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이별과 재회 (2)
이호승은 몸을 웅크린 채 숨죽여 기다렸다.
그는 무려 8시간 동안이나 웅크린 채 어두컴컴한 내부에서 기다렸다.
이윽고 또다시 인기척이 들렸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이호승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이었다.
하지만 박스에서 나는 그 고운 목소리는 이호승을 안심시켰다.
“키위.”
그 순간 이호승은 허겁지겁 박스를 치우고 밖으로 나왔다.
우지혜는 피 묻은 군복을 입은 채, 배시시 웃고 있었다.
“많이 기다렸어요?”
이호승은 숨을 헐떡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이 바위처럼 뭉쳐 있었다.
우지혜는 전투 조끼를 벗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생각보다 전투가 길어져서. 저도 최대한 빨리 오려고 노력했어요. 나와요. 오빠. 이제 괜찮으니까 편하게 있어요.”
우지혜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페트병을 이호승에게 건넸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곤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그녀는 지쳤는지 벽면에 주저앉은 채,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이호승도 충분히 힘들었지만, 우지혜는 더 힘든 일을 하고 온 상태였다.
아티팩트 플레이어의 신체 회복은 일반인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지만, 그만큼 회복에는 더 많은 고통이 수반되었다.
온몸이 욱신거렸고 아렸다.
이호승은 물을 마시다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전투…… 하고 오신 거예요?”
“네. 뭐. 이번에는 특히 힘들었네요. 강한 플레이어가 있어서.”
“……고생했어요.”
이호승은 자신이 그런 말을 하고서, 스스로 놀랐다.
그녀는 분명 적이다.
적이 전투를 하고 왔다는 건 아군을 죽이고 왔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우지혜가 말하니 뭔가가 달랐다.
앳된 얼굴에 군복을 입고, 슬픈 눈을 하고선, 지친 육신을 쉬기 위해 벽에 등을 기댄 그녀를 보고 위로해주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우지혜는 천장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보며 넌지시 말했다.
“……오빠.”
“네?”
“오늘 전 사람을 죽였어요. 그것도 플레이어요. 아마 오빠의 동료일 수도 있어요.”
“…….”
그녀의 말에 이호승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우지혜는 말했다.
“오빠. 말해 주세요. 전 나쁜 사람일까요? 아님. 빌런? 악역? 악당……?”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악당이냐, 아니냐에 대해 이호승은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완벽한 선이라는 것이 있을까.
생각을 정리한 이호승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쟁통에 완벽한 선이 어딨어요. 그리고 완벽한 악도 없죠. 전……. 단지 이렇게 생각해요. 우린 서로를 죽이기 위해 이 리그를 치르고 있을 뿐이고. 정말 나쁜 건 이 리그를 개최한 사람들이라고. 지혜 씨가 나쁠 게 뭐가 있겠어요.”
“오늘 죽인 그 사람도, 저처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꿈을 꾸는 인간이었다고 생각하니까……. 괴로워요. 너무 미안해서……. 너무……. 너무 미안해서…….”
“서로 죽여야 할 운명이잖아요.”
“하지만 슬픈 건 어쩔 수 없어요. ……사실 이러고 싶진 않은데. 정말 싫은데.”
우지혜는 벽면에 기대 무릎을 감싸 안아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등은 몇 차례 떨리고 있었다.
정말 나약한 생명체였다.
이런 나약한 생명체조차 전쟁은, 살인 병기로 만들어 버린다.
이 리그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지혜는 몰려드는 깊은 슬픔에 훌쩍이기 시작했다.
지하 통로 천장 아래에서 간간이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그녀가 훌쩍이는 소리, 옅은 이호승의 숨소리가 들렸다.
우지혜는 여전히 무릎을 감싸 안고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안아 줘요.”
이호승은 잠시 망설이더니 그녀에게 다가가 꼭 껴안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우지혜는 이호승의 품속에서 말했다.
“다음 전투. 저 못 돌아올 수 있어요.”
“…….”
“오빠는 만경으로 가신다고요?”
이호승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지혜는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이호승의 수갑을 쥐었다.
“당장은 위험하니까, 좀 나중에 가요.”
철컥-, 덜컹.
우지혜는 이호승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말을 마무리했다.
“오빠는 가능한 오래 살아요. 좋은 사람이니까.”
* * *
“으으으……. 으아아아아!”
하윤하는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오늘 최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곁에는 정현수가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침묵했다.
“아아아……! 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하윤하는 바닥에 엎드려 꺼이꺼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엎드린 채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리고 분노에 찬 눈동자를 하고선 소리쳤다.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하윤하는 곁에 있던 권총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그런 그녀의 손목을 정현수가 잡았다.
