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화. 새로운 관리자
“뭐냐, 이거?”
영롱한 빛을 바라보는 진재희는 눈살을 찌푸렸고, 최명준은 흥분해선 소리쳤다.
“맞지! 이거! 너희들이 쓰는 요술!”
“……아티팩트.”
“이야-!!! 드디어다! 와-!!! 나 이제 너 이길 수 있지?! X뻘련아. 한 판 붙자! 이건 내 한이다! 달게 받아라! X 같은 년아!”
부웅-!
최명준은 아티팩트를 휘감은 주먹을 막무가내로 진재희에게 휘둘렀고, 진재희는 그런 그의 주먹을 가볍게 피하고는 전력으로 그를 발로 차 버렸다.
휘릭- 쾅!!!!!!
“푸하아악……!”
최명준은 반대편 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진재희가 얼마나 강하게 차 버렸는지, 방문을 부수는 건 물론이고 벽면에도 금이 갈 정도였다.
이제 진재희는 힘 조절 따윈 하지 않았다.
어차피 최명준이 아티팩트 소지자가 되었다면 회복이 빨라졌을 테니까.
‘회복이 필요 이상으로 빠르다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각성했을 줄이야.’
진재희는 자욱한 먼지 연기를 손짓으로 쫓으며 생각했다.
분명했다.
최명준이 방금 사용한 건, 아티팩트였다.
그는 각성했다.
정현수와 비슷한 경우였다.
본래 아티팩트는 1라운드가 끝난 뒤, 플레이어들에게 일괄 지급되었다.
하지만 그 소유자에 따라서 아티팩트는 전혀 다른 식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진재희는 먼지를 털어 내며, 쓰러져 있는 최명준에게 다가갔다.
그의 몸은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그래서. 능력이 뭔데?”
“모, 몰라! 씹! 아-! 야. 나 몸에 감각이 없어. 내 허리 어떻게 되었냐?!”
“반으로 접혔어.”
“미친년이!”
“능력을 알아내려면 한계까지 처맞을 필요가 있어.”
이건 상대가 최명준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강시온도 마찬가지였다.
한계까지 부딪혀 봐야지 능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일어나. 엄살 피우지 말고.”
“오-냐. 끝까지 해보자.”
최명준은 몸을 일으켜, 으르렁거렸다.
그의 몸은 금세 회복이 되었다.
아무리 아티팩트 소지자라고 할지라도, 이는 비정상적인 회복 속도였다.
게다가 온몸엔 핏빛의 줄기가 휘감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던 진재희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자가회복 관련 능력자인 건가?’
“오늘 둘 중 하나는 뒤지는 거야!!!!”
부웅-!
최명준이 육중한 몸을 던져, 진재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진재희는 몸만 틀어 피해 냈고, 아티팩트 성검을 불러들였다.
은빛이 모여들며, 그녀의 손에 성검이 쥐어졌다.
“조금 아플 수도 있어.”
“뭐?”
서-걱!
“끄아아아아아악!!! 조금이 아니잖아!!!”
진재희는 단번에 최명준의 우측 어깨를 베었다.
그녀의 성검은 단순히 ‘벤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베어진 상처 부위를 신성한 힘으로 불태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최명준의 회복은 빨랐다.
그리고 곧장 진재희에게 달려들었다.
“말하고 패! X발!”
부웅-!
아까 전보다 더 빠른 느낌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도, 진재희의 스피드에는 눈곱만큼도 따라오지 못하지만.
휘릭- 서걱!
최명준은 고통스럽게 소리쳤다.
“까아아아아악! 아아……. 더럽게 아파. X발 아파!!! 근데 힘이 솟아나. 뭐냐. 나? 변태인가?!”
“이제 알았어?”
휘릭- 서걱!
진재희는 그의 힘을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었다.
베고, 베고, 베었다.
그럴 때마다 최명준은 더 빠르고 강해졌다.
부웅-!
열세 번 정도 베었을 때는, 그가 진재희의 속도를 따라올 정도였다.
‘……설마.’
진재희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최명준의 머리통을 붙잡곤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아아앙-!
건물 전체가 한 차례 흔들렸다.
‘확실해. 이건…….’
진재희는 이 아티팩트를 알고 있었다.
물론 전생에는 최명준이 아닌 다른 이가 가지고 있었던 아티팩트였다.
이건 전쟁에 특화된 전쟁 군주의 아티팩트였다.
