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8화. 재앙을 키우다 (3)
정현수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아주 상세히 강시온에게 보고했다.
둘의 대화는 마치 오랜만에 마주한 형과 동생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웃기도 하고, 흥분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또 감정을 누그러뜨리며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많은 대신이 보고 있었지만, 강시온은 개의치 않았다.
정현수는 지금껏 큰일을 해 주었다.
환영받아야 할 존재가,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강시온은 잘 알고 있었다.
“이상. 보고는 여기까지입니다.”
“굉장한 일을 겪었구나. 꽤 힘들었겠어.”
“아니-. 아닙니다. 별일 아니었어요. 하하하!”
정현수는 뒷머리를 손으로 받치며 호탕하게 웃어 댔다.
그때, 강시온 옆에 서 있던 하윤하는 그의 호탕한 웃음이 조금 예의에 어긋나 보여 주의를 주었다.
“정현수 대장. 영웅 앞이에요. 끝까지 예를 갖추세요.”
“응? 아. 뭐야. 너도 있었냐? 오랜만이다?”
“……정현수 대장. 당신.”
“괜찮아. 오늘은 현수도 돌아왔으니. 오랜만에 연회를 열자.”
강시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모여 있던 대신들은 일제히 그를 올려보았다.
그는 말했다.
“괴수의 몸집이 더 커지고, 위기상황이지만, 정현수 대장은 꿋꿋하게 만경을 지키기 위해 타지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런 그를 우리는 환대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과 내일은 최소 병력과 노동 인원만 제외하고 쉬도록 해.”
강시온의 말에 대신들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지만, 그는 모조리 묵살했다.
시온이 대신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지난 한 달간.
괴수는 축구장도 부족할 만큼 몸이 커졌고, 하루 먹어 치우는 식량만 600톤에 가까웠다.
이로 인해 오우거 부대를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많은 비용이 들고 있었다.
문제는 놈의 성장세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
2.5라운드가 한 달 정도 진행되니, 이제 얼추 이번 라운드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건 폭탄 돌리기다.
괴수는 세력의 식량을 모조리 먹어 치우기 전까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비용과 식량만 든다면, 큰 재앙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세력의 모든 것이 괴수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이었다.
괴수를 지키기 위해 경비 병력을 두 배에서 세 배로 증가시켰다.
또한 괴수의 음식을 조달하기 위해 수송병력도 대거 투입되었다.
괴수를 간병하는 인원만 해도 100명이 넘었다.
일대의 모든 도로를 통제하는 것부터, 그 와중에 노동자들은 주에 2회 이상씩 파견 훈련도 나가기도 했다.
전쟁 준비. 괴수. 노동 인력까지.
만경의 시민들은 그야말로 과부화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정현수가 왔으니, 강시온은 하루 이틀 정도는 그들에게 휴식을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과한 노동 때문에 시온의 지지율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기에, 한 번쯤 바로잡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들에겐 마지막 휴식이 될 수도 있어.’
지금껏 만경의 시민들은 전쟁 준비를 해 왔다.
이는 전쟁이 임박했다는 것이고, 스파이로 파견된 최현지로부터의 들려오는 첩보도 심상치가 않았다.
메트로 세력의 도발이 연이어 터지고 있었다.
* * *
나는 오랜만의 휴일에 펜션에서 나와 정자에 앉았다.
이곳은 과거 이석진이 날 가두었던 수리산 정상의 펜션으로, 지금은 최고 간부들의 연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정현수는 가지고 온 소총을 쥐고, 깡통에 쏘아 대며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 정자에선 만경의 전경이 훤히 보였다.
축구장 바깥으로 튀어나온 괴수의 배가 크게 부풀었다가 내려갔다.
지금껏 괴수의 암살 시도는 종종 있었다.
대부분 방랑자로 위장한 메트로 세력의 스파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잡혔고, 처형당했다.
그들이 아무리 비열한 방법을 동원해서 방해한다고 하더라도 전쟁 준비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술과 담배의 역할이 컸다.
지난 한 달간, 만경을 통과하는 무역상들은 술과 담배를 사기 위해선 라이터를 소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전국적으로 술과 담배 시장을 크게 뒤흔들었고, 만경의 시장 거래량은 대폭 증가하였다.
지금은 괴수의 먹이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비용을 술과 담배에서 얻는 이익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에 필요한 보급품들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물론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괴수 뒷바라지에 만경의 경제가 휘청거렸다.
최고 경제력을 지닌 만경이 흔들린다는 것은, 그보다 못한 다른 세력들은 더욱더 힘들 것이란 것이고, 전쟁이 임박했다는 의미다.
