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0화. 동작구 전 (2)
관악구.
이곳은 버려진 땅이었다.
메트로 소속의 영토지만 그들이 지상으로 나오지 않아 도시는 황폐화되어 있었다.
시체뿐이던 관악구에 또다시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총성 그리고 비명이었다.
방탄모와 방독면을 쓰고, 소총과 활로 무장한 헌터 한 명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그는 섬광들을 눈으로 겨우 쫓으며 중얼거렸다.
“어, 어디야……?”
“조 중사님!!!”
누군가 조 중사를 불렀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디냐고……. 어딘데……?”
“조 중사님! 정신 차리세요!!!”
“X발. 보이지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조 중사는 소총을 놓쳤다.
탈그락-!
소총이 시멘트 바닥과 부딪쳐 내는 소리가 요란했다.
조 중사는 머리를 감쌌다.
“보이지가 않는데, 어떻게 쏴……. 보이지가 않는데……! 도, 도망쳐야 돼. 도망쳐!!!”
조 중사는 비명을 꽥 내질렀지만, 그가 뒤로 한 보 물러난 순간.
서- 걱!
하늘에서 날아든 성검이 그의 목을 베었다.
옥상에 모여 있던 헌터들은 깜짝 놀라 성검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하지만 성검만 날아왔을 뿐, 검을 휘두른 실체는 없었다.
헌터들은 성검에서 총구를 돌려 허공을 겨누었다.
적은 분명 허공 어딘가에 있을 것이기에.
하지만 그건 헌터들의 착각이었다.
성검의 손잡이에 빛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손과 팔꿈치 어깨와 가슴, 얼굴이 드러났다.
헌터들은 깜짝 놀라 다시 총구를 돌려 그녀를 쏘려고 했지만.
휘릭- 서걱!
그녀가 휘두른 성검에 모두가 썰려 나갔다.
그녀의 공격에도 살아남은 소수의 헌터들이 총을 쏘아 댔다.
“주, 죽어!!!”
투다다다탕!!!
진재희는 옆으로 굴러 총알을 피한 뒤, 자신에게 총알을 난사하는 헌터를 향해 성검을 던졌다.
성검은 헌터의 방독면을 그대로 꿰뚫고 뒤에 있던 외벽에 꽂혔다.
헌터는 벽에 꽂힌 고깃덩이처럼 데롱데롱 매달렸다. 진재희는 순식간에 다가가 그 검을 다시 빼내곤 옆에 있던 헌터도 베었다.
“히, 히익-! 사, 살려줘!”
“괴물이야!”
헌터는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진재희는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 한 명까지 확실하게 목을 베었다.
서걱-!
도망가던 헌터의 목이 베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
도륙된 시체가 널브러진 옥상에서 진재희는 고르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난간 넘어 서울대학교의 전경을 살폈다.
‘이상해.’
그 어느 곳에도, 어떤 곳에도 적의 아티팩트 능력자가 없었다.
저들은 반드시 동작을 사수하기 위해 관악에 방어대를 배치할 줄 알았는데. 틀렸다.
아티팩트 능력자는 이곳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헌터의 무장 상태도 고르지 못했다.
총을 쥐고 있는 건 소수일 뿐이고, 그마저도 탄알이 많지 않았다.
‘유도하는 건가. 아님.’
진재희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구체가 그녀의 시야에서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먼 하늘에서 강시온이 다가왔다.
그는 구체를 이용해 부유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주 작은 구체들을 발바닥과 등에 다닥다닥 붙여 놓으면, 그도 진재희처럼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물론 진재희만큼 빠르진 않았지만.
이 방법은 펜션에 갇혀 있을 때 그가 떠올린 것이라고 했다.
터억-.
강시온은 시체가 가득한 옥상에 내려와선 그녀를 바라보았다.
“전부 처리했어?”
“응. 근데 너무 이상해. 아티팩트 능력자는커녕, 방어대조차 없는 게. 저들도 분명 우리가 동작으로 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혹시 함정이 아닐까?”
“아니. 달라.”
그때, 반대편 건물 옥상에서 헌터들이 강시온과 진재희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튕튕튕-!
총알들이 난간에 부딪혀 사방으로 퍼졌다.
강시온은 곧장 자세를 낮추고 손바닥을 펼쳐, 그들에게 구체를 날려 보냈다.
구체는 단번에 날아가 적들을 완전히 분쇄해 버렸다.
헌터들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곤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
아래에 있던 만경의 플레이어들도 속속 대학교 안으로 들어왔다.
