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1화. 서울의 지배자 (1)
‘내가 이제 필요하지 않다고?’
진재희는 강준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가만히 서서 아티팩트를 조종하고 있었다.
강준호의 아티팩트 능력은 중력.
그가 중력을 이용해 띄운 부유물 하나의 크기는 웬만한 건물만 했다.
그것들이 강준호를 중심으로 떠올라 지면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강준호는 그야말로 신에 필적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진재희의 전생에선 강준호나 우지혜 같은 강자가 없었다.
기존 두 명의 S급도 물론 건재하겠지만, 신흥 강자들은 그들을 이미 뛰어넘었다.
강준호를 바라보는 진재희는 감회가 새로웠다.
그는 원래 강시온의 곁에 있어야만 했던 남자다.
오랜 세월이 흐른 끝에 두 형제는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전장에서.
형제 재회의 순간, 진재희는 자신이 무얼 해야만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마음이 복잡했다.
잘 되었다며, 감정 없는 축하 말을 전해야 할까?
두 형제가 만나면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진재희는 강준호에게서 시선을 돌려 피로 물든 지면을 바라보았다.
그때, 강준호의 부하 이주연이 진재희에게 다가왔다.
이주연은 아무 감정 없이 진재희에게 말했다.
“팔 내밀어.”
진재희와 이주연은 서로를 알고 있었다.
이주연은 아티팩트 능력을 사용해, 초록실을 만들어 내더니 진재희의 상처 부위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초록실은 치유 효과가 있었다.
실들은 진재희의 벗겨진 살점에 덮어지더니 그대로 피부가 되었다.
최상위 클래스급의 치유 능력이었다.
이주연은 언제나 사람을 잘 챙겼다.
1라운드에서 강시온이 위기일 때도 이주연이 그를 살리기도 했었다.
전생에 그녀는 동생 이세범을 구하려다가 죽고 마는 사람이었다.
천성(天性)이 착한 사람.
하지만 지금 진재희 앞의 이주연은 그 모든 감정을 잃은 듯 공허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런 이주연을 바라보던 진재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이주연은 그녀의 말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상처를 봉합하고는 강준호의 곁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그때, 누군가 등 뒤에서 진재희를 발로 찼다.
퍼억-!
진재희는 힘없이 앞으로 쓰러졌다.
채채연은 쓰러진 그녀에게 꽥 소리 질렀다.
“벌레- 같은- 년아-!!! 내가 말했지-! 내가 말했잖아!!! 푸하하하하! 후회하게 될 거라고!”
진재희는 자신의 상처를 부여잡곤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채채연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성을 내고 있었다.
이어서 그녀는 강준호를 바라보았다.
형제는 형제였다.
둘은 닮았다.
물론 강준호의 키와 몸집은, 형을 능가했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판박이었다.
차갑고 매서운 눈동자.
주위를 압도하는 분위기.
그리고 목소리까지.
강준호는 차가운 말투로 진재희에게 물었다.
“형은 지금 어디에 있지?”
진재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준호는 손가락을 위에서 아래로 들어 올렸다.
훽-!
진재희는 금세 허공에 떠올라 강준호 앞으로 날아왔다.
그녀는 숨이 막히는지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강준호는 다시 물었다.
“난 너랑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 형이 어디로 갔는지 말해.”
“……네가 무슨 일을 벌일지 알고.”
진재희의 말에, 강준호는 매서운 눈빛으로 되물었다.
“난 형의 가족이야. 난 형을 지키러 갈 뿐이고, 네가 이렇게 시간을 보낼수록 형은 더 위험해질 거야.”
“…….”
“근데.”
강준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진재희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강하다고 들었는데……. 팔 하나는 잃고, 이렇게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차마 형이 네 곁에서 안전하게 지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하겠어. 정말 형을 지키던 사람이 맞아?”
“……쿨럭! ……쿨럭!”
진재희는 한계였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강준호는 그녀가 숨이 막혀 죽기 직전까지 만들어 버리곤, 힘을 풀었다.
풀썩-!
그 강력했던 진재희가 이젠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강준호는 명령했다.
“이주연.”
“……응.”
“남아서 이 여잘 지켜. 형이 아끼는 도구일 수도 있으니까.”
“……응.”
강준호는 그 말만을 남기고 자신의 몸을 띄워 건물 위로 날아가 버렸다.
“갔다 와서 너도 죽여 버릴 줄 알아! 벌레 같은- 년! 베-!”
채채연은 혓바닥을 삐죽 내밀곤 강준호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 뒤로.
슈슈슈슈슉!
건물 옥상 사이를 빠르게 지나는 수백 명의 사람들.
그들은 수원에서 온 지원군들이었다.
