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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91화 (191/221)

제191화. 3일 (2)

079부대장이 자원했다는 소문은 금방 퍼졌다.

안 그래도 위험한 작전에 휘말려 기분이 싱숭생숭한 부대원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작전이 시작하기 전부터 뭔가가 삐걱거리고 있었다.

이번 작전에는 079부대를 포함해 041부대, 080부대까지 합류했다.

선배는 발목 양말 위에 긴 양말을 겹쳐 신으며 이호승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는 거지. 별수가 있겠냐. 079부대는 전쟁 발발 이후 별다른 공을 세우지 못했으니까.”

선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지금껏 이호승이 속한 부대는 후방에서 뒤따라오며, 전장 정리만 할 뿐이었다.

실제로 관악, 동작, 여의도까지 이어지는 크고 작은 전투부터 채채연의 개입이 있던 서초 전투까지 079부대는 한 번도 선봉에서 서지 않았다.

이호승은 허리춤에 단검을 차며 선배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다 죽을까요?”

“재수 없는 소린 하지 말고. 물이나 잘 떠 놔.”

“아, 예.”

이호승은 금세 물통에 다가가 500ml 생수병에 물을 가득 담았다.

플라스틱은 리그가 멸망한 뒤에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식량 보관에도 값비싼 상자보단, 플라스틱에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호승은 넉넉하게 물을 세 병 채우고 백팩 안에 넣어 놓았다.

만경 병사의 기본 장비는 정해져 있는 것이 없었다.

병사로 입대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등산용 백 팩이 주어지고, 전투 전까지는 그 백 팩을 군장처럼 사용한다.

백 팩 안에는 물과 말린 음식, 불을 지필 수 있는 라이터부터 여러 잡다한 것까지 전부 들어 있었다.

이호승은 선배에게 다가갔다.

그는 허리춤에 복대를 몇 겹이나 차고 있었다.

“배때기에 칼빵 맞으면 안 되니까. 너도 할래?”

“괜찮습니다.”

이호승은 선배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둥지에서 진재희로부터 얻은 가르침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제한되면 오히려 전투에 방해가 될 뿐이다.

출발은 한 시간 뒤였다.

그리고 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079부대장은 모든 전투 준비를 마치고, 지휘부로부터 명령을 하달받아 병력들을 이동시켰다.

079부대는 적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교란 작전을 벌이는 것이 목표였다.

어쨌거나 강시온의 본대가 만경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관악산이 아니면 지하 철로를 따라가야만 했다.

만약 적은 인원수라면 바로 관악산을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1만 명 이상의 본대가 산을 넘는다면 분명 적도 이를 눈치채고 대응할 것이다.

이에 시온은 소수의 부대들로 관악산으로 이동시켜 적을 교란한 뒤, 3일 안으로 만경에 본대를 투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079부대는 미끼였다.

부대원들은 착잡한 마음으로 서울대학교 뒤편, 관악산 일대에 도착했다.

079부대장은 부하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숨죽이고 이동한다. 부대는 총 셋으로 나누어서, 우선 관악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잘 들어. 우리의 목표는 관악산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적의 지하 통로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수색 도중 적과 조우하면 고민하지 말고 전투해라.”

부하들은 부대장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이호승은 회칼을 꼭 쥐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호승과 선배는 같은 부대로 분류되어 관악산 정상까지 올라갈 것을 명령받았다.

이 부대의 대장은 선배였다.

선배는 과거 정예대 일원이었다가, 훈련 도중 자격 미달로 일반 보병부대에 오게 된 사람이었다.

선배가 대장을 맡았다는 사실에 그 누구도 불만을 가지진 않았다.

“자- 이동합시다.”

선배는 제일 선두에서 대원들을 이끌고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관악산은 등산길이 잘 조성되었지만, 대놓고 등산길을 이용할 멍청이들은 없었다.

선배는 주변을 둘러보다, 잠시 휴식을 명령했다.

등산을 할 때는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10kg나 되는 가방을 멘 병사들이 단번에 정상에 오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호승은 천천히 선배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선배는 한껏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구슬땀을 닦아 내며 물 한 모금 마시고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으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나도 몰라.”

“예?”

“새끼야. 그냥 뭔 연놈이든 튀어나오면 싸우면 돼. 일개 병사가 작전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어딨어?”

