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화. 서울의 지배자 (3)
최명준의 부름에, 김국종은 넌지시 말했다.
“명준이구나. 용케 살아 있었네.”
“누구 밑에서 길러진 개인데. 쉽게 죽겠습니까?”
최명준의 말에 김국종은 작게 웃었다.
“그래. 그랬었지. 널 빵에서 처음 보았을 때도. 어딜 내놔도 살아남을 놈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최명준이 침묵했다.
김국종은 턱을 괴며 이어 말했다.
“난 네가 바로 서울로 올라올 줄 알았다. 네가 있었더라면, 우리 조직도 메트로에 굴복하지 않았을 텐데.”
“짭새한테 잡혔습니다.”
“……그래. 고생했겠구나. 고생 많았겠어.”
호랑이같이 무서운 큰 형님도, 자신의 동생을 대할 때는 한없이 자상했다.
사실 최명준에게 김국종의 존재는 형님보다는 아버지에 가까웠다.
최명준은 어릴 적부터 도박에 빠진 어머니와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어머니와 최명준을 때려 댔다.
술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음주 운전자의 차에 치여 죽었고.
어머니는 도박판을 전전하다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거리에서 동네 양아치로 별 볼일 없이 살았다.
하지만 김국종은 그런 최명준에게 삶의 의미를 주입시킨 인물이었다.
김국종은 말했었다.
- 주먹은 약한 자에게 뻗는 것이 아닌, 너보다 강한 자에게 뻗는 것이다. 강인한 주먹은 너의 정신세계를 단련시킬 것이고, 네가 나아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줄 것이다.
갈취와 약탈의 조폭 시대는 끝이 났다.
김국종은 조폭들의 조직을 개편하여 운영했다.
전국의 조직폭력배 조직 중에서 김국종의 세력이 규모가 가장 컸고, 돈도 제일 많았다.
힘을 사용할 때는, 불합리한 것에 맞서 싸워야만 할 때다.
김국종의 조직은 조폭이 아니라 회사에 가까웠다.
그리고 최명준은 그런 김국종 밑에서 컸다.
그는 최명준이 가장 힘들 때, 유일하게 삶을 보듬어 준 사람이었다.
그러니 큰형님, 아버지로 모실 수밖에.
김국종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렇게 너와 대면하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
김국종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때, 최명준은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갔고, 김국종은 감았던 눈을 조용히 떴다.
하지만 최명준은 공격하려고 들지 않았다.
털썩-!
그는 김국종 앞에서 두 무릎을 꿇었다.
김국종은 말없이 그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
“…….”
최명준의 몸이 일정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소리쳤다.
“빌어먹을 정도로 신세 많이 지었습니다! 형님……!”
터엉-!
최명준은 이마로 바닥을 찍었다.
절을 하는 행위였지만, 자해행위에 가까웠다.
그의 이마가 찢어져 피가 터져 나왔다.
최명준은 여전히 바닥에 이마를 붙이곤 말했다.
“형님은 제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려주셨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도와주셨습니다. 큰형님은 제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큰형님이 없는 세계는 제겐 의미가 없습니다. 형님이야말로 제가 모셔야될 분이고, 아버지처럼 따라야만 하는 분이십니다.”
이어 최명준은 두 주먹을 말아쥐곤 소리쳤다.
“형님!!!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근정전에 울려 퍼졌다.
메아리가 칠 정도였다.
“…….”
최명준은 김국종 앞에서 더욱더 처절하게 소리쳤다.
“방법이……! 방법이 분명 있을 겁니다!!! 형님도 살고! 저희도 사는! 제가 죽고! 시온 형님과 그리고 형님, 두 분 모두 사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차라리……. 차라리!!!”
“…….”
최명준의 처절한 목소리에, 김국종은 짧은 숨을 내쉬었다.
“새로 모시게 된, 너의 두목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것 보니.”
“…….”
최명준은 김국종에게 표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여전히 엎드린 채 아랫입술이 피나도록 깨물었다.
최명준은 두려웠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사람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는 그 상황을.
김국종은 품에서 담뱃갑을 꺼내며 물었다.
“어떤 사람이냐.”
“…….”
“말해 봐라. 나도 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오랜만이니.”
칙-.
김국종은 어좌에 앉아, 담배를 물어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담배 연기를 한숨처럼 내뱉었다.
최명준은 울음을 끅끅 참아 대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건방진 꼬마였습니다. 겁 없이 설쳐 대는……. 망나니로 보였죠. 제 눈에는 한없이 철없어 보였고……. 처음에는 적당히 밑에서 간 좀 보다가, 죽이고 도망칠 생각이었습니다.”
“……후우.”
“하지만 그 사람한테서 형님과 같은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형님과 같이 독수리처럼 매서우며,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눈동자였습니다.”
“…….”
