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화. 재앙을 키우다 (1)
경기도 수원.
성곽이 둘러싼 이 도시는 고도의 붉은 원석 기술이 발달해 있었다. 이젠 ‘멸망’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환락과 자유의 도시 수원.
수원 지역은 서울 지부와 직접적인 연결점도 없었고, 북쪽으로는 울창한 숲, 남쪽으로는 천안까지 뻗어 있는 대도시였다.
수원은 이미 경기 남부를 지배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적수가 없었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성장하게 된 것은, 여러 개의 세력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연합이기 때문이었다.
수원 내부에는 수십 명의 세력 지도자가 있으며, 그들은 분기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여 분란을 막았다.
수원에 사는 사람들에겐, ‘지부장’의 권력이 가장 컸다.
지부장은 유럽 역사로 따지자면, 지방 영주쯤 되었고, 그들은 수원의 최고 지도자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독립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134명의 지부장 중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건, 수원역을 중심으로 형성한 ‘1지부’.
수원역에는 수많은 컨테이너 박스들이 날아다녔다.
지부장의 아티팩트로 만들어진 1지부의 대표적인 운송 수단이었다.
그곳의 지부장은 강준호였다.
압도적인 권력으로 누리는 생활은 그야말로 황제 못지않았다.
“…….”
고급 침대에 누워 있는 강준호는 아무 생각 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주위에는 벗은 여자들이 아무렇게나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속옷도, 이불도, 옷도, 여자도 허물처럼 널브러져 있는 지부장의 방.
강준호는 이 모든 것이 허무했다.
마음속으로 형을 놓아 준 이후, 한동안 쾌락에만 빠져 있었다.
닥치는 대로, 술과 여자와 담배.
그 모든 것에 취하여 공허함을 채우려고 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강시온의 존재는 너무나도 컸다.
죄의식.
그건 무엇인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가장 유명한 철학과 교수, 정신과 의사를 불러다가 물어도 똑같았다.
전부 하나같이 똑같은 말만 해 대는 X신들 뿐.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진 못했다.
자신에게 있어서 형은 뭘까.
단순했다.
그는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형은 모든 것을 희생했다.
강준호에게 있어서 강시온은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고, 스승이자, 은인이었다.
희생밖에 모르던 형이 실종되고, 이제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을 형에게 바치고 싶었건만.
세상은 둘의 만남을 허용하지 않았다.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이 외로움은 제아무리 여자를 만나도, 담배나 술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강준호는 이따금씩 눈물을 흘렸다.
무슨 일을 하든, 무의식적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한 여자가 찾아왔다.
이주연.
30대의 나이로 접어든 그녀의 얼굴에는 부쩍 주름이 많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려 대는 강준호를 바라보다 힘없이 말했다.
“큰일이 났어…….”
“…….”
도대체 강준호에게 큰일이 무엇일까.
하지만 강준호가 가장 크게 하고 있는 사업이 바로 담배와 술이었다.
담배와 술은 수원에 있는 지부장들에게만 팔아도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이었다.
그리고 오늘.
담배 수급처가 막혔다.
누군가가, 아니.
어떤 미친 새끼가 강준호가 쥐고 있는 담배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마켓에 있는 모든 담배와 술이 매진되었어. 이번 분기는 아직 3달이나 남았고. 어떻게 할 거야?”
이주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강준호는 여전히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충혈되어 눈물이 주륵주륵 흐르는 와중에도, 끌어오르는 분노에 이글거리고 있었다.
“……뭐?”
* * *
“삐-익! 삐-익!”
요란한 새끼 짐승 소리가 부화장을 가득 울렸다.
그 짐승을 바라보는 최현지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했다.
“진짜……. 심장 멎을 것 같아. 온종일 칙칙한 건달들 얼굴만 바라보다……. 얘를 보니……. 아-. 보고만 있어도 힐링 돼.”
“그거 나한테 하는 소리냐?”
