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재앙을 키우다 (2)
건물만 한 몸집의 오우거들이 강남과 메트로 사이의 국경지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우거 20마리가 일렬로 이동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그들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지천이 흔들리고, 산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동왕, 강다혜는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엄청난 위압감이다.’
인간이 거대한 공룡을 마주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오우거의 풍채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이 오우거를 자신의 체스 말처럼 부릴 줄 아는 만경의 영웅은 대체.
강다혜는 오우거 병력들에게 명령을 하달하는 강시온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깨달았다.
‘저자를 적으로 만들면 안 된다.’
그건 자살 행위였다.
어쩌면 메트로 세력보다 더한 병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강시온은 병력에게 무어라 명령하더니, 다시 강다혜에게 다가왔다.
강다혜는 금세 험악한 표정을 풀곤 그를 맞이했다.
“약속 이행해. 비용은 일주일 안으로 4호선 철로를 따라 가져와. 아님, 곧바로 철군하겠어.”
“여부가 있겠습니까? 남왕님. 근데 오우거 조작법을 좀 알려 주면 안 돼?”
“기밀이다. 이제 가 봐.”
시온은 그녀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가볍게 무시하곤, 출발 명령을 내렸다.
오우거가 또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오우거는 하나 같이 등 뒤에 나무로 만든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각종 무기와 함께 병사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오우거의 외관은 변했다.
생물과 기계 장치의 조합이었다.
옛 RPG 게임 같은 것을 보면 멧돼지 등에 사람이 타고 있고, 사람은 낚싯대에 당근을 매달아 조종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아이디어에 착안한 만경의 기술자들은 긴 봉 대(철근)를 오우거의 우측 어깨에 관통되게 설치하여 방향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어린 오우거 어깨에 거대한 철근을 꽂아 넣은 채, 성장시키면 그 오우거는 자라서 이 같은 성체가 되었다.
물론 봉 대를 움직이기 위해선 나무 기계 장치가 필요했다.
오우거는 봉 대 끝에 매달린 종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봉 대 자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만경의 기술자들은 운전수의 장치에 끈을 이은 종을 만들어 좌, 우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세밀한 조작을 요구하기 때문에, 운전수들은 나무토막으로 만든 장치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오우거의 등에는 거대한 전봇대가 장착되어 있었다.
오우거의 주무기는 전봇대였다.
오우거가 휘두르는 전봇대의 위력은 실로 가공할 만했다.
그야말로 최종 전쟁 병기.
현대식 전차와 싸워도, 오우거가 가볍게 이길 것이다.
“이건 오우거의 식사량이다. 매일 이 정도는 준비해야 될 거야.”
강시온은 종이 한 장을 동왕에게 건넸다.
동왕은 목록을 살피더니, 깜짝 놀랐다.
“1톤?”
“한 마리 분량이야. 스무 마리니까 20톤 준비해야지. 만경에는 방목장이 있어, 그곳의 오우거는 주위에서 소환되는 몬스터를 잡아먹으며 살지만, 그마저도 부족해. 물론 만경의 생산량이 뒷받침이 되어 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 너희들이 오우거 부대를 운용하지 못한다면 그 즉시 철군할 거고.”
오우거 한 마리가 하루에 먹어 치우는 분량은 1톤이다.
만경은 512마리가 있으므로, 하루 오우거의 유지비용만 512톤의 식량이 든다.
그중 200톤 이상의 식량은 방목한 오우거들이 알아서 충당하지만, 나머지 312톤의 식량은 만경이 보충해 줘야만 했다.
과거 오우거를 관리했던 하윤하는 5년간 오우거의 개체 수를 늘리는 데 신중했다.
한 마리씩 늘려 가며 도시가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만 전력을 키웠던 것이다.
현재 만경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오우거의 수는 최대 567마리로, 이 한계치를 넘기지 않기 위해 오우거의 번식 환경을 제한하며 개체 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단순히 식량만 따지자면, 세상이 멸망하면서 여러 대체 식재료들이 나왔기에 그렇게 큰 수치는 아닐 수 있었다.
문제는 강남이 당장 오우거 20마리를 감당 가능할 수 있을지의 문제다.
‘됐어. 어차피 예상은 했고, 우리도 비축 식량은 좀 있으니까.’
강남은 자원이 많았다.
동왕은 오우거 20마리 정도 유지하는 비용은 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 측 조사관을 같이 데리고 가. 이 친구야.”
“안녕?”
강시온 옆으로 최현지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손을 들어 인사했다.
“…….”
동왕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강시온을 바라보았다.
‘감시자군. 개 같은 거.’
동왕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알겠어. 그럼 가 볼게.”
동왕은 부하의 안내를 받으며, 마차에 탑승했다.
각 세력 간 병력은 착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는 2차 대전쟁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했다.
* * *
짐승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첫날에는 10cm에 불과하던 신장이 삼 일이 지나고는 20cm, 일주일이 되던 날 1m가 되었다.
이젠 오전과 오후에도 신장이 달라질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였다.
