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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92화 (192/221)

제192화. 3일 (3)

이호승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곳에는 걸레로 무언가를 닦는, 빨간 목도리를 목에 두른 소녀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소녀는 이호승이 흘린 오줌을 걸레로 박박 닦고 있었다.

그것도 맨손으로.

이호승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

철크덩-!

하지만 그는 목에 채워져 있는 철쇄 때문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았다.

호승의 오줌을 닦던 우지혜는 그가 일어나자 놀란 눈초리로 그를 살폈다.

이호승은 시야가 어두워서 우지혜를 잘 볼 수 없었다.

우지혜는 무언가 깨달았는지, 호주머니 속에서 안경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호승은 조심스럽게 그 안경을 받아 눈 위에 얹었다.

그제야 모든 것이 밝게 보였다.

이곳은 지하 탄광처럼 어두웠지만 간간이 켜져 있는 랜턴 덕분에 보일 건 다 보였다.

이호승은 생각했다.

‘메트로 세력의 지하…….’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지하에서만 살아간다는 메트로 시민들.

거의 몇 년 동안이나 햇빛을 보지 못한 그들은 피부가 거의 백옥처럼 하얬다.

우지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이호승은 아직 마음이 싱숭생숭해, 곧바로 그녀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목에 채워져 있는 목줄이 답답했는지 몇 번 매만졌다.

그러자 우지혜는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당신이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요. 아저씨가 목줄을 걸지 않으면 곧바로 죽여 버린다고 해서…….”

우지혜는 말끝을 흐렸다.

이호승은 머리를 감싸곤 곰곰이 생각했다.

곧 그녀에게 물었다.

“얼마나……. 제가 기절해 있었어요?”

“네다섯 시간 정도예요.”

“마, 만경의 병사들은요? 지상에 있을 텐데. 쳐들어왔나요?”

“아침에 듣기로는……. 별다른 소득 없이 산을 다시 내려갔다고 해요.”

큰일이었다.

이호승은 이제 완전히 본대와 멀어지게 되었다.

강시온의 말에 따르자면, 3일 안에 총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했는데, 도저히 3일 안에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우지혜는 과자 상자에서 먹을 것들을 꺼내며 말했다.

“그보다, 배고프시지 않아요? 제가 먹을 걸 좀 챙겨왔는데.”

그녀가 건네는 건 난(nan bread) 처럼 생긴 무언가였다.

이호승은 메트로 세력의 헌터가 건네는 먹을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실제로 우지혜의 권총이 책상 위에 있었으니, 권총이 내뿜는 위협감에 적이 주는 음식을 함부로 받아먹을 순 없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호승의 배가 요동을 쳤다.

꼬르르륵-.

우지혜는 난을 바라보다, 이내 이호승의 가방을 꺼내 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쥐 육포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우지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아요. 적이 건네는 음식, 받아먹기 힘든 거. 그래도 먹어요. 배고프잖아요.”

우지혜는 배시시 웃었다.

랜턴 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고, 그 미소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웃음에 이호승의 경계심은 허물어졌다.

그러고는 쥐 육포를 질겅질겅 씹어먹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지혜가 건넸던 난도 입에 우겨 넣기 시작했다.

* * *

우지혜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해치우는 이호승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빠는 만경 사람이에요?”

“……오빠?”

이호승이 묻자, 우지혜는 입을 두 손으로 가리며 사과했다.

“아, 죄송해요. 혹시 저보다 동생이세요?”

“아, 아뇨. 그렇게 보이진 않아요. 아니, 그냥 호칭이 좀 어색해서.”

“……다행이네요. 제가 실수를 저지른 건가 싶어서.”

이호승은 배불리 먹고 포만감을 느꼈다.

하지만 처지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자신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메트로의 포로 신세였다.

이호승은 우지혜에게 물었다.

“근데 만경은 왜요?”

호승의 물음에 지혜는 조금 웃어 보이며 이어 말했다.

“전 안양 출신이거든요.”

“예?! 정말요? 근데 왜 메트로에…….”

이호승은 깜짝 놀라 그만 큰소리쳤다.

우지혜는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1라운드는 안양에서 치렀어요. 지금 만경의 영웅이 강시온 맞죠? 그 사람과 함께 보냈어요.”

만경의 영웅인 강시온과 함께 1라운드를 보냈다니.

그건 이호승에게도 꽤나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사실 이호승은 만경 안에 있을 때도, 강시온에 대한 여러 역사를 배웠었다.

그때 당연히 강시온의 1라운드도 스토리도 전해 들었는데, 그곳에서 살아남은 건 다섯 명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다섯 명 중, 강시온과 진재희를 제외하면 셋밖에 남지 않는다는 건데.

