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4명의 왕 (1)
관리자 A, 관리자 F.
한 세력의 군주에, 두 명의 상위 관리자가 붙는 건 전 리그를 통틀어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존재들 사이에서도, 강시온을 주시하고 있다는 의미.
A는 기존 K와는 다르게 점잖았다.
“반갑습니다. 플레이어. 관리자 A. 처음 인사드립니다.”
“F다~.”
F는 키가 작은 여자, A는 정장을 입은 장발의 남자였다.
만안 경찰서, 고궁의 옥상.
그곳에는 강시온을 비롯해, 세력의 핵심 인물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A는 주변을 둘러보곤 시선을 다시 강시온에게 두었다.
“이번 3라운드 진행에 앞서, 차질이 생겼기 때문에 실례를 무릅쓰고 갑자기 찾아온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너 때문이야! 네가 라운드를 빨리빨리 클리어 안 하니까!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잖아! 푸햐!”
A는 고개 숙이며 사과를 올렸지만, F는 꽥꽥 소리를 질러 댔다.
“다름이 아니라, 이곳 서울 지역이 3라운드 진행 속도가 느려, 전개속도를 가속화하기 위함입니다. 하여, 여러분들 모두. 그러니까 만경. 강남. 메트로. 강북은 저희 측에서 준비한 서브 라운드를 진행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모조리 죽이는 거다! 죽여어! 푸하하하하!”
강시온은 물었다.
“서브 라운드라니?”
원래 K라면 능글맞게 굴었겠지만, A는 달랐다.
그는 점잖게 설명했다.
“리그의 진행 속도는 평균 편차를 계산하여, 적정한 선을 지키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희 관리자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현재 서울 지역은 각 세력의 힘이 거의 균등하기 때문에, 라운드 진행이 어렵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현재 서울 지부는 평균보다 1.1라운드 뒤지고 있기 때문에, 저희 입장에선 어서 빨리 전개를 시켜야만 하는 점.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
A는 고개를 숙여 설명을 마무리했다.
곁에 있던 F는 꽥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아-!!! 피 튀기고!!! 서로 싸우란 말이다!!! 꾸물대지 말고! 이 하등한 종족 놈들이이-!!!”
A의 말을 듣는 강시온은 속으로 웃었다. 모두 그의 계획대로였기 때문에.
“만경에 큰 파도가 몰아쳤고, 초대 왕이자 영웅인 당신은 이번에도 모두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는 듯, 훌륭하게 시련을 이겨 내셨습니다. 하지만 시련을 이겨 내는 과정에서 세력은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고, 이는 정체되는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당신이 만들어 낸 오우거가 무엇보다 언밸런스했어요. 원래 만경은 멸망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우거 부대의 건재함으로 인해 타국은 만경을 정복하지 못했고, 자원의 이동도 없었죠. 물론 이는 군주 강시온의 엄청난 업적이기도 합니다.”
A의 설명에 하윤하는 조금 어깨를 떨었다.
만약 강시온이 만들어 놓았던 오우거 부대가 없었더라면, 만경은 타국에 집어삼켜졌을 것이다.
결국 강시온이 없는 동안 만경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의 힘 덕분인 셈이다.
실제로 실질적인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강남도, 만경의 오우거 부대를 두려워해서이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A는 설명을 이었다.
“저희 관리위 측에서도 인정했습니다. 만경의 영웅이 가지고 있는 힘을 말이죠. 그래서 이번엔 특별 라운드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름하여 2.5라운드.”
그때, 허공에 화려한 임팩트와 함께 알림 창이 떠올랐다.
퍼- 엉! 펑퍼어엉!
정말 오랜만의 알림 창이었다.
시온은 전후(戰後)와 빛남 원정을 거치며 한동안 관리자들의 알림 창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또다시 작은 요정들이 허공에서 걸어 나왔다.
1라운드에서 자주 보았던 그 요정들이었다.
“2.5라운드에 참여하는 4개의 세력을 소개하는 장소로 모시겠습니다. 협조해 주십시오.”
작은 요정들은 허공에 포탈을 만들어 냈다.
칠흑같이 어두운 포탈 속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강시온은 권좌에서 일어나 그곳으로 걸어갔다.
주변 인물들은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향하는 길을 막는 이는 없었다.
강시온만 걸어 나오자, A는 하윤하를 가리키며 말했다.
