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이별과 재회 (5)
만경 본대와 정예대의 합류로 판세는 기울었다.
적들은 아직까지 안양종합운동장을 공략하고 있었고, 후방에 대한 경계는 소홀했다.
저들의 목표는 오로지 만경의 괴수뿐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괴수 앞에서 크고 작은 승전보를 연이어 울렸다.
하지만 강시온의 군대는 늦지 않았다.
거리로 쏟아지는 만경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왔다.
강시온과 진재희를 포함해 소수의 정예대는 곧장 운동장으로 향했다.
진재희는 괴수를 노리는 우지혜의 공격을 저지했고, 강시온은 김강석을 맡았다.
최후의 전투가 시작되고, 이제 벼랑 끝에 몰린 헌터들은 죽을힘을 다해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웅이 만경 병사들에게 내린 명령은, 우리의 도시 안에 단 한 마리의 개미 새끼도 살려 두지 말라, 는 것이었다.
* * *
나는 구체를 방출하여 허공에 돌아다니는 토관들을 격추했다.
토관은 산산조각이 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공에 떠올라 있던 적의 플레이어는 심히 당황해하더니 다시 공격해 왔다.
난 눈동자를 빠르게 돌려가며 토관의 각 생김새에 따른 능력들을 분류했다.
화염, 물, 가시, 바람, 번개…….
당장 보이는 것들만 해도 많은 종류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 능력의 상위호환.
상대하는 것조차가 멍청한 짓일 수 있었다.
놈을 단순한 방법으로 이길 전략이 당장엔 떠오르지 않았다.
‘돌칼을 사용한다……?’
내게는 즉사 아이템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내 마지막 계획에 있어서 필수적인 아이템이다.
일반 플레이어에게 총이 먹힌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 지금 내게는 같이 싸워 줄 수 있는 플레이어도 없었다.
난 곧장 바닥으로 내려가 날아드는 모든 토관을 일단 터트리곤, 두 아이에게 소리쳤다.
“둘 다 운동장으로 대피해. 명령 전까진 기어 나오지 마.”
“……네, 네!”
하윤하는 곧장 대답하곤 정현수를 부축했다.
두 아이를 보내며 행색을 살폈는데, 상당히 많이 다친 것이 눈에 보였다.
아마 조금만 더 늦었다면, 소중한 플레이어를 둘이나 잃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난 구체와 선들을 이동시켜 두 아이를 지켰다.
이윽고.
하늘에 있던 플레이어가 지면으로 내려왔다.
그는 먼지가 자욱한 파괴된 아스팔트 거리를 걸으며 내게 다가왔다.
“널 꼭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날 줄이야.”
별 볼 일 없는 놈의 목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난 세밀하게 구체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놈은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수십 개의 이르는 토관들이 다시 허공에 떠올랐다.
“네놈의 목을 내가 가져가면. 드디어 나도 메트로 내부에서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진재희는 날 평가했다.
아티팩트, 즉 공격적인 측면에서 살폈을 때. 나의 능력은 처참할 정도로 안 좋은 축에 속한다고.
내가 아티팩트를 잘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건, 어쨌거나 5라운드 역병(疫病)이 지난 뒤라고 했으니.
지금은 2.5라운드. 그리고 내 계획이 들어맞는다면 5라운드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본래라면 눈앞의 아티팩트 플레이어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난 손가락을 세밀하게 꺾어, 구체와 선을 조작했다.
그때 놈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놈의 손 방향에 따라 토관들은 다시 아가리를 벌렸다.
“……만경은 끝이다.”
츠츠츠측-.
토관의 입에서 능력이 방출되었다.
각양각색의 능력들이 내게로 쏟아졌다.
그리고 난 이에 맞서 방울을 울렸다.
딸랑-.
그 순간, 옆 건물을 부수고 나온 거대한 오우거가 괴성을 내지르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콰과광-!
-쿠아아아아아아악!!!
-카아아아아아악!!!
놈은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지만 너무 늦었다.
두 마리의 오우거는 저들끼리 부딪칠 정도로 강한 힘으로 놈을 뭉게 버렸다.
쾅!
순간 플레이어의 힘을 잃은 토관들이 아가리를 닫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욱한 먼지 연기가 하늘 높게 치솟았다.
해치웠나, 라고 생각한 순간 먼지 연기를 뚫고 놈의 발이 휘둘러졌다.
역동적이고 화려한 발차기였다.
난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아차려, 황급히 손을 올려 관자놀이를 막았다.
꽈직-.
“끄읏……?!”
뇌까지 흔들린다는 게 이런 건가.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다.