“…….”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자신의 목숨을 쥐고 있는 건 선배였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던 이호승은 다시 물었다.

“그래도 뭔가가 있을 거지 않습니까? 뭐……. 적과 조우하면 대응하는 전략이라던가. 아님, 후퇴할 루트라든가.”

“세 번 물어도 내 대답은 같아. 나도 모른다.”

끼릭- 끼릭-.

선배는 생수병의 뚜겅을 잠갔다.

그리고는 관악산 아래로 보이는 서울 전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이 짓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

“뭔데요……?”

“병사들은 그냥 장기말에 불과해. 이 작은 전투 안에서 우리끼리 머리를 쥐어 잡고 계획을 만들어 봤자 막상 적과 조우하면 머리가 새하얘진다니까? 지금까지 계획했던 그 모든 것이 백지가 돼. 그러니까 다 필요 없어. 그냥 싸워. 도망가려면 도망가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이호승은 그의 말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긍하기로 했다.

그가 말했듯이 세 번 물어도 대답은 같을 것이 뻔하니.

하지만 이호승은 한마디만 덧붙였다.

“전 선배 옆에 있겠습니다.”

“그려.”

선배는 담담하게 쥐 육포를 뜯었다.

휴식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들이 관악산 정상에 도착한 건 정오 즈음이었다.

* * *

정오에서 저녁에 이르기까지 관악산 일대를 뒤진 부대원들은 정상에 모였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호승은 무리에서 빠져나와 관악산 정상에서 보이는 만경 시내를 바라보았다.

불바다.

그것 외엔 이 전경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온 도시가 불타고 있었고, 총성은 모두를 잡아먹을 것처럼 여기저기서 들렸다.

저 안에 있을 사람들이 참으로 불쌍하게 느껴졌다.

‘누가 누굴 걱정해.’

이호승은 고개를 저으며 무리로 돌아왔다.

079부대의 대장은 땅을 차대며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왜 내가 가는 곳마다 이렇게 적이 없는 거야? 보이는 건 저렇게나 많은데.”

부대장 주위로 소대장들이 모여 그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하고 있었다.

이호승은 적당히 무리 속으로 들어가 앉아서 쉬었다.

정상에 내려다보는 고요한 산의 적막은 을씨년스러웠다.

그 산비탈을 바라보다 이호승은 배를 움켜잡았다.

‘하 씹. 하필 이럴 때. 배 아파…….’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지쳐서는 고개를 떨구어 쉬고 있었다.

이호승은 마른 풀잎들을 모아 산비탈을 내려갔다.

사실 그는 바깥에서 볼일을 보는 것을 끔찍하게 여겼다.

이 상황이 오기 전에도, 그는 볼일은 무조건 집에서 보는 타입이었다.

공중화장실이나 백화점 화장실도 기피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가릴 수 없었다.

호승은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남들이 쉽게 찾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이호승은 바지를 내리고 훤한 엉덩이를 내밀었다.

하지만 나오지 않았다.

배가 정말 아파 볼일을 보려고 해도, 이런 상황이면 오히려 안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던 이호승은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이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 씨.’

이호승은 바지춤을 다시 올리고는 발로 땅을 밟아 댔다.

푹신푹신한 잔디를 밟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이호승은 가슴이 철렁 가라앉았다.

그리고 손을 더듬으며 흙을 파냈다.

얼마간 흙을 파내고 보니, 그곳에는 골프장에서나 볼법한 초록 그물망이 처져 있었다.

이호승은 허리춤의 회칼을 꺼내어 그 초록 그물망을 잘라냈다.

그리고 나무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건 헌터들의 비밀 통로였다.

‘…….’

이호승은 조심스럽게 나무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었다.

깊은 밤, 올빼미 소리와 함께 어린 여자의 목소리가 통로 안쪽에서 들렸다.

“아, 아저씨! 방귀 꼈죠?! 아, 진짜 환풍 한 번 하죠. 똥 싼 것도 아니고.”

“그래라. 하지만 조심해. 만경 놈들이 산 정상까지 치고 올라온 모양이니까.”

“그 사람들이 여길 어떻게 와요? 우린 지하에 있는데.”

어린 여자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렸다.

