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3화. 서울의 지배자 (3)
강북과 메트로가 무너지자 강남의 세력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라운드에서 지분율을 많이 가져갈 순 없었지만, 강남은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다.
3라운드를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왕 강다혜는 담배를 꼬나문 채, 롯데타워를 바라보았다.
그녀 뒤로 한 늙은 부하가 다가와 그녀에게 물었다.
“이번 라운드를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하더라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조금의 병력을 투자하여 강남으로의 진격이 옳았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계획이 있다 하지만…….”
“걱정 마. 할배.”
휙-.
강다혜는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 저 멀리 날려 보냈다.
그녀는 웃으며 늙은 부하를 바라보았다.
“죽을까 봐. 그래?”
“……그런 게 아니라.”
“라운드에서 패배해도 확정적으로 죽는 건 지도자일 뿐이야. 물론 너희에게도 생명 페널티가 주어지겠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
강다혜의 말에 늙은 부하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느리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전 군주를 모시는 자이고. 저에게는 저의 목숨보다 군주의 생명이 더 소중합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말이라도 고맙네. 할배.”
강다혜는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걱정 마. 드래곤을 잡는 건 나야.”
그녀의 눈동자는 위로 올라가, 롯데타워의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몇 년간 수십 번의 전쟁 동안 롯데타워는 건재했다.
건재하다 못해, 위풍당당하게 솟아있었다.
그리고 그 정상에는 드래곤이 살고 있다.
* * *
어수선한 목소리들이 방 밖에서 울리고 있었다.
하윤하와 정현수, 두 사람은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란히 각기 다른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 방 안은 황제와 지휘관을 위한 회복실로 마련된 공간이었다.
서울 점령전은 끝이 났고, 결국 강시온은 서울의 지배자가 되었다.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서도 많은 인원이 필요했고, 그 현장 지휘관으로는 총사령관 황민재가 맡았다.
“…….”
“…….”
두 사람은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지난 이틀의 시간 동안.
플레이어는 원래 하루면 회복하겠지만, 전투로 인해 입은 피해가 너무나도 컸기에.
누군가가 수발을 들지 못하면 스스로 물 한 잔도 못 먹을 정도.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고, 젊은 여자가 식사를 가지고 왔다.
쟁반에 담긴 음식은 평범한 군 식량이었다.
강시온은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도시가 가지고 있는 산업시설, 식량, 식수들을 저장해 두었다.
괴수가 지내고 있는 이곳 경기장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원들이 이곳에 몰려 있었다.
“몸은 어떠세요?”
“……괜찮. 습니다. 하하.”
젊은 여자는 하나하나 숟가락으로 음식을 퍼, 두 사람에게 먹였다.
그녀는 곧장 방을 나섰고, 다시 방에는 둘밖에 남지 않았다.
얼마간의 침묵을 깬 건, 정현수의 트림 소리였다.
하윤하는 인상을 팍 구기며 겨우 고개를 돌려 정현수를 바라보았다.
“……더러워.”
“더럽긴.”
“…….”
정현수는 온몸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붕대에도 피가 잔뜩 묻어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교체해 주어야만 했다.
하윤하는 물었다.
“몸은……. 괜찮아?”
“답답한 것만 빼면. 넌?”
“……난 너보단 괜찮지. 일어날 순 있지만.”
“일어날 수 있으면 나 물 좀 떠다 줘.”
“아까…… 그 언니 왔을 때 부탁 좀 하지.”
“그 누나한테 부탁하기엔 미안하잖아. 24시간, 밤낮없이 간병하는데.”
“난 안 미안하고?”
“응. 빨리. 나 목 타.”
“에휴. 그래.”
하윤하는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물병을 집어 들었다.
사실 정현수의 몸 상태가 제일 심각했고, 하윤하는 과로로 인해 체력이 떨어졌을 뿐이다.
물론 하윤하 역시 일반인에 비해선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건 매한가지였지만.
하윤하는 물병에서 물을 따라 정현수의 입 가까이 가져갔다.
물컵이 다가오자 정현수는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자 하윤하는 그대로 정현수의 얼굴에 물을 뿌려 버렸다.
촤악!
“푸하아악! 아오. 파하-!”
정현수가 기침을 토해 내는 모습에 하윤하는 작게 웃었다.
정현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짓이야?!”
“세수 좀 하라고. 며칠 좀 안 씻었더니 얼굴이 말이 아니다 야. 누나가 특별히 물을 부어 줬다.”
“……아. 정신이. 하아-. 아, 빨리 물 줘.”
“한 번 더 뿌려 줘?”
“물 달라고! 아니……. 물 먹여 줘! 좀.”
두 사람은 얼마간의 실랑이 끝에 안정을 되찾았다.
하윤하는 정현수 침대 앞에 앉아 있었다.
하윤하는 얼마간 정현수의 얼굴을 바라보다 말했다.
“영웅께선, 어떻게 되셨을까?”
