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2화. 서울의 지배자 (2)
비 오는 날.
일용직 노동 업무도,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도 없는 날, 열아홉 살의 강시온은 집 안에서만 있었다.
친구랄 것도 없고, 약속도 없었다.
아침 일찍 준호의 밥을 챙겨 주고, 그간 못 했던 집안일은 빠르게 마무리하고, 준호의 허름한 책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숙제를 살피다 틀린 수학 문제들에 하나하나 해답을 적어 주기도 했다.
주말이 되면 쉴 법도 한데, 강시온은 쉬지 않았다. 그리고 준호의 점심까지 만들어 먹인 뒤에야 겨우 쉬었다.
이 반지하에서 유일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방에 들어가 누웠다. 꿀맛 같은 낮잠.
허름한 이불을 반쯤 덮고, 80년대나 쓸 법한 요상한 소리를 내는 낡은 선풍기를 틀고.
강시온은 그 자리에 누워 세상모르게 잠을 잤다.
어린 강준호는 벌써 몇 년째 가지고 노는지도 모를 작은 소방차 장난감으로 연신 방바닥을 비비다, 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드리운 형의 얼굴은 참 애잔했다.
어린 강준호는 엉금엉금 기어가 형의 자는 모습을 관찰했다.
어렸음에도 강준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형이, 지금껏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말이다.
화장실 사건 이후, 준호는 형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애써, 더 힘차게 웃었다.
형 앞에서는 더 웃고, 더 떠들며 형이 힘들어하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형이 두 번 다시 나쁜 생각이 들지 않도록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그리고 형이 기절하듯 이렇게 잠을 청했을 때, 준호는 기어이 눈물을 토해냈다.
잠든 형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간 쏟아 내지 못했던 어린 눈물을 쏟아 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좋은 부모, 좋은 집, 좋은 환경에서 살아온 아이들은 지금 이 두 형제의 기분을 알까?
삶을 바꾸려는 자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형의 노력이 부족했는가?
전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피나는 노력에도, 뼈를 깎는 고통에도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건 강시온이었다.
강준호는 울음을 삼켰다.
“…….”
나이를 먹은 강준호도 마찬가지였다.
형이 기절한 모습은, 그때 그 시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모든 걸 쏟아 내고 힘들어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때. 형은 항상 이런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이해가 안 되었다.
‘왜……. 왜.’
형은 잠이 들었을 때가 가장 행복해 보이냐고.
부조리하다.
불합리하다.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고.
강준호는 형의 인생을 바라보며 지독한 연민감과 슬픔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형, 이제…… 우리식대로 살자.”
들리지도 않겠지만, 강준호는 자신의 속마음을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지겹게 변하더라도, 강준호는 형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형이 만약 돌아온다면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두 형제만의 유토피아.
형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몰라도, 강준호는 이제 형을 지킬 것이다.
그건 강준호가 맹세하고 다짐한 생각이다.
“형이 지금껏 날 지켰으니까, 이젠 내가 지킬게. 이제 좀 제발……. 편하게 쉬어. 좀……. 즐기라고.”
강준호는 품에 안긴 강시온을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뒤로 한 여자가 달려왔다.
* * *
“준호!”
채채연은 단숨에 다가와 강시온을 끌어안은 강준호에게 말했다.
채채연은 눈치 없이 꽥 소리를 질렀다.
“이 남자야……. 이 남자가 나한테 막! 모질게 대했어. 혼내 줘어-!”
이곳은 거대한 지하 속이기 때문에, 채채연이 꽥꽥 소리 지를 때마다 목소리가 울렸다.
강시온을 안고 있는 큼지막한 강준호의 등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때, 또 다른 남자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사실, 들어왔다기보다는 쳐들어온 느낌이 강했다.
휘릭- 콰아아앙!
마치 미사일이 떨어지듯 날아온 남자에게서는 강한 피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강준호의 눈물 섞인 눈동자는 차오른 먼지 연기 속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먼지 연기 속에서 걸어오는 한 남자.
그의 풍채와 신장은 강준호를 압도하였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근육들에선 핏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최명준이었다.
최명준은 기어이 북왕의 괴수, 서왕의 괴수까지 죽여 버리곤 이곳에 다시 도착했다.
사실상 현시점 만경의 최고 전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버서커라는 능력은 대미지가 축적될수록 강해지는 아티팩트다.
그러니, 지금 싸움에, 싸움에, 싸움을 거듭한 최명준의 전투 능력치는 진재희를 능가했다.
물론 조금이라도 더 대미지를 받는다면 죽게 되겠지만.
