.”
“그보다 형. 만경을 정리한다고 했지?”
“그래야지.”
“그럼 내가 도와줄게. 계획이 뭐야?”
“계획…….”
난 계획을 말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계획은 언제나 진재희의 의견을 먼저 물었었다.
왜일까.
난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동생을 만났건만, 왜인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동생에게서 느껴지는 희미한 살의, 그건 결코 내게 내비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그 기운이 너무나 불길했다.
내가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자, 준호는 말했다.
“형. 난 형을 찾아서 너무 기뻐. 알고 있어. 형이 지금 내게 느끼는 감정들. 조금 이질감이 들겠지. 나도 그래. 다행인 건 형의 모습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겠지만. 하여튼. 형. 이거 하나만은 믿어 줘. 난 형을 위해 움직일 거야. 형은 내 하나뿐인 가족이잖아.”
동생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술술 말했다.
부정할 수가 없어 그저 웃어 보였다.
“이 도시는 이제 형 것이야. 원한다면 군주의 자리도 내놓을 수 있어.”
“그럴 필요 없어.”
“날 경계하지 마. 형. 난 진심이야.”
“알고 있어.”
난 준호의 등을 토닥였다.
“그래도 네가 도와줄 건 없어. 세력에 돌아가서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올 거야. 이건 내 일이잖아. 내가 책임지고 끝내야지.”
“……그건 이해해.”
“금방 다녀올 테니까. 내 친구나 잘 보살펴 줘.”
“……알겠어.”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고, 난 웃음으로 화답했다.
동생을 만난 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살의든, 피냄새든 동생과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나의 꿈은 어쨌거나 이루어졌다.
그 꿈을 이룬 것은 진재희의 도움이 컸다.
그리고 이젠, 내가 그녀의 꿈을 이뤄 줄 차례였다.
그걸 위한 계획도 있고, 이제 서울을 지배하는 건 나니까. 무엇보다 이제 내겐 동생이 있었으니까.
* * *
강시온이 떠난 옥상, 강준호는 여전히 난간에 기대 중얼거리고 있었다.
“친구……. 친구라…….”
그는 다시 중얼거렸다.
“친구라고……. 친구. 그 여자가 형의 친구. 친구. 친구……. 친구.”
쭙- 푸우우-.
강준호는 한숨과 담배 연기를 동시에 내뱉었다.
“형은 친구 같은 거 안 두는데……. 이상해……. 타인은 전부 다 X신인데. 가족 새끼들도. 이웃도. 친구……? 아니야. 아니야. 아니지. 그럴 리가 없어. 타인은 도구야. 타인은 도구일 뿐이야. 이 세상에 믿을 건 형과 나밖에 없어.”
강준호는 의미 없는 단어들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그는 친구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는 있을 수 없는 존재다.
대인 관계에 있어선, 상호 목적과 원인, 결과만이 있을 뿐이다.
형은 친구 같은 건 두어선 안 되었다.
아니, 무엇보다 강시온은 타인과는 비교 불가할 정도로 고귀한 존재다.
황족이 천민의 무리와 어울릴 순 없다.
천민은 기어이 자신의 형을 타락시키고 만다.
강준호는 백옥같이 새하얀 형의 모습에, 진재희라는 그 여자의 더러운 오물이 묻어 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탁-. 트드드.
강준호는 담배를 꺼트리고는 어디론가 향했다.
그가 움직이자, 그를 따라다니는 수많은 그림자가 함께였다.
준호가 향한 곳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1구에 속한 숙박시설.
이곳은 수원에서도 제일 좋은 호텔이었다.
그 옥상, 스위트룸의 방문을 열었다.
덜컹- 드드드드.
강준호는 스위트룸에 들어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급 음식부터 옷, 수발을 드는 인원들까지.
그리고 고급 소파에 앉아 있는 검은 생머리의 여자.
강준호는 진재희를 극진하게 모시고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녀는 형이 아끼는 사람이었으니까.
진재희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눈동자만 돌려 강준호를 바라보았다.
매서운 두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준호는 인상을 한 차례 찌푸리고는 그녀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얼음을 담은 바구니와 함께 고급 와인이 있었다.
강준호는 코르크를 맨손으로 따버렸다.
뽕!
“비싼 술인데. 입도 안 댔네. 왜.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어?”
줄줄줄-.
포도주가 둥근 와인 잔에 떨어지며 출렁거리다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진재희는 강준호에게 물었다.
“날 왜 여기 가둔 거지?”
“…….”
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와인 잔을 진재희 앞에 밀어 놓을 뿐이었다.
강준호는 자신의 잔에도 와인을 따른 뒤 소파 등받이에 편하게 누웠다.
긴 두 다리를 교차하고, 고급 와인이 담긴 잔을 코끝에 가져가 냄새를 먼저 맡았다.
그리고 입술을 포개어 와인 잔에 대, 한 모금 마신 뒤 혀를 굴리며 입 안에서 천천히 향을 느꼈다.
꿀꺽.
와인을 한 모금 마신 강준호는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널 가둬놓은 적 없어. 나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나가도 돼. 네가 여기에 남아 있는 건, 온전히 너의 선택 아닌가?”
“방 안에서부터 복도, 호텔에 있는 너의 졸개들부터 거두고 나서 그 말을 했으면 좋겠어.”
진재희의 말에 강준호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대단한 아티팩트 감각이야. 혹시 몇 명인지도 알아?”
“내가 일일이 네 말에 대답해 줄 의무는 없는데.”