눈앞의 빨간 목도리의 소녀가, 그 셋 중 하나라는 사실이 솔직히 납득이 되질 않았다.

이호승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저, 정말 놀랍네요.”

“저도 그 오빠가 만경의 영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곤, 놀랐죠.”

“그럼 당시에 강시온과 함께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헤어진 거예요?”

“할머니 찾으러 사당에 갔었거든요. 근데 뭐……. 1라운드 때 일은 별로 말하고 싶진 않네요.”

우지혜는 쓰린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사실 리그에서 모든 이에게 공통되는 것이 있었다.

그건 모두가 1라운드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것.

왜냐하면 대부분 그때 가족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이호승은 우지혜의 말을 듣곤, 이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잘 꼬드기면 같이 만경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호승은 물었다.

“……그럼 만경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으세요?”

그 질문에는 의외로 우지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게까지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아……. 왜요? 영웅과 1라운드를 같이 보냈다면, 만경으로 돌아가서는 한몫 챙길 수도 있을 텐데.”

이호승은 최대한 우지혜를 설득시키려고 했다.

그가 여기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그녀를 설득시키는 방법밖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지혜는 확고했다.

“전 신분이나 재산에 그렇게 관심 있진 않아요. 게다가 전 이곳 사람들도 마음에 들고요……. 만약 메트로랑 만경이 화해하고 서로 왕래할 수 있다면. 한 사람을 찾고 싶긴 해요.”

“누군데요?”

“이 목도리를 저에게 둘러 준 사람이요.”

우지혜는 자신의 목에 둘린 빨간 목도리를 살짝 쥐며 말했다.

사실 이 지하 탄광은 꽤 더운 편이었다.

우지혜를 포함해, 이호승을 가격했던 남자도 반팔 반바지 차림이었으니.

하지만 우지혜는 목도리를 고집했다.

그녀에게 이 빨간 목도리는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그녀가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던 1라운드 종료 당시, 이 빨간 목도리를 둘러 준 여자는 자상했다.

그 자상함은 이 세계에선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우지혜를 보호하고 믿는, 주변 인물들도 자상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이호승은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이름이 뭔데요?”

그러자 우지혜는 뒷머리를 살짝 긁으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모르겠어요. 이젠 얼굴도 기억 안 나요.”

“아…….”

이호승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침묵했다.

우지혜는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제게 이 빨간 목도리를 준 사람은, 분명 지금도 자상할 거예요. 전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호승은 우지혜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순해 보이는 인상에 금방 적응했다.

우지혜는 어쨌거나 어이없게 죽기 전에 자신을 지켜준 메트로의 헌터였으니까.

이호승은 이곳에 오기 전, 진재희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호승은 그녀에게 삶의 의미 같은 건 모르겠지만, 그래도 네 덕에 살아간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호승은 우지혜와 만난 순간 삶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따뜻함이다.

사람의 따뜻함.

버스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따뜻함.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연탄을 나르는 자원봉사자.

힘든 이를 도와주며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들.

이호승은 진재희에게서 그 따뜻함을 보았고, 지금은 눈앞의 여자에게서 확인했다.

세상은 변했다.

타인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세상이다.

인간미는 찾아볼 수도 없는 세계.

이호승은 여태껏 그 인간미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우지혜를 바라보며 그 정답을 알 수 있었다.

이호승은 살짝 웃으며 우지혜에게 말했다.

“당신은 자상하네요.”

그 말에 우지혜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픽 숙였다.

우지혜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전혀.”

“네?”

하지만 이호승은 우지혜의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이호승을 기절시킨 우락부락한 남자가 다시 이곳으로 걸어왔기 때문이다.

남자의 어깨에는 소총이 걸려 있었다.

이호승은 남자의 등장에, 잔뜩 긴장해선 뒤로 물러섰다.

남자는 책상 위에 우지혜의 권총을 쥐곤 그녀에게 건넸다.

“출격 명령이다. 지혜야. 가자.”

“……예. 아저씨.”

우지혜는 소총을 건네받아 등에 메고는 주위에 있던 박스를 모아 이호승 앞에 쌓아 두었다.

우지혜는 박스 위에 얼굴을 들이밀며 이호승에게 단단히 일렀다.

“절대 누가 와도 소리 내지 마요. 우리 암호는 음……. 키위로 해요. 제가 키위라고 말하기 전에는 숨죽이고 있어요. 만약 다른 헌터들이 오빠를 보면 죽일 거니까.”

이호승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끄덕임을 보고 우지혜는 미소를 지었다.

“이따 봬요.”

그녀는 그 말만을 남기고 박스 위로 모포를 덮어 주었다.

이제 이호승은 완전히 어두운 공간에서 혼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기다리고 기다렸다.

우지혜가 돌아올 때까지.