그리고 그는 강시온의 가장 충실한 개였다.
충실한 개는 자신이 충성을 다한 존재만이 있을 뿐, 가족 관계를 상관하지 않았다.
이빨을 으르렁대며 자신의 주인을 지킬 뿐이다.
“하아…….”
최명준이 입을 벌리자,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빨간 연기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최명준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강준호에게 다가갔다.
“히이이익……! 준호, 주, 준호. 쟤. 쟤.”
채채연은 화들짝 놀라선 강준호의 뒤로 숨어 버렸다.
최명준은 강준호에게 말했다.
“……꺼져라. 네놈이 함부로 만질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강준호는 최명준을 살피며 말했다.
“……형의 부하?”
“……형? 형이라고……?”
최명준은 강준호와 10m 정도 남겨두고 멈춰 섰다.
최명준의 외관은 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네놈이 형님의 친동생이냐?”
“……그렇다면.”
“……그렇다면?”
최명준 주위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말이 X나게 짧네. 애새끼가……. 두 번 말 않는다. 거기서 꺼져.”
“형의 부하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데.”
“알면 꺼져. X발.”
최명준은 지금 이성적이지 못하다.
지금 최명준은 제정신일 수 없었다.
강시온의 곁에 누가 있든, 자신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만 그의 뇌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강준호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찢어졌다.
‘힘을 보아하니, 강력한 생명력을 내뿜고 있지만, 앞으로 한두 번이면 죽게 될 정도로 약한 육체군.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건…… 정신력인가.’
“귀에 X 박았나. 안 들리나?”
그때, 최명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강준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타앗-! 부우우웅!
강준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방어용으로 주변 중력을 강하게 만들었다.
최명준의 휘두른 주먹이 강준호의 중력 막에 부딪혔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힘이었다.
중력은 기본적으로 행성의 힘이다.
개인이 행성을 이길 순 없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최명준의 육체 힘은 단언컨대 리그의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그런 최명준이 내뿜는 힘은 엄청나서 강준호가 순간 밀릴 정도였다.
그래도 강준호가 지진 않았다.
‘고기 방패로 쓸 만해. 살려 둬서 나쁠 게 없어.’
강준호는 주변 지면을 띄워 최명준의 육체에 덕지덕지 붙이기 시작했다.
터억-! 텅! 텅! 텅! 텅!
최명준의 몸이 지면에 부딪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의 몸을 완전히 덮어 버렸다.
숨은 쉴 수 있게 숨구멍은 내 주었다.
강준호는 지금 청소 중이었다.
강시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자와, 도움이 되지 않는 자로 나누어 살려 둘 사람은 살려 두고, 내칠 사람은 내치는 중이었다.
강준호의 판단에서, 진재희는 내칠 사람이었고. 최명준은 거둘 사람이었다.
그리고…….
“준호야! 준호! 아니, 애가 나 막 대했다니까? 일단 나랑 똑같이 묶어서 복수해 줘. 진짜로 내가 얼마나 힘들었……. 어……. 어어……?”
……채채연 역시 강시온에겐 필요 없는 인물이었다.
강준호가 손날로 중력을 둘로 나누자, 채채연의 목도 몸과 분리되어 공중에 떠올랐다.
채채연의 눈동자가 살며시 내려가, 자신의 애인이었던 강준호를 바라보았다.
“……자기야?”
“…….”
“왜…… 왜. 왜? 어억…….”
하지만 강준호는 채채연을 외면했다.
그녀의 목이 땅바닥에 떨어져 굴러갔다.
툭. 투르르…….
지난 라운드를 함께한 동료일지라도, 서로 몸을 섞은 연인일지라도.
강준호에게 강시온 미만의 모든 건, 그저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쓸모없는 도구는, 버려지는 것이다.
그게 도구다.
강준호는 희미한 미소로 시온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젠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야. 세상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어. 그러기 위해. 내가 형 주위를 청소를 좀 해야겠어. 형을 위한 일이니까.”
* * *
“살아남으려면 네가 그에게 필요하다는 걸 증명해.”
“……뭐?”
진재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주연을 바라보았다.
이주연은 휘어진 가로등에 앉아 폐허가 된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주연은 눈동자만 옆으로 돌아,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근데 너라면. 지금까지 그를 지킨 공적이 있으니까. 위험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아예 쓸모가 없다면 위험할지도.”
“…….”
“강준호는 그런 남자야. 강시온이 제일 무자비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그의 동생은 더해. 넌 모르겠지. 지난 라운드 동안 강준호가 강시온을 찾기 위해 어떤 짓까지 벌였는지.”