“그럼에도 제게는 큰형님 생각이 있었습니다. 경찰서를 나올 때까지만 해도요……! 하지만 그 사람은 왜인지, 무언가가 달랐습니다. 알 수 없는 압박감. 전 그 남자에게서 미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전. 그 형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 아래 두 형님을 모시게 된 겁니다.”
“강시온이랬나.”
“……예.”
“넌 어쩌고 싶으냐.”
김국종은 담배를 어좌에 비벼 껐다.
그의 물음에 최명준은 아무런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최명준은 김국종의 의견을 먼저 묻고 싶었다.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헤쳐 나갈지 말이다.
김국종은 어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엎드린 최명준에게 다가갔다.
그는 최명준 앞에 앉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다.”
“…….”
김국종이 꺼낸 첫마디는 최명준에게 충격적이었다.
모든 것을 알 것 같았던 김국종이 스스로도 모르겠다며, 자신을 내려놓았다.
하늘 같은 큰형님도, 결국 최명준과 마찬가지였다.
김국종은 고해 성사를 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읊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최명준은 깊은 분노에 빠져 있었다.
김국종은 말했다.
“조직을 잘 세우려고 했다. 우리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우리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어. 세상이 원망스럽고,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졌다. 지금은 간신히 목숨만 붙잡고, 교주의 뒷바라지나 하는 신세니. 큰 꿈을 품고 세상에 도전했지만,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구나. 죽음은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이젠 두렵다. 나도 네게 묻고 싶었다. 무얼 하면서 살면 좋을지. 너라면 정답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국종은 거친 손으로 최명준의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최명준이 꿈꿔오던 자상한 아버지 같은 따뜻한 손길이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늙은 이파리는 파릇파릇한 새싹을 위해 떨어져 나가야 한다는 것이 내 뜻이다.”
최명준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두 남자 사이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얼마간 침묵이 흘렀을까.
이윽고 근정전에는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탕……. 탕!
* * *
최명준은 볼에 묻은 피를 손으로 닦아 내며 근정전을 나왔다.
그는 영혼 없는 눈동자로 괴수 쪽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강북 세력이 키우던 괴수.
정예대원들이 괴수를 수차례 칼로 찔러 죽인 다음, 다시 복귀하고 있었다.
정예대원 한 명이 최명준에게 다가와 물었다.
“총성이 들렸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문제없어.”
“…….”
정예대원은 침묵하다 다시 말했다.
“괴수는 죽였습니다. 서울 강북 세력은 무너질 것입니다. 작전을 속행할까요?”
정예대원이 말하는 작전은, 사전에 강시온과 최명준이 나눴던 이야기였다.
정예대는 서울 북부로 잠입해 괴수를 죽이고, 아군 지역인 노원구로 도망쳐 강남으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서울 지역은 마포대교가 유일한 통로였지만, 경기도에는 한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곳은 슬레디만이 서식하고 있지 않으니.
그러니 이제 정예대는 임무를 완료했고, 강남을 통해 만경으로 합류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최명준은 깊은 분노에 빠져있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정예대원은 흠칫 놀라 몸을 떨 정도였다.
“…….”
최명준의 분노는 메트로 세력을 향해 있었다.
김국종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들.
지금껏 서울 북부에 있었던 놈들의 야만적인 횡포.
자신이 아끼던 흑룡파의 동생들이 어떻게 처참하게 죽었고, 김국종은 어떻게 교육되어 왔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들었다.
그리고 메트로 세력의 괴수가 어디 있는지도 파악했다.
놈들은 마포구 지하에 괴수를 숨겨 놓고 있었다.
최명준은 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너흰 예정대로 노원구를 통해 만경으로 돌아가라. 지금쯤 시온 형님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계실 거다. 가서 목숨 바쳐 만경을 사수하라.”
최명준의 명령은 뭔가가 이상했다.
정예대원은 다시 물었다.
“대장님은. 어쩌실 겁니까?”
부하의 물음에 최명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온통 폐허뿐이었다.
하지만 최명준은 이들을 보며 말했다.
“풍경이 멋있네…….”
“예?”
부하는 최명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구겨질 때로 구겨져 있었다.
깊은 분노가 느껴졌다.
“……난 여기 좀 더 남아야겠다.”
최명준은 그 말만을 남기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가 향한 곳은 마포구였다.
* * *
나는 두렵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끝이 무엇이 되었건, 난 내가 만들어낸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다.
언젠가 아주 어렸을 적에 교회에 간 적이 있었다.
전도사는 어린 나와 친구들을 모아두고 말했었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지으며 살아 가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나와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내가 불신자인 이유는, 단순히 보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만약 신이 정말 있다면 왜 세상에 악(惡)한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일까, 라는 내면이 던지는 질문 때문이었다.
신은 인간을 위해 대신 죽어 주기까지 했는데.
그렇게 인간을 정말 사랑하는 신이라면.