최현지는 현재 최명준의 정예대에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기 위해 함께 지내고 있었다.
“삐-익! 삑!”
알에서 깨어난 짐승은, 분홍빛 깃털을 가진 병아리였다.
사실 병아리라고 명명한 것은, 생김새가 비슷해서 그랬을 뿐이지 명백히 병아리와는 달랐다.
일단 날개가 2쌍이었다.
게다가 걷는 모양새도 병아리보다는 타조에 가까울 정도로 긴 두 다리를 지니고 있었다. 병아리는 그 긴 두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 다녔다.
강시온은 이 짐승이 ‘세력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키워야 할 ’목표로 보이지 않았다.
정말 작은 짐승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당장은 말이다.
하윤하가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자, 삑삑거리는 짐승이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라탔다.
“먹이로는 무엇을 줘야 할까요?”
하윤하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선 강시온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묻는다고 해도, 대답할 건 없었다. 강시온은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새끼 때는 우유를 줘야겠지.”
“세력에 우유가 있습니까?”
자연스럽게 최명준이 되물었고, 가만히 보고 있던 진재희가 껴들었다.
“오우거의 젖.”
그러자 최현지는 인상을 팍 구기며 결사반대했다.
“오우거? 젖?! 미친-. 절대 안 돼.”
“오우거의 젖은 실제로 시민들도 먹는 음료야.”
“뭐어~? 그걸 왜 처먹어?”
“너도 분명 먹어본 적 있을 거야. 만경의 음식에 많이 들어가니까.”
충격적인 진재희의 대답에, 최현지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곤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지. 죽지만 않게 잘 보듬어 줘. 어쨌든 태어났으니까.”
“넵!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윤하가 당돌하게 대답했다.
이후 강시온은 최명준을 따로 불러냈다.
“예. 형님?”
최명준은 그의 부름에 곧장 달려와 상체를 낮췄다.
그는 항상 강시온을 대할 때는 자세를 낮췄다.
둘의 키 차이는 20cm 이상이었으니까.
“정현수는 돌아왔어?”
“아직입니다. 형님. 제가 듣기로는, 그 자식 메트로 세력의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고 하네요. 원래 연락조차 잘 안 될 때가 있고. 사실상 돌아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부대 훈련은 어때?”
강시온은 사실 이 작은 짐승보다, 부대 상황이 더 중요했다.
최명준은 강시온의 명령을 받아, 총사령관 황민재와 같이 부대를 키워 내는 중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훈련 상황이었다.
어떤 시대의 군대든, 훈련된 자와 훈련되지 않은 자의 차이는 컸으니.
“애들이 깡다구는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본대 쪽이겠죠. 형님도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병력이 노동에만 투입되어 있고, 평시에는 훈련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훈련 빈도는?”
“현재 정예대는 일수를 정해 놓지 않고, 매일 훈련하고 있습니다. 본대는 하루 단위로 5개 부대씩 훈련장으로 불러오고 있습니다. 근데-. 제가 생각해 본 결과……. 전체적인 부대 훈련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하루에 적어도 2,000명씩은 훈련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
최명준의 보고를 듣는 강시온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만경의 군대 본부는, 과거 안양시청이었던 곳의 바로 앞 시민 공원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기초적인 군사 훈련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최대 훈련 가능한 인원수는 500명 남짓이었다.
여기서 만경의 가장 큰 문제점이 드러난 셈이다.
만경은 영토가 작다. 하다못해 만경이 가지는 ‘군인 훈련 시설’의 최대 수용인원도 500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군대 시설을 늘릴 수도 없었다.
만경의 영토는 이미 포화상태다.
인구수, 방랑자, 방랑자 조합, 공장, 창고, 시장, 거주지역까지.
당장 오우거의 사육공간으로 수리산 일대 몇만 평에 이르는 땅을 사용해야만 했다.