이주연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어깨도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강준호.
그는 어쩌면 악마일 수도 있었다.
형 강시온을 찾기 위해…….
그가 행했던 그 일들은…….
결코 신이 용서할 수 있는 짓들이 아니었다.
진재희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물었다.
“네 동생은.”
“그 말은 하지 마. 이미 대충 예상하고 있으니까.”
이주연은 다시 진재희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녀가 만경에 오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은 동생 이세범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정처 없이 도시를 방황했던 건, 어쩌면 그저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터억-.
이주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았다.
조금 울음을 토해 내는 것 같기도 했다.
이주연은 물었다.
“한 가지만 묻자.”
그녀는 자기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는 어눌했다.
“넌 인간이냐. 아님 악마냐.”
진재희는 그 질문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되묻고자 했지만, 이주연은 다시 말했다.
“정말…… 조금의…… 인간적인 것이…… 너희들에게 남아 있긴 하냐. 너나. 강시온이나……. 이것만 묻자.”
인간적인 것이 남아 있냐고?
진재희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이주연은 말했다.
“천안 전투가 있었어. 거기서 한 노인을 만났지……. 그 노파는 내게 말했어. 착한 사람은……. 인간은……. 1라운드 때 모두 죽어 버렸다고. 너도 네가 인간이라고 생각해……? 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난……. 난 인간이잖아. 난 인간인데? 난 너희랑 달라. 너희랑은 달라. 너희랑은 다르다고.”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주연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가 다시 말했다.
“다시 말할게. 두 형제를 만나게 해선 안 되었어. 이제 파멸적인 종말이 다가올 거야.”
“무슨 뜻이야?”
“강준호는…… 강준호는……. 강시온을…….”
하지만 이주연이 말을 맺기도 전,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바로 채채연의 힘이 사라진 것이다.
이주연은 화들짝 놀라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강시온을 안아 든 강준호가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강준호는 어린아이를 품은 부모처럼 강시온을 소중히 다루고 있었다.
또한 그 근처에는 무언가를 가둔 흙 감옥도 함께였다.
“이주연.”
“……!”
그의 목소리에 이주연은 벌떡 일어났다.
강준호는 이주연을 한 번 그리고 진재희를 한 번 돌아보더니 이어 말했다.
“난 형을 데리고 수원으로 간다. 이 남자를 치료해라.”
강준호는 흙 감옥을 풀었다.
그 안에서는 피를 잔뜩 뿜어내는 최명준이 튀어나왔다.
흙 감옥에서 튀어나온 최명준은 감히 살아있다고 생각도 못 할 만큼 심한 부상을 입은 채였다.
“……응.”
이주연은 고분고분 강준호의 말을 따랐다.
금세 최명준에게 다가가 상처를 살폈다. 보기보다 훨씬 더 심한 상처였다.
지금 숨을 쉬고 있는 것조차 신기할 정도로.
이주연은 초록실을 뿜어내며 수술을 시작했다.
강준호는 물끄러미 최명준을 바라보다 다시 부유했다.
그러자 진재희는 소리쳤다.
“기다려!”
그 한 마디를 내뱉는 것도 진재희에게는 힘이 들었다.
아무리 이주연의 치료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우지혜와 전투한 뒤였다.
서 있는 것조차 기적이었다.
강준호는 어디론가 날아가려다가 허공에 멈추어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강준호의 눈에, 진재희는 비 맞은 새끼 강아지 같았다.
정말 오들오들 떨고 있었으니.
“……난. 아니. 같이 가.”
“…….”
강준호는 침묵했다.
그리고 몸을 완전히 틀어 진재희를 내려다보았다.
진재희는 다시 말했다.
“……같이 가야겠어.”
강준호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
“내가 널 굳이 데리고 가야 할 이유는?”
“……네가. 뭔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그 소리에 강준호는 조금 침묵을 지키다가 작게 웃었다.
“푸흐흐…….”
강준호는 진재희의 행동이 웃기지도 않았다.
저 여잔 무슨 소릴 하는지도 모르겠다.
자기는 강시온의 친동생이다.
강시온의 신변에 무슨 일이 벌어질 리도 없거니와, 무슨 일이 있다면 진재희에게 있을 것이다.
강준호를 따라간다는 건, 진재희의 입장에선 호랑이 굴로 제 발로 들어가는 꼴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강준호는 진재희가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들었다고 해도, 준호의 입장에서 진재희가 내칠 사람이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좋아. 따라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