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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200화 (200/221)

제200화. 이별과 재회 (8)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거두었다.

도시가 무너지고 있었다. 도시에선 일방적인 학살극이 이어지고 있었고, 만경 방어전은 어쨌든 나의 승리였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그건 전쟁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나에게는 다음이 남아 있었고, 준비를 위한 자원 보존은 필요했다.

그것이 오우거든 인간이든 식량이든 말이다.

-쿠아아아아아!

반대편 거리에서 오우거가 포효하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난 그곳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지킬 필요 없어.”

“무슨 의미야?”

진재희의 목소리가 조금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곧바로 대답했고, 나 역시 바로 대답했다.

“들리는 그대로야.”

난 구체를 만들어내 도시 곳곳으로 이동시켰다.

도망쳐 버린 우지혜를 쫓고, 전장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진재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껏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힘없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난 그녀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녀는 주먹을 말아쥐고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

제발 그대로 말 안 하고 있었으면 했다.

또 무슨 말을 하든, 지금 나와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하지만 진재희는 입을 열었다.

“난-.”

하지만 그녀는 다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녀가 입술을 뗀 동시에 먼 곳으로부터 엄청난 파공음과 바람이 휘몰아쳤다.

콰과과과광-!

휘오오오-!

토네이도도 한 수 접고 갈 만큼 강력한 바람이 도시를 순식간에 강타했다.

쿠과과과광-!

난 바람을 막으며 겨우 눈을 떠 도시 먼 곳에서부터 튀어 오른 놈의 정체를 확인했다.

“……!”

산 하나는 가볍게 넘길 정도로 거대한 몸집이었다.

세 개의 몸뚱아리가 하나의 거대한 꼬리에 이어진 황금빛이 퍼지는 히드라 거인이었다.

놈은 포효했다.

“신에게 대적하려는 자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 다-!”

그 울음은 서울 전역을 뒤덮었다.

그리고 내 눈에는 붉은 유성이 되어 떨어지는 최명준이 보였다.

* * *

메트로 땅굴 속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 울려 퍼졌다.

“교주께서 분노하셨다!”

“지하가 무너질 거야. 지상으로 이동해. 어서!”

“서둘러. 식량부터 챙겨.”

“전쟁은? 전쟁은 어떻게 되는 거야? 헌터는!”

“이 씨! 아, 빨리 와!”

메트로의 시민들은 조금의 음식과 물만을 챙기고 빛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교주의 분노는 메트로의 패망이었다.

그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두 개의 왕을 점령한 플레이어이며, 소문에 의하면 북(北)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어쨌든 이 전쟁에 가망이 없음을 인지한 시민들은 너도나도 사수 구역을 버리고 도망치기 바빴다.

도망치는 시민들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 반대로 걸어가는 여자가 있었다.

달려오는 시민들의 어깨에 부딪히고 복도에 쓰러지길 몇 번, 여자는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벽면에 기대었다.

여자는 우지혜였다.

배에는 거대한 구멍이 나 있었다. 아티팩트 능력으로 어떻게든 지혈과 치료를 하고 있지만, 넘쳐흐르는 출혈을 막을 순 없었다.

“후으……. 후우우…….”

우지혜는 숨을 조금씩만 입 밖으로 내뱉으며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그때, 한 남자아이가 부모를 따라 도망가다 우지혜의 다리에 걸려 넘어졌다.

남자아이는 신장이 작고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 리그 도중 태어난 아이일 것이라고, 우지혜는 생각했다.

기존 세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신(新)세대의 아이들.

원래 이것이 정상인 줄 아는 아이들.

남자아이는 울어 댔다.

그러다 앞서 나간 젊은 부부가 되돌아와 남자아이를 짊어지고는 다시 도망가기 시작했다.

우지혜는 그 장면을 피에 얼룩진 시야로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지면과 동굴이 일정한 주기로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 교주의 무자비한 학살극이 시작된 것이다.

우지혜도 저 압도적인 교주의 능력에 굴복했다. 교주에 대항하는 만경이 살아남을 확률은 없었다.

‘……안 돼. 정신 차려야만 하는데.’

원래 편하게 전장에서 죽어도 되었지만, 우지혜는 마지막 힘을 내어 부대로 돌아왔다.

남겨진 사람을 챙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힘의 한계였다.

우지혜는 벽면에 미끄러지듯이 쓰러지더니 더욱 가쁘게 숨을 내몰아 쉬었다.

여기가 한계임을 직감했고, 희미한 눈초리로 이리저리 쏘다니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그때 우지혜는 희미한 장면들 속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다가온 그는 우지혜의 어깨를 살며시 잡고 소리쳤다.

“괜찮아요? 지혜 씨! 지혜 씨……! 피, 피가……! 의사. 의사!”

우지혜는 겨우 마지막 힘을 내어 자신을 붙잡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호승이었다.

이호승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우지혜의 상처 부위에 덧댔다.