“너무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진 마. 나도 네가 싫거든. 누군 말로 풀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강준호는 눈매를 날카롭게 찢어선 진재희를 살폈다.
그의 따가운 눈초리에 진재희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둘 사이에 긴장이 맴돌았다.
강준호는 조금 침묵을 유지하다가 물었다.
“한 가지만 물을게. 우리 형을 사랑해? 왜 옆에 있는 거야? 목숨까지 바치면서.”
그의 질문에 진재희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진재희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강준호는 진재희의 눈치를 살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네. 왜?”
“……너한테 대답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야.”
“부끄러워서 그래?”
“……그만해.”
“그럼 둘만 대화를 나누자고.”
강준호는 대기 중이던 인원들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
그러자 인원들이 우르르 방을 나섰다.
이제 방에는 둘밖에 남지 않았다.
강준호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형이랑 몇 년을 지냈지?”
“……네가 생각한 것보단 오래되었을 거야.”
“오 년? 칠 년?”
“쓸데없는 말은 그만둬.”
전생의 진재희가 강시온과 함께 지낸 날까지 합한다면 족히 10년은 되었다.
물론 그러한 사실을 강준호가 알 리가 없었다.
“내가 대신 대답해 줄까? 난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형을 아끼고 있어. 형도 마찬가지일 거야. 나에겐 70억 명의 사람보다 단 한 명의 형이 더 소중해.”
강준호는 힘을 조금 방출했다.
진재희도 강준호의 아티팩트 힘을 인지했지만, 공격적인 반응이 아니었기에, 별다른 대응을 하진 않았다.
만약 둘이 이곳에서 싸운다면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 거다.
그 사실을 강준호도 진재희도 알고 있었다.
강준호의 아티팩트에 의해 떠오른 트럼프 카드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구체를 만들었다.
“리그를 대하는 방식은 각 플레이어마다 다르지만, 언젠가부터 하나의 결과를 향해 모두가 달려가기 시작했어.”
트럼프 카드 구체는 서로의 시야를 막고 있었다.
강준호는 가볍게 손가락을 옆으로 돌려 구체를 치웠다.
이제 둘은 다시 두 눈을 마주칠 수 있었고, 강준호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바로 라운드 승리야. 내가 생각하는 리그는 이 행성의 주인을 선발하는 하나의 대회고.”
팔락-. 팔락-.
땅바닥에 있던 트럼프 카드들이 한 장씩 구체에 달라붙었다.
처음에는 작았던 구체가 이젠, 타이어만큼 커졌다.
구체는 돌았다.
지구처럼.
“난 형을 위한 세계를 만들 생각이야. 필요 없는 인간은 모조리 죽이고, 형에게 복종할 사람만 살려 두는 거지. 유일신이 되는 거지. 형은 인간의 신(神)이 되기에 충분해. 사람은 뭉쳐 있기 때문에, 역겨운 거야.”
진재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인간을…… 전부 죽인다고?”
“정확히는 필요한 인간만 살려 둘 거야. 세상엔 너무 쓰레기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아. 불필요한 존재들이지. 지금 이 리그는 거름망 같은 것이지. 도태되는 인간은 버려지고, 성장과 발전을 이룬 인간은 더 살아가는 구조지. 형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신이 될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말이 되는 소리야. 병신은 자기가 왜 병신인 줄 모르지. 널 봐.”
강준호는 다시 소파에 기대 턱을 살짝 치켜올렸다.
“진짜 병신들은……. 자기가 왜 병신인 줄 모른다니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세상의 모든 일을 자기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타인의 목숨 따윈 개새끼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그게 인간을 몰살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자기가 병신인 줄 모르는 존재는 힘에 의해 다스려야 해. 그것이 힘이 세상의 척도가 된 이유야.”
“…….”
“멍청이는 모두 죽어야 한다. 그게 내 목표다.”
강준호는 진재희에게 다시 물었다.
“다시 물을게. 넌 형을 사랑하고 있어?”
진재희는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강준호는 계속해서 질문 공세를 이어 나갔다.
“근데 넌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곁에서 무얼 하고 있지?”
“왜?”
“뭣 때문에.”
“말해봐. 왜 말을 못 하지?”
“네가 목숨 걸고 형의 곁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어?”
“이해할 수 없어. 네 생각. 네 행동. 그리고 네 목적까지.”
“무엇 하나 자신에게 솔직하지도 못한 사람이, 형의 옆에 있을 자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넌 허물이야. 허물뿐이라고. 자격 없어. 넌. 형은 네 옆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어. 조금씩 너에게 물들었겠지. 너라는 오물이 형을 물들었다고. 내 계획에 말 안 듣는 개새끼는 필요 없어. 넌 여기까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공은 인정하겠어. 형을 지키고, 형을 위한다는 건 알겠으니까. 죽기 전까지 편하게 살 수 있을 정도로 환경을 조성해 줄게. 제주도로 가라. 거기도 내 땅이야. 그 안에서 넌 신처럼 모셔질 거야. 내 명령 하나만 있으면 되거든. 진재희를 모셔라. 이 한마디. 이건 내 마지막 배려야. 내 배려를 무시하지 마라. 부탁이니까.”
강준호의 연이은 말 뒤로 침묵이 흘렀다.
진재희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강준호는 그녀의 눈동자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진재희는 말했다.
“싫어.”
그녀는 그 소파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향했다.
강준호의 눈동자는 그녀가 이 방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에게 꽂혀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