물론, 그들 모두가 강준호의 충실한 ‘도구’이기도 했다. 오직 주인의 사용하는 대로만 움직이는 도구.
“…….”
진재희는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이주연은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고는 피로 얼룩진 진재희의 뒤통수에 속삭였다.
“넌……. 이게 맞다고 생각해?”
“…….”
진재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대답하지 않든, 말든 이주연은 말을 이었다.
“우린 저 두 남자가 서로 만나게 내버려 두어선 안 되었어.”
이주연은 주먹을 꼭 쥐곤 부들부들 떨어 댔다.
“……이제 모든 게 끝이야.”
진재희는 그녀가 하는 말의 의미를 당장 알 순 없었다.
* * *
어딘지도 모를 지하의 드넓은 공간.
빛은 한줄기를 이루어 중앙만을 비추고 있었고, 그 빛줄기 속에 세 남자가 나란히 쓰러져 있었다.
한 남자는 강시온이었고, 다른 두 남자는 두 명의 민머리 교주였다.
“…….”
“…….”
“…….”
먼저 일어난 건 민머리의 남자였다.
그리고 겁먹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큰형.”
뒤이어 다른 민머리 교주도 일어났다.
“…….”
“형이 사라졌어……!”
“형……. 형…….”
“큰형이……. 큰형이 죽어 버린 거야……? 아아…….”
“으갸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교주는 세쌍둥이였다.
셋은 세 명의 사람이면서 한 명이기도 했다.
강시온이 돌칼로 죽인 건, 교주 중 가장 큰형이었다.
놈들은 원래 아티팩트 능력으로 인해, 셋이서 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형제 중 둘째가 눈동자에 핏대를 세우며 쓰러진 강시온에게 달려들었다.
“죽여 버릴 거야-!”
“감히……. 감히 형을……!!!”
둘째를 따라 막내도 달려들었다.
놈들이 다가오기 전, 강시온은 무릎을 짚고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
‘설마 삼 형제일 줄이야.’
한 명은 확실하게 삭제할 수 있었지만 다른 두 명은 살아남았다.
물론 다른 두 민머리도 이제 힘을 잃은 허물뿐이었지만.
교주들은 주먹을 휘둘렀다.
부웅-!
진재희와 최명준과 같은 여타 다른 파이터들과는 다르게 두 민머리의 주먹은 느리고 약했다.
퍼억! 퍽!
물론 그 느리고 약한 두 주먹도 강시온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시온 역시 아티팩트 능력을 다 사용했기에, 이젠 맨몸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시온의 주먹이 둘째 민머리의 인중에 꽂혔다.
퍼억-!
민머리의 이빨 두 개가 허공에 튀었다.
“카하악……!”
둘째 민머리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둘째 형!”
민머리 한 명이 등 뒤에서 강시온을 와락 껴안았다.
강시온은 놈이 껴안은 틈을 타, 그대로 뒤로 누워 버렸다.
콰직-!
막내 민머리의 갈비뼈가 강시온의 무게에 못 이겨 부러졌다.
그때, 둘째 민머리가 코피를 주륵주륵 흘려 대며 강시온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그리고 주먹을 힘차게 휘둘렀다.
시온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도, 교주가 찌른 주먹은 그에게 닿지 못했다.
둘째 민머리는 떼를 쓰듯 두 주먹을 마구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강시온은 몇 대는 맞아 주면서 정확하게 민머리의 볼을 주먹으로 때려 댔다.
“아악……!”
둘째 민머리가 다시 쓰러지고, 또다시 막내 민머리가 괴성을 내지르며 강시온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기어이 강시온을 뒤에서 붙잡았다.
막내 민머리는 소리쳤다.
“지금이야! 형! 죽여 버려!”
“죽여 버리겠어. X발!”
강시온은 막내 민머리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다시 힘을 주어 그대로 뒤로 쓰러지려고 했지만, 막내 민머리는 강시온의 생각을 읽고는 두 다리로 버텼다.
덕분에 둘째 민머리는 단숨에 접근해 주먹을 퍼붓기 시작했다.
“X발! X발! 죽어! 죽어!”
퍽! 퍽! 퍽!
둘째 민머리는 계속해서 강시온의 배를 때려 댔다.
민머리는 주먹을 퍼붓는 와중에도 저들끼리 떠들어댔다.
“그 X신 같은 깡패 새끼도! X발!”
“그 미친놈도 잡아야 해!”
“우리의 공격은 무시한 채 계속 괴수만 죽이려고 들잖아!”
“빨리 죽어. X발! 가서 그 깡패 새끼 막아야 하니깐!”
“우리의 왕국이잖아, 형. 우리의 왕국!”