나의 몸은 하늘에 한 번 붕 떠오르더니 이내 지면에 처박혔다.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면서 고개를 들자, 다시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이게 오우거 길들이기인가? 놀랐네.”
또다시 눈앞에서 놈이 발을 휘두르자, 난 몸을 뒤로 누우며 피해 냈다.
바닥에 쓰러진 뒤로는 다시 종을 조종해 오우거에게 놈을 덮치도록 명령했다.
오우거는 금세 먼지 연기 속에서 튀어나와 놈을 덮쳤다.
쿠웅-!
아티팩트 능력자들은 비단 이능력만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체 능력 또한 일반인에 비해 월등했다.
진재희가 내 능력이 압도적이진 않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신체 능력이 일반인과 크게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난 다치면 일반인들처럼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야만 했다.
그랬기에 진재희는……. 진재희는 날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쿨럭……! 쿨럭!”
두어 번의 기침 뒤에 피를 토해 냈다.
겨우겨우 일어나, 구체를 모았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구체들이 내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생각하자.’
난 언제나 생각한다.
사방에서 오우거가 지면을 난타하며 생긴 먼지 연기가 자욱했다.
적도 날 볼 수 없고, 나도 놈을 볼 수 없다.
오우거 덕에 조금의 시간을 벌었으니, 그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해야만 했다.
연습하던 것이 있었지.
구체와 선, 그다음은 뭘까.
난 이것을 차원과 연결 지어 해석했다.
1차원은 온점.
2차원은 직선.
3차원은 높이가 있는 물체다.
물체를 만들어 내는 기술은 이미 종을 다듬으며 구현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 생각대로 이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섬세함이 필요했다.
‘……지뢰.’
땅속에 숨겨 놓고 대상이 지나가거나 밟으면 터지는 폭약이다.
난 발상을 전환해 공중에 그러한 장치를 만들 방법을 고민했다.
실제로 빛남에서 돌아와 만경을 접수할 때도 세력 전체에 구체와 종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아티팩트 능력은 성장했다.
만약 허공에 지뢰를 설치할 수 있다면.
인간만이 당할, 인간 낚싯바늘을 설치할 수 있다면.
지금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구체를 변형시켰다.
구체는 선으로, 선은 곡선을 이뤘다.
얼마간 힘을 모으고 있자니, 또다시 토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먼지 연기가 걷히자 그곳에선 혼자서 오우거 두 마리를 죽여 버린 메트로의 플레이어가 서 있었다.
그의 오른쪽 이마는 찢어졌고, 거기에서 흐른 핏물이 턱에 맺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놈은 웃으며 내게 소리쳤다.
“아……! 상당히 재밌었어. 역시 상위 클래스 몬스터야. 이런 몬스터를 조종하는 너의 능력이……. 좀 부럽기도 하네……! 하하하.”
놈은 내게 다가왔다.
나에게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고, 시간이야 벌면 그만이었다.
난 스킬을 사용하며 놈에게 말했다.
“재밌었어……? 그럼 좀 더 놀아.”
나의 두 번째 능력. 그건 좀비화다.
오우거의 몸에 미리 해 둔 표식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그그그…….
“……?”
옅은 진동을 느낀 놈이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내 명령에 죽었던 두 오우거가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몸 곳곳에 구멍이 나고, 관절이 기이하게 뒤틀려 있었지만.
두 오우거는 확실하게 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일어선 두 마리의 오우거를 올려다보던 놈은 헛웃음을 지었다.
“개자식이……. 좋아. 어울려 주지.”
놈이 토관을 다시 조종해 좀비 오우거와 싸우기 시작했고, 몇 분이 지난 뒤 난 바늘을 완성했다.
난 이 바늘이 인간의 살점을 꿰뚫을 시, 절대 빠지지 않도록 세밀하게 꼬았다.
그리고 힘을 방출해 사방으로 퍼뜨렸다.
‘됐어. 이걸로.’
놈이 오우거를 제압할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놈은 서너 번이나 더 오우거를 제압하곤, 잔뜩 화가 난 채 내게 달려들었다.
“이 개- X끼가!”
좀비 오우거로 놈이 충분히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를 더 귀찮게 굴 필요가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꼬아 바늘들을 더욱 응집시켰다.
휘릭- 휘릭- 휘릭-.
명령에 따라 바늘들이 촘촘한 간격으로 주위를 메꾸었다.
덕분에 놈은 가볍게 전방으로 움직였을 뿐인데도, 가시에 찔려 온몸이 긁히고 찔렸다.
“끄읏?!”
파괴력이 있는 공격 스킬은 아니었다.
하지만 걸리적거리는 건 사실이었다.
