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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89화 (189/221)

제189화. 격동 (2)

나는 말했다.

“널 풀어 줄 순 없어. 만경에 피해를 입힌 건, 반드시 처벌받아야 해. 네가 여기 갇혀있는 동안 준호에게 연락할 방법이 반드시 있을 거다. 그걸 알아내. 그리고…….”

채채연은 또다시 내 말을 끊으며 피를 흘려대며 말했다.

“아니, 제가 준호 애인……?”

“이제부터 내 말 끊으면…….”

난 그녀의 목을 잡아챈 뒤, 복부를 때렸다.

퍼억-!

채채연은 피를 토해 냈다.

“……붉은 원석을 풀고, 네년이 죽기 직전까지 고통스럽게 해 주겠어. 장난 같아? 한 가지만 똑똑히 말해 주지. 지금 난 만경의 지도자야. 나에겐 만경의 승리가 최우선이야. 널 죽인다고 해서 동생이 어떻게 반응할지, 내가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거든. 하지만 기회를 주마. 네놈이 정식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거야. 그거라도 받고 싶으면 넌 내 질문에만 대답해.”

“…….”

내 눈동자를 바라보는 채채연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난 그녀에게 물었다.

“같이 온 사람이 있겠지. 혼자서 이동하진 않았을 거 아냐?”

“…….”

“어딨어. 대답해.”

“있긴 하…… 하지만.”

“내 질문은 어딨냐다.”

난 다시 그녀의 복부를 때렸다.

퍼억-!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내지르며 대답했다.

“만경! 만경에 있다고! 으으……!!!”

“만경?”

“……그 언니도. 동생을 찾으러 간다고……. 했으니까. 어어엉…….”

채채연은 강한 것처럼 굴더니, 이젠 왕왕 울어 댔다.

난 쥐었던 그녀의 목을 풀어 주었다.

지금 난 이성적이지 못하다.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지금껏 무얼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당장 그 목표가 눈앞에 있다면, 그 누구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최대한 이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며, 난 그녀에게 물었다.

“이름은?”

“……이주연.”

그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좋아. 이주연을 찾아서 데려오겠어. 너에 대한 처분은 그 이후에 내리도록 하지.”

난 부하에게 채채연이 회복할 수 있도록 붉은 수갑을 풀어놓을 것을 명령했다.

풀어놓는 동안 놈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구체 감옥을 둘러놓았다.

구체 감옥 안에서 채채연의 구슬픈 울음이 터져 나왔다.

“……다 이를 거야. 다 이를 거라고……!!! 준호가 날 얼마나 아끼는 줄 알아……? 준호는 날 위해 한 세력을 혼자서 멸망시킬 정도라고……. 너 같은 형……. 준호가 한 방에 혼내 줄 수 있어……. 진짜 나한테 이러면…….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흐어어엉……!”

난 그녀의 울음을 들으며 막사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바로 그 직전에 막사 한구석에 있던 진재희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불안한 눈동자를 하고 있더니, 금세 고개를 숙였다.

“…….”

난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막사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총사령관 황민재를 불렀다.

* * *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진재희는 종일 시무룩하니 캠퍼스 한구석에서만 있었다.

풀이 죽었다고 해야 하나, 아님 실망했다고 해야 하나.

입맛도 돌지 않았고 간간이 목만 축일 뿐이었다.

그녀는 담벼락에 앉아, 교정을 내려다보았다.

대량 살상이 가능한 플레이어의 개입은 보병들에겐 치명적이었다.

채채연의 개입으로 강시온의 군대는 정체를 맞이했다.

포자는 생각보다 병사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다.

포자에 직접 영향을 받은 병사는 즉사했고, 그 주위에 있던 병사들도 무사하진 못했다.

여기저기서 독감과 유사한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온몸에 포자가 달라붙어 피부가 썩어가기도 했다.

걷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강시온은 전군 재정비를 명령했고, 며칠간은 이곳에 머무는 듯싶었다.

진재희는 골골대는 병력을 바라보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부대 안을 돌아다녀보니, 많은 병사들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조금 전 보고에 따르면 채채연은 독을 풀 줄만 알지, 해독하는 법은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채채연은 몸에 묻은 독포자를 주기적으로 닦아 주면, 상태가 많이 호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장에서 즉사한 인원만 100명이 넘어갔고, 온몸에 들러붙는 포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자도 200명이 넘어갔다.

