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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96화 (196/221)

제196화. 이별과 재회 (4)

최명준은 단독으로 서부 메트로 세력의 중심부까지 들어갔다.

그의 발자취 끝에 남은 건 오로지 시체뿐이었다.

그는 걸었다.

그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피가 기체화된 붉은 연기가 그의 몸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었다.

온몸의 총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얼굴의 반쪽 피부는 흘러내렸으며, 두 눈동자는 맹수처럼 이글거렸다.

인간이든, 몬스터든, 이종족이든.

그 모두가 단번에 전의를 상실할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그는 마침내 마포구에 한 지하철 입구까지 다가왔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를 낡고 허름한 지하철 입구였다.

괴수는 지하에 숨겨져 있었으니, 최명준이 갈 길은 한 곳밖에 없었다.

복수.

그 감정 하나만 가지고, 그는 메트로 세력을 혼자서 쳐부수고 있었다.

한 계단씩 내려가는 최명준의 발걸음은 느리고 힘이 없었다.

지금 그가 만경으로 되돌아가는 건 의미가 없었다.

메트로가 단 한 명의 플레이어에 의해 이렇게까지 뚫릴 수 있었던 이유는, 서초와 금천 그리고 만경 시내에 대부분의 메트로 세력의 공격진이 몰려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최명준은 빈집털이를 할 수 있었다.

빈집털이라고 할지라도, 단 한 명의 플레이어만으로는 뚫을 수 없을 정도로 이곳은 견고한 방어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

지하철을 내려가자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넓은 통로가 눈에 보였다.

통로보단 지하 동굴과 같은 모습이었다.

메트로 세력은 몬스터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지하영토를 확장했다.

지상의 아스팔트를 뜯어 지하의 도로를 만들었고, 여기저기 굴을 파서 거주 공간을 확보했다.

그렇기에 맨 처음 최명준을 맞이한 건 메트로의 괴수 수비대였다.

수비대 대장은 소총을 든 헌터들을 정렬시키고, 최명준을 맞이했다.

헌터들 역시 더 이상 물러날 순 없었다.

이곳이 뚫리면 교주가 있는 방이었으니.

최명준은 몇 걸음 더 앞서 나아가다가 멈추어 섰다.

숨 막힐 듯한 전운이 감돌았다.

개머리판에 볼을 대고 조준경으로 전방을 바라보는 헌터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몇몇은 심하게 떠는 이도 있었다.

이윽고 최명준의 발소리가 다시 지하에 울렸다.

통로는 사방이 막혀 있어, 발소리는 더욱 증폭되어 들려왔다.

철퍽……. 철퍽……. 철퍽…….

맨발에 묻은 물기가 지면과 만나 나는 소리.

하지만 그건 물이 아닌, 헌터들의 피였다.

비명과 숨넘어가는 소리조차도 모조리 삼킬 만큼의 공포스러운 발소리였다.

그리고 최명준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전투 준비.”

헌터 수비대 대장은 긴장한 부하들을 진정시켰다.

이어서 수비대 대장은 걸어오는 최명준에게 말했다.

“겁도 없구나……. 감히 혼자서 여길 오다니. 네놈은 그냥은 안 죽일 거다. 사지를 찢어서 끓는 기름에…….”

그 말을 하는 수비대 대장은 자신의 시야가 느닷없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어?”

수비대 대장의 얼굴이 하늘에 들어 올려졌다.

최명준이 단번에 접근해선 그의 얼굴을 잡아 끌어올린 것이다.

츄르르르륵…….

절단된 목에서 뿜어져 나온 핏줄기가 추우욱 허공에 늘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헌터들은 총구를 들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저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최명준은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헌터를 제압하며 생각했다.

큰형님의 복수.

자신의 꿈의 끝.

한 번 섬긴 주인을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는 신념과.

두 번 다시 자신의 주인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헌터들은 더욱더 가까이 다가왔다.

헌터들의 칼과 총알은 무자비하게 그의 몸을 베고 관통했다.

