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화. 알 (2)
서울 메트로, 서울역.
두 남자가 포탈을 빠져나왔다.
메트로 세력의 대통령 서지호.
강북의 지도자 김국종.
그들은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었다.
그곳에는 횃불을 든 수많은 신도들이 두 남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두 남자는 서로에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알을 쥐고 있을 뿐이었다.
두 남자는 앞으로 걸어가다가 높은 건물의 어딘가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거대한 권좌가 있었고, 민머리의 교주가 앉아 있었다.
권좌는 지하에 있었지만, 그곳만큼은 지상에서 내려온 햇빛에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햇빛은 교주가 온몸에 주렁주렁 매단 황금 액세서리와 만나 빛났다.
교주는 그야말로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거대하고 신성한 지팡이를 든, 지하교의 교주.
교주의 밑으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고개 숙여 절하고 있었다.
교주는 두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
두 남자는 가만히 교주를 올려다보다 넙죽 엎드려 절했다.
두 세력의 왕은, 절대적인 신앙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도, 세력의 수장도 모두 산하에 두고 있는 거대한 권력의 주인공.
그는 지하교의 교주였다.
1라운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모든 것은 그로부터 시작해, 그로 끝이 났다.
그 어떠한 무력이나 정치도 교주를 무력화시킬 순 없었다.
순정, 사랑, 복음.
교주는 그 어떠한 지도자보다 절제를 우선시했다.
그는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는 자이기도 했다.
지하에 거주하는 모든 거주민이, 그의 교리에 찬양했고 스스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하의 신(神)이었다.
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란한 빛줄기가 그의 몸을 비추고 있었다.
“지상은 파괴되어야만 한다.”
한 발자국, 그가 권좌에서 내려왔다.
“지상은 오염된 것들이 사는 지옥이다.”
다시 한 발자국.
“오염된 것은 처분해야 한다. 그건 세상의 이치이며, 지금껏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진리이다.”
다시 한 발자국.
“하지만 수많은 탐사를 통해, 그들을 구하려고 들었지만, 그들은 우리의 회유를 거절했다.”
다시 한 발자국.
이제 그는 엎드린 두 지도자 앞에 서 있었다.
“이교도와 오염된 자들은 처분해야만 한다. 그것이 너희들이 이 땅에서 이뤄야만 하는 일이니.”
두 명의 시녀가 하얀 볼에 물을 가득 담은 채, 교주에게 다가갔다.
교주는 그 볼에 자신의 손을 넣어 물을 적시곤, 엎드린 두 지도자에게 뿌렸다.
“가서 모조리 불태워라, 서울을 해방시켜라.”
두 지도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돌아보았다.
수천 명의 ‘헌터’들이 정렬해 있었다.
이들 수천 명은 모두 ‘지휘관’이었다.
일반 병사들이 아니라.
교주의 명령을 하달받은 헌터들은, 쥐고 있는 총의 개머리판으로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웅장하고 거대한지, 지하세계를 이루고 있는 내벽이 흔들렸다.
하지만 내벽을 감싸고 있는 교주의 아티팩트 능력, ‘줄기’들은 그들이 아무리 진동을 일으켜도 굳건했다.
파멸의 전쟁이 도래했다.
이제 그들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불태울 준비가 되었다.
교주로부터 명령을 하달받은 메트로의 대통령 서지호는 헌터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모든 헌터들이 바닥 치기를 멈추고 침묵했다.
침묵한 지하 통로 속에서 대통령은 그들에게 명령했다.
“전군, 출격이다.”
모든 건, 오염된 것들을 정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서울을 이교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함이다.
***
정예대는 만경이 자랑하는 최고 전력들이다.
만경은 크게 두 가지 군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예대와 정규군.
각 군의 세부 조직은 100명 단위로 부대에 편입되었다.
정예대는 황제의 직속 부대로, 현재는 영웅의 직속 부대로 편입되었고. 그들 한 명, 한 명의 전투력은 가히 메트로의 헌터와 비교해도 우위에 있었다.