헌터들은 플레이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행여 플레이어가 헌터들의 총알에 맞는다고 해도, 치명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회복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시온의 부하들은 서울대학교를 점령하는 데 사력을 다했다.
진재희가 선두에서 전투의 포문을 열고, 후방으로 뒤따라온 강시온이 부하들과 함께 점령전을 시작했다.
서울대학교에 배치된 헌터들의 수는 적었고, 대학교를 점령하는 데에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강시온은 난간을 잡곤 서울대학교 전경을 둘러보며 물었다.
“어디까지 말했지?”
“함정이 아닐 거라고 말했어.”
“아, 그래. 함정보단, 자신 있다는 것이겠지.”
“자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아티팩트 능력자들을 사전에 투입시켜 일대를 모두 관찰했어. 매복 병력도 없고, 조금의 몬스터만 있을 뿐이야. 이곳이 분명 놈들의 전진 기지인 건 맞지만, 지금은 버려 두고 어디론가 갔겠지. 우리 측 척후병에 따르자면 동작에도 적들의 방어 진지는 구축되어 있지 않다고 했어.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서초와 금천 부근에 저들이 매복 병력을 숨겨 놓아 만경을 급습하는 것이겠지.”
강시온의 말에, 진재희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놈들이 만경을 노린다면, 회군해서 지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녀의 물음에 강시온은 생각에 잠겼다. 대학 캠퍼스 여기저기서 플레이어들이 강시온의 명령에 따라 소탕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을 보며 강시온이 입을 열었다.
“지난 5년간 우린 확인했어.”
“…….”
“하윤하가 지켜 낼 거야. 게다가 정현수도 있어. 너도 알겠지만, 정현수는 현재 최현지보다 더 강하다고 평가받고 있어.”
게다가 동왕 세력의 자산과, 담배와 술로 벌어들인 지금까지의 비축분은 그들이 수성(守城)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쟁의 핵심은 보급이고, 만경은 물자가 가장 풍부한 보급처였다.
강시온은 안일한 생각으로 방어군을 주둔시키지 않았다.
현재 가장 강력한 주둔군을 구성해, 철저하게 만경을 지키도록 명령했다.
이제 강시온과 진재희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창이 되는 것이다.
적들의 요추(要樞)를 끊어 버릴 창.
강시온은 진재희를 돌아보며 말을 맺었다.
“강동의 최현지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고, 본대의 오우거를 전진시켜. 우린 이대로 관악을 점령한다.”
“……알겠어.”
진재희는 반박하지 않고, 곧장 하늘을 향해 성검을 쏘았다.
세 개의 성검은 창공을 가르다 멈추고는 빛을 내뿜었다.
성검이 내뿜는 섬광은 먼 곳에서도 보일 만큼 밝았다.
새벽녘의 하늘을 배경 삼아, 진재희는 성검을 빠르게 회전시켜 하늘에 도형을 그렸다.
* * *
서울 상공에 세 개의 삼각형이 그려졌다.
그 도형은 만경에 있던 하윤하에게도 아주 잘 보였다.
‘삼각형 세 개. 주둔군 현재 위치 사수. 본대 진격 개시.’
사전에 정해 놓았던 사인이었다.
물론 하늘에 그려 놓은 만큼 적들이 알아차릴 수 있으니, 하루 주기로 사인의 의미는 바뀐다.
하윤하는 뒤돌아 정현수를 바라보았다.
정현수는 자동차 성벽 끝자락에 앉아,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하윤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
“……넌 안 무섭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하윤하는 성벽 끝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성벽 바깥에 집결한 오우거를 바라보았다.
장관이었다.
성벽을 따라 오우거가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고, 만경의 보병 부대도 정렬해 함께였다.
보병 1만, 오우거 300마리.
이는 만경 역사상 최대 규모의 병력 집결이었다.
보병들의 대장들은 하윤하만을 바라보며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현수는 그녀 옆에 나란히 서서 물었다.
“전쟁 말이야. 동안과의 전쟁에서도 넌 꽤 트라우마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윤하는 과거 전쟁에서 동안의 병사들에게 붙잡혀 감금되어 있었다.
당시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기에 그녀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전쟁을 피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난 5년간의 격동 속에서 만경은 싸움을 회피했다.
하지만 이젠 싸워야만 했다.
하윤하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정현수에게 물었다.
“넌?”
그녀의 물음에 정현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나야 뭐……. 워낙에 용맹해서 말이지. 전장을 휩쓸고 다니기도 했고, 이제 와서 전투가 두렵다거나 그러진…….”
“거짓말.”
하윤하의 말에, 정현수는 입을 다물었다.
정현수는 하윤하를 바라보았다.
