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8화. 격동 (1)
진재희의 눈동자가 마구 뒤흔들렸다.
강시온을 버섯 안에 가둔 채채연은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아, 설마. 담배와 술을 독점한 것도 이 오빠인가? 하윤하는 황제이긴 했지만, 영웅을 기다린다고 했고. 영웅이 돌아왔으니, 당연히 만경의 지도부는 교체 되었을 테고. 아, 맞네. 이 오빠가 했네. 그럼 준호가 용서해 줄지도?”
그 순간, 진재희는 빠르게 채채연에게 다가가 성검을 휘둘러 베었다.
서- 걱!
채채연의 몸이 단번에 두 동강이 났다.
진재희는 말했다.
“감히 누가 누굴 용서해.”
채채연은 놀란 듯 두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입술을 오므리며 감탄했다.
“와. 빠르다. 진짜 눈으로도 못 따라갈 정도인데?”
둘로 나뉜 그녀의 몸이 포자로 변해 흩어졌다. 그건 그녀의 분신일 뿐이었다.
진재희의 등 뒤에는 여전히 채채연이 서 있었다.
“워-. 진정해. 난 너흴 해치려는 게 아니니까. 혹시 보디가드이신가요?”
채채연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진재희는 전혀 웃을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이성을 잃었다.
눈앞에서 강시온이 납치당했으니,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눈앞의 채채연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 어떤 때보다 분노에 찬 눈동자였다.
채채연은 싱긋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어긋나지 맙시다?”
하지만 진재희는 그녀의 말에 대답해줄 생각이 없었다.
“돌려 줘.”
진재희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찢어졌고, 채채연은 피식 웃었다.
“강시온이 너님 거야? 왜 이렇게 발끈해.”
“두 번 말 안 한다.”
“아-, 시끄러. 시끄러. 사람 말을 왜 이렇게-.”
채채연의 목소리가 차마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은 또다시 두 동강이 났다.
하지만 앞서 그랬던 것처럼, 그건 그녀의 분신일 뿐이었다.
진재희가 자신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자, 채채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 무슨 원숭이도 아니고! 바나나만 보면 발정 난 것처럼 달려들어? 내가 말이야-.”
그런 말을 하는 와중에도, 진재희는 채채연을 베었다.
서-걱!
이제 채채연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너도 말로는 안 통하는 스타일이구나? X발년. 나돈데.”
타악-!
채채연은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네가 먼저 시작했다?”
그 순간.
이 공간을 이루고 있던 모든 대지 속에서 거대한 버섯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슈슈슈슈슛!
버섯들은 아스팔트도 뚫고 이곳 전장을 가득 메웠다.
전장에는 진재희와 채채연뿐만 아니라, 만경의 병사 그리고 메트로의 헌터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주위에 나타난 버섯들에 홀려 잠시 싸우기를 멈추었다.
채채연은 인상을 팍 구겼다.
“내가 만만하지. 그치-? 그럼 만만하지 않게 해 줄게.”
채채연이 마주 잡은 두 손을 뗀 순간.
푸슈우우…….
아티팩트 능력이 발동되었다.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버섯에서 보랏빛 포자들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몇몇 버섯은 마치 분수처럼 갓 위로 포자를 터트리기도 했다.
진재희는 그 포자들을 바라보다 순식간에 소매로 코와 입을 막았다.
‘독……?’
한 병사가 가만히 자리에 서 있다가, 그 보랏빛 포자를 들이마셨다.
그 순간, 병사는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칵!”
병사는 순식간에 늙어 가기 시작했다.
꽤 젊은 청년이었는데도, 주름이 잡히고 살이 처지더니 말라 비틀어 죽어 버렸다.
그 와중에도 헌터들은 멀쩡했다.
그들은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진재희는 포자를 피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포자는 서서히 전장에서 퍼져 나가고 있었다.
포자 속에 있던 채채연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X-년. 이제 도란도란 얘기 나눌 마음 들었어?! 누군 공격 못 해서 안 하는 줄 아나.”
채채연은 바닥에 침을 타악 뱉고는 강시온을 가둬놓은 포자를 향해 다가갔다.
“자-. 자. 우리 자기를 위한 선물이 자알~ 있나 볼까?”
어차피 진재희라는 저 여자는 이곳에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
여기 퍼진 포자는 한숨만 들이마셔도 반드시 죽게 되는 맹독이니까.
플레이어조차 채채연의 독에는 당해내질 못했다.
채채연은 강시온이 갇힌 버섯 기둥에 손을 살포시 대었다.
그 순간, 버섯 기둥이 결대로 갈라지더니 강시온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 얼마나 좋아할까? 내가 꿈에 그리던 형을 만나게 해 주었으니 말이야. 이제 나한테서 헤어 나오지 못 할 거야.”