* * *

어두컴컴한 복도.

이곳은 돌격형 몬스터 두두가 만들어 낸 공간으로, 지금은 메트로 헌터들의 지하 통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김강석은 통로 옆에서 걷고 있던 우지혜를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는 후회할 거다. 적에게 연민을 품다니.”

김강석의 말에도 우지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이미 많은 헌터들이 좁은 통로를 따라 줄지어 걷고 있었다.

몇몇 헌터들의 지휘관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우린! 반드시 만경을 점령하고 살아남을 거다. 그게 신께서 우리에게 내린 명령이다. 망설이지 마라! 반드시 승리하는 거다!”

“예!”

“예!”

지휘관의 열띤 소리에, 헌터들은 입 맞춰 짧고 굵게 대답했다.

우지혜와 김강석이 다가가자, 소총을 쥔 헌터들은 홍해의 바다처럼 갈라졌다.

우지혜와 김강석은 그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또다시 확성기 속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들어라! 지상으로 올라가면, 우선 동료의 시체 품에서 남은 총알부터 찾는다! 그리고 총알을 찾으면! 발포하지 말고, 부대로 가지고 온다! 다시 한번 말한다! 지상으로 올라가면……!”

우지혜는 헌터들 사이를 걸어가 어느 방으로 갔다.

이곳은 마치 개미굴처럼 하나의 통로에 여러 방들이 있는 구조였다.

그 방은 어두컴컴했지만 랜턴 빛아래에 의사가 있었고, 그의 앞에는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우지혜가 방에 들어오자, 방 안에 있던 의사가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말했다.

“만경의 플레이어. 정현수. 결국 붉은 악마를 해치웠네. 와-, 하하. 박수 함 칠까?”

우지혜는 침대에 누워 죽어 있는 붉은 악마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온몸이 번개에 감전되어 죽어 있었다.

그렇게 정현수를 혐오하고 적대하던 동료였는데, 결국 정현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때, 붉은 악마가 죽어 있는 방으로 군복을 입은 지휘관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30발이 모두 들어가 있는 탄창 4개를 각각 우지혜와 김강석에게 건넸다.

“비록 붉은 악마는 죽었지만. 정현수도 많은 대미지를 입은 모양이다. 만경에서 조우한다고 해도, 너희들이 이길 수 있을 거야. 그보다. 교주의 특명은 순조롭나?”

여자는 우지혜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지혜는 묵묵히 붉은 악마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다가 한숨을 작게 내쉬며 여자에게 말했다.

“‘진재희’ 죽이기?”

지휘관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 둘의 능력이라면 가능할 거다. 반드시 진재희를 죽여야 해. 그게 교주께서 너희에게 특별히 내린 명령이니.”

“…….”

“…….”

둘이 대답하지 않자, 지휘관 여자는 다시 말했다.

“진재희를 죽이지 못한다면, 우리 메트로 세력의 미래는 없다. 그년은 마포대교도 단칼에 베어 버린 리그 최강의 플레이어야. 교주께서 신께 전해 들은 이야기는, 진재희만 없다면 만경은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너희가 반드시 진재희를 죽여야만 한다. 메트로 세력에 남은 플레이어 중, 너희가 마지막 희망이니까.”

우지혜는 지휘관의 말을 들으며 권총에 탄창을 결합하여 노리쇠를 후퇴시켰다.

권총에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우지혜는 지휘관을 노려보았다.

우지혜의 목소리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알았다고. 그만 말해.”

신경질적인 대답이었지만, 지휘관 여자는 우지혜에게 아무 말도 대꾸할 수 없었다.

현재 메트로의 최고 핵심 인물은 바로 우지혜였기 때문이다.

“진재희는…… 반드시 죽일 테니까.”

우지혜는 그 말만을 남기고 방을 빠져나갔다.

우지혜를 따라 김강석도 빠져나왔다.

우지혜가 가는 길은 헌터들이 길을 터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헌터들의 존경 어린 눈초리도 한 몸에 받고 있기도 했다.

빨간 목도리가 그녀의 발걸음에 따라 일정하게 움직였다.

먼 통로에서부터 한 줄기의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빛 너머.

그러니까 우지혜가 마지막 타이어 계단을 오르자, 그녀의 눈동자에 빛이 쏟아졌다.

“…….”

또다시 폐허가 된 만경의 모습이 드러났다.

우지혜는 방독면을 착용했다.

방독면, 빨간 목도리, 권총.

우지혜는 헌터들의 최고 대장이었다.

그리고 해결사이기도 했다.

반대편 거리에서 만경의 병사들이 창을 쥐고 튀어나왔다.

우지혜는 망설이지 않고 권총을 쏘았다.

탕-! 탕-!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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