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이별과 재회 (1)
김강석은 건물 위에서 거리를 향해 화살을 쏘아 대는 만경의 궁수들을 바라보았다.
궁수들의 화살이 힘없이 날아와 지면에 박혔다.
하지만 그 힘없는 화살에도 몇몇 헌터들은 죽어 나갔다.
벌써 며칠째 이어지는 전쟁이었지만, 만경의 방어대는 단결하여 지역을 옹호보위하고 있었다.
김강석은 우지혜를 돌아보며 물었다.
“만경에는 정현수 말고도, 강시온의 다른 부하가 있는 모양이야. 비산동 근처에서 아군의 공세를 혼자서 막아 내고 있어. 지혜야. 조심해라. 정보에 따르면 놈은 무척 강하다고 했으니까.”
탕-! 탕-!
우지혜는 무표정으로 달려드는 만경의 병사를 총을 쏴 죽이며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녀는 무심하게 한 손으로만 권총을 쏘아 댔는데도 백발백중이었다.
총알에 맞은 만경의 병사들은 삶을 포기하고 어서 빨리 죽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방독면 속 그녀의 눈동자는 만경의 병사가 피를 흘리는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김강석으로 옮겨갔다.
우지혜는 그를 쳐다보며 권총 탄창을 갈아 끼웠다.
그녀가 자신을 돌아보자, 김강석은 물었다.
“오늘 갈 거야?”
김강석의 물음에 우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만경이 무너지는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두 사람은 메트로의 승리를 위해, 만경에 남은 모든 아티팩트 플레이어를 죽이려고 들었다.
사전에 들었던 플레이어 정보는 번개 활 능력을 가진 정현수와, 검은 물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최현지에 대한 것이었다.
정현수는 지금 붉은 악마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후퇴한 상황이니. 비산동에 남아 있는 건 최현지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어쨌든 우지혜, 김강석은 진재희를 죽이기만 하면 되었다. 이를 위한 사전작업은 필요했다.
사전작업은 별거 없다.
진재희를 도울 수 있는 모든 플레이어를 죽여 놓는 것.
플레이어의 전력으로만 따지자면 메트로 세력이 한참 뒤처지니,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각개 격파 방식이었다.
우지혜가 이제 다음 목표로 삼은 건 최현지였다.
둘은 바로 비산동으로 향했다.
* * *
츄륵-. 츄륵-.
검은 물체가 빌딩 사이를 가로지르며, 헌터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교차로에 대놓고 퍼져 있는 검은 물체에서는 촉수들이 여러 갈래로 나와 있었고, 그 끝은 송곳처럼 굉장히 날카로웠다.
몇몇 헌터들이 촉수에 총알을 쏘아댔지만, 힘없이 처박힐 뿐이다.
웬 헌터가 화염병을 검은 물체를 향해 던졌다.
화염병은 검은 물체에 맞고 깨져 불길을 뿜어냈다.
쨍그랑-. 화르륵!
갑자기 나타난 화염에 검은 물체는 깜짝 놀라 요동쳤고, 이내 불을 피해 헌터를 죽여 댔다.
그 장면을 우지혜는 똑똑히 눈에 담았다.
“…….”
우지혜는 건물 옥상에 올라 그 검은 물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틀림없다. 최현지다.
놈은 거리를 완전 봉쇄하고 있었다.
헌터들이 애를 먹을 만한 플레이어였다.
그야말로 방어에 특화된 능력이었으니까.
김강석은 우지혜와 같은 것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혜야. 이번엔 내가 도와 줄까?”
“괜찮아요. 아저씨.”
우지혜는 천천히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더니 김강석에게 건넸다.
그리고 힘없이 말했다.
“목도리. 잘 보관해 주세요.”
김강석은 우지혜에게 목도리를 건네받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또 혼자 하려고 그러는 거냐?”
“혼자 하는 게 편해요. 엄호만 해 주세요.”
우지혜는 그 말만을 남기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깃털처럼 도로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검은 물체를 향해 다가갔다.
그때 웬 검은 촉수가 허공을 가르며 우지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촉수를 맞이한 건 또 다른 불꽃이었다.
휘릭- 휘릭-!
불꽃을 만나자 촉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문어처럼 이리저리 휘날렸다.
그와 함께 검은 물체 속에 있던 최현지도 우지혜의 존재를 눈치챘다.
츄르륵-.
검은 물체가 옆으로 갈라지더니 최현지의 오른쪽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현지는 며칠 동안 전투만 해서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그녀는 검은 물체 속에서 눈동자만 내민 채, 말했다.