“……글쎄.”
전쟁이 끝났음에도 두 사람에겐 강시온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걱정이 앞섰다.
그 어느 곳에서도 강시온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영웅께서 잘못되었을 리가 없잖아. 그냥 기다려.”
“아직 한 번도 안 오셔서…….”
“영웅께서 친히 우리를 보러 와야 하냐?”
“그건 아니지만…….”
“기다려. 그냥 기다리면 돼.”
정현수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전부 알아서 하실 거야. 그냥 기다리자.”
하윤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 *
오랜 꿈을 꾸었다.
나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었고, 몸에는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모래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쳤지만, 그 바람을 막기 위해 눈동자를 깜빡이지도, 손을 들어 조금이라도 피하려고도 들지 않았다.
방향을 몰라, 발길이 닿는 대로 움직였다.
어느 순간 깨달았을 때, 내 등 뒤에는 동생이 업혀 있었다. 동생은 내 등 뒤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무거움을 참고 다시 걸었다.
그저 앞으로 움직였다.
다시 어느 순간, 난 등 뒤의 동생이 사라졌다는 걸 깨닫고는 이제 동생을 찾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바다에 빠진 남자처럼 허우적거리며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모래바람을 이겨 내고 모래 언덕을 넘어, 동생의 흔적을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힘에 부쳐 쓰러지려고 했다. 내 몸을 부축한 건 한 여자였다.
여자는 이제 나와 같이 걷기 시작했다.
여자와 함께 걷는 이 길이 점점 모래밭에서 풀밭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젠 울창한 숲이다.
여자는 내게 칼을 쥐는 법과, 잎사귀를 잘라 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숲에서 만난 맹수에게 대척하는 방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
점점 살 만해졌다.
혼자 걷던 이 삼만 리 길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걷게 되자 고통은 반감이 되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내게 주던 그녀의 관심과 애정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깨닫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깨달았을 때는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그녀가 점점 내 곁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주변 환경이 바뀌고 우리도 서로 달라졌다.
난 그녀가 점점 변하면서 깨닫고야 말았다.
난 그녀를 아끼고 있었다.
사람으로, 그리고 친구로서.
하지만 이제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
난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 * *
고급 침대에 누워 있는 강시온.
그의 수발을 드는 인원만 20명이다.
침대 주위에는 의사부터 마사지사, 치료 전문 아티팩트 능력자까지.
강시온이 처음 눈을 뜨고, 본 사람은 한 간호사였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수건으로 강시온의 이마를 닦고 있었다.
‘푹신하네…….’
그건 강시온이 다시 눈을 뜨고 들었던 감정이었다.
이 침대에 누워 있으니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몸의 중력이 사라진 것 같았다.
강시온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주위 사람들이 만류한다 한들, 강시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말했다.
“진재희……?”
시온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남자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내가 형한테 처음 듣고 싶던 말은 아니네.”
그 목소리에 시온은 옆을 돌아보았다.
시온의 입장에선, 처음 보는 남자가 사과를 깎고 있었다.
사과를 깎고 있는 남자는 강준호였다.
사각. 사각.
강준호는 정성스럽게 사과를 깎아, 깨끗한 흰 접시 위에 차분하게 올려 두었다.
강시온은 아직 자신의 동생이 눈앞의 남자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야, 강준호의 모습은 강시온이 상상한 동생의 성장한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강준호는 다시 사과 껍질을 과도로 돌돌 깎으며 말했다.
“어릴 때……. 어디서 봤는지는 몰라도. 간병하는 사람은 항상 사과를 깎고 있더라고. 아마……. 유치원에 있던 티브이 드라마 속 주인공이 그랬던 것 같아. 난 그 주인공이 부러웠어. ……돈 없던 시절. 그러니까 사과 한 쪽도 사기 어려웠던 시절. 내가 아팠을 때가 있었어. 형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강시온의 눈꺼풀이 작게 흔들렸고, 강준호의 말이 이어졌다.
“생각해 보면 꽤 고열이었어. 열이 펄펄 나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으니까. 그야 감기에 안 걸리는 게 이상한 집이었어. 바퀴벌레며, 쌀벌레며, 냉난방도 안 되어서 여름이고 저녁이고 우린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툭.
사과가 하나 더 올려졌다.
강준호는 계속 말했다.
“감기 몸살에 걸렸는데, 그때……. 유독 사과가 먹고 싶더라. 왜 그럴까. 사과가 딱히 감기에 좋은 것도. 약도 아닌데 말이지.”
푸흐흐.
강준호는 작게 실소했다.
“어쩌면 그래. 그게 평범한 생활인 줄 알았던 거지. 난 왜……. 사과 하나 먹을 수 없을까.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과를 먹었으면 했었어. 그래서 형한테 조르고. 조르고. 형 마음도 모른 채, 계속 조르고.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던 그 날. 형은 사과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향했지.”
강시온은 그날을 떠올렸다.