채채연은 강시온의 뺨을 어루만졌다.
강시온의 얼굴에선, 희미하게 강준호의 얼굴이 보였다.
물론 채채연의 눈에는 강준호 쪽이 훨씬 더 멋있고, 키도 컸지만.
“준호는 오빠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했는데. 실제로 보니 별로……. 뭐, 어쨌든 사진에 보았던 강시온은 확실하니까.”
채채연은 다시 손을 거두며 버섯 기둥을 닫았다.
하지만 버섯 기둥이 완전히 닫히기 전.
푸아악-!
강시온은 갑자기 두 눈을 뜨며, 손을 뻗었다.
“?!”
“……!”
시온의 손은 채채연의 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시온은 서서히 버섯 기둥에서 빠져나와 그녀를 덮쳤다.
둘은 곧바로 뒤로 쓰러졌다.
꾸당!
강시온은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 여전히 목을 조르며 말했다.
“건방진 년이…….”
그때, 강시온 주위에 형성된 선들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선풍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붕- 붕- 붕-.
포자는 선이 일으키는 바람을 따라 사방으로 날아갔다.
채채연은 강시온에게 목을 잡혀 켁켁거렸다.
그런 채채연에게 강시온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어딜 손대.”
그 순간.
포자가 날아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늘에서 진재희가 낙하했다.
그리고 곧장 채채연의 이마에서 성검을 꽂아 넣었다.
채채연의 이마에 성검이 박히는 순간, 지면 역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투-쾅!
우르르릉!
이곳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기며, 모든 것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진재희는 강시온을 안아 들곤, 그 현장에서 빠져나와 날아올랐다.
둘은 흙먼지가 치솟은 현장을 내려다보았다.
채채연의 움직임은 없었다.
포자들도 강시온에 의해 모두 흩어졌다.
전장에 남은 건 거대한 싱크홀과 병사들의 말라비틀어진 시체뿐이었다.
강시온은 자신을 안아든 진재희에게 말했다.
“내려 줘.”
“응.”
강시온은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 허공에 부유했다.
그는 기침을 한두 번 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채채연의 공격 때문에 아군 전력에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독 공격은 방독면을 쓴 헌터들을 제외하고, 만경의 병사들에게만 피해를 입혔다.
시온이 애초에 외지인을 경계하지 않은 안일한 부분도 있었다.
물론 격동 속에서 외지인을 경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단 강시온은 동생 준호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그때,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채채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연신 신음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아……. 확실히 이건 좀 아프네. 겁나게. 콜록! 콜록!”
하지만 겨우 일어난 채채연을 진재희는 단숨에 제압해 다시 땅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강시온은 진재희를 따라 지상으로 내려와 채채연에게 물었다.
“준호가…… 뭐라고?”
그러자 진재희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던 채채연은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좀 말이 통하시네요. 네~? 켁켁! 아오, 동생이 기다리고 있다고요. 동생이. 강준호가. 하하. 아님, 뭐. 그쪽은 동생 따윈 안중에도 없었나?”
채채연의 같잖은 도발에 진재희는 손아귀에 힘을 더 주었다.
꾸우우우욱…….
채채연은 고통스러운 듯 숨을 턱 내뱉더니 다시 웃었다.
“켁켁! 아,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일단 손부터 놓고 얘기합시다.”
“이 상태로 말해.”
그때, 시온은 그들에게 다가가더니 진재희의 손목을 잡으며 말렸다.
“기다려. 지금 당장은 안 돼.”
포자 때문에 한동안 소란이 벌어진 뒤, 헌터들이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 뒤에는 재정비가 필요했다.
또다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고, 강시온은 구체를 한데 모아 채채연을 가두기 시작했다.
강시온은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명령했다.
“우선 대학교로 돌아가자. 병력을 너무 많이 잃었어.”
시온의 말에 진재희는 성검 두 자루를 불러내며 대답했다.
“내가 엄호할게. 먼저 병력들을 데리고 후퇴해.”
그녀는 두 자루의 성검을 쥐고선 바로 헌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촤아아악-!
뜨거운 물을 채채연에게 뿌렸다.
그녀는 작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이내 웃었다.
“시원하네. 아하하. 정신이 번쩍.”
채채연은 나무 위에 묶여 있었다.
손목에는 붉은 원석이 박힌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온몸에는 상처투성인 데다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강시온은 절대 동정하지 않았다.
이건 독가스로 만경의 병사들을 학살한 대가였다.
원래라면 곧바로 처형했어야 했지만, 강시온은 살려 두었다.