“그거 알아……? 오늘 토요일인데. 너흰……. 주말에도 안 쉬냐? 제발 부탁이니까. 조금만 쉬자. 너희도……. 힘들지 않니? 하루만 푹 쉬고 내일 하자. 내일. 어때?”
그녀는 자신을 죽이러 오는 우지혜에게 부탁했다.
최현지는 심히 지쳐 있었다.
오늘까지 며칠이나 지났는지 까먹을 정도로, 오랜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검은 물체는 다시 지면을 채워 가며 서서히 우지혜를 위협했다.
하지만 우지혜는 겁먹지 않았다.
그녀는 권총 슬라이드를 당기고, 살짝 드러난 최현지의 얼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총알은 정확히 최현지의 얼굴을 향해 쏘아졌고, 검은 물체에 의해 막혔다.
최현지는 다시 검은 물체 속으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알겠어. 똑같네. 응…….”
총에 맞은 검은 물체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물체는 점점 커지더니 악마의 모습을 갖췄다.
악마는 건물 2층 높이까지 커져, 다가오는 우지혜를 내려다보았다.
그 속에 있는 최현지가 중얼거렸다.
“……빨리 쳐 죽여 버리고. 쉬어야겠다. 그치.”
최현지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도로에 울렸다.
우지혜는 악마를 향해 남은 총알을 모두 쏘았다.
탕, 탕, 탕, 탕!
당연하게도 총알은 최현지에게 먹히지 않았다.
우지혜는 권총을 땅바닥에 내버리고는, 군용 장갑을 벗어들었다.
최현지는 소리쳤다.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둬-!”
부웅-!
거대한 악마의 주먹이 우지혜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녀의 주먹은 오우거조차 한 번에 죽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불기둥이 악마의 주먹을 막아 냈다.
퍼엉-! 화르르르륵…….
“?!”
최현지는 깜짝 놀라 주먹을 빼냈지만, 이미 그녀의 주먹에는 불꽃이 달라붙어 있었다.
최현지는 불꽃이 붙은 물체를 떼어냈다.
“불……?!”
불은 꽤 희귀한 아티팩트 능력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켜 태워 버릴 수 있는 화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현지의 천적이기도 했다.
모든 물질에 대해서 내성이 있는 검은 물체는, 오로지 불 앞에서만 약했다.
불에 닿는 순간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상성이 안 좋아…….’
최현지는 이때부터 도망갈 생각을 했다.
우지혜의 주변에는 불기둥이 동그랗게 차올라 하늘 높게 치솟고 있었다.
파르르르르륵-!
불기둥에서 나온 불똥들이 거리 가득 휘날렸다.
불기둥은 도로를 집어삼키고, 죽어 널부러져 있는 헌터들의 시체를 전부 재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빠르게 확산했다.
우지혜는 불기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들어 최현지의 심장부를 가리켰다.
그 순간. 악마의 심장부에 거대한 불 검이 생기더니, 그대로 박혀 버렸다.
화륵-! 퍼버어엉-!
최현지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하악! 으아아……! 아악!”
최현지는 심장에 박힌 불 검을 뽑으려고 했지만, 차마 잡을 수도 없을 만큼 뜨거웠다.
악마는 뒤로 쓰러졌다.
불 검은 검은 물체를 녹여 버리며 천천히 최현지를 불태워 나갔다.
우지혜는 멈추지 않았다.
손을 오른쪽으로 힘있게 내리자 그어진 대각선 방향대로 불길이 만들어지더니 최현지를 베었다.
휘잉-! 화르르르르륵!
더 거대한 화염이 최현지의 몸을 또다시 불태우기 시작했다.
최현지는 불타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머리를 감싸고, 주위에 있던 건물도 부숴대며 필사적으로 불을 끄려고 용을 썼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검은 물체를 버리는 것이었다.
츄르르르륵-.
검은 물체는 제주인에게서 벗어나 거리 한구석에서 불타기 시작했다.
검은 물체에서 빠져나온 최현지는 온몸이 불타고 있는 채로 터덜터덜 반대편 거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최현지는 무력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무력…… 하다고……? 젠장. 지치지만…… 않았어도…….’
검은 물체는 단단하게 유지할 수도, 물컹하게 유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에 닿으면 모든 것이 증발해 버렸다.
슬라임이 원래 액체 몬스터라 그렇다.
최현지는 우지혜를 당해 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도망가야 해……. 일단……. 축구장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거야……!’
최현지는 터덜터덜 걸어갔다.