“꽥-! 꽤애애액-!”
삑삑 소리를 내던 귀여운 짐승이 이젠 사나운 오리처럼 울어 댔다.
처음에는 그 짐승을 귀엽게 보던 사람들도 이젠 징그럽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사이 짐승의 몸집은 엄청 커졌다.
아직 타조만큼은 아니었지만, 1m까지 신장이 자라니 이제 썩 귀엽게만 봐 줄 순 없었다.
짐승 놈은 배식 박스에 코를 박고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그 주위의 관리자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연신 바쁘게 움직여 댔다.
“하루에 먹어 치우는 식사량이 어마어마합니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성인 넷의 하루 배식량이니까요.”
난 하윤하의 보고를 들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곳의 높이는 대충 3m 정도 되어 보였다.
이런 성장세라면 사육장은 더 커야만 했다.
“지붕을 벗겨 내는 게 어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뺄 수 있는 노동자는 있어?”
만경은 하루 평균 1,050톤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같이 비정상적인 식량 생산을 이룩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새로운 작물과 드워프들의 기계 장치 덕이었다.
새로운 작물은 건물에서 생산한다.
대략 30층짜리 콘크리트 구조의 아파트 건물은 세계가 멸망했어도 무너지지 않고 튼튼했다.
30층 아파트 총 21개 동.
한 개의 아파트 단지가 모두 농업에만 투입되는 것이다.
각 층마다 붉은 원석을 잘게 쪼게 배합한 토양을 하나로 통합된 각 층의 방에 배양하고, 거기에 알토란을 심어 매일 물을 준다.
알토란은 먹을 것이 부족한 세계 속에서도 굶지 않게 해준 혁명적인 외계 작물이었다.
그래서 매일 작업 할당량이 있는 농업 인력 중에서 건설 인력을 빼 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괜찮습니다. 이 일은 우리 만경의 최우선 사항입니다. 게다가, 영웅께서 명령하셨으니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럼 부탁할게.”
난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문제는 이 괴물이 어디까지 성장하느냐에 있었다.
이 짐승이 만경의 1일 생산량을 뛰어넘을 정도로 음식을 먹어 댄다면 그건 정말 국가 비상 상태가 될 것이다.
물론 해결 방법은 있었다.
식량창고가 거덜 나기 전에 서왕과 북왕의 짐승을 죽이면 된다.
그건 그쪽 왕들도 생각할 터.
치열한 스파이들의 공작들도 좌시할 순 없었다.
이제야 조금 A가 한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정보, 생산, 군사, 영토, 단결.
국가를 구성하는 그 모든 요소가 시험대에 올려졌다.
이 짐승은 식성이 대단한 짐승일 뿐이지만, 세력의 모든 것을 시험하고 있었다.
‘재밌네.’
확실히 상황이 재밌게 흘러가고 있었다.
난 어째야만 할까.
서왕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메트로 세력을 높게 평가한다고 해도, 만경의 생산력을 뛰어넘을 수 없을 거다.
놈들은 필시 강제적으로 이 짐승을 죽이려고 들 것이다.
충돌을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앞으로 한 달.
난 세 가지 계획을 세웠고, 이를 달성할 것이다.
첫 번째는 작물 생산량을 늘린다.
두 번째는 정규군을 정예대에 준하는 수준으로 훈련해서 키운다.
세 번째는 이 짐승 새끼를 잘 키운다.
나는 이번 라운드를 거쳐, 승기를 잡을 것이다.
다른 플레이어, 군주 간의 승기가 아니다.
지고하고 높으신 저 존재들로부터 승기를 잡을 것이다.
* * *
한 달이 지났다.
정현수는 고개를 넘어, 2년 만에 만경에 돌아왔다.
“와-! 저게, 뭐야!”
“워……. 대장님. 저거 새? 아니, 아니. 용? 돼지인가?”
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만경의 전경이었는데도, 그 짐승은 유독 눈에 띄어 어디에서든 잘 보였다.
축구장 하나는 거뜬히 차지할 만큼 거대한 덩치.
실제로 짐승의 둥지도 축구장이었다. 비록 배가 산처럼 부풀어 올라 축구장 바깥으로 삐쭉 나와 있었지만.
생김새는 분명 새였지만, 뒤룩뒤룩 살이 오른 탓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있으며 그저 새끼 새처럼 아가리를 벌려 음식만 받아먹는 처지였다.
오우거들이 음식을 날라 넣어 주면, 녀석은 그 빵빵한 볼살을 움직이며 먹어 치웠다.
“사실 요즘 메트로 새끼들이 한창 뭐라도 해 보려다가 잠잠해진 이유도, 다 저 새 새끼 때문이랍니다.”
정예대원 한 명이 나뭇가지를 질겅질겅 씹어 대며 말했다.
정현수는 새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웅께서 고충이 많으시겠군.”
“……그러고 보니 대장. 만경의 영웅을 다시 만나는 건, 5년 만 아닙니까?”