히틀러는 자국의 경제 위기를 전쟁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전란 이후, 내부 단결을 위해 침략 전쟁을 벌였다.
국가가 위기일 때, 전쟁이 일어난다는 건 이미 수많은 역사에서 사례로 증명되었다.
그리고 최현지가 보내온 정보 역시 전쟁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때.
타앙-!
총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진재희가 소총을 쥐고선 멍하게 서 있었다.
그녀가 쥐고 있는 소총에선 새하얀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곁에 있던 정현수가 잔뜩 성을 내며 말했다.
“누나! 아니, 무슨……. 누가 총을 한 손으로 쥐고 쏴요. 권총도 아니고! 총 한 번도 안 쏴 봤어요? 아, 진짜! 줘 봐요!”
“……미안.”
정현수가 진재희로부터 소총을 건네받아, 100m쯤 거리가 있던 깡통을 순식간에 총으로 날려 버렸다.
그는 취해 있었는데도, 단번에 목표물을 날려 버렸다.
과연 명사수였다.
그때, 그들과 같이 있던 최명준은 내게로 다가오더니 고개 숙였다.
“형님. 전 가 보겠습니다.”
“왜? 조금 더 쉬지.”
“정예대 훈련이 밀려 있습니다. 전쟁이 얼마 안 남은 지금, 쉴 순 없습니다. 부하들을 다시 집결하고 훈련 강도를 높여야 할 때입니다.”
“오랜만의 휴식인데, 부하들도 쉬어야 하지 않겠어? 보상이 있어야 일도 하지.”
내 말에 최명준은 조금 고민하더니 말했다.
“개는 주인의 사냥감을 사냥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주인이 필요로 할 때, 지금껏 잘 다듬은 손톱과 이빨로 먹잇감을 사냥하여 주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개들에겐 최고의 보상입니다. 훈련하겠습니다. 형님, 쉬십시오.”
최명준은 내게 허리를 90도로 숙이곤 뒤돌아 걸어갔다.
난 방금 그의 말에 조금 놀랐는데, 처음으로 나의 권유를 거절하고 자신의 뜻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도 전쟁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이 많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최명준은 ‘버서커’ 아티팩트를 얻은 후, 몰라보게 침착해졌다.
간간이 들려오는 보고에는, 그의 능력은 최현지처럼 촉수를 만들어 내거나 진재희처럼 성검(聖劍)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랬다.
자신이 흘리는 피의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초인적인 힘을 내는 아티팩트라고 했다.
보병 간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전쟁에 특화된 아티팩트.
그의 능력은 전군을 통솔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마른 땅의 단비와 같은 휴식은 금방 지나가고 있었다.
도시는 들떠 있었고, 시민들은 오랜만의 공휴일에 거리로 나와 휴식을 만끽했다.
그들에겐 마지막 웃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편이 쓰렸다.
‘……쓰리다고?’
나는 방금 스스로 든 생각에 순간 소름이 끼쳤다.
내가 일개 시민들을 걱정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을까.
아님, 내 심정의 무언가 변화가 있었던 걸까.
생각한다 한들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내가 추구하고 나아가야만 하는 것은, 이 개짓거리를 끝내는 것뿐이다.
* * *
판교.
그곳은 강시온이 동왕, 강다혜와의 거래로 취득한 지역이었다.
처음 판교를 할애받았을 때, 이곳은 강남의 거주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이주를 마친 뒤, 강시온은 전쟁을 위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훈련장을 건설했다.
서울에서 일어날 전쟁은, 시가전이다.
그랬기에 정예대의 역할이 가장 컸다.
정예대는 초기 만안 경찰서 내에서 결성했을 때도, 좁은 통로에서도 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병법을 연구해왔다.
그 과정은 강시온이 만경을 떠난 5년 동안에도 이뤄졌기에, 그들의 훈련 난이도는 그야말로 극악이었다.
도시 시가전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이동이었다.
특히 아파트와 같은 한정적인 공간 내에서는 이동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정예대는 아파트 외벽을 그 해결책으로 잡았다.
그들은 창가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반대편 창가로 넘어가는 훈련을 했다.
물론 안전을 위해 1층에서 진행되었지만, 만약 정예대원이 한 명이라도 떨어진다면 무자비한 최명준의 체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식상의 체벌이기 때문에 몽둥이로 정확히 세 대만 맞았다.
하지만 그 고통은 엄청났다.
대원들은 맞기 싫어서라도 훈련에 최선을 다해 임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기계장치를 조합해 건물 사이사이를 뛰어넘는 훈련도 이루어졌다.
와이어에 고리를 걸어 넘나드는 훈련은 꽤 고난이도였다.