이호승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호승은 떨리는 손으로 바지 지퍼를 올리고 이곳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어린 여자가 먼저였다.

끼이이이익-!

나무문이 살짝 열렸고, 어린 여자는 이호승과 눈을 마주쳤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

“…….”

이호승은 바지 지퍼를 쥔 채,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상당히 앳된 얼굴이었다.

세상이 이 지경인데도.

잡티가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에. 매끄러운 단발머리, 동그랗고 큰 눈동자를 가진 여자애였다.

목에는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는데, 상당히 해져 보였다.

나이를 굳이 계산하자면 스무 살에서 스물두 살 언저리.

정말 많이 따져도 스물셋 정도로 보였다.

나무문 안쪽은 영락없이 지하 통로였다.

듬성듬성 먹을 것과, 빛을 내는 랜턴이 있었다.

어린 여자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호승이 쥐고 있는 식칼을 보고는 겁을 먹었던 것이다.

이호승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이 여자를 죽여야만 한다고?’

이 앳된 얼굴의 소녀를?

이호승은 일단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일단 도망쳐서 079부대에 알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지하 통로 안쪽에서 튀어나온 우락부락한 남자가 어린 여자를 제치고 이호승을 제압했다.

그러고는 이호승이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은 후, 지하 통로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우락부락한 남자는 어린 여자에게 말했다.

“지혜야! 빨리 문 닫아라!”

“예…… 예! 아저씨!”

지혜라는 이름의 여자는 나무문을 닫았다.

끼이이이익…… 텅!

이호승은 남자의 손에 붙잡힌 채, 아등바등거렸다.

남자는 허리춤에 있었던 작은 단도를 꺼내 들었다.

그는 이호승에게 말했다.

“너무 원망 마라!”

“……!”

이호승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이렇게 죽는가 싶었다.

하지만 지혜가 남자를 막았다. 지혜는 남자의 손에 매달리며 외쳤다.

“아저씨! 안 돼요!”

“말리지 마라! 지혜야. 이놈을 살려 보내면, 분명 본대를 끌고 올 거야!”

“아, 안 돼! 그만! 아저씨 제발!”

지혜는 남자의 두꺼운 팔에 매달리며 말렸다.

이호승은 제발 여자의 설득이 먹히길 간절히 바랐다.

당장 여자의 말 한마디로 자신의 목숨이 결정될 테니.

지혜와 남자는 여러 차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남자는 이호승을 죽이지 않기로 했다.

이호승은 겨우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푸하……! 하아아……! 흐으으……!”

이미 호승의 무장은 전부 빼앗긴 채였다.

이호승은 저만치 떨어져 있던 안경을 발견하곤 엉금엉금 기어가 그것을 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일어나며 말했다.

“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

하지만 이호승에게 날아온 건 남자의 주먹이었다.

부웅- 퍼억!!!

남자의 주먹은 제대로 이호승의 오른뺨에 적중했다.

이호승은 기절해선 뒤로 쓰러져 버렸다.

털썩-!

“아저씨!”

지혜는 남자에게 다가가 또다시 다그쳤다.

하지만 남자는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기절이라도 시켜 놔야지. 이놈은 만경의 병사란 말이야!”

“그래도 때릴 것까지는…….”

“아우우! 좀 지혜야! 사람이 왜 이렇게 착해 빠진 거냐?! 우린 전쟁 중인 걸 모르냐?! 만약 반대 상황이었다면! 이 남자가 우릴 살려 줄 거라고 생각하느냐?!”

“알아요……. 아는데……!”

지혜는 그 말 뒤로 고개를 살며시 숙이며 울먹거렸다.

“……약속했잖아요.”

지혜의 힘없는 목소리에, 남자는 맥이 빠져 버렸다.

결국 또 이렇게 되어 버렸다.

결국에는 지혜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이 가녀린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정말이지 거절을 할 수 없었으니.

하지만 남자는 지혜에게 주의를 주었다.

“대신 네가 돌봐라. 이놈이 똥 누면 네가 치우고. 오줌 싸도 네가 치워라. 먹이도 네가 주고. 감시도 네가 해.”

그 목소리에 지혜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물었다.

“사람이 갠가요…….”

“아니면 내 방식대로 할 테다.”

“아,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남자의 방식대로 하면 이호승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지혜는 기절한 이호승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알았으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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