최명준의 머릿속에는 네 개의 문장만 돌아다녔다.

‘상관없다.’

‘죽이겠다.’

‘누구든지 와라.’

‘모조리 짓밟아 주마.’

설령 이 전투 끝에 온몸이 찢어져 죽더라도, 최명준은 마지막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두르다 죽을 것이다.

마침내 통로에 있던 모든 헌터를 죽이고, 최명준은 폭주하여 내달렸다.

그곳에는 수백 명이나 되는 헌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명준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달려들었다.

헌터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최명준을 위협했다.

피와 침을 튀기며 헌터들은 최명준에게 칼과 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이에 맞서는 최명준은 돌진하며 힘 있게 소리쳤다.

“우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

수백 명이 목청껏 소리쳐도, 단 한 남자의 소리엔 미치지 못했다.

최명준은 다시 헌터들에게 달려들었다.

버서커.

광포한 전사.

허공에 몸을 내던진 최명준의 몸을 따라, 아름다운 붉은 연기가 줄기를 이루어 따라붙었다.

최명준은 다짐했다.

이 전쟁 끝에, 시온 형님은.

반드시 서울 북부를 손에 거머쥘 것이라고.

자신은 복수를 완성하고, 강시온을 추대하여 그를 서울의 하나뿐인 ‘지배자’로 만들겠다고.

쿵-!

그는 곧 메트로 세력의 대통령, 그리고 교주를 만나게 되었다.

그곳은 황금색 피라미드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피라미드 정상에는 온몸에 황금 액세서리로 치장한 교주가 앉아 있었다.

하늘에선 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자리 뒤에는 거대한 괴수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피라미드 최하층에는 메트로 세력의 수장, 서왕이 있었다.

“대단하군.”

황금빛 의자에 앉아 있던 교주가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뱀처럼 간사하게 느껴지면서도 고혹적이었다.

“정말 부럽도다.”

교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피라미드의 한 칸을 내려왔다.

“강시온……. 그에게는 정말 영웅호걸이 많구나.”

다시 한 칸을 내려왔다.

“조조가 이런 기분이었나.”

다시 한 칸을 내려왔다.

“천하를 얻었을지언정, 정작 내 곁에는 너와 같은 영웅이 남아 있질 않으니.”

다시 한 칸을 내려와, 이젠 최명준과 같은 층을 밟았다. 그리고 소리쳤다.

“통탄할 일이도다!”

교주는 두 손을 좌우로 살짝 벌리며 물었다.

“내 사람이 되어라. 무엇이든 들어줄 테니. 난 이 세계에서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난 모든 걸 가진 사람. 그야말로 신에 가까운 자이지. 이 지상에는 너무 오염된 것들이 많다. 오염된 것은 처분되어야만 하고, 그 모든 것이 죽었을 때 지상은 비로소 정화될 것이다. 그 꿈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루고자 하면 신이 도와주실 테니.”

교주는 자신의 심장 부분을 손바닥으로 대며 다시 물었다.

“말해 봐라. 주인을 잘못 섬긴 영웅아.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최명준은 조금 고개를 떨었다.

이 바닥조차도 황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서울에 있는 황금이란 황금은 전부 모아 이 방 안에 녹여 놨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이 부셨다.

최명준은 말했다.

“그럼…….”

최명준은 눈가에 흘러내리는 피만을 손바닥으로 쓸어버리곤, 부들거리는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교주의 얼굴이 있었다.

“네 목을 줄래?”

* * *

강시온의 오우거가 건물 사이를 헤치며 도시 속으로 진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물밀 듯이 쏟아지는 오우거 공세에 메트로는 방어선이라 할 것 없이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하지만 전선에는 변화가 생겼다.

만경의 본대가 드디어 도시에 도착한 것이었다.

강시온의 군대는 도시 외곽지역부터 차례차례로 헌터들을 제압해 나갔다.

물론 그 소식은 우지혜와 김강석에게 전달되었다.