험악한 인상.
결의에 찬 눈동자.
휘날리는 머리카락.
하윤하는 정현수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거짓말.”
“……너.”
“너도 무섭겠지. 몇 년간 적의 중심부에서 싸우면서 잠도 편하게 잔 적 없을 테고. 적을 죽이면서 느끼는 죄책감. 동료가 죽으면서 느끼는 좌절감. 잘 알고 있어. 네가 돌아와, 네 손을 잡았을 때 기억은 공유되었으니까.”
말을 이을수록 하윤하의 목소리는 서글퍼졌다.
정현수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처음 악수를 했을 때, 그녀는 붉은 원석을 차고 있지 않았다.
정현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능력은 타인의 기억을 보는 것.
그러니 하윤하도 알고 있었다.
정현수가 그 어둡고 두려운 전쟁에서 몇 년이나 계속해서 싸울 때.
매일 밤 동료들의 시체 곁에서 잠에 들기 전 남몰래 눈물을 흘리던 그를 보았다.
“두려울 순 있어. 그건 당연하니까. 하지만 검을 빼야 할 때, 빼내지 못한다면. 그건 멍청할 뿐이야.”
그때, 하윤하는 허리춤에 차 있던 검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터억-.
하윤하의 목소리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단단한 바위처럼 힘이 있었고 용맹한 호랑이처럼 위엄 있었다.
“두려움을 이겨 내면 그건 용기가 돼. 네가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 끝에서 정현수는 용기를 얻었다.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용기를 얻었다.
아버지를 잃기 싫어서.
동료를 잃기 싫어서.
자신이 더 굳게 다짐하고 강해졌다.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결국 용기였다.
하윤하는 정현수와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그녀는 힘을 주어 황제의 검을 뽑았다.
검날이 천천히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검날에 비친 빛이 반짝였다.
천천히 검을 빼내던 하윤하는 마지막엔 힘 있게 검을 완전히 뽑아 냈다.
스응-!
황금 장식과 더불어 아름다운 검날이 빛나고 있었다.
정현수는 하윤하와 같은 자리에 서선, 병사들을 내려다보았다.
집결한 병사들은 검을 뽑아 든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5년이다.
영웅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시간만 5년.
영웅이 돌아왔기에, 만경은 완성되었다.
영웅과 함께라면, 그 어떤 것도 두려움이 없다.
이젠 적을 무찌를 용기뿐이다.
처억.
하윤하는 그들에게 검날을 겨누었다.
사지로 내몰리는 자들의 감정은, 두려움보단 고양감이다.
번데기는 혹독한 겨울을 버텨 내고, 봄이 다가오면 껍질을 깨 나비가 되어 자유로운 날갯짓을 한다.
그들은 겨울을 이겨 냈다.
오랫동안 웅크려 살아왔다.
전쟁을 피하며, 영웅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다시 영웅이 우리를 이 시련에서 구해 주실 것이다.
그 믿음 하나만으로 버텨 왔다.
그리고 이젠 날개를 펼칠 때였다.
황제의 검날만을 바라보는 병사들을 향해 그녀는 명령했다.
“진격하라.”
황제의 명령 뒤로 종이 울렸다.
이에 앉아 있던 오우거가 고개를 쳐들며 일어났다.
오우거는 전진했다. 그 뒤로 병사들이 따랐다.
천지가 뒤흔들렸다.
그들은 서울을 짓밟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롯데 타워 정상.
그곳에는 서울을 배경으로 삼은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품에 작은 용 한 마리를 품고 있었다.
그는 용을 오른손으로 쓰다듬었다.
용은 그의 손길이 느껴지자, 몸을 푸르르 떨었다.
남자는 낮은 어조로 말했다.
“포니.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아.”
남자의 눈동자는 먼 도시에 향해 있었다.
뭔가가 지평선 가득 일렬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포니. 무슨 일일까. 또 군인 아저씨들이 온 걸까?”
“푸르르.”
용은 남자의 말에는 관심이 없는 듯, 더욱더 남자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군인 아저씨들은 나쁜 아저씨들이잖아. 포니를 해치려는 존재들이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롯데 타워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빌딩이었다.
남자는 1라운드를 롯데 타워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롯데 타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남자의 아티팩트는 포식자.
잡아먹은 사람 인원수에 따라 목숨을 얻고, 그 사람의 힘을 얻게 된다.
그러니 그는 혼자였지만. 동시에 3만 명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권종현.
현재 강시온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권종현은 포니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걱정마. 포니. 내가 널 지킬 테니. 그 누구도 널 해칠 수 없어. 그 누구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