최명준의 눈에서 붉은 줄기가 튀어나오고, 그의 온몸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X발……. 왜……. 나는……. 네 발밑도 못 미치는 건데……. 어……? 미친년……. 진짜……. 존나……. 세네. 아오……. X발…….”
온갖 욕설을 내뱉는 최명준.
이 아티팩트의 이름은 버서커였다.
상처 입으면 입을수록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아티팩트.
피를 맛볼수록 더욱더 강해지는 아티팩트.
그야말로 최명준에게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진재희는 성검을 거두었다.
자신이 아는 상식에선, 제아무리 버서커라고 할지라도 통각의 느낌을 못 느낄 뿐이지, 일정 대미지 이상 입으면 죽게 되니까.
진재희는 뒤돌아 걸어갔다.
목뼈를 바로잡던 최명준은 그녀에게 소리쳤다.
“어디 가?! 알아본다며?”
진재희는 방문 앞에서 멈춰선 그를 돌아보았다.
찬란한 그녀의 머리카락이 몸의 회전에 따라 흔들렸다.
“……이제 일반 쓰레기에서 재활용 쓰레기가 되었을 뿐이니까. 그의 힘이 되기 위해서 연습해. 연습은 알아서 해. 나 귀찮게 하지 말고.”
그녀는 그 말만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방에 홀로 남겨진 최명준은 거친 숨을 내쉬며 어리둥절했다.
“저, 저 말을 해도. 꼭 싸가지 없게 말한다니까. 근데 뭐야……? 그래서 이거 이름이 뭔데? 어? 야!!!”
그들이 한바탕 대련을 하고 난 방 안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 * *
모두가 해산한 야밤.
아직까지도 도시에는 군중들의 함성이 요란했다.
나는 집무실로 돌아와, 정리된 문서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간단하면서도, 귀찮은 일이었다.
리그를 끝내기 위해서는 만경이 가지고 있는 힘을 끌어모아야만 했다.
이건 단순한 땅따먹기 리그가 아니었다.
관리자들에 의해 관리되고, 존재들에 의해 관람 되는 쇼였다.
그런 쇼의 막을 내리기 위해선 철저한 계획이 필요했다.
실무를 알고, 상황을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는다.
그건 군주의 일이다.
실무는 어쨌거나 하윤하가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경을 떠날 때도 그랬다.
지금은 죽어 버린 질서부장에게 하윤하를 맡길 때의 생각은, 내가 ‘굳이’나서지 않아도 윤하가 굳건한 국가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실제로 5년간의 공백기 동안 하윤하는 스스로 힘을 증명했다.
나조차 만경에 왔을 땐, 살짝 감탄할 정도였으니.
‘하윤하가 군주의 상태 창까지 내게서 위임받는다면, 앞으로의 시너지가 엄청날 거야.’
하윤하는 물건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귀중한 물건.
난 그녀를 잘 타이를 필요가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고 방문을 열고 들어온 건 하윤하였다.
하윤하는 문을 닫고 들어와 내게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왔어?”
“네.”
“얘기 좀 할까?”
“……네.”
하윤하는 고집스러워 보일 정도로 죄지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너무 과한 느낌이 들었다.
하윤하는 짧은 보폭으로 다가와 내 곁에 앉았다.
유리창에 비치는 달빛이 집무실 안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하윤하는 내가 앉은 곳까지 다가오더니,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뭐 해. 일어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만경을 지혜롭게 운영하지 못해서. 영웅께서 돌아오신 것도 모르고……. 제 자신이 한심합니다.”
윤하는 울먹거렸다.
난 윤하를 타이르며 말했다.
“일단 일어나. 불편해.”
“……감히 황제와 두 눈을 마주칠 순 어, 없습니다!”
……이 애도 답답한 구석이 있네.
난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에 앉았다.
이제 하윤하와 눈을 마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윤하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어, 어, 어째서 감히 저 같은 애가…… 영웅과 시선을 마주할 수 있겠습니까……. 시선을 높이소서……!”
터억-.
난 윤하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윤하의 몸 떨림도 사그라들었다.
이 아이를 볼 때면 언제나 이 반도 어딘가에 있을 내 동생이 떠올랐다.
동생은 언제나 내 품에 안겨 응석을 부려 댔다.
그럴 때마다 정수리에 손을 얹으면, 고개를 올려 날 바라보곤 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아이처럼.
하윤하는 눈물 섞인 눈동자로 날 올려다보았다.
난 윤하에게 말했다.
“잘했어. 아주 훌륭했어. 솔직히 깜짝 놀랄 정도였다니까.”