서울대학교 학교 운동장.

그곳에는 환자들이 열을 이루어 누워있었다.

사실 진재희의 눈에는 환자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행여 강시온이 변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번 사건을 통해 동생을 만나게 된다면, 크든 작든 심경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만약 최악의 경우, 강시온이 진재희를 떠나 동생에게 가 버릴 수도 있었다.

진재희는 주먹을 꼭 말아쥐었다.

‘……그것만큼은 안 돼.’

강시온이 생각한 그 계획.

이제 첫 번째 퍼즐이 맞춰지려고 하는 지금 시점에, 그가 갑자기 이탈해 버린다면 모든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어쨌거나 이 리그를 끝낼 수 있는 건 강시온 오직 그만이 가능한 일이니까.

그때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부싼! 걸레는 빨아 왔어?!”

“아, 넵! 갑니다요!”

진재희는 마스크를 끼곤 수건을 든 이호승을 발견했다.

이호승은 자신의 부대원들과 함께 환자들을 돌보며 물을 기르고 있었다.

진재희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비 맞는 고양이처럼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야.”

“아, 깜짝아.”

이호승은 한 번 소스라치게 놀라 흠칫거렸다.

그 옆에 있던 이호승의 선배는 단번에 일어나 소리쳤다.

“대, 대, 대, 대장님! 아, 아, 안녕하십니까!”

진재희는 이호승의 선배에게 미안하다며 손바닥을 보였다.

“편하게 있으세요.”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일반 보병 입장에서 진재희의 위치는,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세력 내 권력 순위 2위에 빛나는 자였다.

그러니 일반 보병은 그녀와 마주치기만 해도 온몸이 얼어붙을 수밖에.

그런 그녀에게 아무리 편하게 있으려고 해도, 편하게 있을 순 없었다.

이호승은 게슴츠레 눈을 뜨며 선배와 진재희를 번갈아 보다가 그녀를 끌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빠져나갔다.

터억-.

이호승은 진재희에게 자신의 모자를 씌웠다.

“……?”

진재희는 모자챙을 살짝 들며 이호승을 바라보았다.

“넌 아주 나중에 연예인 된다는 애가. 기본이 안 되어 있어?”

“……무슨 기본.”

“자! 마스크도 써. 차마 선글라스까진 못 주겠다.”

진재희는 고분고분 이호승이 건네는 마스크를 받아 썼다.

이호승은 자연스레 다른 환자 곁으로 다가가 임무를 속행했다.

진재희도 그를 따라갔다.

호승의 손은 고무장갑이 몇 겹이고 끼워져 있었다.

환자를 닦은 수건에는 보라색 포자가 조금씩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환자의 몸을 수건으로 닦으며 물었다.

“근데 능력자 부대 대장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무슨 일입니까~. 여긴 보병 막산데~.”

“……난 여기 오면 안 되냐.”

“와서 안 될 건 없지.”

이호승은 낄낄대며 수건을 돌려 깨끗한 부위로 다시 환자의 몸을 닦았다.

진재희도 그 곁에 있던 수건 하나를 집어 들곤, 이호승의 반대편으로 건너가 환자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어린 여자였다.

진재희와 동갑이거나, 그 아래.

여자는 고통스러운 듯 연신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진재희는 아랫입술을 한 차례 깨물고는 정성스레 그녀의 몸을 닦아 주었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환자의 몸만 닦았다.

그러다 이호승은 물었다.

“……왜. 싸웠냐?”

“……?”

진재희는 놀라선 그를 돌아보았다.

이호승은 흘러내린 안경알을 소매로 올리고는 다시 환자의 몸을 열심히 닦았다.

그러고는 대답하지 않는 진재희에게 다시 말했다.

“넌 말이야. 예전부터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나 있어. 슬프면 울상 짓고. 기쁘면 웃어 대고. 화나면 인상 찌푸리고. 패고 싶은 사람 있으면 패고.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막 달려들고. 사람이 진짜 단순하다니까?”

“……내가 언제.”

“개-소리. 분명 그랬어. 어느 정도냐면. 실제로 네가 감정 기복이 없는데도, 감정 기복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니까? 표정 변화가 엄청 빨라서.”