알아야만 하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채채연의 목을 잡아채 들어 올렸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 넌 어디에서 왔고. 동생은 또 무슨 소리지?”
“나한테 이러면 안 될 텐데…….”
채채연은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웃어 댔다.
그녀는 강시온을 야릇하게 바라보았다.
“난 준호 여자친구란 말이에요. 아무리 오빠라고 해도……. 준호가 가만히 있겠어요?”
“뭐?”
강시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그리고 뭐. 뭘 했다고오……. 그까짓 병사 몇 명 죽은 게 대순가……. 게다가 난 분명 처음에 대화로 하자고 했는데.”
“……넌 날 납치하려고 들었어.”
“보호한 거죠! 당신 보디가드가 못한……. 푸흐흐……. 일을 제가 대신해줬는데……. 아, 진짜 서운하다. 준호의 형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채채연의 말에 진재희는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채채연은 눈을 살며시 뜨며 말했다.
“오빠……. 준호가 엄청 애타게 찾았어요. 지난 5년간……. 어딜 그렇게 꽁꽁 숨어 있다가 나타나신 거예요?”
“준호는 어디에 있었는데.”
“준호는 항상 수원에 있었죠. 오빠 찾으러 간다고 했지만, 뭐. 결국에는 수원에 살게 되었고……. 아, 아. 쓰라려라.”
채채연은 자세가 불편한지 움직여댔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쇠사슬 소리가 요란했다.
채채연은 흐린 눈동자를 돌려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근데-. 보디가드가 좀 감정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생각이 없다고 해야 할까? 물론 시온 오빠를 바로 가둔 것은 내 잘못이긴 하겠지만……. 아니, 솔직히 난 만경 병사도 아니고. 가두든 말든 뭔 상관? 게다가 내가 뭔 목적이 있는지도 모르고 밑도 끝도 없이 들이대고 베어 대고……. 좀 물어보고 행동하세요! 보디가드 님.”
채채연의 눈동자가 강시온을 향했다.
“준호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그 질문은 이상했다.
준호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라니.
채채연이 강준호와 진재희를 비교하자, 가슴이 요동쳤던 건 오히려 강시온이었다.
진재희는 발끈해선 그녀에게 소리쳤다.
“입 닥쳐. 네가 뭘 안다고……!”
하지만 그 순간, 강시온은 진재희의 말을 끊어 버리곤 소리쳤다.
“너도!”
그가 소리치자, 진재희는 흠칫 놀랐다.
처음이었다.
시온이 재희에게 소리친 건.
그는 진재희를 돌아보며 말했다.
“……조금은 이성적일 필요가 있어. 언제나 매번 감정적으로 나서지 마.”
그가 다시 소리치자, 진재희는 어깨를 움츠렸다.
시온은 다시 고개를 돌려 채채연을 향했지만, 곁눈질로 재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 사이를 바라보던 채채연은 남몰래 웃었다.
강시온은 이제 다시 채채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수원과 직통으로 연락이 닿을 순 있겠지?”
“그런 게 어딨어요. 제가 직접 가야지.”
“울창한 숲을 직접 지나간다는 소리냐?”
“네. 네~ 아시다시피 내 능력이 포이즌이라 숲의 독에 대해선 면역이거든요. 그러니까~ 나 보내 줘요. 날 고문한 건 비밀로 해 줄 테니까. 네?”
“널 보내는 건 안 돼. 넌 내 부하들을 죽였고,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해.”
“준호가 분명 싫어할 텐데…….”
강시온의 손길이 조금씩 떨렸다.
그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한 진재희는 이를 알아 챘다.
강시온은 그 어떤 존재들 앞에서도 강한 남자였지만, 오직 동생 앞에서는 약해졌다.
강시온은 강준호을 배려하고 싶었다.
정말 채채연이 강준호의 연인일 수 있었으니까.
강시온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지난 리그에서 했었던 그 어떤 선택보다.
그리고 진재희 역시 숨죽여 강시온의 선택을 기다렸다.
이건 기로였다.
지금 이 순간, 강시온의 심정이 가장 중요했다.
강시온의 선택지는 좁혀졌다.
채채연이 아무리 부하라지만, 만경의 병사를 죽였기에 처벌을 내릴 것인가.
아님, 채채연을 풀어 주고 강준호를 만경에 데리고 오게 할 것인가.
솔직히 말해, 진재희는 강시온이 전자를 선택하길 간절히 소망했다.
국가는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다.
공무를 처리하는 데 감정이 개입되면 반드시 패망하고 만다.
채채연은 처벌받아 마땅한 존재였다.
그랬기에 진재희는 강시온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을 기대했다.
오랜 침묵 끝에 시온은 입을 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