우지혜는 인상을 찌푸리고 반대편 건물을 바라보았다.

건물 위로 솟아 나온 오우거의 얼굴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지혜는 다급하게 김강석에게 말했다.

“아저씨. 계획 변경이에요. 괴수만 처리하고 후퇴합니다.”

“……좋아.”

김강석의 손에는 정현수가 들려 있었다.

정현수는 김강석의 손에 들린 채, 고통스럽게 피를 토해 냈다.

“쿨럭……! 커헉……!”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메트로의 사전 정보에 따르면 정현수는 최현지보다 약하다고 나와 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정현수는 훨씬 더 강했다.

셋이 싸운 이 전투의 결과가 일대의 모든 것을 불타는 폐허로 만들어 버릴 정도였으니까.

김강석은 주먹 쥔 손을 뒤로 뻗어 단숨에 정현수를 해치우려고 했다.

어서 빨리 정현수를 마무리하고 괴수를 죽여야만 했기에.

부웅-!

김강석의 주먹이 휘둘러진 순간.

타앗-!

하윤하는 정현수를 낚아채 옆으로 쓰러졌다.

김강석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쥐새끼……?”

하윤하는 품에 감고 있던 봉투를 꺼내 김강석에게 뿌렸다.

촤아아악-!

네펜데스의 포자였다.

들이마신 순간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콧물과 진물이 나오는데.

“커하아악!”

김강석은 포자를 들이마시곤 고통스러워했다.

정현수와의 전투에서 방독면을 벗어 버린 그의 불찰이었다.

그리고 하윤하는 쓰러진 정현수의 팔을 어깨에 두른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 내며 정현수를 끌었다.

하지만 하윤하에게 힘없이 기댄 정현수는 고개를 픽 숙인 채였다.

그의 입과 코에선 걸쭉한 핏줄기가 이어져 있었다.

“…….”

정현수는 겨우 고개를 들어 하윤하를 바라보았다.

하윤하는 인상을 팍팍 구기며 그를 부축하고 있었다.

그런 윤하에게 현수는 말했다.

“약골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와.”

“닥쳐. 도망부터 쳐야 해.”

“멍청아……. 도망이…… 되겠냐고……. 쟤들은 플레이어인데.”

“나도 플레이어야……!”

“쓸모도 없는 약한 플레이어…… 지…….”

“넌 이 와중에도!”

하윤하는 정현수를 두 손으로 꽉 안아선 근처에 있던 대형 버스로 데려갔다.

만경의 수비벽을 이루고 있던 대형 버스였다.

하윤하는 그를 버스 안에 집어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현수는 그런 하윤하를 힘 있게 밀었다. 그가 힘 있게 밀어봐도 힘이 없는 상태라 하윤하는 밀리지 않았다.

정현수는 말했다.

“상관 말고 도망쳐…….”

“시끄러워.”

“멍청이가…….”

하윤하는 정현수를 버스 밑에 밀어 넣고는 다시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이미 많은 부상병이 여기저기 쓰러진 채, 신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녀는 고민도 않고 그들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그 순간, 그 거대했던 버스가 들어 올려졌다.

쩌엉-!

하윤하는 깜짝 놀라 하늘에 떠오른 트럭을 바라보았다.

김강석.

그는 토관들을 소환해 내 트럭을 치워 버렸다.

김강석은 말했다.

“놓칠 것 같았나?”

김강석은 눈물과 콧물을 뿜어내며 씩씩거렸다.

“……!”

김강석은 토관들을 다시 퍼트렸다.

그리고 또다시 침을 쏘아 댔다.

침은 곧장 정현수를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침이 정현수에게 닿기 전, 하윤하가 그를 감쌌다.

팍! 파바바바바박!

수많은 침이 하윤하의 등에 박혔다.

“윽…….”

하윤하는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 장면을 바닥에 쓰러진 채 보고 있던 정현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흐으으…….”

정현수는 아파하는 하윤하를 보고 도리어 화를 냈다.

“왜 지랄이야……. 왜!”