당연히 사과 한 쪽 살 돈도 없었다.
당시의 강시온은 모든 돈을 계획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강시온은 다음 날 점심으로 삼각김밥 하나를 사 먹을 돈을 미리 당겨서 사과 하나를 천 원을 주고 사 왔었다.
“그래서 형은 눈을 잔뜩 뒤집어쓴 채, 집으로 들어와선 날 보며 사과를 흔들었어. 손은 얼어서 빨갛게 부어 있었지…… 추웠는지 형도 훌쩍이며 콧물을 들이마셨고……. 그렇게 형은 내 앞에서 사과를 깎았지. 사각. 사각. 칼 잡는 법을 모르던 형이 깎은 사과 모양은 참 못생겼었지.”
“너…….”
“너무 맛있더라. 그때 그 사과. 그게 미안해. 진짜 미안해. 안 그래도 힘들었을 텐데. 난 그날이 아직도 너무 미안해. 진짜 평생을 후회할 정도로. 형이 만경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렇게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도, 마침내 형을 다시 만났을 때도……. 진짜 미친 듯이 슬프고 미안했어.”
강준호는 떨리는 손으로 사과를 접시 위로 올려 두었다.
이제 그의 표정은 슬픔에 일그러져 있었다.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강시온 역시 표정이 일그러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온은 자신의 허벅지까지 덮인 이불을 말아 쥐며 감정을 삼켰다.
강준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의 강준호는, 두 형제가 이별했을 때의 강준호였다.
열세 살의 강준호는 자신의 형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너무 어렸을 때라.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 했어. 정말. 그냥 다른 가정이랑 비교만 했을 뿐이고, 그냥 우리 집을 원망만 했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 왜 부모도 없는가……. 왜 반지하에 살고, 왜 기초생활수급자라고 놀림을 받아야 하나……. 왜…… 왜…… 학교 급식을 배가 터지도록 꾸역꾸역 억지로 먹어야 했고. 왜…… 집에선 비가 오면 비를 퍼 나르고, 눈이 오면 눈을 퍼 날라야 하나……. 왜 나는 아파트에 사는 애들이랑 다른가. 나도 엘리베이터 타고 싶은데…… 나도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고 싶은데……. 그리고 왜 나는 운동회 때 혼자서 뛰어야만 했는지……. 아빠 있는 애들도 너무 부럽고…… 엄마 있는 애들도 너무 부럽고……. 부모 손 꼭 잡고 돈가스 먹으러 가는 애들도 너무 부럽고……. 어디 학교에서 놀러 갈 때…… 돈 걱정 없이 저들끼리 뭐 하고 놀지 생각하는 애들……. 애들끼리 피시방에 가거나 핸드폰 게임 할 때……. 새 계절, 새 학기가 되면 새로운 옷을 입을 때도 걔네들이 너무 부러웠어……. 좋은 부모를 둔 걔네가. 그 평범한 것을 당연한 듯 누리는 걔네가. 자기 자식들 용돈으로 선뜻 만 원을 건네는 그 부모가. 그 부모들이…… 전부. 다 부러웠어. 근데…… 형. 진짜 미안해. 형. 내가 이제야 좀 알 것 같아. 깨달았어.”
강준호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런 어엿한 부모보다 우리 형이 훨씬 강하고 자랑스럽다는 걸.”
강준호는 그 말 뒤로 고개를 돌려 눈물을 삼켰다.
그는 어릴 때 하던 것처럼 형한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어린 나이의 강시온은 강준호가 투정을 부릴 때면 언제나 받아 줬다.
한 번쯤은 크게 혼낼 법도 한데, 언제나 토닥이며 잘 보듬어 줬다. 강시온은 모든 일에 강준호가 우선이었다.
건강도, 돈도, 밥도.
새 옷을 사 입힐 순 없었지만, 동생이 춥지 않도록 좋은 중고 옷을 구해 오는 형이었다.
맛있는 고기를 먹일 순 없지만, 동생이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끼니를 꼬박꼬박 챙겼다.
좋은 게임기를 사줄 순 없지만, 동생이 심심하지 않게 매일매일 놀아 주었다.
학원을 보내 줄 순 없지만, 동생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공사판에서 일일 알바하는 대학생 형한테 물어봐서라도 정답을 알아 왔다.
강시온은 강했다.
판검사 부모보다, 회사원, 공무원, 정치가 그 어떤 부모보다 강시온은 강했다.
강시온은 강준호의 형이었다.
하나뿐인 형.
그리고 ……하나뿐인 동생.
강시온은 감정을 삼키다 겨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많이 컸네……. 준호.”
“…….”
두 형제는 보란 듯이 서로를 안았다.
두 번 다시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 강하게, 그리고 더욱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두 형제는 아이처럼 울음을 펑펑 터트리진 않았지만, 서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강시온은 말했다.
“……고마운 건 나야.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강준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어이 울음을 토해 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