검은 물체와 화염이 뒤엉키며 만들어낸 엄청난 검은 연기가 그녀가 도망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도망친다고 해서 결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불에 태워진 살결은 불어오는 바람만 맞아도 찢기듯이 아팠다.
“흐으으……. 흐으으으……!”
최현지는 자신의 양팔을 감싸곤 부들부들 떨어 댔다.
추운 건 아니었지만, 온몸에 느껴지는 가려움과 쓰라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최현지는 도망치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현재 신세가 너무나 불쌍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곳에 남아서 이렇게 불타는 고통을 분초 단위로 느끼며 살아가야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원래 자유로운 방랑자였다.
언제 어디서나 잘 잤고, 새로운 지방,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이렇게 어딘가에 속박되어 불타는 고통을 느끼려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 아니었다.
강시온의 부탁만 들어주고 만경을 나와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왜 신은 그녀에게만 너무나 가혹한가.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불쌍해,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콜록! 콜록……!”
최현지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와, 걸었다.
도중에 넘어질 뻔도 해서 건물 외벽을 손으로 짚어가며 걸어야 했다.
순간 건물 외벽에는 옛날 돼지 고깃집의 형태가 남아 있었는데, 그 유리창에 비친 최현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머리카락은 불타 없었고, 옷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얼굴과 몸 구석구석에 흉측한 화상 자국이 남아 있었다.
비참했다.
“……물.”
그 비참한 상황 속에서 그녀는 물을 찾았다.
너무 목말랐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는 애달프게 애원했다.
“……누가 물 좀. 물 좀 줘.”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애원한다 한들, 들어 주는 건 가로등 위의 까마귀뿐이었다.
까마귀는 최현지가 빨리 죽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다.
최현지는 천천히 걷다가, 그만 만경 병사의 시체에 걸려 넘어졌다.
쿠당-! 철푸덕.
그녀는 얼굴부터 땅에 파묻힌 채, 가쁜 숨만을 몰아쉴 뿐이었다.
“……엄마.”
그녀는 어딘가에서 살다가 죽어 버린 엄마를 불렀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지금 심신이 너무 지쳐 있어 있지도 않은 부모를 불러보았다.
최현지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가 없었다.
최현지가 처음 태어났을 때 그녀는 보자기에 싸인 채로 성당 앞에 있었다고 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
그렇게 성당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최현지는 밝은 아이였다.
무슨 일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고아원 아이들과도 원만하게 지냈다.
또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어딘가로 훌쩍 떠나곤 했다.
말도 없이 사라지는 최현지 때문에 수녀들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찾아다녔다.
최현지는 언제나 다른 장소에 있었다.
놀이터, 아파트 옥상, 산, 강물.
어디든 좋았다.
‘……언제였더라.’
최현지는 오랜 기억 속에서 한 장소를 끄집어 냈다.
장엄한 폭포수가 떨어져 엄청난 수증기가 하늘을 메운 폭포였다.
폭포수가 떨어지며 내는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하늘을 가득 채울 정도의 폭포. 이름이 뭐였더라.
모니터 속 폭포는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나이지리아……. 아, 그건 국가인가. 나이가리아……? 나이아가라.’
최현지는 그 폭포에 가고 싶었다.
그 거대한 폭포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젠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최현지의 눈망울에 눈물이 맺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 *
화르륵-.
우지혜는 도망치는 최현지를 놓치지 않고 따라왔다.
사실 쫓지도 않았다.
최현지는 얼마 못 가 쓰러져 있었으니까.
우지혜는 쓰러진 최현지에게 다가갔다.
최현지의 온몸에 검은 물체가 말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갑판 위에서 다 죽어 가는 생선처럼 입술을 뻐끔거리며 중얼거렸다.
“물……. 물……. 물 좀……. 물……. 물……. 물……. 물…….”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최현지는 본능적으로 물부터 찾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그녀에게 물 한 모금 건넬 이는 없었다.
우지혜는 말라 죽어 가는 최현지를 바라보다 방독면을 벗어들었다.
그녀는 피 냄새가 섞인 바깥 공기를 들이마셨다.
방독면 안에 있던 퀴퀴한 냄새보단, 피 냄새와 살이 탄 냄새가 섞인 바깥 공기가 훨씬 나았다.
이것으로 메트로의 첫 번째 만경의 플레이어 사냥 완료였다.
우지혜는 고민하지 않고, 권총 슬라이드를 당겼다.
철컥-.
그리고 단번에 최현지의 머리에 총알을 날렸다.
타앙-!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