“만경의 황제, 하윤하. 당신도 포함입니다. 이번 2.5라운드는 최고 지도자에 의해 권력을 부여받은 시스템상 모든 서브 지도자를 포함합니다.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A의 말에 하윤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곁에는 최현지가 있었다.
“괜찮겠어?”
“괜찮아.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잖아?”
하윤하는 최현지에게서 벗어나 강시온 옆으로 걸어갔다.
“그럼 두 지도자를 모시겠습니다. 포탈 속으로 들어가 주십시오.”
“빨리빨리 걸어라! 이 하등한!!! 종족!!! 내가 먼저 가야지.”
F가 먼저 포탈 속으로 몸을 던졌고, 그 뒤를 따라서 강시온, 하윤하도 들어갔다.
A는 끝까지 남아 있다가, 남겨진 인물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곤 자신도 그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는 4명의 왕이 있었다.
* * *
난 앞서 걸어가는 A를 따라갔다.
발과 허공이 만나 일정한 파동이 일었다.
발을 어디로 뻗든, 그곳에는 길이 만들어졌다.
발길이 다다른 곳은 어둡고 둥근 지형이었다.
둥근 지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는, 각각 사람의 형체가 있었다.
온몸이 검은 실루엣으로 뒤덮여 있지만, 눈동자는 하얗게 차올라 있었다.
굳이 A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이번 2.5라운드에 참가하는 3개 국의 지도자들이었다.
A는 내 곁에 서며, 말했다.
“서울 중심을 기준으로, 강남, 동왕(東王). 메트로, 서왕(西王). 만경, 남왕(南王). 강북, 북왕(北王). 4명 모두 모였습니다.”
서왕.
하윤하의 보고에 따르자면,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 중 가장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세력.
또한 스스로 대한민국을 계승했다고 하며, 실제로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발 중이라고 했다.
그는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눈매와, 곰처럼 거대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메트로의 서왕은, 내가 이곳에 온 뒤부터 나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서왕이 말했다.
“만경의 영웅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마주하니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군. 지난 5년간, 헌터들은 당신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고 결국엔 찾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에 있었지? 남왕.”
서왕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위엄 있었다.
기백이 있는 남자였다.
모든 것을 통치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갖춘 남자였다.
단지 그의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도, 결코 만만치 않은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어~~~~이!”
그때, 나의 오른쪽에 있던 동왕이 목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키가 작았고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강시온이 왔다고 말 돌리지 말고 나한테 집중해라. 썩을 놈의 시끼. 그 잘난 주둥아리. 언젠가 쥐어뜯어 줄 테니까 말이야.”
“패망하기 직전의 족장에겐 딱히 관심을 두고 싶지 않군.”
“조, 족장?! 야!”
“게다가 네놈들의 세력은, 대한민국에서 인정하지 않는 단체다. 난 분명 초기에 회유하며 기회를 주었지만, 둘 다 거절했다. 이제 너희 둘에게 남은 건 헌법에 따른 처벌 뿐. 더 이상의 가치도, 의미도 없는 반항은 그만두는 것이 좋을 거야. 항복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네놈들의 영토를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
“X 까세요.”
서왕의 협박에, 동왕은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서왕과 동왕 간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나는 북왕을 바라보았다.
그는 서왕과 비교해 왜소한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날카로웠다.
그때, A가 앞으로 걸어 나오며 각 왕을 진정시켰다.
“진정하십시오. 2.5라운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 세력이 가진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2.5라운드는, 세력이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내야만 하는 과제로, 승리한 세력은 3라운드를 클리어할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을, 패배한 세력은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우선 세력 소개부터 들어가겠습니다.”
A는 4명의 왕 중심에 걸어 들어가, 상태 창을 생성해 냈다.
“첫 번째로 만경입니다.”
[만경][지도자 강시온]
[경제: 1위]
[군사: 3위]
[식량: 2위]
[영토: 4위]
“숫자에서도 보이다시피, 만경은 꽤나 밸런스를 이루고 있는 세력입니다. 4개의 세력 중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강시온. 현재 종합 세력 랭킹은 2위입니다.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A는 다음 세력으로 넘어갔다.
다음 세력의 상징성이 보이는 순간, 강시온은 물론이고 하윤하까지 인상을 찌푸렸다.
[서울 메트로][지도자 서지호]
[경제: 3위]
[군사: 1위]
[식량: 1위]
[영토: 1위]
서울 메트로,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4개의 세력 중 가장 거대한 세력.