터억-!
하윤하는 정현수에게 소리쳤다.
“이거 놔!”
“정신 차려! 네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놓으란 말이야!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아냐고! 싫어! 싫어! 다 죽여버리고…… 다 죽여 버리고……!”
그 순간, 방에 날카로운 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짜-악!
하윤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빨갛게 부어오른 자신의 뺨을 어루만졌다.
정현수는 휘둘렀던 손을 거뒀다.
그는 말했다.
“각오가 되었다며……?”
“…….”
“네가 여기서 무너지면 우리 모두가 무너져. 넌 만경을 수비하는 최고 지휘관이야. 감정적으로 나서지마. 모두가 슬퍼. 모두가……. 모두가 X발! 나도 그 새끼 죽이고 싶어!”
“…….”
“슬퍼할 시간이 어딨어. 아님, 더 아픈 슬픔을 경험하고 싶은 거야? 이곳이 무너지면 모든 게 끝이야. 지난 우리가 쌓았던 5년도.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도.”
정현수는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몸에 덕지덕지 둘려 있던 붕대를 풀어 버렸다.
그의 몸에는 아직도 무수히 많은 총알 자국이 가득했다.
곁에 있던 의사가 정현수를 말렸다.
“아직 움직이시면……!”
정현수는 의사의 말은 깡그리 무시한 채, 방어지휘관에게 물었다.
“상황은요?”
“적이 최현지가 막고 있던 비산 방면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미 안양천 일대 방어선은 뚫렸습니다. 오우거로 막고는 있습니다만, 얼마나 버틸지는…….”
“사용할 수 있는 병력은?”
“보병 200에 오우거 5마리입니다.”
“모두 집합시켜요.”
하윤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현수가 소리친 덕분에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곳을 책임지는 건 하윤하였다.
사실 운동장에 있는 그 누구라도 포기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윤하만을 보며 힘내서 버티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강시온을 중심으로 모인 만경의 시민이다.
만경은 그들에게 희망이었고, 무너지는 순간 미래는 없다.
하윤하는 눈물을 삼켜가며 결의를 다졌다.
정현수는 방을 나서기 전,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네 방식대로 해. 질질 짜지 말고. 애새끼처럼.”
덜컹-!
그 말 뒤로 정현수는 문을 발로 박차고 나가 버렸다.
하윤하는 방에 남아 주먹을 말아쥐었다.
이 방은 원래 경기를 관람하는 VIP를 위한 관람 룸으로, 한쪽 벽면은 전부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다.
하윤하는 유리창 너머 경기장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무너졌지만, 단단해 보였다.
이곳을 지키려는 만경 시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걸 바라보는 하윤하는 그들의 단결된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녀는 소매로 벅벅- 거칠게 눈매를 닦아 냈다.
* * *
서초 일대에서 진격 중인, 나의 군대는 느리지만 차례로 적을 소탕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난 최전방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며 적들을 학살했다.
어제.
정확히는 어젯밤에 최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은 나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최현지에 대한 감정적인 충격과 메트로 세력에 최현지를 죽일 만큼 강력한 플레이어가 있다는 이성적인 충격.
그 두 가지의 미묘한 감정선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난 주먹을 말아쥐곤 옆을 돌아보았다.
진재희가 그 자리에서 묵묵히 서 있었다.
독버섯 사건 이후 확실히 사이가 서먹해졌지만, 그녀는 착실하게 전투에 임했다.
물론 부쩍 말수가 적어진 건 사실이다.
이유야 최현지의 죽음 탓도 있겠지만, 그녀의 친구였던 이호승도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난 전방을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아?”
그때 전방에서 포승줄에 묶인 헌터들이 차례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발가벗은 채, 고개 숙여 연행되고 있었다.
난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진재희의 목소리는 등 뒤에서 들렸다.
“괜찮아. 네가 말했잖아.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고. 당장은 전투 중이고, 집중하고 있어.”
거의 2일 만에 처음 한 대화였다.
그전까지는 간접적으로 명령을 전달하고 수행할 뿐, 딱히 대화할 일이 없었다.
난 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물었다.
“궁금한 게 있어.”
“……말해.”
“이 전쟁이 이렇게 길어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런 걸 내게 물어도, 할 말은 없었다.
“글쎄.”
사실 전쟁이 장기화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각 지휘관의 전략전술이 전혀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경 입장에서도, 적의 공격이 이렇게 강할 줄 몰랐던 것이고.
메트로 입장에서도, 만경의 방어 가 이렇게 굳건할지 몰랐던 것이다.
내가 최현지의 죽음으로 깨달은 건 메트로도 이번 전쟁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건 이제 소모전이었다.
