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화. 동작구 전 (3)
선배는 뒤따라오던, 이호승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부싼! 정신 차려. 벌써 힘들어하면 어떡해?”
선배의 호통에 이호승은 땀을 뻘뻘 흘려 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 죄송합니다. 빠르게 뒤따라가겠습니다.”
이호승은 후다닥 달려가 선배 옆에서 행군했다.
선배는 이호승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힘내. 저 도로만 지나면 서울대학교에 도착한다니까.”
“……예. 네. 감사……. 감사합니다.”
이호승은 마른 입가를 손등으로 쓸며 옆을 돌아보았다.
보병 행렬의 옆으로 짐을 가득 짊어진 오우거가 성큼성큼 지나갔다.
오우거가 한 발씩 앞으로 내밀 때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울렸다.
쿵…… 쿵…… 쿵…….
그 거대한 육체를 보고 있으면 경이로웠다.
이호승은 오우거를 바라보다 페트병을 열어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선배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웃으며 말했다.
“영웅님의 능력자 부대가 성공적으로 서울대학교를 점령한 모양이야. 이 상태면 동작까지도 어렵지 않게 점령할 수 있겠어.”
“……아. 능력자 부대.”
이호승은 그곳에 진재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긴 진재희다.
이호승은 둥지에서 진재희의 강력함을 보고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는 반드시 살아남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다.
자신은 나약하고 볼품없는 창 한 자루만 쥐고 있다.
그런 이호승을 선배는 항상 챙겨주었다.
“힘내! 부싼. 살아남아야, 또 웃을 수 있는 게 아니겠어? 이번 전쟁은 영웅도 함께하시니까. 반드시 승리할 것이 뻔해. 그러니까 열심히 따라오라고.”
“영웅…… 네. 저도 믿어요.”
진재희가 신뢰하는 남자다.
이호승이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079부대는 서울대학교 캠퍼스 내부로 들어갔다.
대학교를 상징하는 정문 모형은 완전히 망가져, 한 편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대학교 내부로 들어와서도 주변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만경에서 출발한 후 장장 3시간의 행군 끝에, 그들은 관악구 서울대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철이면 30분 안에 올 거리였지만 그들은 3시간이나 걸렸다.
전쟁에 있어서 행군이 얼마나 힘든지, 이번 경험을 통해 이호승은 뼈저리게 느꼈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정예대다! 모두 좌우로 밀착해!”
누군가의 정체는 079부대 대장이었고, 그는 손을 휘휘 저어 대며 인원들을 통제했다.
이호승은 땀을 닦아 내며 선배를 따라 도로 끝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호승이 바라본 정예대의 모습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
“…….”
“…….”
하나같이 맹수와 같은 눈동자를 하고선, 일반 보병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장 상태를 하고 있었다.
같은 아군 전력이지만, 압도적인 풍채를 가진 그들 앞에 서면 주눅 들 정도였다.
과연 정예대였다.
정예대는 새로 부임한 최명준 대장을 중심으로 지옥 훈련을 버텨 낸 사람들이었다.
이호승은 정예대 무리 중, 가장 앞 열에서 걸어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일전에 보았던 최명준이었다.
최명준의 등장에, 079부대는 술렁였다.
“……최, 최명준이다.”
“영웅의 오른팔이라지?”
“대단해.”
“너무 노려보지 마. 정예대 애들은 포악하다고 하더군.”
“포악해야지. 포악해야 정예대지. 얼마나 믿음직스러운 얼굴들이냐?”
주위에서 뭐라고 떠들든, 최명준은 오로지 전방만을 바라보며 나아갔다. 그를 뒤따르던 정예대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최명준은 생각했다.
최현지의 강동 방어.
진재희의 동작 점령.
하윤하와 정현수의 만경 방어.
자신은 강시온의 특별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부하들과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최명준은 그들 중 단언컨대 제일 큰 공을 형님께 바치고 싶어 했다.
큰 공을 위해 최명준은 자신의 방식대로, 정예대원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지금 정예대원들은 아티팩트 능력자와 비교해도 될 정도로 강력한 전투력을 가졌다.
그런 정예대원들의 외관을 본 일반 보병들은 벌벌 떨 수밖에.