서울 전반에 걸친 지하 세력으로, 현재는 정현수 대장이 토벌로 나간 서울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단언컨대, 현재 3라운드 클리어의 핵심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넓은 영토와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주력 부대는 총기를 사용하는 헌터들입니다. 지도자는 대한민국 제23대 대통령, 서지호이며 현재 만경과의 외교는 단절 상태입니다.”
A는 만경을 중심으로 타국을 설명하고 있었다.
수치상만 보더라도 엄청난 대국임은 틀림없었다.
만경이 경제권을 먹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가겠습니다.”
[강남][지도자 강다혜]
[경제: 2위]
[군사: 4위]
[식량: 3위]
[영토: 2위]
“강남은 원래, 대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부유한 지역과 자원을 토대로 세력 내 1위를 거머쥐었던 곳이지만. 대전쟁에서 패배하고선 현재 간신히 세력의 근간만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강남 역시 만경 못지않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기에,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강시온은 A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강남은 실질적으로 만경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세력이었다.
강남이 가지고 있는 이점은 무수한 양의 자원들.
특히나 강남이 동부로 영토를 넓혀가며 확보한 고산 지대는 여러 약재부터 몬스터의 부산물, 무엇보다 붉은 원석의 매장량이 많은 곳이다.
만경 입장에서도 강남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지만, 문제는 강남의 군사력이 말도 안 될 만큼 약하다는 것.
강남은 현재 만경의 용병 부대를 고용하고 있으며, 그 용병 부대에 따른 비용은 오로지 붉은 원석과 자원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만경이 경제 분야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강남의 자원이 한몫했다.
A는 마지막으로 북왕을 소개했다.
[강북][지도자 김국종]
[경제: 4위]
[군사: 2위]
[식량: 4위]
[영토: 3위]
“강북은 과거 흑룡파의 두목인 김국종이 지배하고 있는 작은 무력 집단에서 시작했지만, 그는 막강한 전사 무리로 강북을 차례차례로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그의 세력은 메트로 세력에 정복당해, 명목상 국가만 유지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숨죽이고 있는 맹수가 가장 무서운 법이죠.”
강북은 만경과 가장 접점이 없는 세력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서왕의 산하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경계 대상은 아니었다.
어쨌든, 2.5라운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나도 모른다.
2.5라운드는 진재희가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였으니.
이렇게 각국의 기밀사항을 공개적으로 밝힌다는 건, 아마 이 4가지 요소가 다음 라운드에서 큰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전체적으로는 서왕에 비해 열세인 건 사실이지만, 이쪽은 경제권을 잡고 있어.’
방랑자 조합이 만경 내에 거주하는 동안에는, 어차피 돈은 만경에서 시작하여 만경에서 끝나기 마련.
하윤하의 보고에 따르자면, 만경의 통화가 여타 다른 세력의 통화를 잡아먹어, 강남은 현재 라이터를 주력 통화로 사용한다고 했다.
메트로 세력도 다를 것이 없으며, 심지어 그들은 경제권을 빼앗기 위해 몇 번의 정복 전쟁을 벌였지만 정현수가 잘 막아주었다고 했다.
수치상으로는 만경-강남 연합이 밀려도, 충분히 돌파구가 있었다.
문제는 2.5라운드의 주제.
그 주제에 따라 핵심이 ‘경제’냐, ‘군사’냐가 밝혀진다.
왕들은 이제 A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숨 막힐 듯한 침묵.
A는 왕들을 한 번 둘러보고는, 또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2.5라운드의 주제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2.5라운드의 주제입니다.”
그의 말을 끝으로, 영롱한 빛이 각 세력의 왕 앞에 떠올랐다.
난 그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에서 튀어나온 건.
알이었다.
달걀만큼 작은 알.
알은 내 손바닥 위에 올려졌다.
동왕은 피식 비웃더니 A에게 말했다.
“하? 뭐야, 이건. 프라이 해. 처먹으라는 거야? 어이-구야! 고맙다! 관리자!”
A는 동왕을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왕들에게 말했다.
“키우세요. 그 알 속의 생명체를.”
키우라고?
“그 생명체가 어떤 식으로든, 죽으면 탈락입니다. 2.5라운드의 주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난 알을 쥔 채, A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A는 왕들을 둘러보다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말을 맺었다.
“세력의 모든 힘을 동원해야만 할 것입니다. 모든 힘을. 말이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