101부대부터 109부대. 각 100명, 총원 900명이 정예대 소속이었다.
정규군은 의회의 직속 부대로, 가장 많은 군인과 예비군을 보유하며 실질적인 전력을 담당하고 있었다.
01부대부터 47부대까지가 각 100명, 총원 4,700명이 정규군으로 배속되어 있었고, 48부대부터 100부대까지가 각 100명, 총원 5,300명이 예비군이었다.
정규군이 운영하는 부대 중, 01부대에서 05부대까지가 오우거를 동반하는 오우거 부대였다.
정규군과 예비군을 총지휘하고 있는 자는, 하윤하가 직접 임명한 총사령관 황민재였다.
그리고 정예대의 대장은 정현수이지만, 이젠 최명준이 돌아왔으니 지휘 체계는 바뀌게 되었다.
900명의 정예대.
그들은 강시온의 개였다.
주인의 명령대로,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무는 최정예 특수부대.
그 특수부대의 대장이 최명준이다.
최명준이 그들을 상대로 처음 한 일은 기강을 잡는 것이었다.
“…….”
그는 정예대 훈련기관에 들어가 대원들을 내려다보았다.
“크흡……. 크흐흐…….”
“으으우……. 크흐흐흡……!”
“하아……! 하아……!!!”
정예대원들은 하나같이 구슬땀을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최명준은 자리에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그만.”
그가 그만하라고 말하자, 정예대원들은 그제야 자리에 속속 쓰러졌다.
“푸하……! 커허어억……!”
“흐으……! 흐으으으……! 흐으!”
“카하아아……. 하아아아…….”
흙바닥에 머리를 박고 벌을 받던 정예대원들.
최명준은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정예대원들 사이를 걸었다.
정현수가 데리고 간, 101부대에서 103부대를 제외하고, 총원 600명.
그들 모두가 최명준의 부름을 받고 이곳 훈련장에 모여 기합을 받고 있었다.
“야이, 개X끼들아. 개X끼들이 말이야. 주인이 오면, 꼬리나 살랑살랑 흔들면서 반겨야지. X발. 물라고 들어? X대로 살아? 정예대가 정말 개판이 되었어?”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야야-! 민재야.”
“예. 말씀하십시오.”
총사령관 황민재.
황민재는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그는 직접적으로 정예대의 보직에 있는 자는 아니었지만, 과거 최명준의 정예대에서 무력을 키운 자였다.
또한 만안경찰서에서부터 최명준 곁에 있으면서 그를 작은 형님으로, 강시온을 하늘 같은 큰 형님으로 모셨던 자였다.
“네가 교육을 이딴 식으로 하니까 문제지. 애들 교육을 어떻게 한 거냐?”
“……시정하겠습니다.”
사실 황민재로서도 별 순 없었다.
지금껏 정예대는, 강시온의 충실한 심복 단체였고. 이는 토지부장 이석진과 진보 세력의 강한 압박을 받기에 충분한 이유였으니.
하지만 그런 이유일지라도, 최명준은 용납할 수 없었다.
정예대가 이렇게 주눅 들며 사니, 만경은 진보 세력 같은 강시온 배척파가 지배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가지고 있는 무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정예대의 위상이 X신이 되었어. 기강은 쓰러진 것을 바로 잡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이 X발. 다 안 일어나?!?!!”
벌떡-!
최명준의 불호령에, 정예대원들이 단숨에 일어나선 다시 정렬했다.
최명준은 정렬한 부하들을 바라보다가 일전에 자신과 겨뤘던 오크를 발견했다.
오크의 이마는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이게 누구야?”
“죄,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데?”
“죄, 죄,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뭐가 죄송하냐고.”
“……윽!!”
더 이상 오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최명준은 그런 오크의 뺨을 어루만지며 지나갔다.
오크에게서 들은 것도 있었다.
이종족에 대한 인간들의 배척이었다.