놈은 피부 표면에 박힌 가시의 끝을 손가락으로 집더니 단번에 빼내었다.
그러자.
촤아아아아악-!
손톱이 작은 피부를 뜯겨내는 것처럼, 조금일 뿐인데도 팔 피부도 같이 뜯겨졌다.
놈은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팔을 바라보다 날 응시했다.
이미 놈의 몸에는 가시들로 가득했다.
“뭔 짓을 한 거냐.”
난 끝까지 그의 말을 무시하며 선들을 모았다.
선이 모이자 서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하나의 거대한 선이 될 때까지. 진재희처럼 크고 아름다운 성검의 모습을 갖출 때까지.
선들은 내 손아귀에 모였다.
놈은 두 주먹을 맞대며 토관들을 불러 냈다.
하지만 난 그것에도 이미 대비를 해 두었다.
선들을 교차로 포개어 놓으면, 그건 그물이 된다.
나는 이미 토관이 달려들 수 있는 모든 공간에 그물을 쳐 놓아 놈의 아티팩트 능력을 차단했다.
곧 모든 수가 먹혀들지 않게 되면, 놈은 깨닫겠지.
낚였다, 고.
놈은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질렀다.
“이…… 개새……!!!”
그리고 놈이 무언가를 행하기 전에, 난 고민하지 않고 검은 선으로 목을 베었다.
촤아악!
검붉은 핏줄기가 하늘을 향해 터져나갔다. 난 진재희처럼 적의 목을 단번에 벨 만큼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놈의 목 정도는 벨 수 있겠지.
놈의 비명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끄아악.”
그는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져 피로 얼룩진 목을 움켜쥐었다.
좀비 오우거는 뭉개진 놈의 육체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쿠아아아아아아아!!!
쿠웅-!
거대한 손아귀로 놈의 몸을 헤집기 시작했다.
몸을 찢고, 팔을 뜯어냈다. 그다음에는 얼굴을 병뚜껑처럼 뽑아 버렸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놈의 시체를 향해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렀으며, 모든 난타가 끝난 뒤에는 피로 얼룩진 무언가가 그곳에서 있었다.
난 그 참혹한 광경에서부터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핏줄기가 길게 나 있었다.
나의 눈동자는 뒤흔들렸다.
“…….”
진재희가 피를 뿜어내며 쓰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길게 나 있는 핏줄기는 그녀의 왼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 * *
우지혜의 능력은 단순한 불이 아니었다.
그녀가 사용하는 불은 대상을 확실하게 불태우고 잿더미가 될 때까지 절대 꺼지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적을 확실하게 불태우는 화 검을 소환했고, 이미 괴수의 몸 이곳저곳에는 우지혜의 화 검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우지혜는 압도적으로 강했다.
진재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
“…….”
두 여자는 괴수의 배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진재희의 왼쪽 팔은 작은 화 검이 교차되어 꽂혀 있었다.
그녀는 지금 초 단위로 불타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성검을 쥔 채 우지혜를 향해 겨누었다.
진재희는 생각했다.
‘강해.’
전생에도 이런 플레이어는 없었다.
저 여잔 자신이 강시온의 라운드에 개입하면서 생긴 또 하나의 변수였다.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는 몰라도, 분명한 건 저 여자가 지금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진재희는 성검의 날을 자신의 왼쪽 어깨에 대고는 결심했다.
‘여기서 끝내야만 해.’
저 여잔, 강시온의 계획에 필시 방해가 될 플레이어였다.
진재희는 아랫입술이 피나도록 이빨로 깨물곤 단번에 자신의 왼팔에 칼을 댔다.
서- 걱! 촤르륵.
새빨간 핏줄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재희가 잘라 낸 건, 불이 붙은 피부의 단면이었다.
“…….”
진재희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지만, 고개를 숙인 채 신음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우지혜는 진재희를 바라보다 다시 손가락을 가위로 교차했다.
우지혜는 말이 없다.
그저 공격할 뿐.
또다시 진재희 주위에서 화 검이 소환되어 그녀를 노렸다.
화르르르륵-! 푹! 푹!!
하지만 진재희는 몸을 움직여 화 검을 피하고는 성검을 쥔 채 우지혜에게 달려들었다.
우지혜는 불기둥을 만들어 방어하려고 들었다.
진재희는 이를 예측하고 있었다.
휘잉-! 서걱!
일순간에 빛이 모아지더니 우지혜의 불기둥을 베었다.
자신의 방어벽이 뚫렸음에도 우지혜는 당황하지 않았다.
곧바로 능력을 전개하여 진재희를 공격했다.
물론 불기둥에서 빠져나온 진재희 역시 성검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