“황제 폐하…….”
“넌 군주의 상태 창도 없이도 이 모든 걸 해냈어. 그리고 세력을 이만큼 키워 내기 위한 압박감과 중압감은 대단했을 거야. 얼마나 큰 부담감을 가졌었는지 내가 모든 걸 헤아릴 순 없지만,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어. 고맙다. 우리의 도시를 지켜 줘서.”
“…….”
킁-.
윤하는 콧물을 들이마셨다.
이 아이는 이제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스무 살이라고 하면 성인으로 취급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어른한테 배울 점이 많고, 알아 가야 할 것도 많은 나이다.
내게는 그런 어른이 없어서 닥치는 대로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다.
그럼에도 윤하는 해냈다.
나와의 약속을 아주 훌륭하게 지켜 냈다.
난 윤하에게서 손을 거두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전경은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동시에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는 동그랗고 환한 보름달이 떠올라 있었다.
누가 검은 도화지에 계란 과자를 올려놓았나, 싶을 정도로 달은 밝고 선명했다.
“그동안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어. 얘기 좀 할까?”
윤하는 가만히 날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 * *
강시온은 빛남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가는지도 모르고 이어졌다.
윤하는 시온의 이야기를 새겨들으며,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울창한 숲.
녹룡이 죽어 있던 역.
사람을 잡아먹는 구울.
순식간에 죽어 버리는 독 지대.
시간의 뒤틀림까지.
둘의 모습은, 마치 동화를 읽어 주는 오빠와 흥미롭게 듣는 동생 같았다.
“그, 그래서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어요?”
“마녀가 나타나고, 난 기억을 잃었어. 눈을 떠보니까, 웬 오두막이더라고. 근데 그 오두막은 최현지가 만들어 내었던 거지. 촉수가 이곳저곳에서 돌아다녔어. 처음에는 당황도 했지만, 뭐. 최현지 덕분에 좀비들로부터 안전했지.”
“우와……. 지, 진짜 굉장한 일들이 있었네요.”
“빛남에서의 일은 정말 꿈만 같았어. 판타지 영화나 소설을 본 적은 없지만……. 정말 그 세계의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달까?”
“저흰 그런 줄도 모르고…….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무엇보다 돌아와 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손 좀 줘 보겠니?”
“손이요?”
윤하는 손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시온은 내민 윤하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어 놓았다.
그 순간, 둘을 중심으로 수많은 상태 창이 떠올랐다.
“이, 이건……?”
“군주의 상태 창이야.”
상태 창은 세력에 관한 아주 자세한 내용이 속속들이 나와 있었다.
시온은 그 상태에서 그녀에게 군주의 상태 창 능력을 위임해 주었다.
과거, 경찰서장 박건우가 그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처럼.
이로써 하윤하는 강시온이 바라보는 군주의 상태 창을 공유받을 수 있었다.
“이, 이건……?”
“네게 군주의 권한을 나누어 줄게. 앞으론 내가 옆에서 도와줄 테니, 세력을 굳건하게 지켜 줘. 넌 충분히 증명했어. 앞으론 너의 색깔로 만경을 잘 다듬어 주기만 하면 돼. 네가 행하는 일이라면, 난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이건 상당히 이례적인 언사였다.
강시온은 리그가 시작된 이래로, 진재희만을 자신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하윤하 역시 믿게 되었다. 또 세력을 관리하는 데에 있어 그녀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건 원래 강시온이 계획했던 것이었다.
세력을 운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마땅한 인재를 수장으로 두고, 중대한 결정 사항 같은 것만 강시온이 처리하면, 만경은 훨씬 더 굳건하게 유지될 것이다.
사실 웬만큼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러한 일을 벌이는 건 상당히 위험하게 작용할 수도 있었다.
권력을 나누어 준다는 건, 한 몸이 되겠다는 것이니.
만약 하윤하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세력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하윤하는 지난 5년간 스스로 증명했다.
그녀를 믿지 않을 이유 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대행’에 불과했던 하윤하를 황제로 즉위시킨 셈이다.
황제를 결정하고 즉위시킨 영웅 강시온.
그는 차분한 눈빛으로 하윤하를 바라보며 당부했다.
“잘 부탁해.”
“…….”
하윤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로써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강시온은 유일한 영웅으로서, 만경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고.
하윤하는 황제로서, 만경의 모든 정치, 행정을 통치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 * *
그 다음 날.
만경에 새로운 관리자‘들’이 찾아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