전투 부대의 훈련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현재 서울에 속하는 세력들도 정복 초창기가 아니기에, 대부분 쓸 만한 영토는 모두 나눠 가진 상태였다.
정복할 땅이 없으면 타 세력의 영토를 뺏어야만 했다.
제일 만만한 세력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콰아아앙-!!!
누군가 문을 사육장 문 발로 차며 문을 열어젖혔다.
만경의 경비병들이 무기를 들고, 그녀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정말 ‘막무가내’였다.
“오래서 직접 왔다-!”
동왕(東王). 강다혜.
그녀는 옥상에 모인 만경의 지도부를 보며 소리쳤다.
사육장에 모여 있던 지도부가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고, 그들의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강다혜는 엄지로 자신의 명치를 콕 찍으며 호기롭게 소개했다.
“동왕. 등장이요.”
강다혜를 바라보던 강시온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쟤 영토를 좀 뺏으면 될 것 같네.’
좋은 타이밍이었다.
물론 입장 자체는 상당히 예의가 없었지만.
“윤하야.”
“네, 네!”
“지도 좀 챙겨와 줘.”
“아, 넵!”
* * *
고궁. 회의실.
동왕은 시온에게 말했다.
“우리 강남이 원하는 건, 딱 하나. 3달간이야. 3달간 방어만 할 수 있게 병력을 내 달라는 거야. 한 이천 정도면 좋겠어. 물론 실질적인 전투는 안 할 거야. 그냥 과시용이지. 우리도 병력 있으니까, 함부로 쳐들어오지 말라는 그런 차원에서.”
동왕은 20개 부대를 파병한다는 것을 마치 쉬운 일인 듯이 말했다.
시온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거절한다. 어떤 액수를 불러도 그 정도의 병력을 빼 줄 순 없다.”
“그, 그럼 천!”
“…….”
“아이 씨……. 오백……?”
“…….”
“알았어. 진짜. 그럼 삼백이라도. 3개 부대뿐이야?”
“…….”
“100……?”
“100이라면, 주당 대여비 1,000명 기준, 식량 3일 치와 담배 두 보루. 그 정도면 내어 주지. 물론 파견된 병사들의 식생활은 모두 강남에서 부담하는 걸로.”
“비싸잖아……? 아니, 하윤하보다 더해.”
“쌀 줄 알았어? 2.5라운드가 시작되면서 병사 개개인이 값어치는 크게 올랐어. 그만큼 계산도 철저해야지.”
“이봐……. 남왕. 우리 같이 좀 살자.”
“살아남아. 혼자서 잘.”
동왕은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협상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시온은 어떤 경우에도, 그녀의 생각대로 흘러가게 놔둘 순 없었다.
요구는 높은 곳에 위치한 자가 낮은 곳에 위치한 자에게 하는 것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자는 결코 요구할 수 없다.
동왕은 생각대로 자신의 뜻이 풀리지 않자, 의자를 뒤로 젖히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나저나 새 새끼는 태어났나 보네?”
“보다시피.”
“우린 아직인데……. 역시 만경이 뭔가 다르긴 다르나 봐?”
동왕은 자신의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배배 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창밖을 향해 있었다.
그녀는 꼬았던 머리카락을 풀고,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난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위대하신 영웅께서는 그렇지 않나 보네.”
“친구란 없어. 위에 있는 자와. 아래에서 처받드는 자가 있을 뿐이지.”
“하윤하가 실질적인 지휘에서 물러나면서 뭔가 강남과 만경 사이의 변화가 있을 거라곤 했어. 하지만 이렇게 바뀔 줄이야.”
“…….”
“남왕. 이건 다 같이 죽자는 거야. 어차피 만경의 입장에서도 강남의 존재를 부정할 순 없잖아?”
그건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앞으로의 라운드에서 평등한 관계는 있을 수 없었다.
시온은 말했다.
“협박은 통하지 않아.”