적이 먼저 지치냐, 이쪽이 먼저 지치냐.
그것만이 전쟁의 승패를 가릴 것이다.
‘이쪽에선 진재희를 함부로 투입할 순 없어.’
진재희는 만경 최후의 보루다.
난 그녀를 대할 때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스스로 이성적으로 행동하겠다고 말했음에도 지금 전혀 그러지 못했다.
목소리가 떨리거나 어깨를 움츠리거나.
지금 진재희는 불완전한 폭풍우나 다름없었다.
분명 모든 것을 집어삼킬 만큼 강력한 존재이지만, 그만큼 물불을 가릴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으면, 역으로 당할 수 있다.
바로 앞서 최현지가 당했으니, 그녀를 내 곁에 두어야겠다는 나의 생각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만약 진재희까지 잃었다간 모든 것이 끝이었다.
내 계획도, 이 전쟁도, 그리고 내 삶도.
그녀는 내 곁에서 천천히 진격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은 이렇게 해도, 나의 군대는 만경으로 진격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적어도 오늘내일, 만경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망이다.
최명준의 정예대도 토벌을 마친 뒤, 곧 만경에 도착한다고 하니.
최후의 전투가 곧 벌어질 것이다.
* * *
최명준은 피를 흘리며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총알과 화살이 빗발쳐도 그는 그것들을 몸으로 받아 냈다.
“저게……. X발 인간이야?”
“머리를 노려! 머리를!”
헌터들의 눈에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 철옹성 같았다.
그리고 그는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강해졌다.
적어도 200m 밖에 있던 최명준을 향해 총알을 쏘아대던 헌터들은, 그가 갑자기 사라지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
“아……!”
그 순간 최명준은 200m를 순식간에 이동해 헌터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푹-! 콰직-!
최명준의 두 팔이 각각 심장과 배를 뚫고 지나갔다.
그의 주먹은 이미 총보다 더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작게 주먹을 휘둘렀음에도, 사람의 피부를 가볍게 찢고, 뚫어 버렸다.
그때, 먼 도로에서 전열을 이룬 헌터들이 발을 맞춰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최명준을 잡기 위해 파견된 메트로의 정예 근접 병력들이었다.
최명준은 순식간에 그들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메트로의 지휘관이 소리쳤다.
“방패-!”
그들은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최명준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의 수는 100명이었다.
반면 최명준은 단 한 사람일 뿐이었다.
최명준은 말이 없었다.
이글거리는 분노에 그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헌터를 죽여 버릴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다시 메트로의 지휘관이 소리쳤다.
“창-!”
척-! 척-!
지휘관의 명령에 헌터들은 일제히 창을 내밀었다.
그들의 위협적인 반응에도 최명준은 조금도 주춤하지 않고 그곳으로 걸어갔다.
지휘관은 침을 꼴깍 삼켰다.
지휘관의 눈에 비친 최명준의 모습은, 그야말로 학살자였다.
등에는 기다란 창과 화살이 박혀 있었고.
배에는 칼자국이 가득했다.
허벅지와 손에는 총알이 박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고, 그 피는 산화되어 붉은 연기를 만들어냈다.
걷는 것조차 인간답지 못했다.
짐승, 괴물 같았다.
우득우득.
최명준은 손가락만 움직여 뼈마디를 풀었다.
지휘관은 그가 근접하자 목청껏 소리쳤다.
“방패 앞으로!”
메트로의 헌터들은 전열을 맞추며 최명준을 향해 걸어 가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최명준은 한 발자국을 앞으로 내밀었다.
터억-.
그리고 그 순간, 앞으로 날아올랐다.
방패의 의미가 무색하게, 최명준은 방패벽을 뛰어넘어 뒤에 있던 지휘관을 먼저 노렸다.
지휘관은 허겁지겁 허리춤에 차 있던 권총을 꺼내려고 했지만, 깨달은 순간 이미 늦었다.
퍼- 엉!
지휘관의 머리가 그의 주먹 한 방에 터져 버렸다.
최명준은 보란 듯이 헌터들 한가운데 착지했다.
그 주위로는 수많은 헌터들이 방독면을 쓴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얼마간 침묵하는가 싶더니 한 젊은 헌터가 용기를 내 최명준에게 달려들었다.
“으아-!”
하지만 젊은 헌터의 창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고, 최명준은 주먹을 무차별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정확히 20분.
20분 뒤, 이곳에는 헌터들의 시체만 가득했다.
시체가 쌓여 도로가 보이지 않게 될 정도였다.
“…….”
최명준은 또다시 걸었다.
목표는 하나뿐이었다.
마포 메트로 세력의 괴수.
그리고 자신의 큰형님을 조롱하고 동생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지하교 교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