물론 최명준은 그것부터 바로잡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 정예대에선 같이 칼 맞고 버티는 형 동생들 사이의 끈끈한 우애만이 있을 뿐이지 차별은 없어야만 했다.
“오늘부터 내 방식대로 훈련한다. 한 놈도 빠짐없이 모두 참석하도록. 알겠나?”
“예! 형님!”
“예! 형님!”
정예대는 다 같이 합심해서 소리쳤고, 최명준은 그들의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들었다.
“목소리……? 봐라……?”
또 기합받는 걸 예상한 정예대는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서 소리쳤다.
“예-!!!!!!!!!!!!!!!!!!!!!!!!!!!!!!!!!!!!!!!!! 형니임-!!!!!!!!!!!!!!!!!!!!”
“예-!!!!!!!!!!!!!!!!!!!!!!!!!!!!!!!!!!!!!!!! 형니임!!!!!!!!!!!!!!!!!!!”
“뜀걸음 10km 실시한다. 10초 내로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형니임!!!!!!!!!!!!!!!!!!!!”
“예-!!!!!!!!!!!!!!!!!!!!!!!!!!!!!!! 알겠습니다!!!!!!!!!!!!! 형니임!!!!!!!!!!!!!!!!!!!!”
후다닥-.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뜀걸음부터 준비했다.
황민재는 최명준의 지도 방식을 보며 살짝 감탄했다.
역시 그들을 이끌 건 최명준밖에 없었다.
***
깡-! 깡-!
쇠질 소리가 요란하게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이곳은 원래 동안과의 전쟁을 준비하던, 군수 창고 및 공장.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는 만경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기도 했다.
나는 세력 내부에 있는 드워프 몇 명을 투입해 이곳에서 붉은 원석을 제련하기 위한 시범 행사를 개최했다.
“붉은 원석은 압력을 가하면 열을 발생시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형태로 이용할 순 있지만,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이 한계입니다.”
키가 작은 드워프가 내게 붉은 원석을 결합한 기계 장치를 건넸다.
난 그것을 이리저리 살피다 물었다.
“원리가 어떻게 됩니까?”
“원리야 간단하죠. 이 레버를 몸쪽으로 당기면, 붉은 원석에 일정한 압력이 가해지게 됩니다. 이런 식이죠.”
드워프가 기계 장치를 조작하며 시범을 보였다.
안쪽에 있는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안쪽의 작은 원석을 때렸다.
“앞쪽을 만져 주시겠습니까? 살살요. 뜨거우니까요.”
난 드워프의 말대로 기계장치의 앞쪽을 만졌다.
원석은 곧바로 손가락을 뗄 정도로 뜨거워졌다.
“크기에 따라 압력을 가하는 수치도 다릅니다. 저희 종족이 다룰 수 있는 건, 붉은 원석을 쪼개어 이렇게 작은 압력으로도 충분한 열을 발생시킬 수 있게 하는 거죠.”
“그 밖에는요.”
“특정 종족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제 형제들에게 물어봐도 똑같을 겁니다.”
드워프는 내게서 기계 장치를 가져가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이들만으론 한계가 있다.
결국에는 인천에만 거주한다는 그 드워프들을 세력에 들여와야 했다.
물론 만경에 있는 이 방랑자 소속의 드워프들도, 훌륭한 대장장이들이었지만 부족했다.
“붉은 원석만이 드래곤의 껍질을 뚫을 수 있다는 거지?”
“응. 맞아.”
진재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한 듯 기계 장치를 만져 보았다.
사실.
사실은 말이다.
이렇게까지 붉은 원석에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난 K에게 받은 무엇이든 삭제할 수 있는 돌칼 아이템이 있었다.
그 돌칼 아이템을 가지고 드래곤과 조우할 수만 있다면, 단번에 3라운드를 클리어할 수 있었다.