“이건 협박이 아니야.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말하는 거지! 아니, 그럼…… 묻겠는데. 네가 원하는 게 뭐야?”
“기다려. 내 질문이 먼저야. 네가 원하는 건 세 달간의 방어뿐인가?”
그때 하윤하가 걸어오며, 시온과 동왕 사이에 지도를 펼쳤다.
그건 도(道)의 경계로 나눈 현대의 지도가 아닌, 각 세력의 영토를 표기해놓은 신(新) 지도였다.
“내가 원하는 건, 너희들의 영토야.”
“영토?”
“그래. 넌 강남을 지배하며 강원도 쪽으로 세력을 넓혀,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어. 만약 그 땅을 내게 준다면 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몇 평.”
동왕의 눈매가 날카롭게 찢어졌다.
시온은 그녀에게 말했다.
“1,000만 평.”
그 말에 날카롭게 찢어진 동왕의 눈매가 동그랗게 떠졌다.
“1,000만 평?!”
“어.”
“여의도 11개? X바! 정도가 있지! 만경의 면적만큼 달라는 거 아냐?!”
“대신 오우거 20마리, 그리고 병사 천 명을 강남과 메트로 세력 국경에 배치해 줄게. 단, 전투는 안 해. 네가 원래 원했던 것처럼 단순 과시용이니까.”
“……읏?!”
오우거 20마리.
그건 현대에 비유하자면 최신 전투기 20기와 마찬가지의 전력이었다.
지금 전력상, 단일 부대로 오우거를 이길 수 있는 부대는 없었다.
하다못해, 메트로의 일개 소총 부대도 오우거를 이길 수 없다.
물론 강남에도 오우거와 필적하는 플레이어들을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 협상을 하고 있는 건 보병대였다.
세력 간의 전쟁은, 결코 플레이어사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대전에 비유하자면, 플레이어는 전차, 헬리콥터, 전투기와 비슷한 지위고, 아티팩트가 없는 플레이어들은 보병에 해당한다.
보병 전력을 강화해야만 하는 강남 입장에서 시온의 제안은 그야말로 달콤할 수밖에.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000만 평은 선 넘지. 내가 2라운드 초창기에 어떤 개고생을 하며 얻은 땅들인데……!’
말이 1,000만 평이지, 여의도 면적에 11배나 달하는 어마어마한 영토였다.
강남이 토지가 아무리 넓다고 하더라도, 한 번에 1,000만 평을 주고나면 세력은 휘청거리고 만다.
그뿐만 아니라, 해당 토지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도 대규모 이사를 진행해야 했기에,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악마…….’
동왕, 강다혜는 시온을 보며 악마를 떠올렸다.
무슨 짓을 하든 병력들을 내어 놓지 않을 것처럼 입장을 고수하다가, 마지막에 자신의 요구 사항을 말했다.
이는, 협상 간 각 왕들의 위치가 정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시온이 생각한 대로, 강남은 몰릴 대로 몰렸고.
게다가 동왕은 강남의 광활한 영토를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쓰지 못할 영토는 이렇게라도 사용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단, 동왕도 자존심이 있었다.
“좋아, 광교산, 판교 일대를 넘길게. 조항 하나만 넣어 줘.”
“?”
“놈들이 먼저 선제공격을 하면 전투를 해도 된다고.”
“불가.”
“제발- 좀!”
“내 병사들은, 만경의 자원이자 보물들이야. 단 한 사람도 죽어선 안 돼. 말했잖아. 우리 계약의 성립은 ‘단순 과시’용으로 병력들이 사용될 때만 가능하다고.”
“……!”
“아님. 없던 걸로 해.”
강시온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동왕은 소리쳤다.
“알겠어!”
강시온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동왕은 숨을 가쁘게 내쉬다, 그를 바라보며 말을 마무리했다.
“알겠다고…….”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소문보다 더했다.
강시온은 하윤하보다 협상 레벨이 높았다.
그는 악마였다. 진짜 악마.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