그는 우지혜를 겨우 일으켜 밖으로 향했다.

“지하가 무너지려고 해요……. 빨리. 빨리 나가야 해요…….”

빨리 움직여야만 했지만, 다친 우지혜를 부축하고 꼬불꼬불한 지하를 빠져나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둘은 몇 번이고 쓰러지며 겨우겨우 빛이 쏟아지는 지하 세계의 입구에 도착했다.

이호승은 그 쏟아지는 빛줄기를 바라보았다.

수백, 아니 수천 명의 사람이 살기 위해 그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지상으로 나가는 것을 신에 반역하는 행위라며, 멸시하던 사람들은 이젠 살기 위해 누구 하나 망설임 없이 빛이 쏟아지는 지상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장대한 광경을 바라보던 이호승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쿠구구구구……!

지하가 무너지고 있었다.

이호승은 우지혜를 짊어진 채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까지도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무너지는 대지에 생매장당하고 있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

그때, 이호승은 자신의 신체가 더 무거워짐을 느꼈다.

어깨에 짊어진 우지혜의 안색을 살피니, 그녀는 이미 추욱 늘어져 있었다.

이호승은 천천히 그녀를 내려놓고는 코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지혜 씨?”

작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우지혜는 기어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지혜 씨……. 지혜 씨……?”

이호승은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선 가만히 우지혜를 내려다보았다.

드라마나 소설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죽음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작별할 시간도 기회도 주지 않는다.

그냥 죽는 것이다.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게 세상의 진리다.

아주 간단한 진리이지만, 이호승은 이제야 깨닫고 말았다.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미안하…….”

쿠구구구구궁……!

지하가 더욱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호승은 우지혜를 내버려 두고 빛이 쏟아지는 지하 능선을 넘었다.

그리고 마주한 도시의 풍경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먼발치에서 인간의 몸이 세 개나 묶인 정체불명의 황금 괴물이 도시를 파괴하고 있었다.

메트로 세력의 사람들이 왜 그를 신으로 모시는지도 단번에 이해가 될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했다.

필연적인 멸망.

이호승은 그것을 올려다보다 차마 등 뒤에서 날아드는 괴물의 정체를 깨닫지 못했다.

오우거들이 수 마리씩 무리 지어 튀어나와 돌아다니는 시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호승 역시 오우거에 의해 잡혔다.

* * *

나는 황금빛 괴수를 바라보다 이내 돌칼을 꺼내었다.

저건 변수였다.

이대로 2.5라운드를 끝낼 수 있었는데, 이제 조금밖에 남지 않았는데.

‘제기랄!’

이젠 돌칼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어떤 대상이든 확실하게 끝낼 수 있는 아이템이다.

물론 일회성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사용해야만 했다.

난 진재희를 돌아보며 말했다.

“넌 남아서 전장 정리해. 더 이상의 피해는 막아야 해.”

“……넌?!”

“내가 이 싸움을 끝내겠어.”

“같이 가…….”

진재희가 일어나려고 하자, 난 소리쳤다.

“명령이야!!!”

내 목소리에, 진재희는 일으켰던 몸을 멈추었다.

난 다시 말했다.

“명령이니까. 제발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리고 돌칼을 반듯이 쥐고 날아올랐다.

하늘에 떠오르자 바람이 몰아쳤다.

휘오오오오오-!!!

휘몰아치는 강풍 때문에 차마 눈조차 뜰 수 없었다.

놈의 세 몸은 각기 다른 능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중앙 인간의 몸에서 거대한 불길이 도시를 뒤덮고, 오른쪽 인간의 몸에서는 휘몰아치는 강풍이, 왼쪽 인간의 몸에서는 번개가 튀어나오며 도시를 강타하고 있었다.

난 구체와 선을 이용해 일종의 바람막이를 만들어 내서 빠르게 놈에게 접근했다.

놈도 날 인지했는지,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소리쳤다.

“네가 감히-.”

“나에게 도전하려고 들다니-.”

“난 이 세계의 하나뿐인 선지자다.”

“내가 가는 길이 곧 구원에 이르는 지름길인 것을-.”

“네놈이 무얼 알겠는가-!”

“작은 도시의 왕이여-!”

거대한 손아귀가 허공을 가르며 다가왔다.

부웅-!

나는 몸을 비틀어 손아귀를 피하고는 선들을 한데 뭉쳐 놈의 피부에 쏟아 냈다.

인간의 기준에선 한없이 거대했던 선들이, 놈과 만나자 이쑤시개도 되지 않을 만큼 작게 느껴졌다.

당연하게도 나의 그런 작은 공격들이 놈에게 먹혀들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나의 목적은 놈의 피부에 단지 한 번의 돌칼을 휘두르는 것뿐이다.

돌칼을 반듯이 쥐고 돌격 준비를 마쳤다.

완전 삭제.

이 세상에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아마 리그 최고의 아이템.

원래는 관리자의 능력이지만, 지금은 내 것인 것.