“지켜. 반드시 지켜. 이런 X새끼들한테 뺏길 수 없어.”
퍽! 퍽! 퍽! 퍽! 퍽!
강시온은 몇 번 맞아 주고 있다가, 자신을 붙잡고 있는 막내 민머리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단번에 등 위로 메쳤다.
휘릭-!
막내 민머리의 몸이 강시온의 등을 타고 허공에 떠올랐다.
이건 진재희가 강시온에게 알려 주었던 유도 기술이었다. 아무리 상대보다 체구가 작더라도 상대를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기술.
꽈당-!
두 민머리는 서로 부딪혀 반대편으로 떨어졌다.
강시온은 메친 자세로 한동안 가쁜 숨을 내쉬었다.
도시 하나는 쑥대밭으로 만들 만큼 강력했던 세 명의 플레이어들은, 이제 어린 학생들도 안 할 개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두 민머리는 다시 일어나서 강시온에게 달려들었다.
강시온은 진재희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두 주먹은 말아 쥐고, 눈높이까지 끌어올린다.
상체와 하체의 균형을 유지한 채, 적이 사정권에 다가올 때까지 기다린다.
적이 어느 정도 다가오면 공격 준비를 한다.
잽은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뻗는 것.
그리고 하체의 힘까지 모두 동원하여 단숨에 주먹을 찔러 넣는다.
마지막 발목을 비트는 것까지.
‘지금.’
강시온은 진재희가 가르쳐 준 대로 주먹을 뻗었다.
부웅- 퍼억!
강시온의 잽 한 방에 선두에서 다가오던 둘째 민머리가 그대로 기절했다.
막내 민머리는 주먹을 휘둘렀다.
진재희에게 복싱, 유도, 시스테마까지 전반적인 전투 기술을 배운 강시온이다.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두 민머리의 공격이 닿을 리가 없었다.
부웅-!
민머리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강시온은 다시 진재희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사람을 한 방에 기절시킬 때는 턱만 한 것이 없어. 턱도 아래턱이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턱의 정면보다는 약간 사선으로. 이렇게 말이야.
툭.
그때, 진재희가 뻗은 주먹이 강시온의 아래턱을 살짝 건드렸다.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도 머리가 울리는 듯했다.
진재희는 항상 아티팩트 이외의 전투 훈련을 강조했다.
진재희는 강시온에게 항상 말했다.
아티팩트 플레이어끼리 모든 힘을 쏟아내고도 결착이 나지 않았을 땐, 주먹으로 싸울 수밖에 없을 거라고.
이런 경우는 꽤 많이 있으며, 자신이 지난 전생을 통해 얻은 교훈이라고 했다.
처음 강시온은 그녀의 가르침에 의문이 들었다.
지천이 뒤흔들릴 만한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이다.
그런 플레이어들이, 그냥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싸우는 기술을 배워서 쓴다고?
당시 그는 쉽게 이해할 순 없었지만 진재희는 회귀자이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한 결실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맺게 되었다.
강시온의 주먹이 막내 민머리의 턱에 강하게 꽂혔다.
퍼억-!
막내 민머리의 아래턱이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아…….”
막내 민머리는 돌아간 자기 아래턱을 매만지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뒤로 쓰러졌다.
그렇게 강시온은 두 남자를 제압했다.
두 민머리가 쓰러지고 나서, 이곳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시온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털썩.
“흐으……. 후우……. 푸우으으.”
그리고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 순간, 하늘에 또다시 떠올랐다.
북왕 괴수가 죽었을 때 나왔던 그 표시였다.
저 표시가 나왔다는 건, 최명준이 기어이 해냈다는 의미.
시온은 떨리는 눈동자로 그 알림 창을 올려다보았다.
[북왕, 괴수가 사망하였습니다.]
[서왕, 괴수가 사망하였습니다.]
[최후의 승자들이 결정되었습니다.]
[승자, 남왕. 동왕.]
[이번 전쟁의 지분율을 배분합니다. 지분율에 따라 영토 분배 및 지배자가 결정됩니다.]
[남왕 99.98%. 동왕 0.02%]
[축하드립니다.]
[당신이 승리하였습니다.]
[서울의 지배자는 남왕의 지배자, 강시온입니다.]
그 알림 창을 보자마자, 강시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강시온은 이제 모든 힘을 쏟아내고 완전히 탈진하여 뒤로 쓰러졌다.
바닥은 딱딱하고 뾰족한 돌멩이가 많았다.
그대로 쓰러지면 많이 다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그를 받아 낸 건 땅이 아니었다.
와락-.
그의 동생, 준호였다.
“…….”
준호의 얼굴이 슬픔에 일그러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