정예대의 무장 수준은 매우 훌륭했다.
좁은 공간에서 싸워야만 하는 전략적 특징을 잘 살려서, 최소한의 방어구만 착용하고 대부분은 날을 세운 회칼이나 망치로 무장했다.
이 리그에서의 대규모 정복전의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도로이고, 두 번째는 건물이다.
도로는 만경의 본대가, 건물은 정예대가 점령해 매복을 대비했다.
정복전에서는 매복과 기습이 반복될 것이며, 유혈이 낭자하는 파멸적인 전쟁이 이어질 것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4개 세력의 운명이 이 대규모 정복전에 달려 있음을,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다.
현재 강남은 강동, 광진, 중랑, 노원, 도봉구를 확보하고 있었다. 노원과 도봉은 강남이 정복 전쟁을 통해 획득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이 구역을 제외한 모든 서울 지역이 강북과 메트로의 영역이었다.
강남은 1차 대전쟁에서 서초, 강남, 송파를 빼앗기고 강동만을 지켜내며 겨우 자존심을 지켰을 뿐이다.
문제는 적들의 괴수가 숨겨져 있는 지역이었다.
최현지의 정보에 따르면, 강북의 괴수가 종로에 있다는 것은 파악되었지만 메트로 괴수의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다.
메트로는 세력의 주요 건물들이 지하에만 건설되어 있어 최현지의 뛰어난 잠입 능력에도 아직 찾지 못한 것이다.
강시온의 핵심 전략은 서울을 이등분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종로로 가기 전까지, 한강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겠지.’
시온의 주위에는 언제나 보고자가 많았다.
시온은 그들의 보고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만경에서 종로로 가기 위해서는 관악, 동작, 여의도, 용산, 중구를 거쳐야만 했다.
결국에는 서울을 이등분하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했다.
강시온이 생각한 이번 전쟁의 핵심은 지금껏 그가 고수한 전략과는 달랐다.
그가 생각한 이번 핵심은 선제타격이었다.
그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강시온은 종로를 점령할 것이다.
전쟁은 한 달 뒤. 첫 번째 목표는 서울 동작구다.
오우거 부대가 전열에서 적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을 것이다.
* * *
서울 메트로, 서울역.
영롱한 황금빛을 뿜어내는 교주는 말했다.
“적은 관악, 동작, 용산을 넘어 종로로 들어올 것이다. 신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이는 사실이니라.”
그의 말에 두 지도자는 더욱 고개를 숙이며 충성심을 보였다.
교주는 신내림을 통해 만경의 야만인들이 선제공격을 감행할 것이며, 그 목표는 동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롯데타워가 있는 송파 쪽으로 진격하는 것이 아닌, 곧바로 위로 치고 올라와 서울을 이등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메트로 세력이 처음 계획한 바는, 강시온은 관악 동작을 점령하여, 서초, 강남, 송파를 동왕과 함께 진격할 것을 예상했다.
사실상 그것이 정론이었다.
만경의 오우거 부대가 아무리 돌파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울 전역을 주파할 만큼의 체력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랬기에 강동의 동왕과 연합을 펼쳐, 포위된 헌터들을 사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교주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강시온이 서초가 아닌 용산을 침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지도자의 생각이 어떻든, 모든 선택은 교주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면 동작을 막겠습니다.”
“아니.”
교주의 말에 또다시 두 지도자가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황금 팔찌가 주렁주렁 달린 교주의 손이 하늘로 높게 치켜세워졌다.
“서초와 금천에 각 2만, 용산에 4만 병력을 집결시켜라. 우린 만경을 점령할 것이다.”
메트로의 대통령이 물었다.
“그렇게 진격하면 3라운드의 핵심인 송파가 위험합니다. 송파에는 아직 드래곤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송파를 지키는 병력들은 내버려 두는 것이…….”
그때, 교주의 눈동자가 매섭게 찢어지면서 대통령의 말을 끊었다.
“그 누구도…… 나의 말에 토를 달 수 없다. 넌 따르는 자이다. 난 명령하는 자이고. 신의 뜻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
대통령이 금세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바짝 숙였다.
“……따르겠습니다.”
“…….”
교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태양 빛이 그의 얼굴에 쏟아졌다.
태양 빛에 반사된 황금빛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신께서 내게로 오신다.”
그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신이 오고 있어.”
그는 두 팔을 벌려 찬란한 황금빛의 햇빛을 받으며 말을 이었다.
“……놈들은. 한 달 뒤에 온다는구나. 신이 그렇게 말씀하셨어. 우린 따라야 한다. 신의 말씀을!”
교주는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양쪽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말을 맺었다.
“……손님맞이를 준비하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