“……내 앞에서 감정이란 단어 금지야.”

“감정? 오오……. 감정 때문에 싸웠구나?”

진재희는 꿀밤이라도 때리고 싶은 욕구를 꾹꾹 참았다.

이호승은 예전부터 이런 점에선 눈치가 참 빨랐다.

“영웅께 혼났구나?”

“야.”

“뭘. 얼굴에 다 나와 있는데. 마빡에 적혀 있다 야.”

이호승은 낄낄대며 더러워진 수건을 양동이에 넣었다.

그리고 새로운 수건을 가지고 와 다음 환자한테 다가갔다.

“까짓것 혼날 수도 있는 거지 의기소침해져서는.”

“지는. 둥지에서 다 뒈져 가고 있었으면서.”

“난 다르지.”

“도대체 뭐가.”

“난 삶의 의미가 없었다고. 야. 솔직히 진짜 그땐 힘들었고.”

이호승과 진재희는 새로운 수건을 받기 위해, 나란히 병사들의 쉼터로 다가갔다.

진재희는 모자와 마스크를 쓴 덕분에 병사들이 알아보는 일은 적어졌다.

진재희는 이호승에게 물었다.

“근데 지금은 예전 모습을 찾은 것 같다?”

“……그러게. 살고 싶으니까. 발버둥 치는 거지.”

“넌 그 삶의 의미를 어떻게 되찾았는데?”

진재희는 자연스럽게 물었고, 이호승은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너.”

“어?”

“너라고.”

진재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백하지 말랬지.”

“지- 랄. 제발. 그런 게 아니라. 네가 알려 줬다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

호승은 쉼터에서 박스에 가득 담겨 있는 수건을 양껏 집어 들었다.

진재희도 호승을 따라 수건을 양손 가득 집어 들었다.

“뭘 알려 줬는데?”

“나도 몰라.”

호승의 단순한 대답에 진재희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난 별로 한 거 없어.”

“맞아.”

호승이 수긍하자 진재희가 다시 물었다.

“보통 이럴 땐, 아니야라고 하지 않아?”

“달라. 임마.”

이호승은 진재희와 나란히 교정을 걸었다.

이곳은 대학교였다.

진재희는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이호승과 나란히 걷는다는 것이 왜인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세계가 멸망하고, 대학교의 의미는 없어졌지만.

“위로하는 사람이 아무리 열과 성의를 다해서 위로한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별로 그렇지 않으면 위로가 안 돼.”

교정 한 편에는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은행나무가 있었다.

은행나무 잎이 석양에 비추어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근데 위로하는 사람이 대충대충 말한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걸 그 사람의 마음보다 더 소중하게 받아들이면 충분히 위로받게 되는 거지.”

“난 후자라는 소리야?”

이호승은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둘은 잔디밭이 듬성듬성 깔린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많은 병사들이 저마다 누워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호승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후자라서 다행이지.”

“……?”

“그러니까 너도 잘 받아들이라고. 영웅이랑 무슨 이야기가 오 갔는 줄은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땐 영웅이 널 위하면 위했지, 업신여기거나 하대하려고 그런 말을 했겠냐고. 다시 말하지만, 둘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이호승의 말에 진재희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잘 받아들여. 내가 아는 진재희는 강한 사람이니까.”

이호승은 수건을 내려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진재희에게서도 수건을 건네받아 차곡차곡 정리했다.

이호승은 강시온의 군대에 입대해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의 등에는 칼이 매여 있었고, 지금껏 몇 번의 전투를 했다고 했다.

진재희는 그가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웠다.

이호승은 쪼그리고 앉아 대야에 받아 놓은 물에 깨끗한 수건을 넣었다 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웃겼던 진재희는 발로 살짝 이호승의 엉덩이를 밀어버렸다.

이호승은 그대로 대야에 빠져 버렸다.

철푸덕-!

그는 안경을 더듬으며 바로 쓰곤 재희를 향해 꽥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죽지 마라. 죽으면 진짜 뒤진다.”

진재희는 그 말만을 남기고 돌아갔다.

되돌아가는 진재희의 뒤통수에, 이호승은 소리쳤다.

“뭔 개소리야! 왜 밀쳤냐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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