“너흰 몰랐나?”
“예……. 저희야 뭐. 대장한테 뒤지게 처맞고 정예대에 들어온 원래 방랑자 출신들인데요. 뭐.”
“아……. 그래. 그랬나?”
“제발 대장. 부하한테 관심 좀 가져요.”
정현수는 부하의 말은 듣는 채도 하지 않고, 목도리 안에 코를 넣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영웅, 강시온이라니.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니.
정현수는 아직까지 파미안 아파트 단지에서의 그와의 추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정현수에게 그날 강시온이 보여 준 위대한 장면들은,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현수는 그와 같은 남자가 되고 싶었으니까.
한걸음에 달려오고 싶었지만, 전(前) 정예대 대장으로서 토벌 지역에 대한 정리는 마무리해야만 했다.
“가자. 배고프다.”
정현수는 부하들을 데리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부하들은 보자기를 짊어진 채, 싫은 소리를 해댔다.
“대-장! 대장은 아무것도 안 들어서 그렇게 빨리 움직이시지만, 저흰 뭡니까?! 예?!”
부하들의 원성이 이곳저곳에서 울렸지만, 정현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갔다.
“쳇. 항상 자기 생각만 한다니까.”
부하는 땅바닥에 침을 뱉고는 앞으로 서서히 내려갔다.
그때, 뒤에 있던 정예대 한 명이 보자기를 떨어트렸다.
보자기에서 나온 건.
우스스스스…….
사람의 손가락 뼈들이었다.
도합 4,801명.
정예대원들은 헌터의 뼈에 숫자를 새겨 수를 세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방에 따라붙은 오우거의 등에는 수많은 총과 총알이 짊어져 있었다.
그건 헌터를 잡아 쟁취한 전리품들이었다.
또한 영웅께 바칠 선물이기도 했다.
정예대는 지난 수년간 헌터들을 사냥하며 지냈다.
“아야-. 잘 챙겨라.”
“죄, 죄송합니다!”
정예대원 한 명이 떨어뜨린 손가락뼈들을 다시 자루에 주워 담았다.
어느새 정현수는 산 아래까지 내려가 있었다.
* * *
“정현수 대장…….”
“정현수 대장이군.”
“아니, 이젠 전(前) 대장인가?”
“그렇긴 하지. 지금은 최명준이 대장을 역임했으니.”
정현수가 복도를 걷자, 수많은 대신이 저들끼리 소곤거렸다.
하지만 정현수는 듣는 둥, 마는 둥 앞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풍채가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반갑게 정현수를 맞이했다.
정현수 역시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달려갔다.
“총대장님!”
“현수구나.”
황민재는 정현수의 손을 잡고는 어깨를 토닥였다.
“잘 있었니? 아니……. 잘 있진 못했겠구나.”
정현수의 얼굴을 살피던 황민재는 쓰린 웃음을 지었다.
그의 얼굴에 못 보던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왼쪽 관자놀이로부터 목에 이어 왼쪽 쇄골까지.
거대한 상처였다.
게다가 그는 조금 절뚝거리기도 했는데, 총을 맞은 상처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듯 보였다.
“고생 많았구나. 네 덕에 만경이 건재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구나.”
“별거 아닙니다. 총대장님. 영웅께선 안에 계십니까?”
“그렇지. 널 기다리고 있으시단다.”
“저, 저를요?”
“그래. 모든 이가 널 기다리고 있어.”
“왜 저 같은 사람을. 안 그래도 영웅께선 돌아오고 많이 바쁘실 텐데.”
“넌 만경의 또 다른 영웅이다. 영웅을 환대하는 것이 지도자로서 또 다른 의무이지 않겠니?”
“제가 한 것도 별로 없는데요. 뭘.”
“그래, 그래. 어쨌든. 들어가자. 아참. 그 총은……?”
“아, 이거요?”
정현수는 깔끔하게 기름칠을 한 소총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영웅께 바칠 전리품이었다.
“집 돌아오는데, 뭐라도 가져와야 하지 않겠어요? 상태는 A급입니다. 총대장 선물도 가지고 왔으니, 걱정 마세요. 무려. 술입니다. 그것도 프랑스 산. 12년 산 와인! 미쳤죠? 이따 저녁에 같이 한잔하시죠?”
“…….”
황민재의 눈에는 정현수가 아직은 아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현수는 세력에서 제일가는 플레이어였고, 그의 힘은 반드시 국방에 필요했다.
물론 정현수의 노력과 희생은, 이미 영웅도 잘 아는 바였다.
황민재는 권좌의 방문을 힘을 주어 열었다.
“우선 보고는 해야겠지. 그다음 일은, 보고를 올린 뒤에 나누자.”
정현수는 문이 열리는 틈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권좌.
그곳에 강시온이 앉아 있었다.
수많은 대신은 정현수만을 보고 있었고, 몇몇 낯이 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강시온을 바라본 순간, 정현수는 그가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정현수를 바라보던 시온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왔구나.”
5년 만의 재회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