079부대 대장조차 최명준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호승은 최명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이……. 영웅의 오른팔…….’
그가 패배하는 모습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 *
오우거는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거대한 생명체 벽을 만들었다.
그 안으로 만경의 병사들이 속속 들어오면서 저마다 주둔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곳은 원래 메트로 세력의 전진 기지였기에, 별다른 주둔지 건설 없이도 전투 준비 환경이 원활히 조성되었다.
서울대학교는 관악의 중심부였다.
서울대학교를 점령한 순간, 관악구는 강시온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강시온은 우선 관악구에 거주하는 생존자를 찾았다.
그들에게 정보를 얻기 위함이기도 했고, 회유하여 세력으로 데려가고자 하기도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었다.
백골과 썩어 문드러진 몸뚱이뿐.
기본적으로 메트로 조직은 서울 북부와 서부 지하에 몰아 살았다.
게다가 최현지의 정보에 따르면, 메트로 세력의 칙령 중에는 ‘지상으로 나간 자는 심판 받을지어다.’라는 것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웬만한 인간이 아니라면 지상으로 나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헌터들이 방독면을 쓰는 이유도 같았다.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이 오염되었다고 생각하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오염 입자조차 막기 위해 방독면을 착용하는 것이었다.
물론 시온은 그런 것들이 부질없어 보였다.
‘다 바보 같은 짓거리들이지만.’
강시온은 곁에 있던 황민재에게 명령을 내렸다.
“관악에 있는 모든 지하철을 오우거를 동원해 모조리 파괴해.”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황민재는 영웅의 명령을 바로 수행했다.
서울은 지하철의 도시라고 해도 될 만큼, 거미줄처럼 많은 노선이 있었다.
그 모든 노선이 저들의 이동 수단으로 쓰일 바에는 모조리 파괴해 버리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오우거를 이용한다면 아주 간단한 일이다.
마치 빙판길에 얼어붙은 얼음을 한발로 깨부수는 것처럼. 오우거는 발을 이용하여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무너뜨렸다.
지하철 공간을 메우는 작업은 점령지역에서 하는 가장 첫 번째 일이 되었다.
강시온의 군대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속전속결로 동작구를 점령하여 여의도를 압박하기 위해.
* * *
며칠이 지나고, 또다시 강시온의 능력자 부대가 동작구를 점령하기 위해 선제 타격했다.
이번 동작 점령은 관악 점령 때와는 달랐다.
나름대로 적의 방어세력이 주둔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터들은 건물을 요새로 삼아, 총이나 활을 쏘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총알과 화살 앞에서, 기껏해야 방패를 든 만경의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나갔다.
적지 않은 희생이었지만, 헌터들이 아무리 견고한 방어 진지를 구축한다고 해도, 오우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쿠아아아아아아-!!!
강시온의 돌격용 오우거가 엄청난 괴성을 내지르며, 총알을 쏘아 대는 건물로 돌격했다.
헌터들은 달려드는 오우거의 눈을 조준 사격했다.
몰아치는 총알이 매서웠다.
하지만 오우거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동자만을 손으로 막으며 돌격했다.
이윽고 오우거가 건물에 근접했다.
헌터들은 오우거가 겨우 총알 따위로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사실 깨닫고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늦었다.
콰앙-! 우르르릉!!!
천둥 번개가 치듯, 거대한 굉음이 도심을 울렸다.
오우거가 건물에 몸을 던지자,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은 마치 레고처럼 쉽게 무너져 내렸다.
헌터들은 건물의 잔해에 깔려 죽었고, 겨우겨우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보병의 칼과 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투는 거리에서만 이루어지진 않았다.
건물 내부.
그곳에는 더욱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헌터는 총만을 주무기로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강시온의 예상대로, 헌터들은 부대 단위로 소수의 총만을 운용하고 있었고, 대부분은 칼과 창으로 무장한 일반 보병 단체였다.
헌터는 건물 안쪽에서 매복하여, 만경의 본대를 일망타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계획은 최명준의 정예대 앞에서 모두 무너졌다.
어두컴컴한 복도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투다다다당-!!