왜 악을 그대로 내버려 둘까.
내가 내린 답은 하나였다.
신은 존재하겠지만.
신은 인간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삶이라는 기회를 주고, 죽음을 통해 평가하는 것이다.
물론 그 평가의 기준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에 대해선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선한 행위는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좋은 것이지, 결코 신을 위한 행동이 아니다.
고차원의 존재가 되려면, 선악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난 그것이 ‘고독을 이겨 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1라운드, 흑 팀의 왕이었던 권경수를 떠올렸다.
그는 내가 최후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난 그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최후라는 건, 결국 혼자 남게 되는 것이다.
신은 고독한 자다.
아무것도 없는 우주 속에서, 신은 홀로 존재해 왔다.
그 어두컴컴한 공허에서 신은 무엇을 떠올렸을까?
신이라고 하는 존재는, 어쩌면 고독하기 때문에 자신을 본떠 인간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지긋지긋한 외로움에 인간을 만들어 낸 대가는 컸다.
인간은 탑을 쌓아 신에게 도전하려고 들었고, 더불어 살지 못하고 서로에게 총과 칼을 들이밀었으며, 신을 부정하고 모독하기에 이르렀다.
신은 외로움을 이겨 낼 수 있는 자다.
그랬기에 이 세계의 신은, 어쩌면 이 차원의 신은 외로움을 이겨 내지 못하고 신의 자리에서 내려와 인간 세계에 발을 들인 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난 뭘까.
빛남에서 만난 절대자의 말로는, 나는 고차원으로 이동하기 위한 자신들의 퍼즐 조각이라고 했다.
그들은 왜 고차원에 가고자 하며, 어째서 날 자신들의 퍼즐 조각 안으로 끌어들이는지는 모르겠다.
처음에는 동생만을 찾는 것이 목표였으나 이젠 모르겠다.
그저 눈앞의 적을 죽이며, 앞으로 전진할 뿐.
난 고독하지도, 풍족하지도 않다.
내가 행하고 있는 모든 일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이 리그를 내 손으로 끝내겠다는 생각뿐이다.
그 목표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돌격해 오는 헌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난 소리쳤다.
아니, 포효했다.
“으아아아-!”
* * *
휘릭-! 촤좌악악!
강시온은 선을 휘둘러 전방에서 달려오는 헌터의 몸을 갈기갈기 찢었다.
“이 개X끼들!!!”
“다 죽여 버려!!”
헌터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고, 시온은 멈추지 않고 구체를 쏘았다.
이제 구체는 총알만큼은 아니더라도, 적들의 방탄복을 뚫고 죽여버릴 정도로 파괴력이 높았다.
강시온의 곁에 상시 날아다니는 구체들은, 그의 명령 하나로 원하는 곳까지 날아갔다.
슉- 슉- 슉-!
구체와 선이 전장에 넓게 퍼져 헌터들을 집어삼켰다.
시온은 몇 시간 동안의 전투가 이어진 탓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적의 잔존 병력을 모두 소탕한 뒤, 만경의 메트로 본대를 개박살 내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그때, 웬 화살이 강시온에게 날아들었다.
이를 확인한 진재희는 날아드는 화살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 화살을 성검으로 튕 다.
팅-!
그녀는 언제나 강시온을 지켜 주었다.
언제나 그의 곁에서.
재희는 시온을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아?”
“문제없어.”
“……진짜 강해졌네.”
“지금 할 소린 아닌 것 같은데.”
시온은 반대편에 달려드는 두두를 발견하곤, 곧장 선들의 끝을 꺾어 갈고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두두의 살집에 갈고리를 걸고 아래로 찍어눌렀다.
쿵!
……쿠그그그그!
두두는 그대로 머리가 앞으로 처박혀 쓰러졌다.
마무리는 진재희가 성검을 휘둘러, 두두의 목을 베어 냈다.
진재희는 강시온에게 다가와 말했다.
“얼마 안 남았어. 만경까지.”
“그래.”
만경까지 가는 건 얼마 안 남았다.
북왕의 괴수가 쓰러졌다는 소식은, 관리자의 시스템으로 알고 있었고. 이제 시온에게 남은 건 메트로의 본대를 괴멸시키는 것뿐이었다.
두 사람은 같이 뛰었다.
전방에서 달려드는 헌터들을 향해.
하지만 그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강시온이 밟고 있는 지면에서 어떤 물체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진재희는 그걸 인지했지만, 반응하지 못했다.
그것은 버섯이었다.
그와 함께 웬 여자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퍼졌다.
“와-. 진짜 강시온이네? 설마 살아 있을 줄이야!”
강시온은 여자가 소환한 거대 버섯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여자는 강시온을 납치하고 있었다.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지고 가면 준호가 좋아하겠지?”
그녀는 강준호의 부하, 채채연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