이 경우 문제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드래곤을 만나기 위해서는 메트로 세력을 무찔러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돌칼은 ‘겨우’ 드래곤 따위에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물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2.5라운드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내가 노려야 할 것은 바로 경제였다.
“윤하는 어딨어?”
“고궁에 있을 거야. 금고에서 대기 중이겠지.”
“그리로 가자.”
나는 고궁으로 향하기 위해 공장을 나섰다.
공장 앞에는 강시온을 모시기 위한 거대한 마차 행렬이 대기 중이었다.
그가 한 곳에만 방문하더라도, 그 일대는 몇십 명의 정예대가 따라붙어 호위하고 있었다.
그건 만경 최고 지도자의 당연한 권리였다.
***
타국이 바라보는 만경의 가장 큰 무기는, 오우거와 최명준의 정예대만이 아니다. 압도적인 전투력을 가진 플레이어들도 엄청난 무기였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다.
사실 만경의 가장 큰 힘은, 경제력이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강시온 일행이 다가간 곳은 고궁 안에서도 가장 안쪽 지역.
하윤하가 강시온과 진재희를 직접 안내했다. 머지않아 그들은 가장 안쪽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시만요.”
하윤하는 옷 안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꺼내, 시온에게 건넸다.
“5년 동안, 항상 몸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관리도 철저히 했고, 그 누구도 영웅의 재산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습니다.”
시온은 윤하가 건네는 열쇠를 받아들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고맙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금고의 자물쇠를 열었다.
철크덩-! 쿠그그그그.
금고의 문이 자동으로 살짝 열렸고, 그 안에는 빛깔이 화려하게 도는 금괴들…… 이 아닌, 담배 뭉치들이 가득 차 있었다.
“세력에 들어오는 담배들을 모두 모아 두었습니다. 틈틈이 사 놓기도 했고, 사용은 일절 안 했습니다. 전체적인 양은 이전보다 많이 늘었을 겁니다.”
“담배 보관 상태는 양호하네.”
방 안 가득 쌓인 담배를 살피며 강시온은 짧게 감상을 내놓았다.
반면 진재희는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담배를 끊었다.
사실 담배를 끊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지만.
“저건?”
강시온은 금고 한 편에 쌓여 있는 박스을 가리키며 물었다.
“소주입니다. 소주는 생각보다 모으기가 쉽지 않아서, 도합 818병밖에…….”
“아냐. 아주 훌륭해.”
시온은 조금 미소를 보이며 윤하의 어깨를 토닥였다.
윤하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그려졌다.
이걸 지키고 모으는 과정에서 수천 번의 고난이 있었지만, 그의 칭찬 한 번에 그러한 고난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소주 역시, 담배 못지않게 상당한 가치가 있는 사치품.
하윤하는 담배를 모으는 것도 모자라서, 소주와 맥주도 차곡차곡 모아 놨었다.
시온의 입장에선 윤하가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이 담배는, 이 시대에 와서는 단순히 기호 식품이 아니었다.
이건 무기였다.
담배는 강력한 중독을 유발하는 발암물질들이 가득했고, 이는 사람들의 인생을 담배에 속박되게 만들었다.
물론 그건 담배가 가지는 훌륭한 가치이기도 했다.
“이제…… 드디어 시작인 거야?”
진재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시온은 담배 한 보루를 집어 들며 대답했다.
“응. 이제 이 엄청난 양의 담배를 풀 때야.”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단순하고 쾌락을 좋아하는 동물이다.
강시온은 그러한 인간의 습성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지금껏 하윤하가 경제 수준을 높이는 데에 그쳤다면, 강시온은 경제 수준을 타국이 감히 넘보지 못하도록 성장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커뮤니티에서 그가 판매한 물품들로 벌어들인 골드.
대표적으로 보일러 제작법은, 전국에서 팔린 스테디셀러였다.
그걸 지난 5년간 팔아먹었으니…….
“추가로 이것도 슬슬 사용해야지.”
강시온은 커뮤니티 속 자신의 골드양을 확인하며 작게 미소 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