헌터의 조준은 엉뚱한 벽면을 향해있었고, 그는 재장전을 하기 위해 탄창을 떨어뜨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매복해 있던 정예대원 한 명이 복도 벽을 발판 삼아 위로 튀어 올랐다.
타앗-!
날다람쥐처럼 튀어 오른 정예대원을 바라보는, 방독면 속 헌터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정예대원들은 파쿠르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술은 이 같은 건물 내부에서 큰 효과를 발휘했다.
하늘에 떠오른 정예대원의 회칼이 헌터의 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휘릭-. 푸욱! 촤르륵-.
회칼은 정확히 헌터의 목에 찔러 들어갔고, 헌터는 방독면 속에서 피를 뿜어냈다.
“푸아악-!”
정예대원은 확실히 마무리하기 위해 회칼을 찔러 넣은 채로 십자 모양으로 돌렸다.
적이 미동하지 않자, 정예대원은 다시 다른 사냥감을 물색했다.
고개를 쳐든 정예대원의 눈앞에 있었던 건, 무기를 쥔 수십 명의 헌터들이었다.
자신의 동료가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어 가는 모습을 본 헌터들은 뒷걸음질 쳤다.
뒷걸음질 치는 헌터들을 바라보며 정예대원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놈들은 총만 없으면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목에 꽂힌 회칼을 빼내며 정예대원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뒤로 수많은 정예대가 따라붙었다.
두 집단은 복도에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한 치의 말도 없이, 서로를 노려볼 뿐이지만 집단 간의 관계는 분명했다.
정예대는 잡아먹는 자였고, 헌터는 잡아먹히는 자였다.
그 뒤로 일어난 일방적인 살육의 결과는, 좁은 복도에 피가 자작하게 차오를 정도였다.
* * *
승전보. 승전보. 승전보.
하루에도 몇 번씩, 시온의 귀에 승전보가 들렸다.
처음 몇 번은 주위에 있던 지휘관들도 기뻐했지만, 며칠이 지난 뒤에는 승리가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관악 점령에는 하루가 걸리지 않았고 동작 점령에는 일주일째 공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적의 세력을 괴멸시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강시온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을 정도로 오우거와 정예대의 활약이 굉장했다.
보병 단위 전투 부대에서는 적의 총알 세례에 버티지 못하고 후퇴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오우거와 정예대는 달랐다.
연전연승.
그들이 출격하는 족족 승리를 거머쥐었다.
강시온은 지도를 살피다 황민재에게 물었다.
“송파 쪽은 어때?”
황민재는 강시온의 물음에 곧장 대답했다.
“명령대로 섣불리 공격하지 않고, 지역 방어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강시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놈들은 송파 쪽에서도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오우거 20마리와 최현지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강남의 동왕도 작전을 전달받고 협력하는 중이다.
정복전은 순차대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적의 본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강시온은 필시 그들이 만경 본진을 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그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수가 있을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이 방어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남은 건 만경의 괴수를 처리하는 것일 뿐이니.
‘난 하던 대로 하면 돼. 의심하지 말자.’
의심은 의심을 낳고, 결국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신이 되어 버리고 만다.
동작 점령이 이제 코앞인데, 만경 최고 지도자가 스스로 위축될 순 없는 노릇이다.
강시온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남아 있는 지휘관들에게 명령했다.
“우린 예정대로 저들이 전열을 정비하기 전, 동작구 점령에 박차를 가한다. 서둘러.”
지휘관들은 그의 명령에 소리쳐 대답하며 막사를 나섰다.
온 도시가 총성과 비명뿐이었다.
또다시 며칠이 지난 뒤에는 동작구는 강시온의 것이었다.
전쟁 발발 2주일 만에, 만경은 만경만 한 영토를 획득하게 되었다.
* * *
진재희는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둑에 쌓인 헌터들의 시체를 제외하면, 한강은 여태껏 고운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이 한강이 어째서인지 신성하게 느껴졌다.
그때, 반대편 강물 쪽에서 거대한 파동이 일었다.
한강 다리를 모조리 부숴 버린 주범이 강 밑에서 우글거리고 있었다.
한강 물을 마실 순 있겠지만, 한강을 건널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새빨간 비늘이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진재희는 성검을 불러 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