“얄팍한 수-.”

“모자란 지능-.”

“죽여 주마-.”

놈은 이제 도시를 때려 부수는 것을 중지하고 모든 공격을 날 향해 퍼붓기 시작했다.

난 선들을 꼬았다.

“!”

김강석을 잡을 때 썼던 기술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선과 구체를 세밀하게 엮어서 하나의 장치를 만든다면 놈의 움직임을 봉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라운드 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했던 것으로, 꽤 많은 정신력이 소모되었다.

‘끄으읏……!’

자연스럽게 코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었다.

하지만 해내야만 했다.

더 나은 결과를 맞이하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동생을 만나기 위해서.

난 내 모든 것을 이곳에 쏟아붓기로 했다.

거대한 선들이 곡선을 이루어, 그 끝과 끝이 서로 만났다.

그리고 그 선들은 또 다른 선들과 결합해, 하나의 거대한 쇠사슬을 만들어냈다.

휘리리리리릭- 찰칵!

수십 개의 이르는 쇠사슬은 놈의 목과 손, 발을 묶어선 지면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놈은 괴로운 듯 괴성을 내질렀지만 난 포기하지 않고 쇠사슬에 더욱 강한 힘을 밀어 넣었다.

이쯤 오니 머리끝까지 피가 치솟은 느낌이었고, 온몸에선 새빨갛게 상처가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얄팍한-.”

“얄팍한 수를-!”

거대한 쇠사슬에 묶인 놈이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나의 돌칼은 이미 놈의 몸에 닿아 있었다.

“…….”

그 순간 놈의 육체가 분자 단위로 쪼개어지며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 * *

진재희는 아스팔트에 쓰러져, 강시온의 활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첫 번째로 든 생각은, 강시온이 미친 듯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환상적인 아티팩트였다.

황금 괴물의 거대한 팔보다, 강시온이 만들어낸 쇠사슬이 더욱더 아름다웠다.

구름과 창공, 대지를 뒤덮는 거대한 쇠사슬은 신의 능력처럼 보이기도 했다.

전생의 리그에서도, 이번 생에서도.

그는 한계라는 것을 보여 주지 않았었다.

특히나 지금 강시온은 빛남에서 만났던 강시온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강력한 아티팩트 힘을 바탕으로 적을 제압했다.

“…….”

강시온이 성장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퍼지기도 했다.

더 이상 자신이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때문이었다.

지금 보이는 능력만으로도 강시온은 이 리그의 그 누구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이제 그의 곁엔 더 이상 자신이 필요 없어지게 되어버린 것이다.

진재희는 생각했다.

이걸로 모두 끝인가?

이대로 내버려만 두어도 강시온은 이 리그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진재희는 그런 확신이 들었다.

강시온이 눈부신 성장을 이루고, 리그를 끝낼 만큼 완벽한 계획이 있기에.

그리고 자신의 역할은 이것이 다 인가.

원래 진재희는 강시온을 키우기 위해 부산에서 안양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어쨌거나 진재희의 목표는 이뤘다.

남은 건 모두 강시온의 몫이었다.

지난 몇 년간.

진재희는 최선을 다해 그를 지켰고, 정말 강시온이 말한 것처럼 자신이 이제 그를 지킬 의무 따윈 사라진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 공허한 이 느낌만큼은 차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녀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눈망울에 맺혔다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진재희는 주저앉았고, 말없이 강시온의 활약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때 담배 냄새가 나 옆을 돌아보았다.

한 남자가 담배를 문 채, 그곳에 서 있었다.

남자는 말했다.

“형의 곁에……. 한 여자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어. 그리고 그 여자는 자신의 목숨마저도 바치며 형을 도왔다고.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땐 안도했다.”

남자는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를 올려다보는 진재희의 눈동자가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있었다.

“너에겐……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무엇보다 형을 지켜줬으니까. 형은 매일 강한 척 굴지만 누구보다 약해. 난 잘 알아. 형이 매일 밤. 이불을 뒤집어쓴 채, 훌쩍이던 걸 난 모른 척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랬던 것 같아. 뭘까. 왜 이 남자는 울까. 생각해 보면 가족도 결국 타인인데.”

틱-.

남자가 내던진 담배꽁초가 허공을 빙글빙글 돌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남자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기쁜 건가? 슬픈 건가? 감격스러운 건가?

진재희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네 역할은 여기까지다. 넌 떠나도 좋아. 네 사명을 다했다.”

남자는 주머니 속에 꽂아 넣고 있던 한 손을 빼냈다.

그가 앞으로 손을 내밀자, 주위에 있던 건물들의 파편이 하늘로 치솟았다.

구구구그그그…….

주변에 있던 파편뿐만이 아니었다.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은 도시 전반에 퍼져 있던 모든 파편을 하늘로 치켜올렸다.

남자는, 아니. 강준호는 주저앉아 있던 진재희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이제 형은 내가 지킬 테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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