“닥치라고!”

“못 닥쳐! 왜! 왜! 혼자 쳐 도망가면 될 거 아냐!”

“어떻게 혼자 가냐고. 도대체……!”

“황제면 황제답게 궁에 처박혀서 있으란 말이야!”

“시끄러워……. 네가 뭘 알아?”

“다 알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친구잖아!”

하윤하의 힘 있는 목소리에 정현수는 숨을 죽였다.

그녀는 한껏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친구잖아.”

하윤하에게 친구는 이제 정현수가 유일했다.

그녀는 강시온에 의해 구조받아, 만경의 검문대원으로 시작했다.

정현수를 처음 만난 건, 만경의 정기 군사 훈련 때문이었다.

그때엔 최명준이 둘을 지도했는데, 그 뒤로 하윤하와 정현수는 강시온에 눈에 들어 각각 스파이와 동대장을 역임했다.

최명준의 기초 군사 훈련 뒤론 둘은 진재희 밑에서 아티팩트 플레이어로서 기반을 다졌고, 그 뒤로 둘은 쭈욱 함께였다.

대전쟁이 있을 때도, 대전쟁 직후에도.

일반 검문대원이 만경의 황제가 될 때까지.

코흘리개가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 한 세력의 최고 지휘관이 될 때까지.

둘은 서로에게 말은 건네진 않았지만, 서로 챙겨 주며 아끼고 있었다.

평소 정현수는 하윤하가 자신의 몸에 손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았다.

하윤하는 몸에 닿기만 해도 상대의 기억을 얻을 수 있었으니, 정현수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친구끼리 서로 아껴 주는 그런 감정이, 정현수는 너무 오글거렸기 때문이다.

“흐으……. 후우우……!”

하윤하의 보호를 받으며 정현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지금 당장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들 만큼 힘들었지만,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냈다.

정현수는 하윤하의 양어깨를 움켜쥔 채 옆으로 치워 버렸다.

“꺄앗-.”

정현수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힘겹게 무릎을 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등에서 미세하게 전기가 튀었다.

정현수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하윤하를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도망치라고.”

하윤하는 어이가 없는 듯 눈썹을 찡그리더니 다시 후다닥 달려와 그의 어깨를 안았다.

“싫어.”

“이 미친!”

“같이 가든지……!”

“뭘 같이 가! 소풍 왔어?!”

“놔! 같이 갈 거야!”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데!”

“내가 할 소리야……!”

하윤하와 정현수는 이 와중에도 투닥거렸다.

그 꼴을 보고만 있을 순 없었던 김강석이 단숨에 날아와 둘을 위협했다.

김강석은 손을 앞으로 내밀어 토관을 모았다.

“그럼 사이좋게 둘 다 지옥에 가.”

토관은 정현수와 하윤하를 향해 쏘아졌다.

정현수는 남은 모든 힘을 쏟아 내어 김강석을 제압하려고 했다.

그 뒤론 자신이 죽겠지.

하지만 하윤하를 살릴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목숨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콰지지지지직-!

그의 손에 번개가 모였고, 그 번개는 날아드는 토관들을 노렸다.

정현수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토관들이 수많은 침을 쏘아 댔다.

그 침들은 마치 소나기처럼 몰아쳤다.

정현수는 끝까지 두 눈을 부릅뜬 채, 전기를 쏘았다.

하지만 수많은 침을 막은 것은 정현수의 번개가 아니었다.

사실 정현수가 아무리 발악한다 해도 토관은 다친 하윤하를 놓칠 리가 없었다.

휘릭- 파바바바박!!!

거대한 파열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정현수는 그제야 눈꺼풀을 한 번 깜빡이며 눈앞에 일어난 광경을 이해하려고 했다.

토관의 침이 구체에 맞아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침보다 더 두껍고 날카로운 선들은 하늘에 떠오른 김강석을 조준했다.

둘 사이를 막고 있었던 건, 그들의 영웅 강시온.

그는 김강석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 빛이 퍼져 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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